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화 원인이 뭔데? (1)
“신경외과 콜하겠습니다!”
뇌출혈이라는 말에 안대훈이 곧장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주변에 있던 간호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뇌출혈이라니.
골든아워가 중요한 질환이지 않은가.
재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영영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공산이 컸다.
“어, 그래. 음. 이거 시간이…….”
수혁은 안대훈이 전화하고, 또 간호사들이 적절한 처치를 시작한 것을 보고는 다시 영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측 두 개 내 출혈이 너무도 선명하게 보였다.
[이미 혈종이 있어요. 시간이…… 꽤 지난 모양입니다.]
‘수술은 가능한가?’
[이 정도로 크면 수술하는 게 보통은 맞지만…….]
바루다는 쉬이 결론을 내지 못했다.
오히려 아는 게 적당히 많아졌을 땐 딱딱 치료 계획을 세우더니.
이제 워낙에 아는 게 많아지니까 도리어 망설임을 보일 때가 있었다.
‘왜?’
[환자 기저 질환을 생각해 보세요. 이 사람 당뇨도 없고, 고혈압도 없습니다. 근데 뇌출혈이에요. 꼴랑 36살인데요.]
‘아……. 하긴 그렇네? BMI도 정상 같은데. 음.’
물론 망설임에 대한 근거는 더 확실해져 있었다.
확실히 듣고 보니, 이상했다.
이 환자에게서 외상도 없이 뇌출혈이 나타나기엔 기저 질환이 없었다.
[다만 환자는 4일 전부터 감염 증세가 있었습니다. 증세만 보면 단순 감기와 크게 차이는 없지만, 발열 및 조절되지 않는 두통으로 미루어 볼 때 뭔가 심각한 감염 질환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죠.]
‘그 감염 질환이 뇌출혈의 원인이다?’
[그렇죠. 가설이지만,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수술보다는 오히려 원인 질환을 컨트롤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원인이 그대로 남은 상황에서 수술에 돌입하는 건 굉장히 위험할 수 있었으니까.
물론 태화 의료원에는 딱히 내과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홀로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었다.
곧 콜을 받은 신경외과와 함께 신경과도 내려왔다.
“아……. 이수혁 선생님이 계시는구나.”
특히 신경과는 최준용 교수가 내려온 참이었다.
워낙 환자를 열심히 보는 사람이다 보니, 다른 응급 환자 볼 겸해서 내려온 모양이었다.
“안녕하세요.”
반면 신경외과는 3년 차 당직인 김현철이 내려왔다.
다른 과들처럼 1년 차가 내려오지 못한 것은 역시나 신경외과이기 때문이었다.
질환의 중증도나 급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배운 친구가 오는 게 맞았다.
“네, 이수혁입니다. 환자분은 이분이신데……. 의식은 혼미에서 혼수 사이입니다. 척수 반사는 있으나, 통증에 대한 반응은 거의 없습니다. 대화는 불가하고요. 증상 발현 시점은 알 수 없습니다. 집에 혼자 있다가 직장 동료분에게 발견되어 응급실로 왔습니다.”
“아.”
“음.”
최준용과 김현철 모두 안대훈에게 상황을 대강이나마 들은 참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안대훈보다는 수혁의 설명이 훨씬 직관적이었다.
안대훈이 전해 들은 소리를 읊어 대는 느낌이었다면, 이쪽은 상황을 정확하게 아는 전문가를 통해 듣는 느낌이었다.
“영상은…….”
“여기 있습니다, 교수님.”
“음.”
일단 먼저 나선 것은 최준용이었다.
흔히 뇌출혈이 있으면 무조건 신경외과로 가는 줄 알겠지만, 사실 수술이 필요치 않은 뇌출혈도 대단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증상 발현 시점을 모르고 있다면, 이미 수술이 의미가 없는 상황일 수도 있었다.
“출혈이 작지 않네……. 혈종도 있고. 근처로 뇌가 좀 부었는데.”
“네. 스테로이드와 만니톨 정주 했습니다.”
뇌압 상승에 스테로이드와 만니톨이라.
내과적인 처치로는 상당히 적절한 처치라고 할 수 있었다.
최준용은 역시 내과 에이스답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계속 살폈다.
환자에 대한 질문을 이어 나가면서였다.
“아, 그래. 혹시 척수 천자는 안 했죠?”
“네, 교수님. 뇌압이 올라간 상황에서 함부로 하면 뇌간 탈출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오.”
