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61화 (161/1,303)

161화 원인이 뭔데? (4)

“MRSA(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infection: 메티실린 내성 황색 포도알균)네, 역시.”

MRSA.

한때는 슈퍼 박테리아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이젠 그냥 지역 사회 감염을 통해서도 전염이 가능한 내성균이었다.

상대적으로 흔해진 셈인데.

그렇다고 약하다는 건 절대로 아니었다.

적어도 어지간한 항생제는 거의 듣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게 옳았다.

“반코(Vancomycin: MRSA에 쓰이는 항생제)로 바꿨나?”

불과 이틀 새에 수척해진 신현태 과장이 물었다.

그 말에 역시나 마찬가지로 얼굴이 상한 수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뇌척수액에서 그람 양성 알균 나왔다고 했을 때부터 임의대로 바꾸어서 들어갔습니다.”

“아.”

배양 결과 나오기 전에 반코마이신 같은 항생제를 쓰면 사실 삭감이었다.

아무래도 과장이다 보니 다른 교수들보다도 이런 것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신현태는 부끄럽게도 이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아니……. 아냐. 어차피 이 환자 받아 왔을 때부터 삭감은 각오했어…….’

중환자 의학을 하면서 어찌 돈을 벌 생각을 한단 말인가.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기엔 정말이지 이상한 말이긴 했지만.

적어도 중환자 의학에서는 진리에 가까운 명제였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케이스에서 적자를 본다고 보면 되었다.

해서 신현태 과장은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은 채, 원래 이럴 때 교수로서 해야 할 법한 말을 꺼냈다.

“잘했어. 근데…….”

“네, 감염 증상은 딱히 호전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호전을 보이지 않는 거야? 내가 보기엔…….”

활력징후 자체는 괜찮았다.

절대적으로 좋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흔들리지는 않고 있다는 뜻이었다.

“네, 그……. 우선 오늘 팔로우 업 CT상에서 출혈은 흡수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뇌압도 잘 컨트롤 되고 있어서 신경외과에서는 열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흉부외과는 뭐래?”

신현태는 그나마 다행이라고 중얼거리면서 환자의 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다고 뭐가 더 보이는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매일 아침 이현종이 와서 해 주는 경식도 초음파 소견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기분이었다.

“아, 네.”

실제로 수혁은 바루다가 저장해 둔 초음파 소견을 보고 있는 중이었다.

동시에 오전에 흉부외과 3년 차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위험도 컨펌만 해 주면 언제든 수술 들어가겠다고 했더랬다.

“일단 대동맥 치환술이 무조건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더 두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혈소판 수혈하면서 수치도 좋아졌고, 출혈도 줄어들었으니 수술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수술이라……. 버틸 수 있을까?”

신현태는 혀를 츠츠 하면서 환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나마 반코마이신이 들어가면서 열이 좀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뜨끈했다.

고열이 없을 뿐이지 37.8도가량의 열은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알 수 없지만, 이대로 두면 반드시 죽을 겁니다.”

수혁 또한 환자의 손가락을 붙잡았다.

일반인들이라면 아니, 의사들이라고 해도 의심하지 않고 본다면 결코 눈치챌 수 없을 만한 변화가 있는 손가락이었다.

‘이제 사지 말단 혈관으로도 알갱이가 튀어 들어가고 있어.’

[네, 아직 범위가 크지는 않지만 이대로 두면 손가락 발가락 다 잘라야 할 겁니다.]

엔드 아터리(End artery), 일면 끝 동맥이라고 불리는 동맥들은 그게 막히면 그걸로 끝이었다.

다른 혈관이 우회해서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혈관들에 의해 영양을 공급받는 조직들에는 방금 언급한 손가락·발가락도 있지만, 눈이나 코끝 그리고 뇌도 들어갔다.

그중 이미 뇌는 어느 정도 손상을 입은 상황이었으니, 다른 곳들도 언제까지 안전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었다.

“교수님, 여기 보시면…….”

해서 수혁은 환자의 손가락 끝의 아주 작은, 그야말로 좁쌀만 한 새까만 지점을 신현태에게 보여 주었다.

“이런 젠장.”

최근 들어 입이 부쩍 거칠어진 신현태는 그게 뭘 의미하는지 대번에 알아들었다.

생긴 지점만 다를 뿐 뇌경색이랑 다를 게 없는 소견이었다.

