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60화 (160/1,303)

160화 원인이 뭔데? (3)

“이런 망할 놈…….”

졸지에 빡센 환자를 맡게 된 신현태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병원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늘 깔끔한 모습을 유지하던 그였거늘.

지금은 수염도 까슬까슬하게 자라 있었고, 무엇보다 머리가 사정없이 헝클어져 있었다.

[오, 보기보다 신현태 교수의 머리숱이 적었군요?]

‘그딴 소리가 나오냐, 너는.’

수혁은 형편없어진 신현태의 몰골을 보고 일침만 날리는 바루다를 조용히 시켰다.

당연한 건지 뭔지는 몰라도, 수혁의 몰골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현태보다 더 안 좋아 보였다.

아무래도 응급실부터 중환자실까지 계속 환자를 따라다닌 탓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수는 없었다.

환자의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만 있었다.

“방금……. 아까 팔로우 업 검사로 나갔던 심장 효소 검사 나왔는데…….”

해서 수혁은 억지로 몸을 일으킨 채, 환자 침대와 바로 연하여 있는 컴퓨터를 두들겼다.

어차피 내내 눈앞에 있는 이 환자의 차트만 띄워 놓고 있었기 때문에, 결과는 바로 볼 수 있었다.

“어, 어떠냐?”

환자의 혈압과 심장박동 수가 요동치고 있어서 단 한시도 쉬지 못했던 신현태였다.

원래는 그래, 어려운 환자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 수혁이가 받았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라는 마음으로 내려왔었는데.

그래서 얼굴 보고 내일 보자고 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환자분이 신현태의 등장을 무슨 신호라고 받아들인 건지 뭔지 그때부터 활력징후가 급작스럽게 안 좋았더랬다.

해서 밤을 새우다시피 돌본 참이었다.

‘제발, 제발 좋아라…….’

이미 가슴 한편에서는 사실 알고 있었다.

좋아졌을 리가 없다는 걸.

그렇지 않고서는 대략 30분 상관의 난리 블루스를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긍정적인 사람이기도 했고, 인제 그만 자고 싶은 마음도 강했기에 아주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다.

“어……. CK-MB가 마지막 검사가 18.3에서.”

“어, 어! 어떻게 됐어?”

“55.0로…….”

“뭐? 다, 다시 말해 봐.”

“55…….”

“하.”

하지만 현실은 냉엄한 법이었다.

CK-MB만 올랐으면 검사 결과 탓이라도 좀 해 볼 텐데.

“트로포닌도 2.831에서 9.112로 올랐습니다. 이거……. 심장이…….”

“이런 망할……. 망할.”

다른 것들까지 쫙쫙 오른 마당이었다.

도저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환자의 심장은 시시각각 망가져 가고 있었다.

“현종이 새끼는 왜 안 와, 이거.”

초조해진 신현태는 결국, 하늘 같은 원장에 대고 욕설을 내뱉었다.

뭐 어차피 없는 자리이니 무슨 말이든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새끼 왔다, 이 새꺄.”

“어.”

“이 새끼 이거 나 없는 자리에서는 새끼 새끼 했나?”

“아, 아니. 형. 오늘 진짜 처음이야.”

“그런 거치곤 너 지금 욕이 너무 능숙했어?”

“힘들어서 그래. 진짜 힘들어서. 나 힘들었다, 형.”

신현태는 연신 굽신거리며 손바닥을 휘저어 댔다.

그런다고 참을 이현종이 아니었지만, 의외로 더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아마도 두 가지 원인 때문일 겁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개뜬금없이 바루다가 분석해서 털어놓았다.

‘뭔데?’

듣고 보니 또 궁금해지는 게 사람이지 않은가.

수혁은 본능에 따라 되물었다.

환자가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했지만.

어차피 이현종이 온 상황 아니던가.

아주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될 터였다.

[지금 신현태 교수님의 머리는 평소처럼 탈모를 가리고 있지 못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현종은 단 한 번도 안대훈에게 화를 낸 적이 없습니다.]

‘오?’

[대머리에게 약한 것이 아닌가……. 뭐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상한 논리지만 이해가 가기는 갔다.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탈모에 대한 공포를 느껴 본 적이 있지 않겠는가.

