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42화 (142/1,303)

142화 융합의학센터 (3)

“신현태 과장님이시죠?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융합의학센터 안으로 들어서자, 데스크에 있던 직원이 인사를 건네 왔다.

한때 여기도 바글바글했던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지금은 수혁 일행과 직원뿐이었다.

“아, 네.”

수혁은 앞장서서 걷는 신현태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딸각거리는 지팡이 소리가 다소 을씨년스럽게 들릴 만큼이나 조용했다.

융합의학센터라더니.

센터 붙은 곳치고 이렇게까지 조용한 곳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

[망한 곳 아닐까요? 도저히 돈 나올 구석이 없어 보이는데.]

‘그…….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도 포기한 곳 아닙니까. 근성이 없어요.]

‘너는…….’

수혁은 너는 터졌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워낙 오가는 사람이 없다 보니, 회의실도 아주 가까운 곳에 잡혀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걷기 시작하나 싶을 때쯤 이미 도착해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오시죠.”

회의실 안에는 연구원 하나가 자리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할 일이 없었는지, 머리카락 뒤가 조금 눌려 있었다.

아마 조금 전까지 자다 나온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센터를 축소하네 마네 하는 말이 나오지.’

사실 본사 차원에서 서자 취급당하게 된 마당에 안 닫는 게 더 용하긴 했다.

병원에서 죽자사자 매달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쯤 공중분해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때 현종이 형이 회의에서 날렸지.’

평소엔 그렇게 회의라고 하면 질색팔색하는 양반이.

병원의 미래가 걸린 일이란 생각이 들자마자 아예 좌중을 휘어잡았더랬다.

심지어 태화 그룹 가장 어른인 이태화 회장이 박수까지 쳐 주었을 정도였다.

그게 정말 연설 내용에 감화를 받은 건지, 아니면 나이도 적지 않은 사람이 난리 치는 게 신기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렇게 융합의학센터는 살아남을 수 있었더랬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커피나 차 하실래요?”

구사일생으로 목이 달아나지 않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연구원은 다소 형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권했다.

회의실은 꽤 크기가 있었기에 자리도 충분해서 따라온 교수 수가 적은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널찍하게 앉을 수 있었다.

“피차 바쁘니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연구원은 잠시 일행이 모두 앉기를 기다려 주고는 입을 열었다.

노트북 하나를 슥 하고 밀어 주면서였다.

처음에 그걸 받은 건 신현태였다.

“아, 발표는 이 친구가 할 거예요.”

신현태는 그걸 고대로 수혁에게 전해 주었다.

수혁은 가지고 온 USB를 꽂으며 물었다.

“이거 연결이 되어 있는 건가요?”

“네. 바로 이 앞 화면에……. 아, 네. 지금 뜨네요.”

연구원은 화면에 뜬 ‘진단 보조 목적의 A.I. 개발 건’이라는 문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요새 이게 화두긴 하지.’

한때 인공지능이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땐, 정말로 세상이 곧 뒤집히는 줄로만 알았더랬다.

특히 알파고가 천재 바둑 기사 이세돌을 이겼을 땐 그 시점이 당장 앞으로 다가온 줄 알았고.

하지만 A.I.의 발전은 생각보다 느렸다.

아니, 인간의 능력이 생각보다 대단하다고 해야 할까.

‘간편화된 인공지능이 대세지. 음.’

연구원은 얼마 전 들여다보았던 논문을 떠올렸다.

이미 상용화된 것들도 있었고, 상용화를 앞둔 것들도 있었다.

그중에서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주제들도 있었는데 문제는 돈이었다.

지금은 바루다 건 때문에 자금줄이 싹 말라 버린 상황이었다.

연구원의 후회 속에서 수혁의 발표가 시작되었다.

“중환자실에서 각 환자의 활력징후를 한 CPU에 취합하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해당 활력징후를 개개인별로 분석하여 패혈증 가능성을 산출해 내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합니다.”

들어 보니까 상당히 그럴싸했다.

‘그럴싸한 발표는 사실 아주 많지.’

특히 이쪽 바이오 분야는 더더욱 그러했다.

