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52화 (152/1,303)

152화 환자는 봐야지 (4)

“환자분.”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병실로 향하던 환자를 붙잡았다.

어차피 걸어가던 건 아니었고, 침대에 누운 채였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아, 네. 선생님.”

환자는 기운이 없어 보였다.

원래도 힘들어했는데, 거기에다가 대장 내시경까지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뒤를 돌아보니, 하윤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있었다.

‘아, 쟤가 관장을 해 줬겠구나. 참.’

누누이 말하지만.

인턴은 의사들이 해야 하는 일 중에서 누구도 하기 싫은 일들을 주로 맡게 되는 법이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다양한 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최악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나 관장이었다.

관장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아마 어제 하윤이 한 관장은 그나마 좀 나은 종류의 관장이었을 터였다.

[설명이나 하시죠. 하여간 하윤 생각만 하면 넋이 나가.]

‘아, 알았어. 그리고 넋 안 나갔거든?’

[보통은 입 벌리고 눈 풀린 상태를 넋 나갔다고 하죠.]

‘내가 그러고 있냐?’

[아까 한 1초가량.]

‘이런 망할.’

다행히 관장에 관한 고찰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환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 데다가, 바루다의 성화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환자의 얼굴에 의문이 잔뜩 떠오르기 전에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우선……. 환자분 방금 대장 내시경 하고 오셨죠?”

“네네.”

답은 환자가 아니라, 환자의 보호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여느 보호자가 그러하듯 환자의 어머니도 염려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병원에서 외래만 보고 바로 입원시키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그 교수란 사람은 아예 얼굴도 내밀지 않고 있기도 했고.

“대장 내시경 결과……. 환자분의 잦은 혈변과 복통 그리고 간혹 있는 설사의 원인은 알아냈습니다.”

“저, 정말요? 그게 뭐죠?”

어머니는 아주 다급한 태도로 물어왔다.

그사이 침대는 이송 요원의 손에 이끌린 채 병실로 들어와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병동을 오가던 환자들이 다 쳐다보았을 것이었다.

싸움이라도 난 줄 알고.

“크론병입니다.”

수혁은 어머니와 환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대답을 해 주었다.

뭔가 아주 대단한 진단명이라도 되는 것 같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수혁이 학생일 때까지만 해도 크론은 아주 희귀한 질환이었지만.

이젠 그 유병률이 점점 늘어서, 흔하지는 않아도 대학 병원에서는 꽤 자주 보는 질환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여태 크론인 줄도 몰랐다니.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때문에 바루다의 의견은 제법 타당한 구석이 있었다.

아마 대장 내시경만 해 봤더라면, 그걸 한 의사가 어디서 수련 받았다 하더라도 알아차렸을 테니까.

‘환자가 너무 젊잖아. 생각도 안 해 봤을걸.’

하지만 환자의 사정을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았다.

20대에 대체 어느 누가 대장 내시경을 염두에 둔단 말인가.

아마 별거 아닐 거라고 여기고 그냥 방치했을 가능성이 컸다.

“크론이요? 그게 뭐죠?”

아무튼, 환자의 보호자는 크론이라는 병을 듣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료진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지만, 일반인에게는 아직 그렇게까지 유명한 병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염증성 장 질환의 일종인데……. 자가 면역 질환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들이 어떤 원인에서든지 자기 몸을 공격하는 거예요. 환자분 같은 경우에는 그 대상이 이제…… 소화 기관인 거고요.”

“아…….”

어머니는 완전히 이해한 얼굴이 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일단은 이게 치료 방법이 있는 병이라는 것을 알려야 했다.

어차피 치료가 꽤 오래 걸리는 병이므로, 병에 관해서 설명할 시간이야 충분히 있을 테니까.

지금은 환자와 보호자를 조금이나마 안심시켜 주는 것이 급했다.

“일단 오늘부터 치료에 들어갈 겁니다. 아직 조직 검사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약을 엄청 세게 쓰진 않을 거예요. 잘 듣지 않더라도, 이젠 꽤 여러 가지 치료 옵션이 개발되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지켜보세요.”

“어……. 네. 선생님.”

어머니는 아직 크론이 뭔 병인가에 대해 집중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 때문에 수혁의 말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해서 이번에 입을 연 것은 환자 본인이었다.

“그럼……. 그 크론인가 하는 병을 고치면 이것도 다 좋아지나요?”

환자는 자신의 늘어진 피부를 붙잡은 채 질문을 던졌다.

아직 젊디젊은 나이에 흉하게 처진 피부가 안쓰러워 보였다.

‘그럴 수 있다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그건 아니었다.

해서 수혁은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살짝 저었다.

안타깝다고 해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수혁은 적어도 자신이 걸치고 있는 하얀 가운의 무게를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환자를 위로해 줄 수는 있을지언정, 거짓 희망을 심어 주진 않았다.

“아뇨, 환자분의 피부 병변은 다른 질환에 의한 겁니다.”

“다른 질환…… 이요? 그럼 혹시 그것도 진단됐나요?”

수혁은, 그리고 바루다는 환자의 눈에 스쳐 지나가는 희망의 흔적을 볼 수 있었다.

일반인들은 진단이 되면 무조건 치료가 될 거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아까보다 더한 안타까움을 느껴가며 말을 이었다.

“네. 물론 정확한 건 유전자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만……. 일단 탄력 섬유 거짓 황색종이 의심됩니다.”

“탄 뭐요?”

“탄력 섬유 거짓 황색종입니다. 아, 영어로는 Pseudoxanthoma elasticum이야.”

수혁은 환자에게 한 번 더 또박또박 말해 준 후, 뒤에 서 있던 대훈과 하윤을 돌아보았다.

둘에게는 의학 용어로 얘기해 주면서였다.