오늘 깔깔대며 놀렸다가, 내일 당장 베개맡에 수북이 쌓인 자신의 머리카락을 마주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환자가 워낙 좋지 않습니다. 특히 심장이요.]

‘아, 뭐. 그렇지. 원장님, 좋은 의사지.’

이현종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람이기는 했지만.

그가 원장이 되고 나서 바루다도 터지고, 태화 그룹 본사 차원의 지원도 줄고 해서 병원 순위가 내려가고 있기도 하지만.

그런데도 실제 진료 일선에 선 교수들에게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유가 과연 뭐겠는가.

의사로서 같은 의사인 이현종을 존경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효소……. 추이 올랐고. 아, 이거. 초음파 좀 보자. 경식도로. 이런 거 밖에서 봐도 소용없어.”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새벽 4시에 무려 원장이 다른 이와 환자를 보기 위해 나온 마당이었다.

“아, 네. 교수님 여기.”

이에 수혁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초음파 기기를 건네주었다.

그냥 가슴 통해서 보는 초음파야 수혁도 충분히 볼 수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방금 이현종이 말한 것처럼 경식도 초음파로 봐야 정확한 평가가 가능했다.

경식도 초음파는 내과 전문의를 따고도 순환기 내과 분과 전문의까지 해야 배울 수 있는, 아주 고난도의 술기였다.

그 말은 곧 수혁에게도 아직은 무리란 뜻이었다.

“잘 보고 배워라. 너라면 어쩐지 한번 보면 얼추 할 수 있을 것도 같아.”

이현종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개소리란 생각이 드는 말을 하면서 초음파를 시작했다.

과연 괜히 정치질 없이 순수 의료 실력으로 교수가 된 게 아니라는 듯, 이현종의 술기는 실로 정확하고 신속했다.

“야, 이거……. 흉부외과는 스탠바이 했나?”

불과 1분이 채 지나기도 전에 환자 곁에 있던 의료진 전원이 초음파 기기에 뜬 선명한 심장 윈도우를 마주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마주한 심장 윈도우는 정말이지 깔끔했지만,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여, 역류죠. 이거?”

피가 절대로 흘러서는 안 될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이현종은 보자마자 정답을 외치는 수혁을 보고서도 차마 칭찬 한마디 하지 못했다.

상황이 너무 좋지 못했다.

“어. 어휴……. 이거 좌심실에서 나가는데 거즘 되돌아와. 전에 이거 수술했던 건……. 그럼 그렇지. 심실중격 결손증(Ventricular septal defect)이었네. 패치 댄 거 같은데……. 감염 생겼어. 대동맥 판막……. 녹은 거 같은데.”

대동맥 판막이 녹았다.

단 한 문장이지만, 이게 의미하는 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가슴을 다시 열어야 할 가능성이 컸다.

“일단……. 제가 흉부외과 부르겠습니다. 아까 상황 설명은 해 두어서 당직의랑 백 보는 교수님까지 다 알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 빨리 오라고 해. 야……. 이거……. 이렇게까지 되는 건 진짜 오랜만에 보네.”

이현종은 부리나케 윈도우 창을 캡처한 후, 초음파 기기를 제거했다.

그저 놀랍다는 얼굴을 하고서였다.

방금 말처럼 정말 오랜만에 본 모양이었다.

[사실 처음 방문했던 그 2차 병원에서, 수술력을 물었다면 이거까지 의심을 했어야 합니다.]

‘그건……. 그래. 거기서 놓친 감이 있어.’

어느 분야나 그렇겠지만.

의학에서 타이밍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정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단은 지금 눈앞의 환자 상태에 집중해야만 했다.

“지금 온다고 합니다.”

“어, 그래. 와야지. 아……. 근데 이거……. 지금 수술 가능하려나? 머리는 어때? 아까 뭐 많이 날아갔다며. 이거 날아갈 거 같은데.”

이현종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고 아까 자신이 찍어 둔 초음파 사진과 영상을 가리켰다.

대동맥 판막에 뭐가 막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싹 다 균 덩이라고 보면 되었다.

