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환자는 봐야지 (2)
“아, 선생님!”
다음 날 수혁이 병동에 나타나자마자, 안대훈이 수혁을 불렀다.
보아하니 잠을 많이 못 잔 모양이었다.
눈 밑이 시커멨다.
[어제 환자들이 좀 있었나 본데요?]
‘근데 연락을 안 했네?’
[안대훈도 이제 나름 1년 차 중반이니까요. 혼자 처리할 수 있는 환자들이 늘었겠죠.]
‘아, 하긴. 그럴 때가 되기는 했구나.’
내과 수련 꼴랑 반년 받고 그게 돼?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아마 실제로 받아 보면 그런 생각일랑 쑥 들어갈 터였다.
수련이라는 게 그리 만만치 않으니까.
“어, 어제 뭐 있었어?”
“아……. 네. 뭐. 근데 해결했습니다.”
“오. 어디 봐 봐.”
“어……. 네, 선생님.”
안대훈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환자 등록 번호를 쳤다.
윗사람에게 자신의 처치 과정을 보여 주는 건 언제나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숙제 검사라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대상이 본인이 존경해 마지않는 수혁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수혁은 천재라는 말로도 표현이 불가할 정도로 뛰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이런 사람이 확인해 준다면 그건 또 영광이라 할 수 있었다.
“어디……. 음. 오, 이런 증상으로 와서. 흠.”
수혁은 혼잣말처럼 차트를 읽어 내려갔다.
[좋은데요? 여기서 이걸 생각했다는 건, 어찌 되었건 이걸 공부했다는 건데.]
‘그러니까. 성실하긴 하잖아, 얘가.’
[성실하죠. 그래서 머리가 더 빠지는 거 같아, 어째.]
‘눈물 나는 소리는 하지 말자, 우리.’
[왜요? 수혁은 풍성하잖아요.]
‘그래서 더 미안해져. 쟤가 나보다 어리다는 게 말이 되니…….’
중간중간 대훈을 힐끔거리면서였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대훈의 정수리 쪽이었는데, 대훈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뭐가 틀렸나?’
그저 자신이 틀렸는지 아닌지에만 관심이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좋은데?”
그래서 수혁의 입에서 좋다는 말이 나왔을 때 대훈의 얼굴은 더없이 밝아졌다.
“정말요?”
“어. 초기 대응부터 의심했던 질환들……. 그리고 처치까지 좋아. 나라도 이렇게 했을 거 같은데?”
“오.”
“아무래도 너가 1년 차 중에서는 제일 똑똑한 거 같다.”
“어우. 감사합니다.”
이게 다른 사람 입에서 나온 칭찬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감동적일 거 같진 않은데.
무려 수혁의 입에서 나온 거라 더없이 감동적이었다.
“어, 선배 울어요?”
심지어 눈물이 핑 돌 지경이었다.
“아, 아냐.”
안대훈은.
그러니까 27살에 벌써 머리가 홀라당 까지고 있는 안대훈은 하윤의 말에 눈물을 급히 닦았다.
수혁은 그런 대훈을 보며 남몰래 눈물을 훔쳤고.
“아무튼, 어제 입원한 환자분 좀 보자.”
생각 같아서는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좀 어려운 상황이었다.
환자를 봐야 했으니까.
아예 첫 만남에서 감도 안 잡히는 환자는 오랜만이지 않는가.
수혁도 그렇지만 바루다도 궁금증에 미칠 지경이었다.
“아. 네. 일단 검사한 거……. 결과 많이 떴습니다.”
“띄워 봐.”
“네.”
대훈이야 딱히 자신이 대머리란 것을 떠올리고 있던 참은 아니었던지라, 곧장 환자의 차트를 띄울 수 있었다.
방금 대훈이 말했던 것처럼 상당히 많은 검사가 진행되어 있었다.
“일단 보자……. 음.”
수혁은 그중 먼저 혈액 검사부터 훑었다.
워낙에 환자를 많이 보아 온 데다가, 바루다의 보조까지 있었기에 속도가 무척 빨랐다.
[백혈구, 혈소판은 정상이에요. 헤모글로빈은 11. 약간 빈혈이 있네요.]
‘생각했던 거보다는 별로 비정상인 게 많지 않……. 음?’