언제나 그러하듯 수혁의 답변은 딱 부러졌다.
게다가 근거도 명확했다.
최준용 교수는 왜 우리 과에는 이런 인재가 없을까 한탄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판단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뇌압이 또 막 감압술 할 정도로 높아 보이진 않는데?”
시선을 김현철에게 옮기면서였다.
김현철 또한 영상을 보면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네. 아직은 감압술을 시행할 이유는 없을 거 같습니다. 다만 제 의견은……. 그래도 천수 천자 정도는 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환자 히스토리를 보면 감염 질환 말고는 이렇다 할 기저 질환이 없지 않습니까? 뇌수막염이나 기타 다른 심각한 염증에 의해 발생한 출혈일 가능성이 있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뇌와 척수 내의 감염을 확인하려면 아무래도 피 검사로는 조금 불편했다.
뇌 쪽은 아예 뇌혈관 장벽으로 인해 어지간한 것들은 통과하지도 못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직접적인 정보를 얻으려면 역시 뇌척수액을 직접 보는 게 필요했다.
그러려면 척수 천자를 해야만 했고.
[오, 이 친구 똘똘하네.]
바루다는 합리적인 의견을 내놓는 김현철을 보며 감탄했다.
최낙필 때문에 생긴 신경외과에 대한 편견을 박살 내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할 수만 있으면 하는 게 좋긴 하죠. 감압술 준비해 놓고, 조심스럽게 시행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심지어 그의 의견에 동조하기까지 했다.
듣고 보니 수혁이 보기에도 상당히 그럴싸한 데다가, 그것 말고는 딱히 원인을 밝힐 만한 수단도 없었다.
해서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 제 생각에도……. 조심스럽게 시행하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마침 신경외과 선생님도 내려왔으니까, 감압술 수술방에 준비만 해 두라고 하고 시행하는 것이 어떨까요?”
“음……. 하긴. 그래요. 그럼 조심스럽게 해 봅시다. 우리 레지던트 부를까요?”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이수혁 선생이?”
술기는 많이 해 보는 놈이 장땡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도는 곳이 바로 병원이었다.
실제로 막 교수 임용될 때는 똥손이었던 외과계 교수가 몇 년 뒤에는 금손이 되기도 한다 이 말이었다.
최준용 교수의 눈에 의심이 깃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아무래도 수혁보다는 신경과 레지던트들이 해당 술기는 훨씬 더 많이 할 테니.
“아……. 이수혁 선생 손 좋다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 의외로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수혁을 거들고 나섰다.
[뭐지? 잠깐만요.]
이를 기이하게 여긴 바루다가 즉시 인물 관계도 데이터베이스를 뒤적거렸다.
기껏해야 수혁의 개인적인 경험과 신현태, 이현종의 잡담을 수집, 정리한 데이터이긴 했지만.
한 명은 원장이고 또 한 명은 과장이다 보니 제법 데이터양이 많았다.
덕분에 태화 의료원 신경외과는 척추파와 뇌파 두 개로 갈려서 허구한 날 싸우고 있었는데, 김현철은 최낙필이라면 이 가는 교수의 라인이라는 것까지 저장되어 있었다.
‘아 그렇구만. 최낙필보다는 내가 나은가 보다.’
게다가 최준용은 뭐가 어찌 되었건 수혁을 신뢰하는 편이었다.
워낙 신경과랑 겹쳤던 환자 중에 진짜 어려웠던 환자들을 꼬박꼬박 치료한 덕이었다.
거기에 더해 손 좋다는 말을 그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신경외과 입을 통해 들었으니 뭐 어쩌겠는가.
“그래요? 그럼 해 보죠.”
“네, 교수님. 아, 그 전에 일단 삽관은 하는 게 좋겠죠? 뇌출혈이 이게…….”
원인이 해결되지 않은 뇌출혈은 더 커질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출혈로 인한 뇌부종도 심해질 수 있었고.
그냥 이렇게 두다가 덜컥 호흡이라도 날아가면 큰일 아니겠는가.
지금 괜찮다고 마냥 안심하기엔 환자 상태가 너무 좋지 못했다.
“아, 그렇지. 그래요. 할 수 있는 준비는 다 합시다.”
“네. 교수님.”
최준용 교수는 수혁의 손을 한번 직접 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마자 수혁은 아까 간호사들이 미리 꺼내다 준 플라스틱 튜브와 후두경을 들고는 정말이지 부드럽게 기도 삽관을 시도했다.
