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45화 (145/1,303)

145화 이제 많이 했다 (3)

가게 이름은 외딴섬이었다.

‘외딴섬이라니…….’

이름 한번 참 을씨년스럽지 않은가.

심지어 가게는 그 이름이 딱 어울리게끔, 밭 안쪽 깊숙한 곳에 있었다.

이런 곳이 강남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을 줄이야.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바로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가게 생긴 것 좀 보세요.]

아까까지만 해도 소고기를 먹으러 가느니 어쩌니 하던 바루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가게는 붉은 벽돌집이었는데, 2층 창문에 붙은 ‘외딴섬’이라는 이름까지 붉어서 식당이라기보다는 범죄 현장처럼 보였다.

“선생님들 가시죠. 자, 이거.”

그래도 뭐 어쩌겠는가.

교수가 벌써 들어가 버렸는데.

해서 셋이 옹기종기 모여서 들어가려는데, 주차하고 온 영업 사원이 후다닥 달려와 무언가를 건네주었다.

“숙취 해소…….”

“죄송합니다. 이런 자리에 오게 해서요.”

“아니에요. 뭐……. 교수님이 오라는데 와야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최대한 막아 보기는 할 텐데…….”

하도 술을 먹어 대서 그런지 턱이 두 개를 넘어 세 개가 된 영업 사원이 아까보다도 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어 가며 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들어 본 적도 있는 거 같았다.

서효석이 손버릇까지 안 좋다는 걸.

‘어쩌지?’

[잘된 거 아닙니까?]

‘뭐?’

수혁은 실로 오랜만에 바루다에게 쌍욕을 던졌다.

지금 자신을 따르는 후배가 곤경에 처하게 생겼는데 잘됐다니.

이게 대체 무슨 미친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바루다는 기계였고, 수혁처럼 말랑한 사고를 하지 않았다.

[혹시 만지거나 발언 이상한 거 하면 그거 녹화해서 터뜨리세요. 그럼 바로 끝이잖아요.]

‘아…….’

솔직히 말하면 정말 아주 살짝 혹하긴 했다.

하지만 수혁은 비록 조금 싸가지 없는 편이긴 해도, 인성 처진 인간은 아니지 않은가.

결국에는 고개를 저어 댔다.

‘아냐, 안 돼.’

[어차피 서효석하고 온 이상 수혁에게 무슨 힘이 있나요?]

물론 바루다는 계속 깐죽거렸다.

일견 맞는 말이긴 했으나, 바루다나 수혁이 한 가지 간과한 일이 있었다.

“전 괜찮아요.”

“네?”

“서효석 교수님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위예요.”

“어……?”

“아선 병원 우창윤 교수님 아시죠? 제 아버님이에요.”

“아…… 아!”

바로 우하윤의 아버지가 우창윤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냥 교수도 아니고, 내분비내과 학회의 학술이사였다.

차기 또는 차차기 학회장이 아닐까 하는 얘기까지 돌았다.

서효석 따위는 감히 학회에서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오.’

[세네요.]

평소 하윤은 자신이 로열이라는 걸 절대 티 내지 않는 편이었다.

실제로 자기는 그런 거로 이득 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다는 말도 했었고.

하지만 굳이 부당한 일을 당할 게 뻔한데 입 다물고 있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역시 우리는 뺑끼나 칩시다. 안대훈은 안 됐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죠.]

해서 수혁은 약간 수정된 계획을 가지고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는 밖에서 본 것처럼 그냥 가정집이었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부엌이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거?

서효석은 그 부엌이 내다보이는 거실 한 가운데에 떡 하니 앉아 있었다.

“어, 인턴. 여기 앉지.”

서효석은 자기 바로 옆자리에 방석을 슥 하고 꺼낸 후 툭툭 두드려 댔다.

자연히 모두의 시선이 하윤을 향했다.

아깐 호기롭게 말했지만.

글쎄, 당사자 앞에선 어떨까.

수혁은 혹 시원찮으면 어떻게든 얘기를 꺼내 보리라 마음먹었다.

하나 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우하윤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고 또 강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서 교수님. 오랜만이에요.”

일단 오랜만이라는 인사로 포문을 열었다.

그때까지도 정신 못 차리고 방석만 두드려 대던 서효석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오랜만?”