[CRP가 떴네요. 8.5면 상당히 높은 건데 이거.]
‘ESR도 높아. 음.’
CRP, ESR.
염증 수준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기본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지표 중 하나였다.
이게 떴다는 건 환자의 몸 어딘가에 염증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PT가 늘어나 있어. aPTT도.’
이 두 수치는 출혈 경향과 관계가 있었다.
환자가 그렇지 않아도 어제 예전부터 멍이 잘 드는 등의 출혈 경향이 있다고 했으니, 늘어나 있는 게 그리 뜻밖의 일은 아니었다.
[그 외에 엑스레이나 심전도는 정상입니다. 아, 엑스레이상에 살이 좀 늘어나 있는 건 보이지만, 뭐. 이건 육안으로도 확인 가능하니까요.]
‘정리하면 지금 문제가 되는 게……. 일단 4년 전 발생한 복통과 혈변. 출혈 경향, 피부의 늘어진 그리고 빈혈 정도인가?’
[혈중 알부민 농도도 좀 떨어져 있습니다.]
‘뭐 떠오르는 거 있어?’
[솔직히 없습니다.]
‘나도 그래, 아직은.’
상당히 많은 결과가 떴지만.
그런데도 딱 이거다 싶은 것이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수혁이나 바루다나 실망하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내과적 진단 과정은 일견 지리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
“다른 검사는 뭐 잡혀 있지?”
“오전에 대장 내시경……. 아, 지금 내려가시네요.”
“빨리 잡혔네?”
“요새 선생님 오더로 들어가면 빨라요.”
“허.”
수혁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왜 그런지 너무 잘 알 거 같은데, 그 이유가 실은 거짓이었기 때문이었다.
[역시 굳이 안 밝히길 잘했군요.]
‘밝힐 수도 없어, 이제. 어차피 원장님이 학회에서 소리 지른 거라.’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그 양반이 참 즉흥적인 데가 있어요.]
‘아무튼, 어차피……. 별 환자 없지?’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잠시 데이터를 웅 하고 가동시켰다.
말이 ‘웅’이지, 실은 수혁의 뇌를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들리는 소음은 이명에 가까웠다.
[전에 호흡기 환자로 입원했던 환자 둘은 이미 퇴원했습니다. 어제 기록을 보니 그렇네요. 그 둘 외에는 뭐……. 없죠.]
‘그럼 내려가 보자. 가서 직접 좀 보자고. 대장 내시경 소견을.’
[아, 그럴까요?]
사실 조금만 기다리면 사진이 올라오긴 할 터였다.
거기에 대한 실제 내시경을 수행한 의사의 의견도 올라올 테고.
하지만 역시 라이브로 보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가능하다면 주치의가 직접 확인하는 것이 제일 좋았다.
“대훈아, 너 환자 다 정리했어?”
“아……. 조금 남았습니다.”
“급해?”
“아뇨. 오전에 스케줄 없어서……. 어차피 병동에 있을 생각이었습니다. 왜요?”
“같이 내시경실 가자. 저 환자 보게.”
“아, 네!”
안대훈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수혁이 가자고 하면 내시경실이 아니라, 어디든 갈 수 있는 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렇게 따라나설 채비를 하자, 하윤도 따라나섰다.
“저도 가도 되나요?”
내과 인턴임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아직 감지 못한 머리를 질끈 묶고 있었다.
과 특성상 새벽에 나가야 하는 검사가 많아서였다.
수혁도 내과 인턴을 돌 때면 새벽 4시 반쯤 일어나 나와서 나온 처방들을 해결했던 기억이 있었다.
“너 안 쉬어도 돼? 오후 지나면 또 처방 쏟아질 텐데?”
“내분비 쪽은 선생님이 처방 정리해 주셔 가지고……. 그렇게 안 많아요.”
“아, 음.”
수혁은 자신이 정리했던 처방을 떠올렸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쓸데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인턴이야 이게 쓸 데 있는 검사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겠지만.
수혁 정도 되는 사람이 한번 신경 써 주면 일을 많게는 절반까지 줄일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가자.”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해서 수혁은 무려 둘이나 끌고 아래로 향했다.