출혈은 잡히고 있지만 결국, 판막에 붙은 덩어리들은 단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더 미루면 코, 눈 다 문제 생길 수 있습니다. 그때 가서는 살려도…….”

“너무 큰 후유 장애가 남겠지.”

간혹 이런 종류의 다발성 색전증 때문에 코끝과 사지를 절단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하지 않던가.

수혁은 그저 케이스 리포트에서 읽어 봤을 따름이지만.

신현태 과장은 회상할 수 있었다.

오래전 일이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눈에 선했다.

자신이 맡았던 환자가 수술 후 오열하던 모습이.

그 아내가 허물어지던 모습이.

감염 내과 의사로 살아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날 중 하나였더랬다.

“그럼……. 수술하자.”

“네, 교수님. 진행하겠습니다.”

“그래. 그……. 나 오늘도 병원에서 잘 거니까 수술 끝나면 알려 줘, 어찌 됐는지.”

“네, 교수님.”

결국, 신현태는 수술 컨펌을 내리고야 말았다.

이 결정으로 인해 환자가 수술대 위에서 죽을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서였다.

‘적어도 기다린 보람은 있잖아?’

신현태는 중환자실을 떠나며.

그러니까 환자를 애써 떠나며 위로를 해 댔다.

실제 그렇기도 하지 않은가.

첫날 여기 왔을 때보다는 그래도 수술하기에 좀 나은 상황이었다.

‘진짜 수술해도 되겠어?’

수혁은 곧장 흉부외과에 전화를 하는 대신, 환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환자의 체온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따뜻하다는 느낌이 일었다.

얄궂은 일이었다.

환자는 이놈의 열을 일으키고 있는 감염 질환 때문에 죽어 가고 있었으니까.

[수술해도 되냐는 질문은 이 상황에서 적절치 않아 보입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조금은 센티해져 있었는데.

바루다는 역시 그런 것 따위 없는 녀석이었다.

그저 사무적인 대꾸만 해 올 따름이었다.

수혁도 딱히 바루다에게 철학적 사유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해서 그리 실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대체 왜 적절치 않다는 말을 했는지는 궁금했다.

‘뭔 소리야? 그건?’

[환자는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니까요. 해도 되냐는 말은 수술이 선택 사항일 때나 가능한 말 아닐까요?]

‘아……. 하긴. 음. 네 판단도 그런 거지?’

[네. 시기의 문제일 뿐, 환자는 무조건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치료가 좀 더 빠르게 들어갔다면 모르겠지만. 태화 의료원으로 왔을 땐 이미 대동맥 뿌리 구조물이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수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수술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

보통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하면 환자 예후가 좋지 못하다는 것이나 다름없기 마련이었다.

수혁은 한숨과 함께 환자를 돌아보았다.

“저, 선생님. 전화…… 제가 할까요?”

그때 옆에 있던 안대훈이 입을 열었다.

녀석도 얼굴이 그리 좋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이 맡은 환자 코스가 극악을 달리고 있었으니까.

계속 밤새 진료하느라 심적으로 힘든 와중에 체력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아니, 아냐. 내가 할게. 넌…… 일단 보호자 분 찾아봐. 설명 드려야지.”

“아…… 네.”

안대훈의 얼굴이 좀 더 어두워졌다.

환자가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면야 보호자 만나는 일이 부담스러울 게 없겠지만.

지금은 아예 정반대의 상황이지 않은가.

만날 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너무 세게 말하지는 말고. 설명은 내가 할게. 대강……. 수술 얘기만 운 띄워 놔.”

“네, 선생님.”

그나마 다행인 건 수혁이 개차반 위 연차가 아니란 점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쯤 흉부외과 전화는 물론이거니와, 보호자 설명도 오롯이 안대훈의 몫이 되었을 터였다.

‘이러니까 내가 이수혁 샘을 존경하지…….’

이게 일정 부분 다 명성 관리의 일환이라는 건 꿈에도 모르는 안대훈으로서는 존경심과 충성심을 한층 공고히 할 수밖에 없었다.

‘어휴 머리 더 빈 거 봐라, 저거.’

그의 생각과는 달리 정수리만 쳐다보고 있던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이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아까부터 눌러 두었던 흉부외과 측 전화번호가 떠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자 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어차피 들어갈 수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그런지 속도가 엄청 빨랐다.