아무리 연구원끼리라 해도 같은 전공이 아니면 정보의 비대칭이 너무 심해서 그랬다.

게다가 정부에서나 회사에서나 미래 먹거리로 바이오를 빼놓는 적이 없지 않은가.

어떻게 하면 돈이나 좀 빼먹을 수 있을까 궁리하는 사기꾼들까지 득실거렸다.

‘근데 이건 그럴싸한 수준이 아니라…….’

그냥 어떻게 하면 되겠다 싶을 정도로 구체적인 청사진이 그려지는 발표였다.

보통 이런 연구 계획서에는 그 목표가 논문 게재에 있지 않은 이상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할 것들이 있었다.

일단 이게 정말 필요한가였다.

생각보다 세상에 이루어지고 있는 연구 중엔 하나 마나 한 것들이 굉장히 많았다.

기껏해야 어디 논문에 한 번 실리면 그걸로 끝이 연구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뜻.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연구는 아주 좋았다.

패혈증 예측 확률을 인공지능이 산출해 준다면 그건 반드시 진료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실현 가능해. 이건……. 만들면 돼.’

이미 스코어 산출법이 논문으로 다 나와 있지 않은가.

이걸 기계적으로 산출하는 인공지능 정도 만드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실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대중화되었으니까 나오는 말이지, 그냥 프로그램 수준일 거 같았다.

‘문제가 하나 있네, 문제가.’

다 좋은데 문제가 있었다.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발표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래쪽을 슬쩍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핸드폰이 있는 자리였는데, 통화 창이 열려 있었다.

그 창에는 서효석 교수라는 이름이 큼지막하게 쓰여 있었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핑계 잘 대지?

연구원은 자신의 소속을 떠올렸다.

비록 몸은 태화 의료원에 나와 있지만.

실은 태화 생명 소속이었다.

서효석의 아버지는 태화 생명의 주요 이사 중 하나였고.

즉 서효석의 아버지 손에 자신의 목숨 줄이 달렸다는 얘기였다.

‘하……. 이건 되는 건데…….’

이미 눈앞에 제품이 그려지는 발표 아니던가.

연구원으로 살아오면서 이거보다 그럴싸하고, 이거보다 큰 그림 그리는 발표야 얼마든지 많이 들어 봤더랬다.

하지만 이거보다 만들기 쉬울 거 같은 발표는 없었더랬다.

“네, 이상으로 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연구원이 내면의 갈등에 몸서리치는 사이, 수혁의 발표가 끝이 났다.

연구원은 속이 부대끼는 와중에도 귀는 열어 두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맞춰서 박수를 칠 수 있었다.

‘시바……. 어쩌지?’

여전히 갈등 중이긴 했지만.

“어떻습니까?”

고개를 돌려 보니 입을 연 이는 신현태였다.

아주, 정말 아주 흡족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가 보기에도 수혁의 발표는 완벽했기 때문이었다.

아마 자신이 프로그램만 좀 다룰 줄 안다면 바로 달려들었을 터였다.

비록 자신은 워낙 수혁을 좋아해서 어느 정도 에러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조태진도 홍창기도 모두 같은 얼굴 아니겠는가.

해서 확신을 하고 있었다.

‘어떻긴. 완벽하지.’

그리고 그 확신은 연구원도 가지고 있었다.

이건 저 자료 거의 그대로 따다가 기획서 만들면, 솔직히 꼭 태화 전자 아니라 어떤 회사에서도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문제는 그랬다간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하다는 것이었다.

“왜 말이 없어요?”

고민에 빠진 연구원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신현태가 다시 물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느꼈는지 아까보다 얼굴이 안 좋아져 있었다.

“그……. 음.”

연구원은 신현태를 보며 또다시 머리를 굴렸다.

‘이 사람 장인이……. 전자에 있지?’

전자 전무 이사였나 아마 그랬을 터였다.

전자랑 딱히 의료원이랑 크게 상관이 있는 건 아니긴 했지만.

그래서 그룹 전체 지주 회사이지 않은가.

사실 서효석 아버지랑 비교당하면 아마 기분이 많이 상할 터였다.