내시경실은 2층에 있었는데, 태화 의료원은 그 명성에 걸맞게 내시경실이 아주 거대했다.
검진센터와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아서이기도 했다.
“와……. 엄청 많네요. 이 시간부터.”
대훈은 이 시간에 여기 온 것이 처음인지 고개를 연신 두리번거렸다.
“응. 요새 우리 병원 검진에 총력전이래. 아선이랑 칠성에 밀려 가지고.”
반면 수혁은 하도 높은 사람들이랑 다니다 보니 이것저것 주워듣는 것이 아주 많았다.
특히 병원 수익에 관해서는 어지간한 교수들보다도 많이 알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하나. 이게.”
수혁은 내시경실 안으로 들어서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바루다가 저장해 두었던 지도를 떠올려 주었다.
마치 게임 미니 맵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쪽.”
“네, 선생님.”
대훈과 하윤은 그런 수혁의 뒤를 군말 없이 따랐다.
적어도 이 둘에게는 수혁이 진리요 생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개는 수혁이 맞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리 어렵지 않게 대장 내시경실에 닿은 수혁은 근처를 지나던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
“안녕하세요, 내과 2년 차 이수혁입니다.”
“아, 네. 이수혁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이미 ‘내과 전공의 중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은 VIP다’라는 사실은 이 큰 병원에 파다하게 퍼진 지 오래였다.
그 때문에 간호사는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응대해 주었다.
보통 대학 병원에서 마주치는 간호사들하고는 달랐다.
“혹시 홍연수 환자분 어디 있는지 아시나요? 별관 병동에서 왔고, 내분비 내과 환자예요.”
“홍연수……. 잠시만요.”
간호사는 잠시 차트를 뒤적거리더니, 커튼이 쳐져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기요.”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리곤 들고 있던 의료 기구를 들고 사라져 갔다.
아마도 다른 방에 보조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수혁은 간호사가 가리킨 방 안에 무턱대고 들어가는 대신, 일단 벽을 두드렸다.
그러자 안에 있던 사람이 대꾸했다.
“누구야? 나 바빠.”
젊은 남자 목소리였는데, 아무래도 지금 막 대장 내시경에 돌입한 모양이었다.
보통 레지던트라면 죄송합니다, 기다리겠습니다를 연발하겠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죠.]
바루다의 말대로였다.
“아, 이수혁 선생이에요? 들어와요.”
수혁이 소속과 이름을 밝히자마자 아예 목소리 톤이 바뀌었다.
덕분에 수혁은 대훈과 하윤을 대동하고 내시경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소화기 내과 의사는 그런 셋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잘 봐요. 어떤 거 같아요?”
내시경 화면을 가리키면서였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이게 정말 대장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괴한 화면이었다.
우선 궤양이 쭉 깔려 있었다.
그 궤양은 규칙적이라기보다는 불규칙했고 한 번에 잘 이어지지도 않았다.
“네가 볼 땐 뭐 같아?”
물론 경험이 있는 의사들에게는 그저 전형적인 소견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건 안대훈에게도 그러했다.
그는 좀 고개를 갸웃거리긴 했지만, 답변하는 데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았다.
“크론……?”
“오. 그래. 크론.”
“맞아요. 크론의 아주 전형적인 소견입니다. 물론 뭐 궤양성 대장염이나……. 결핵 가능성도 있지만. 좀 달라요, 그것들하고는.”
대훈의 말에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고, 소화기 내과 의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수혁과 소화기 내과 의사의 끄덕임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소화기 쪽이 좀 더 확신에 가득 차 있다고 한다면.
수혁은 뭔가 훨씬 의문이 가득 차 있었다.
[이상하죠?]
‘크론은 맞아. 맞는데…….’
[CDAI(Crohn’s disease activity index)가 150 미만이에요. 이 환자의 배변 횟수나 복통, 복부 종괴, 빈혈 수준, 전신 안녕감 등을 보면요.]
‘정확하게는 131점 정도인데……. 그럼 비활동성으로 분류될 정도잖아? 그런데 그중에서 유의하게 혈변만 높아. 이건 뭔가 다른 이유가 있나?’
[피부랑 연관이 있지 않을까요?]
‘그럼 아직도 뭔지 잘 모르겠는 거야?’
[아쉽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