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우리 편 (2)
“환자 뭔데?”
수혁은 대훈의 뒤를 따라 걸으며 물었다.
어찌나 소란을 피워 대는지, 이미 환자가 죽었나 싶을 지경이었다.
“36살 남자고……. 은행원이에요.”
“음.”
36살 남자.
어지간히 나쁜 생활 습관을 가지지 않고서야 죽을 위험에 빠지긴 어려운 나이라고 보면 되었다.
물론 외상을 입었다면 얘기가 상당히 달라지겠지만.
수혁은 내과 아니던가.
선천성 질환이 있거나 혈액종양내과 환자일 수도 있었다.
다만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었다.
슬슬 제왕적 위치를 후발주자들에게 내어주고 있기는 해도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중증도가 제일 높은 병원이라는 뜻이었다.
‘그렇긴 하네.’
그 때문에 나이만 가지고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었다.
당장 저번 달만 하더라도 20대 초반 여성 환자가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4일 전부터 기침과 인후통 있어서 약국에서 약 복용하다가 2일 전부터 오한 발열 및 두통 심해서 2차 병원 응급실 내원하였습니다.”
그냥 들으면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팠구나 싶을 수도 있을 터였다.
하지만 우수한 의사가 되려면 행간의 의미를 아주 잘 짚어 내야 했다.
다행히 수혁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30대 직장인……. 그것도 약국 약으로 버티려고 했던 사람이 응급실로 갔다면, 예사 두통은 아니었을 겁니다.]
‘아, 그렇지. 그래. 생전 처음 겪어 보는 두통이었으려나?’
[그랬을 가능성이 큽니다.]
두통은 현대인에게 있어 매우 흔한 증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과소평가될 만한 증상은 결코 아니었다.
특히 그 두통의 정도가 생애 처음 겪어 보는 것이라면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만 했다.
뇌출혈의 가능성이 있었으니까.
“당시 시행한 brain CT에서는 이상 없었다고 하는데, 금일 무단으로 결석해서 찾아간 동료가 의식 저하된 채로 발견해서 본원 응급실로 왔습니다.”
당연히 그날 환자를 본 의사도 비슷한 생각을 했을 터였다.
2차 병원 응급실 담당의라면 정말 산전수전 다 겪은 의사였을 테니.
[CT에서 이상이 없었다면……. 상당히 많은 질환이 배제되는군요.]
우선 뇌출혈을 빼놓을 수 있을 터였다.
또 뇌수막염이나 두 개 내 농양 등의 심각한 감염 질환들도 빼놓을 수 있었다.
뇌경색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CT로 경색 유무를 확인하는 건 어려웠다.
‘그때 너무 빨리 찍어서 그랬을 수도 있어. 출혈은 아니겠지만……. 감염 여부는 몰라.’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게다가 수혁의 말처럼 시기의 문제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아까 빼놓으려 했던 감염 질환들도 다시 염두에 두어야만 했다.
“환자분이……. 아마…….”
수혁이 바루다와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앞장서던 대훈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까치발을 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도 그러기가 무척 어려운 조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대머리와 지팡이 콤비는 이미 유명하지 않은가.
“아, 선생님! 이쪽입니다!”
게다가 둘을 콜한 인턴이 하윤이었다.
어느새 내과를 다 돌고 또다시 응급실로 내려간 것.
처음 응급실 돌 때까지만 해도 영 정신이 없어 보이더니.
지금은 그래도 제법 크룩스가 아닌 운동화에 안에도 수술복이 아닌 셔츠를 입을 정도였다.
상당히 적응이 빠른 모양이었다.
“아, 어. 저기 저 치료실에 계신가 봅니다.”
“응, 가자. 응급실에서는 뭐 안 해 줬나?”
“일단 38.2도로 발열이 있어서 오자마자 혈액 검사 나가는 동시에……. 블러드 컬쳐(Blood culture: 혈액 배양 검사) 나갔습니다.”
“안티는?”
안티란 곧 항생제를 의미했다.