원체 해부학적인 지식이 뛰어난 데다가.
[옳지, 아니. 2mm만 좌측. 그래요. 환자 쪽 말고 수혁 기준으로요.]
바루다의 전폭적인 서포트가 있어서였다.
“오.”
“들어갔습니다. 일단 앰부 좀 짜 줄래?”
“네, 선생님.”
수혁은 튜브를 넣자마자 옆에 있던 하윤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곤 하윤이 앰부 짜는 데 방해가 안 되도록 천천히 환자를 옆으로 뉘었다.
[생각해 보니까 기도 삽관 안 하고 옆으로 뉘었다가 기도 막혔으면 대형 사고 날 뻔했네요.]
‘아, 그렇네.’
[데이터베이스화하겠습니다.]
‘좋아.’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둘에게는 더 중요하고 또 도움이 되었다.
이 정도로 사소한 일은 케이스 리포트에 자세히 적혀 있진 않지 않은가.
간접 경험은 바루다의 도움으로 아주 빠르게 습득할 수 있지만.
이런 건 온전히 경험을 통해서만 습득할 수 있는 생활 지식이었다.
“소독할 거…… 아, 네. 감사합니다.”
아무튼, 수혁은 환자를 새우등처럼 휜 형태로 만들고는 담당 간호사를 돌아보았다.
뇌출혈 환자를 두고 다른 곳으로 갈 담당 간호사는 없었기에 곧장 보조를 받을 수 있었다.
꾹.
수혁은 건네받은 베타딘 거즈로 등을 닦기 전에 먼저 손톱으로 찌를 곳을 표시해 두었다.
척추뼈 사이를 뚫고 들어가야 하는 만큼, 위치가 거의 전부라고 보면 되었다.
[좋아요. 거깁니다.]
물론 이것도 바루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기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해서 수혁은 그 위를 베타딘으로 소독하고는 긴 스파이날 니들을 찔러 넣었다.
뇌압이 올라가 있는 상황이라 그런지 딱 찌르자마자 무언가 맥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위험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됩니다.]
‘이거……. 이 느낌만으로 판단할 정도로 데이터가 있어?’
[아뇨. 이게 한 가지 레퍼런스가 되겠죠.]
‘근데 왜 확신을 가지고 말해.’
[아무튼, 동맥압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거든요. 평소 척수 천자보다 아주 살짝 높은 수준?]
‘음.’
영 믿음이 안 가는 마무리긴 하지만.
그래도 근거가 아예 없는 주장 같지는 않았다.
해서 수혁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뇌척수액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음.”
“으음.”
당연히 나머지 의료진들도 초긴장 상태였다.
다들 수혁의 손과 환자의 등 그리고 활력징후가 나타나는 모니터만 죽으라고 쳐다보고 있었다.
이러다 혹 뇌간 탈출이라도 발생하면 재앙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대로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다.
“휴.”
다행히 수혁이 충분한 양의 뇌척수액을 뽑을 때까지 환자의 활력징후는 크게 이상을 보이진 않았다.
“이거 검사 나가 주세요.”
수혁은 그렇게 뽑아낸, 조금은 탁해 보이는 액을 간호사에게 건네주었다.
색만 봐도 정상은 아니겠구나 싶은 상황이었다.
아마 감염이 베이스로 깔린 모양이었다.
“그럼……. 삽관도 했겠다. MRI도 찍어 보지. 저거 암만 봐도 염증 같은데, MRI까지 찍어 봐야겠어.”
최준용 또한 액을 보며 같은 결론을 내렸더랬다.
수혁보다 훨씬 더 뇌수막염과 같은 감염 질환을 본 경험이 많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네. MRI실 혹시 준비됐나?”
“네, 선생님. 아까 CT실 예약하면서 같이 말해 뒀습니다. 한 15분 정도 여유 있다고 했으니까 아직 비어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바로 가자.”
“네.”
대훈은 최준용 교수와 수혁의 명을 받들어 침대를 끌었다.
MRI가 촬영되는 동안 앰부를 짜야만 하는 하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혁도 CT 때처럼 남는 대신 부지런히 따라갔다.
MRI는 촬영 자체가 오래 걸리기 때문이었다.
“음.”
“아직까지는 그냥 출혈만…… 음?”
촬영과 동시에 전송되어져 오기 시작한 영상엔 뭔가 이상한 게 있었다.
그걸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역시나 바루다였다.
[뇌경색이 두 군데나 있어요. 작지만, 경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