소설리스트

A.I 닥터-137화 (137/1,303)

137화 걸렸다 (2)

슈우욱.

수혁은 신현태 그리고 홍창기와 함께 나머지 환자에게로 넘어갔다.

분명 같은 양의 스테로이드가 들어갔으나, 이쪽은 아직이었다.

“엑스레이 보면……. 이 환자는 폐렴이 병발되어 있어요.”

홍창기는 그 원인으로 환자의 양측 폐 하엽을 지목했다.

과연 양측 폐 하엽은 유독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심지어 엑스레이상에서 측면이 어딘지 모르게 뭉툭해져 있기까지 했다.

‘물이 찼어.’

폐가 하얗게 된 것이지, 폐부종이 생긴 건 아니지 않은가.

저기 물이 찬 건 심각한 염증으로 인한 고름 같은 것이 찬 거라고 보면 되었다.

단순 독성 반응이 아니라, 무언가 더해졌다는 뜻이었다.

“뭐, 그래도……. 스테로이드에 아예 반응이 없지는 않네요.”

홍창기 교수는 시선을 환자에게로 돌렸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 뒤편에 놓인 모니터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100회를 넘나들던 분당 심장박동 수가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아 가는 중이었다.

삽관한 것도 한몫하긴 했겠지만.

전반적인 폐 상태가 호전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봐도 좋을 터였다.

“폐 염증에는 흉관 꼽는 게 어떨까? 원인균도 동정할 겸.”

신현태는 홍창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환자의 늑간을 꾹 눌렀다.

어차피 항생제는 때려 붓겠지만.

그래도 역시 감염 질환에서 감염원을 물리적으로 제거할 수 있다면 무조건 제거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적어도 감염내과 교수로 평생 살아온 신현태의 지론은 그랬다.

“아, 흉관이요. 음.”

홍창기 교수는 아무래도 신현태만큼 심각한 형태의 감염을 본 경험은 적었다.

하지만 결국,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건 폐렴이지 않던가.

그게 암 환자가 되었건, 다른 환자가 되었건 최후까지 끌고 가는 건 폐렴이라는 얘기였다.

그만큼 무서운 질환인데, 이 환자는 너무 젊었다.

아니, 어리다는 표현을 써야 할 지경이었다.

“흉부외과 쪽 의뢰할까요?”

“그게 좋겠어. 일단 흉수가 어떤 양상인지도 보고. 이게 그냥 독성 반응 때문일 가능성도 있긴 하잖아?”

“아……. 그건 그렇죠.”

가능성은 아주 적지만.

이미 이 환자는 로또 당첨보다도 더 희귀한 케이스 아니던가.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진료를 보는 게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럼 부를게.”

“네, 과장님.”

신현태는 그 자리에서 흉부외과 쪽으로 전화를 걸었다.

아무래도 한 과의 과장인 데다가, 장가도 기가 막히게 간 사람 아니던가.

흉부외과에서는 오히려 이현종 전화보다도 더 열심히 받았다.

[뭘 그렇게 보고 있습니까?]

그사이 수혁은 눈앞에 있는 환자가 아니라, 다른 환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환자실이다 보니 다들 위독한 환자뿐이었다.

그냥 중환자실도 아니고 태화 의료원 아닌가.

아무리 다른 병원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다 해도 중증 환자들이 몰리는 병원이라는 뜻이었다.

띠띠.

삑삑.

사방에서 모니터 알람 소리가 울려 퍼질 지경이었다.

‘어? 아.’

[왜 우리 환자 말고 다른 환자 봅니까? 뭐……. 신기한 환자라도 있습니까?]

아마 예전 같았으면 그저 시비만 걸었을 바루다였지만.

이젠 나름대로 수혁의 실력을 존중해 주는 편이었다.

해서 뭔가 신기한 케이스라도 발견한 건 아닐까 하고 좋게 해석해 주었다.

하지만 수혁은 딱히 어떤 환자 하나를 보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중환자실 전경을 응시하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여기 총 병상이 모두 몇 개지?’

[네?]

바루다는 이건 또 뭔 참신한 개소린가 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너무 뜻밖의 질문 아닌가.

지금 과장이랑 호흡기 교수는 환자 치료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전화하고 어레인지 하고 난리 난 마당에.

‘병상이 모두 몇 개냐고. 지금 이렇게 봐서는……. 한 50개는 되어 보이는데.’