수혁의 말에 대훈 대신 제일 앞장서서 씩씩하게 걷던 하윤이 답했다.
“당시 brain CT에서는 이상 없었지만, 두통에 발열까지 있어서 세프트리악손 주었습니다. 아, 혈액 배양 검사 나간 후에 달았습니다.”
근거부터 결론까지.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는 답변이었다.
설령 이 결정이 틀렸다고 해도 아마 이걸 가지고 혼낼 만한 교수는 없을 터였다.
내과 의사는 늘 주어진 단서를 가지고 최선의 추론을 하는 의사이니까.
그럴싸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면 합격이었다.
[괜찮은 선택입니다. 저라도 세프트리악손을 첫 항생제로 선택했을 겁니다.]
게다가 세프트리악손은 현 상황에서 객관적으로도 썩 좋은 선택이었다.
이 3세대 세파 계통 항생제는 혈액 뇌 장벽(Blood brain barrier)을 통과하는 녀석이기 때문이었다.
어떤 식으로든 뇌 쪽 감염을 의심했다면, 이 약을 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이 좋았다.
“좋아. 혈압이랑 심장박동 수는?”
해서 수혁은 계속 하윤에게 물었다.
이만하면 대강의 문진 정도는 신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간 관찰한 하윤의 능력만 생각해 봐도 그렇긴 했다.
“혈압이 90에 42고, 심장박동 수는 120회입니다.”
과연 하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탁탁 답변을 해 주었다.
자기 환자 활력징후도 기억 못 하는 의사가 어디 있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인턴들은 간혹 상상을 초월하는 실수를 하기도 하지 않던가.
이만하면 가히 칭찬을 받을 만한 일이었다.
“허……. 안 좋네? 심전도 어때?”
“심전도는 타키카디아(Tachycardia: 빈맥) 소견인데……. 이게 다른 문제가 없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찍은 거 환자 옆에다 두었습니다.”
“아, 그래. 일단……. 여기지?”
“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자에게로 다가갔다.
“으, 으…….”
환자는 신음을 흘려 대는 와중이었다.
[대화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의식 혼미합니다. 거의 혼수상태라고 봐야 할 거 같은데요?]
바루다는 수혁이 주먹으로 가슴골을 눌렀음에도 딱히 적절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이런 결론을 내렸다.
수혁 또한 바루다의 의견에 동의했다.
해서 옆에 같은 나이 또래로 보이는 보호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을 것으로 볼 때, 가족은 아닐 가능성이 커 보였다.
“혹시 관계가 어찌 되시나요?”
“아, 회사 동료입니다.”
수혁은 역시라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집에서 발견했을 땐, 의식 상태가 어땠나요? 대화를 할 수 있었나요?”
“아뇨, 아뇨……. 처음부터 이랬습니다.”
“아.”
그렇다는 건 언제부터 이 상황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수혁의 미간에 주름이 짙게 패였다.
[이틀 전에 brain CT를 찍었지만, 일단 이거부터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머리 쪽 문제일 가능성이 매우 큰데, 그 시점을 알 수 없지 않은가.
어쩌면 이미 상황이 끝났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잔혹하게 들리겠지만.
머리는 원래 그랬다.
괜히 골든아워를 강조하는 게 아니었다.
“대훈아, 일단 CT 찍자. 연락되는 대로 바로.”
“아, 네. 선생님.”
해서 수혁은 처방을 내린 후에야 다시 보호자를 바라보았다.
“혹시 친하신가요? 환자분이랑?”
워낙에 놀란 얼굴을 하고 있어서 조금은 다른 얘기를 꺼내면서였다.
다행히 그게 잘 먹혀들어 간 건지, 아니면 원래 침착한 편인지는 몰라도 보호자와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아, 네. 뭐……. 제일 친합니다.”
“다행이네요. 지병이 있거나 하진 않았나요?”
“지병……?”
“지금 보니까, 가슴에 흉터가 있거든요? 수술받거나 다친 적이 있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없습니까?”
수혁은 심전도를 찍기 위해 풀어 헤쳐 둔 환자의 가슴을 가리키며 물었다.