아예 들어 본 적도 없을 거라 확신을 품고 있었다.

자신도 이번에 처음 본 진단명이었으니까.

“슈, 슈도…….”

“슈도잔토마 엘라스티쿰? 와, 이런 병도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대훈과 하윤은 서로를 돌아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물론 수혁은 그런다고 입을 다물거나 하지는 않았다.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많았다.

“이 탄력 섬유 거짓 황색증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환자분의 피부처럼 늘어지는 피부입니다. ABCC6나 GGCX라는 유전자의 변이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아요. 피부에만 이상을 일으키는 것은 아니고……. 심장과 눈에도 이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각기 심장 내과와 안과에 협진 요청을 드린 상황입니다.”

“심장에…… 눈…….”

수혁은 그 말을 하면서도 환자를 끊임없이 살폈다.

해당 질환에서 심장과 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맞지만, 딱히 시력에 문제가 있어 보이진 않았다.

[아직 나이가 젊으니까요. 심장 쪽도 괜찮을 가능성이 큽니다.]

‘네가 그렇다니까 좀 안심이 되네.’

[의학에서는 나이가 깡패니까요.]

나이가 깡패라.

말은 좀 거칠고 없어 보일지 모르겠지만.

실제 병원에서 일하다 보면 이 말만큼 또 공감되는 말도 적었다.

아무튼, 덕분에 수혁은 아까보다는 조금 나아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마 괜찮을 겁니다. 검사는 해 봐야겠지만요.”

“그……. 네.”

“그리고 이 크론도 치료를 하게 되면 증상이 조금은 더 나아질 겁니다.”

“네? 둘이 관계가 있나요?”

환자만큼이나 수혁의 뒤에 있던 둘도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크론이라면 그래도 내과의로서, 그리고 내과의를 꿈꾸는 이로서 알 만큼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처음 들어 본 질환과 크론이 연관이 있을 줄이야.

뭐 대강 이런 표정이라고 보면 되었다.

“네. 둘이 서로 발병을 시키는 건 아닙니다만. 크론병이 탄력 섬유 거짓 황색증을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아…….”

“환자분의 크론병은 문진상 아마 발생한 지 4년 정도 되었을 텐데, 그때부터 이 피부도 악화되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때까지는 한참 동안 말없이 환자의 손만 잡아 주고 있던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4년이 꽤 긴 시간이라 헷갈리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딸의 몸 아니던가.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분명 그때부터 악화한 것 같았다.

“특히 이 크론병은 탄력 섬유 거짓 황색증의 증상 중에 비타민 k 결핍을 더더욱 악화시킵니다.”

“비타민 k요?”

“네. 비타민 k.”

수혁은 잘 나가다가 왜 갑자기 비타민 얘기를 하나 싶은 환자와 보호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물론 뒤에 있던 대훈과 하윤의 얼굴은 조금 달랐다.

비타민 k의 결핍이란 말을 듣자마자 뭔가 감이 왔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그래도 이 녀석들이 자신의 팬클럽임을 자처할 정도는 된다고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이게 부족하면 출혈이 일어납니다. 혈액 응고 인자와 비타민 k가 깊은 연관이 있거든요.”

“출혈. 아…….”

“그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출혈이 좀 잦았을 겁니다. 그나마 크론이 생기기 전까지는 일상생활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을 정도였겠지만. 그 후로는 더 심해졌을 거고요.”

수혁의 말에 환자와 어머니 모두 깊은 공감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이 출혈이 영향을 미친 것이 혈변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산부인과적 문제도 일으켰더랬다.

방문했던 산부인과에서 했던 검사에서는 크게 이상이 있진 않았고.

다만 환자의 피부를 보고 뭔가 선천적인 이상이 있을 거란 얘기는 들었지만.

분명 어릴 때부터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닌 데다가, 면전에 대고 태어날 때부터 이상이 있었을 거란 얘기를 듣고 나니 더 치료받기가 싫어졌을 뿐이었다.

그러다 오늘 그 이유를 시원하게 듣고 나니, 벌써 좀 나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아직 크론 자체는 아주 심한 편은 아닙니다. 혈변이 있는 건 크론 때문에 심해진 비타민 k의 결핍 때문이에요. 치료 시작하면 호전될 거라 생각합니다.”

수혁의 얼굴 또한 아까보다는 훨씬 나아져 있었다.

아무래도 의사가 환자에게 ‘호전’에 대해 말할 때는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지만 아예 웃고 있지만은 못했는데, 그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그럼 피부도 좋아지나요?”

바로 지금 이 환자의 질문에 대한 답변 때문이었다.

안타깝지만 아직까지 유전자 변형으로 인한 질환에 대해서는 치료가 불가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이미 피부의 탄력이 비정상으로 늘어날 정도로 조직이 형성된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했다.

때문에 수혁은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뇨. 호전되는 것은…… 출혈입니다. 피부 병변은 해결이 어렵습니다.”

“그렇…… 그렇군요.”

환자는 낙담했고.

그 얼굴을 보는 수혁 또한 열패감이 들었다.

‘이런 젠장. 왜 아직도 치료 안 되는 병이 이렇게 많은 거야?’

진단이 되면 치료도 돼야지 정상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였다.

물론 하면서도 말도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바루다는 기계이니만큼 그런 수혁을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었다.

[남이 해 주길 바라지 말고, 수혁이 만들면 되지 않습니까?]

싸가지 없는 말투야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꽤 의미 있는 발언 아니던가.

‘만들어?’

[네. 지금 당장이야 어렵겠죠. 지식도 없고, 설비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뿔도 없지.’

[하지만 화이자 학회에 가서 뭔가 보여 주면 좀 달라지긴 할 겁니다.]

‘그건……. 그건 그렇지. 그렇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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