저게 대동맥을 타고 휭 날아서 어디라도 막으면 경색이 되는 것이고.

어디에 들러붙으면 감염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었다.

“아……. 네. 지금 우측 전두엽 부근에 두개 내 출혈이 있고, 이쪽으로 해서는 경색이 있습니다.”

“이봐 이거. 이런데…… 수술할 수 있으려나? 뇌출혈 더 터질 거 같은데…….”

대동맥 판막이 녹은 상황에서는 당연히 대동맥 판막 치환술을 해야만 했다.

딱 봐도 쉽지 않은 수술명인데, 실제로도 그러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일 큰 문제가 되는 건 체외 순환기를 돌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왔습니다.”

이현종이 걱정을 늘어놓는 사이, 흉부외과 당직의가 달려왔다.

어딘가에서 계속 환자를 보다 온 건지 전혀 머리가 눌려 있거나 하진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흉부외과는 돈 안 되는 과라 사람이 늘 부족했으니까.

“어, 대강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

이현종은 비록 타과고, 또 사이가 좋지 못한 과이긴 하지만, 잠 못 자는 어린 후배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 네. 원장님.”

“이게 이제 이 환자 초음파 본 건데. 보면 대동맥에 역류. 이거 보여?”

“아…….”

당직의는 3년 차였다.

그 말은 곧 알 만큼 아는 연차라는 뜻이었다.

눈앞에 벌써 피투성이 수술실이 딱 하고 떠올랐다.

아마 원장만 없었어도 시발이니 뭐니 하는 욕을 내뱉었을 터였다.

“치환술이 필요할 거 같은데…….”

“네.”

“근데 이 환자가 또 뇌출혈이 있거든? 너네 체외 순환기 써야 되지?”

“아, 네. 그때 헤파린을 많이 써야 합니다.”

헤파린은 아주 대표적인 혈액 응고 억제제였다.

피를 몸 밖으로 꺼내어 기계를 통해 심장 대신 펌프질을 해서 돌려보내려면, 피가 응고되면 안 되지 않겠는가.

해서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약인데, 지금 상황에서 이 약을 썼다간 환자 뇌출혈이 악화할 가능성이 아주 컸다.

“이거……. 내가 판단해 주긴 좀 어렵고. 흉부외과 교수님하고 상의해야 될 거 같은데. 여기 보호자도 그렇고. 아, 보호자 왔어?”

이현종은 이왕 온 김에 보호자 얼굴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수혁을 향해 물었다.

“아직입니다. 시골에서 올라오느라……. 아마 오전에나 돼야 올 거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보호자는 오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현종의 얼굴에 아까보다 더한 안타까움이 묻어 나왔다.

이미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 하나라는 건 아까 신현태와의 통화를 통해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보호자 오기 전에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하면 어쩌지…….’

그나마 여기 와서 수혁의 빠른 진단 능력으로 착착 진행되어 왔는 데도 상황이 이 모양이었다.

이현종이 아랫입술을 쥐어뜯는 사이, 흉부외과 당직의는 교수와 통화를 마쳤다.

“사진 보시고 했는데, 지금 수술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할 거 같습니다. 우선은……. 항생제 쓰면서 지켜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십니다. 물론, 내과에서 필요하다고 하면 들어갈 겁니다.”

이 말은 곧 내과에서 수술 위험을 보증해 달라는 뜻이었다.

이현종과 신현태 그리고 수혁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일단 뇌척수액 배양 검사 결과를 보면서 항생제 투여를 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흉부외과 말대로, 너무 위험해요. 테이블 데스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 근데 이거 사지 말단 동맥으로 가기 시작하면 진짜 큰일인데.’

[안 그러길 바라야죠.]

‘하아…….’

이현종, 신현태, 수혁에 바루다까지 있는 자리였다.

다시 말하면 세계적인 심장내과 전문의, 국내 제일의 감염내과 전문의 그리고 유망주 수혁과 세계 유일의 완성형 의료 인공지능이 있단 얘기였다.

그런데도 지금은 답이 없었다.

우선은 기다려야 했다.

“그럼……. 항생제 쓰면서 보지…….”

거의 반쯤은 기적을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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