상당히 왜소한 편이었는데, 가슴 한가운데에 일직선으로 흉터가 나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이건 모르겠습니다.”
“그럼 가족 번호 혹시 아시는 분이 있나요?”
“얘가 혼자 올라와서 지내는 거라. 시골에 어머니가 계시긴 한데……. 지금 올라오고 계실 겁니다.”
“음.”
수혁은 신음을 흘리며 환자의 가슴 쪽을 다시 바라보았다.
[다친 거라기보다는……. 수술 소견 같습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거 같지? 흉터가.’
[네. 아마도 선천성 심기형이 있었을 거 같습니다.]
‘이거 안 좋은데.’
대다수의 선천성 심기형은 이제 수술로 어지간하면 완치가 되긴 하지만.
환자의 나이가 30대이지 않은가.
선천성 심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다면 적어도 20년은 족히 지났을 터.
현대 의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만큼, 당시에 한 수술에는 어떤 결함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 CT 찍는답니다!”
“아, 그래? 그럼 바로 가자. 호흡, 호흡 잘 봐. 알았지?”
“네! 제가 하윤이랑 찍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인상을 쓰고 있던 수혁은 CT가 잡혔다는 말에 자리를 비켜 주었다.
생각 같아서는 같이 따라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불편해 그건 불가했다.
“아, 보호자분.”
“네, 선생님.”
그렇다고 시간을 하릴없이 죽일 생각은 없었다.
해서 보호자를 불렀다.
“환자분이 어제까지는 출근한 거죠?”
“아, 네. 출근했습니다.”
“그때 어땠나요?”
“음…….”
수혁은 열린 질문을 던졌다가, 이내 질문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바루다에게나 또는 다른 의료진에게는 오히려 열린 방식이 더 좋겠지만.
비의료인에게는 적절치 못한 경우가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두통을 심하게 호소했나요?”
“아, 네. 약을 먹어도 아프다고 했어요.”
“점점 심해지는 거 같았나요?”
“그건…….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아마 그랬던 거 같습니다.”
비의료인에게는 하나하나 따져 가듯 물어보는 것이 좋았다.
그래야 정보를 흘리지 않고 다 담아 갈 수 있었다.
비록 환자 본인이 아니라 제한적이긴 했지만.
“점점 더 심해졌다라. 역시 진행했다는 소린데. 이게 환자분 집에서 챙겨 온 건가요?”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환자 침대 옆에 있던 작은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까지는 아니고 비닐봉지란 표현이 더 어울렸는데, 이것저것 무언가가 많이 담겨 있었다.
“아, 네. 제가 그냥……. 옷이랑 해서.”
“약도 있었나요? 응급실에서 받았던.”
“아, 네. 여기. 약봉지요.”
“감사합니다. 보호자 분께서 진료에 큰 도움이 되네요.”
“아뇨……. 아뇨. 이렇게 아플 줄 알았으면 더 신경을 썼어야 하는 건데.”
아무래도 보호자는 그저 직장 동료라기보다는 진짜 친구인 듯했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이 느껴져 수혁도 더욱 막중한 책임감이 일 지경이었다.
[항생제는 메이액트를 썼군요.]
‘뭐……. 먹는 항생제로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어서 얼굴이 더 어두워졌다.
이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았다는 건, 세균이 그만큼 내성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선생님! 찍고 나왔습니다!”
그때 CT실 쪽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대훈이었다.
“아, 영상 확인할게.”
예전 같았으면야 좀 더 기다려야겠지만.
이제는 4G를 넘어 5G 시대가 오지 않았던가.
Brain CT 정도의 볼륨 작은 영상은 거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드륵.
해서 수혁은 바로 옆에 컴퓨터를 이용해 환자의 영상을 확인했다.
“에고.”
그리곤 탄식을 내뱉었다.
우측에 하얗게 보이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 조영제도 쓰지 않은 CT 영상에서 이런 소견이라니.
이게 의미하는 건 단 하나였다.
“뇌출혈, 환자 뇌출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