자기가 언제 인턴이랑 말 섞을 일이 있었을까?

정해진 과 행사도 어지간하면 안 나가는 사람인데.

그래도 서효석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라, 이러한 의문을 품을 수는 있었다.

“네. 전에 저희 집에 오셨었잖아요. 몇 번 오셨었는데, 기억 안 나세요?”

“어…….”

서효석의 얼굴은 이제 이건 또 무슨 개소린가가 되었다.

우하윤은 그런 서효석을 내려다보며,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처음 그랬던 것처럼 생글생글 웃으면서였는데.

이게 바로 웃으면서 맥이는 거구나 싶었다.

“저 우하윤이에요. 우창윤 첫째 딸.”

“우창윤……. 우창윤……. 아, 아! 우창윤 교수님!”

서효석은 저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약자 앞에서야 한없이 강한 인간이지만.

그만큼 또 강한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창윤이 자기 딸 앞에서나 허허거리지, 다른 자리에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인간이었다.

오히려 더럽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특히 능력 없고 노력도 안 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는데, 그게 서효석이었다.

“네, 맞아요. 서 교수님. 옆자리 앉을까요?”

하윤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선 서효석을 보며 말을 이었다.

마치 이래도 앉으라고 할 거냐 하는 얼굴이었다.

“어…….”

서효석은 지극히 당황했다는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곧 그 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냐, 아냐! 아냐! 너……. 아니, 우 인턴 샘은. 음. 어디 보자.”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올랐는데 정말 놀란 모양이었다.

감히 자신이 우창윤 교수의 따님에게 수작을 걸려고 했다니.

혹 말 한마디라도 잘못 꺼냈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만 해도 지옥 같았다.

‘우창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맥도 좋았다.

아랫사람은 쥐 잡듯 잡는 주제에 윗사람한테는 어찌나 잘하던지.

학회 어른들이 오면 우리 우 교수, 우리 우 교수 아주 귀에 딱지가 앉을 지경이었다.

그런 사람을 건드리는 건 미친 짓이었다.

“그래, 그래! 저기. 옆 테이블에 앉어. 그……. 어, 어! 야, 김! 너가 고기 좀 구워. 알았어?”

그래서 서효석은 우하윤을 아예 옆 테이블로 밀어 두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약자인 영업 사원과 함께였다.

그의 언행이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우하윤도 여기서 더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잘나고 높은 건 그의 아버지이지 아직 그는 아니었으니까.

“야, 니들.”

그렇게 자리를 정리한 서효석은 이제 표정을 싹 바꾼 채로, 수혁과 안대훈을 바라보았다.

기분 풀러 왔다가 똥 밟은 순간 아니겠는가.

아까보다 기분이 오히려 더 나빠져 있었다.

“네, 교수님.”

“니네 다 내 앞으로 와.”

해서 오늘은 정말 술 먹여서 죽이는 거로 풀기로 작정했다.

그 와중에 원장 아들이 있다는 게 좀 걸리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설마하니 교수가 회식하다가 술 먹인 거로 뭐라 할까?

물론 이현종은 회식에 잘 오지도 않고, 와도 점잖게 있다가 가는 편이었지만.

솔직히 개같이 구는 교수가 딱 서효석만 있는 건 아니었다.

서효석은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교수님.”

수혁과 안대훈은 서로를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앉았고.

물론 안대훈은 진심이었고, 수혁은 연기였다.

[지금부터 잔뜩 걱정스럽다는 얼굴 하고 있어요. 그래야 속죠.]

‘오케이.’

바루다의 조언을 들어 가며 그런 표정을 지었다.

“일단 마시자.”

서효석은 아직 고기도 안 나온 마당에 일단 술부터 들이댔다.

그러고 보니 반찬보다 더 많은 양의 술병이 식탁 옆으로 도열해 있었다.

맥주나 다른 종류의 술도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처럼 죄다 소주였다.

‘시발.’

[일단 첫 잔은 시원하게 마셔요.]

‘알았어.’

[작전은 고기가 나온 후부터입니다.]

‘알았어, 알았어.’

수혁은 바루다의 조언에 따라 술을 원샷 했다.

안대훈이야 워낙에 빼는 법을 모르는 데다, 이제 겨우 1년 차라 무조건 원샷이었고.