하지만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수혁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이럴 때 몇 번인가 홈런 친 적이 있는 인간 아니던가.

따라서 바루다는 천천히 병원 구조를 머릿속에 구현하기 시작했다.

워낙 방대한 구조이긴 했지만, 중환자실 하나에 한정한 데이터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음.’

덕분에 수혁은 아주 잠시간의 어지럼증 끝에 중환자실 도면을 볼 수 있었다.

[총 60 병실로 구성되어 있군요. 그중 격리 병실이 12 병실이고……. 나머지는 저렇게 열려 있습니다.]

바루다는 두리번거리는 수혁의 속도에 맞춰서 말을 이었다.

마침 지금 격리 병실 안에 들어와 있었기에, 보이는 부분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가뜩이나 중환자실은 침대 간 거리가 꽤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수혁은 잠시 그사이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는 간호사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분들……. 한 명당 맡은 환자가 모두 몇이지?’

[셋에서 넷이겠죠? 중증도에 따라 다를 겁니다.]

일반 병실에서는 간호사 혼자 호실 두어 개를 맡는 게 보통이었다.

거의 두 자릿수가 넘는 환자를 본다는 뜻인데, 그래도 간호 실수 때문에 사고가 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이는 그만큼 손이 덜 가는 환자들이란 뜻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에 반해 중환자실은 간호사 한 명에게 배정된 환자 수가 극단적으로 적어도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중증도가 워낙에 심하기 때문이었다.

‘흐음…….’

[왜요?]

바루다는 난데없이 턱 밑을 긁고 있는 수혁을 향해 물었다.

하지만 수혁은 답하는 대신, 격리실 문을 향해 걸어간 후 문을 열어 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자 흉부외과 의사 하나가 인턴 한 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어, 어서 와요. 여기, 이분 흉관 좀.”

신현태는 그런 흉부외과 의사에게 자리를 비켜 주었고.

홍창기는 인턴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다.

흉관 삽입이라는 게 수술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 줄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가슴을 열고 관을 삽입해야 하는 술기 아니던가.

일순 방안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까 왜냐고 물었지?’

오직 한 명.

수혁만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루다는 이 사람이 여름이라도 타는 건가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머릿속에 형상화된 존재일 뿐이긴 했지만.

아무튼, 둘은 이제 제스처만으로도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했다.

‘저기……. 저거 완전 쓸데없는 알람 아냐?’

수혁은 손가락을 들어 바깥에 누운 환자 중 한 명을 가리켰다.

아까부터 알람이 시끄럽게 울리고 있는 환자였다.

침대 밑에 적힌 진단명은 ‘Sepsis’.

즉 패혈증이었다.

[패혈증 환자에게서 열이라……. 떨어졌다가 오르면 모를까, 입원하고 하루도 안 지난 상태에서는 쓸데없죠.]

바루다는 일단 맞는 말이긴 하니까 맞장구를 쳐 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놈이 왜 이러나 싶기는 했다.

애써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진 않았지만.

‘저런 거…… 걸러 주면 좋지 않을까?’

[네? 뭐가 걸러요?]

‘저거 저 알람들 있잖아. 모니터에서 나오는 거.’

[네.]

‘그거 중앙 스테이션에서 하나로 취합해서 볼 수 있을 거 같지 않아? 어려운 일 아니잖아.’

[어……. 그건……. 그건 그렇겠죠.]

이제 4g 시대를 넘어 5g 시대라고 하지 않던가.

물론 아직도 수혁은 LTE 시대에 머물러 있긴 하지만.

아무튼, 바루다가 보기에 저 모든 정보를 한데 취합하는 거 정도는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닌 거 같았다.

‘그럼 그거 그 자리에서 분석하는 것만 해 주면……. 품이 확 줄 거 같은데.’

[어……. 분석…… 품…….]

언제 한번 들어 본 말이지 않은가.

바루다는 저도 모르게 신현태를 떠올렸다.

그래, 천상 학자 타입이라 할 수 있는 신현태가 싹 조사해 왔던 자료.

거기서 본 기억이 있었다.

‘어떤 거 같아. 요새 대세가 보조형 인공지능이라며. 저 알람들 싹 모아다가……. 각 환자 상황이나 이전 수치에 따라 분석해 주는 거야.’

[어……. 음.]

바루다는 현대 과학의 정수라 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지만.