그 정도로 그룹 내 서열 차이가 있었다.

‘아냐……. 너무 위야…….’

오히려 그래서 더 안 될 거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에 입을 열지 못하고 있자, 신현태가 답답해진 마음에 몸을 일으켰다.

“뭐 하는 거예요? 가타부타 의견을 내야지.”

“그게…….”

“아까부터 보는 건 또 뭐고.”

신현태는 키가 작은 편이 아니었기에 일어서면 꽤 멀리 볼 수 있었다.

눈도 그 나이치고는 썩 괜찮아서 이런 회의실 안에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해독이 가능했다.

“서효석? 설마 서 교수한테 전화 받은 거 때문에 이래요?”

“네? 아, 아뇨. 아뇨. 그런 거…….”

“그런 거 아니긴! 맞잖아. 그 사람이 뭐래요?”

“그…….”

연구원은 거의 울상이 되어서 사방을 둘러 보았다.

그래 봐야 별 소용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워낙에 융합의학센터가 축소되는 바람에 회의실에는 병원 사람들뿐이었으니까.

그나마 있는 직원은 아마 다시 데스크 앞에 가서 졸고 있을 터였다.

“그…….”

“뭐래. 내가 과장이에요. 서 교수보다 위라고.”

“그…….”

“그래요. 말씀하세요! 우리 현태 형……. 아니, 과장님이 말씀하시는데.”

“그…….”

“말하세요!”

세 교수가 번갈아 가며 호통을 쳐 대는 통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분명 조태진이랑 홍창기는 짬밥이 그렇게 높지도 않은 거 같은데, 과장이랑 함께 와서 그런 건지 아니면 수혁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건지 아주 기세가 흉흉했다.

“그래요……. 서 교수님이 이거 통과시키면 자른다고 했어요…….”

압박에 못 이긴 연구원은 그만 실토하고 말았다.

말을 내뱉는 즉시 입을 틀어막기는 했지만.

아마 틀어막으면서도 알았을 것이었다.

이래 봐야 이미 떠나간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걸.

“허. 이 새끼 이거……. 선 넘네?”

그 말을 들은 신현태는 당연하게도 성질을 냈다.

지가 뭔데 감히 다른 직원을 자르네 마네 한단 말인가.

원장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말을.

“어, 그……. 저……. 이건 비밀로…….”

당황한 연구원이 신현태의 팔을 붙잡았다.

인격자인 신현태는 그의 별명이 실로 아깝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연구원님은 걱정 마세요. 절대 말 안 새어 나가게 할 테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요. 이거 됩니까, 안 됩니까.”

“됩니다. 이건 됩니다.”

“그래요? 그럼 합시다.”

“근데…….”

“그 협박 건은 내가 알아서 막을게요. 수혁아, 너도 들었지?”

신현태는 연구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얼굴로 그를 마주 보았다.

듣기는 들었는데, 그게 뭔 상관이 있나 싶었다.

‘내가 못 읽어 낸 행간이 있나?’

[아뇨. 딱히 깊은 생각하고 한 말은 아닌 거 같은데요?]

‘너…….’

[왜요?]

‘아냐.’

수혁은 자신의 속마음을 닮아서 그런지 점점 더 싸가지 없어지는 바루다를 보며 잠시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너……. 김다현 환자 번호 있지 않아?”

“아. 있습니다.”

“그래. 그 얘기야.”

“아…… 아! 그렇군요.”

알고 보니 여기서 백이 젤 센 인간이 수혁이었다.

서효석이고 나발이고 다 끝이었다.

태화 그룹 가문 사람이 아니라면 김다현을 이기긴 어려울 테니까.

“김다현…… 이사님이요?”

연구원도 알 정도로 그룹 내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었다.

병원이야 워낙 바쁜 데다가, 그룹에서 조금 소외된 곳이라 알지 못했지만.

다른 계열사에선 아니란 뜻이었다.

“네. 쟤가 그분 생명의 은인이에요.”

“네?”

“저도 뭐 알죠?”

“알긴…… 압니다.”

“근데 뭘 겁내. 된다고 생각했으면 하면 되죠. 안 그래요?”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