한 가지 의외인 건, 서효석도 원샷을 했다는 점이었다.

“왜, 난 안 마실 줄 알았냐?”

수혁이야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았지만.

안대훈은 아직 여러모로 미숙한 탓에 얼굴에 고스란히 생각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서효석은 그런 안대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후배의 원샷은 선배의 키스’야. 난 같이 마셔. 그래도 내가 이기거든.”

이제 보니 술 잘 마시는 거로 부심 부리는 스타일인 모양이었다.

보통 저런 객기에 가까운 부심은 대학생 때 이후로 다 끝나던데.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이해는 갑니다. 다른 건 다 못하잖아요. 저걸로라도 부심 부리긴 해야죠.]

‘인정 욕구를 이걸로 채우나.’

수혁은 존경스럽다는 듯한 얼굴을 한 채,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이어 갔다.

서효석은 원래 사려 깊은 성격이 아니기도 하고, 또 안대훈에게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수혁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둘의 술잔만 딱딱 채워 줄 뿐이었다.

“고기 들어가기 전에 각 5잔은 먹자고.”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고기도 없이 5잔이라니.

이런 개새끼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말이었지만.

수혁은 무려 감사하다는 말까지 해 가며 원샷을 때렸다.

[5잔이면 살짝 힘들겠다.]

바루다는 인상을 썼고.

아예 남의 일이라고 하기엔 수혁의 음주가 일으키는 폐해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정신을 잃어버리면 그사이 바루다의 접속도 끊겨 버리게 되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폭발로 인해 한 번 세상과 단절되었던 경험이 있는 바루다로서는 두 번 다시 그런 일은 사양하고 싶었다.

‘일단 버텨 볼게.’

[네, 부탁합니다. 고기만 나오면 작전 들어갑니다.]

다행히 딱 3잔씩 돌려먹었을 때쯤, 고기가 올려졌다.

그리고 이게 질 좋은 소고기다 보니 바로 먹을 수 있는 타이밍이 왔다.

서효석은 딱히 고기 나오기 전에 5잔 먹자는 자신의 말에 의미를 두는 건 아닌지, 별로 신경을 쓰진 않았다.

“여기 고기 맛있어. 먹고 한 잔.”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그래서 수혁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술을 마실 수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버릴 수 있었다.

[지금.]

바루다는 서효석의 행동 패턴을 즉시 분석하고는 사각이 되는 순간을 기가 막히게 포착해서 수혁에게 알려 주었다.

둘은 거의 일심동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서로에게 익숙해졌기에 딱딱 따를 수 있었다.

‘오케이.’

누가 감히 세계 최고의 인공지능이 눈앞에서 사기를 작정하고 치는데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효석은 그렇게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기에 그냥 속아 넘어가고야 말았다.

그렇게 원래 같았으면 각 2병 정도의 음주량이 넘어갔을 때쯤에는 속이는 게 더 쉬워져 있었다.

[이제 우리 잔은 안 채워도 모를 거 같아요.]

술은 세네 어쩌네 하던 놈이, 오늘 너무 빨리 달린 건지 뭔지 정신이 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수혁은 자신과 대훈에게는 물만 주고 서효석에게는 술을 주었다.

그렇게 몇 순배가 돌아간 후에는 완전히 꽐라가 되어 버렸다.

“아, 아! 시발! 신현태 개새끼.”

서효석은 눈앞에 사람 있는 것도 잊었는지 한참 과장 욕을 하더니,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설마 저대로 과장님한테 전화를 걸려나 했는데 다행히 다른 사람이었다.

“야, 그거 깨졌어. 500. 다른 수 찾아봐. 아씨……. 모르겠다고 하지 말고. 너가 추천해 준 거 샀다가 이렇게 된 거 아냐! 그거 메우라고! 시발, 이거 아빠 알면 나 좆 돼…….”

좆 된다라.

과연 뭘 알면 그렇게 된다는 걸까?

옆을 돌아보니, 안대훈도 더는 안 되겠는지 뒤로 벌러덩 누워 있었다.

이 테이블에서 멀쩡한 것은 수혁뿐이란 얘기였다.

[가까이, 가까이 가 보죠. 재밌는 얘기 나올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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