“네, 이수혁 선생님.”

“네. 선생님. 그…… 남윤석 환자 때문에 전화 드렸습니다.”

“수술…… 컨펌인가요?”

“네. 저희 쪽에서 보호자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수술방 같이 들어가서 환자 상태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뭐 별로 큰 도움이 되진 못하겠지만요.”

“아뇨, 아뇨. 주치의 선생님이 계시면 저희도 훨씬 마음이 놓이겠습니다.”

주치의와 협진의는 아무래도 좀 다를 수밖에 없었다.

협진을 볼 때는 딱 자기 과와 관련된 문제가 보게 된다면.

주치의는 그 환자 전체를 본다는 것이 차이였다.

수술 중에 어떤 문제가 생길 때 환자 히스토리 및 랩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좋지 않겠는가.

흉부외과 쪽에서는 수혁의 제안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럼……. 수술방 잡히면 연락 주세요. 그리로 가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수혁 선생님.”

수혁은 무려 협진 수술을 부탁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감사 인사까지 받은 채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아까 안대훈이 나섰던 문을 통해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어디…… 아.’

녀석을 찾기 위해서는 두리번거릴 필요도 없었다.

우선 보호자 대기실이 아니라 중환자실 입구 근처에 있기도 했거니와.

보호자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 어머님…….”

안대훈은 더없이 난처하다는 얼굴로 보호자의 어깨를 쓸어 주고 있었다.

평상시 안대훈의 성정을 생각해 볼 때 이상한 말을 꺼냈을 리는 없었다.

그저 수술 얘기를 꺼내자마자 왈칵 눈물이 쏟아진 것일 터였다.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님의 마음은 으레 그러했으니.

“어유……. 어유 우리……. 우리 윤석이…….”

보호자는 아예 안대훈에게 폭 안기다시피 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안대훈은 어머니를 위로하느라 여념이 없었고.

“어머님…… 그, 근데 그……. 어, 선생님.”

“괜찮아, 내가 설명할게.”

“아, 네. 그……. 보호자 분, 이수혁 선생님 오셨어요.”

이수혁이라는 말에 보호자는 일단 눈물을 애써 멈추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몰라도, 젊은 의사가 늘 말을 똑 부러지게 해 주지 않던가.

해서 좀 물어보니, 물어봤던 의료진들마다 천재라고 엄지를 내둘렀더댔다.

심지어 회진 때 만난 담당 교수도 그랬어서 보호자의 수혁에 대한 신뢰도는 가히 최상이었다.

“아유, 선생님…….”

“보호자분. 대강 들으셨겠지만……. 남윤석 환자분은 이제 수술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유……. 그 어린 것이…… 또…….”

“마음은 아프시겠지만, 수술을 더 미룰 순 없어요. 다행히 처음 왔을 때보다는 수술하기에 사정이 더 나아졌습니다.”

“그, 그럼…… 수술만 하면 살아요?”

하지만 늘 똑 부러지던 수혁도 이 질문에 관해서 만큼은 답하기가 좀 어려웠다.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 데이터와 환자 상태를 종합해 보면 생존 확률은 60% 정도 됩니다.]

거의 반반이란 소리 아닌가.

이런 소리를 방금까지 울고 있던, 지금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보호자에게 하는 건 좀 무리였다.

‘내가 들어가서 바이털 봐주면?’

[딱히 변하는 거 없죠. 수혁 혼자 들어가면.]

‘알았어, 알았어, 인마. 너랑 같이.

[그럼 80%까지는 올라갈 겁니다.]

80%.

여전히 5분지 1은 죽는다는 소리였지만.

그래도 반반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바루다는 자신의 소견을 하다 더 보탰다.

[제 추천은 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환자 살리러?’

[그것도 있겠지만, 흉부외과 교수와 친분을 트기 위해서도 있습니다.]

‘그건 왜?’

[현재 개발 예정인 진단 보조용 A.I.를 위해선 흉부외과 중환자실 데이터도 필요하니까요.]

‘그거……. 그거 너무 속물적인 이유 아냐?’

[하지만 실용적이죠.]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개발되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터였고.

[돈도 벌게 됩니다.]

기왕이면 돈도…….

아무튼, 그래서 수혁은 보호자를 마주 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도 수술방 들어갈게요.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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