정작 과학에 관한 지식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지금 수혁이 말하는 게 기술적으로 가능한 건지 어떤 건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하지만 있으면 좋을 거 같았다.

적어도 저기 멀리 미국에서 보았던 왓슨보다는 더 낫지 않겠는가.

그건 무겁기만 무겁고 딱히 도움이 되는 거 같지는 않았으니까.

‘될 거 같지?’

[어……. 되면 좋겠다 싶긴 한데.]

‘모르겠어? 너 인공지능이잖어.’

[아니……. 제가 뭘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뭔 이런 놈이 다 있어. 아는 게 없네?’

[아니……. 아는 게 없다는 발언은 좀.]

바루다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쩔쩔맸다.

수혁은 그런 바루다를 보며 혀를 츠츠 찼다.

‘거 되게 간단할 거 같은데 모르네.’

[저는 진단 목적 인공지능…….]

‘이것도 진단에 도움이 되는 거잖아?’

[그……. 그러니까 이건 좀 영역이 다른……. 문제 아닐까요?]

‘아무튼, 됐어. 조용히 해 봐. 쓸모없는 놈.’

[하…….]

바루다가 충격에 빠져 있는 사이, 수혁은 대화를 멈추고 눈을 떴다.

아무래도 바루다와 대화를 할 때 눈을 뜨고 있으면 자꾸 허공을 응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미친놈이란 오해가 쌓이기 마련 아니겠는가.

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결국, 눈을 감는 것으로 해결을 보았다.

“어, 수혁아.”

그래 봐야 뜬금없이 눈을 감고 있어서 이상해 보이기는 매한가지이긴 했지만.

아무튼, 신현태는 술기가 펼쳐지는 내내 눈을 감고 있다가 뜬 수혁을 불렀다.

‘흉관 삽입하는 게 겁나나?’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았다.

이 녀석은 나름 혼자 어느 정도는 술기를 하는 편이었으니까.

심지어 간단한 절개 배농은 외과나 다른 외과계 과에 의뢰도 하지 않고 혼자 척척 해내지 않던가.

‘확실히 좀 이상한 구석이 있긴 있어.’

그게 딱히 뭐 마음에 걸리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이상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아무튼, 수혁은 신현태의 부름에 응답했다.

“네, 교수님. 그……. 아, 흉수는 고름이네요. 저거 동정해서 바로 항생제 들어가면 될 거 같습니다.”

원래는 방금 자신이 떠올린 아이디어를 언급하려 했으나, 어쩐지 지금은 흉관에 관한 얘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모두의 신경이 그쪽으로 쏠려 있었으니까.

신현태라고 다르진 않았다.

“어. 그리고 흉관 통해서 배액이 좀 되면……. 아무래도 상태도 훨씬 나아질 거야.”

“다행이네요.”

“이 환자도 네가 살린 거지 뭐. 야, 이 환자는 진짜 며칠만 더 끌었으면……. 위험했을걸.”

진단에 있어서 갈팡질팡하는 것이 별 위험을 일으키지 않는 건 감기 정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다.

지금 이 환자처럼 가슴에 농이 찰 정도로 상태가 안 좋은 환자에서 정확한 진단은 그 자체가 구원이었다.

수혁은 잠시 신현태가 자신이 한 일로 인해 뿌듯해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근데 교수님.”

신현태는 본능적으로 이놈이 뭔가 아주 중요한 얘기를 꺼낼 것이란 걸 직감했다.

수혁은 여태 그래 왔으니까.

“어, 잠깐만. 여기서 말고. 연구실 가서 얘기하자.”

그러자 홍창기가 조금은 배신감이 느껴진다는 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왜, 왜요? 여기서 하시지 그냥.”

“아냐, 아냐. 연구 얘기라.”

“연구……? 설마, 화이자?”

“아, 뭐. 뭘 그렇게 알려고 해.”

“에이, 형님 저도 좀 알려 주세요.”

“형님은 무슨. 과장님이라고 해.”

그리곤 질척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근엄하기 짝이 없더니.

[홍창기는 끼워 주죠? 호흡기라 중환자실 제집처럼 들락거릴 텐데.]

그때 바루다가 조언을 해 주었고, 수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장님, 홍 교수님도 같이 얘기 나누면 어떨까요? 관련이 있어서요.”

“너, 너! 정말 좋은 놈이구나!”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