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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163화 (163/1,303)

163화 누가 같이 있느냐에 따라 (2)

“아.”

마취과 의사는 그제야 환자의 활력징후를 다시 한번 유심히 바라보았다.

혈압이고 심장박동 수도 제대로 된 것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전신 상태가 좋지 못한 상황 아니던가.

해서 최대한 빨리, 신속하게 끝내는 게 좋다고 판단했는데.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심장박동 수가 지나치게 빠른 상황이었다.

가뜩이나 역류 때문에 심장에 부하가 실리고 있었으니까.

여기서 인덕션이 걸리면 어찌 될까.

‘혈압까지 더 떨어지는데…… 그럼 사망할 수도 있어.’

심장에 부담을 더더욱 싣게 될 터였다.

“잠시……. 제가 약 좀 처방할게요.”

그가 그렇게 얼어붙은 사이, 수혁이 따라붙었다.

마취과 테이블에 준비되어 있는, 수많은 약물 중 하나를 뽑아 들고서였다.

아미오다론.

약물 자체는 특별할 것도 없는 약이었다.

하지만 원래 내과적 치료라는 게 그렇지 않던가.

같은 약이라도 언제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천차만별이었다.

“좋아. 줄어듭니다. 뭐……. 완전히 잡히는 건 아니지만.”

전신이, 그중에서도 특히 심장이 망가진 상황 아니던가.

약 하나 썼다고 확 좋아질 리는 만무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약도 그저 시간을 벌어 줄 따름이었다.

중요한 것은 수술이 어떻게 되느냐는 뜻이었다.

해서 수혁은 흉부외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차피 이따가 체외 순환기 달아 주실 거죠?”

“어…… 그래. 달아야지.”

대답한 이는 펠로우였다.

수혁보다 훨씬 연차가 위였으나, 언젠가 한 번 도움 아닌 도움을 받은 적 있는 그 펠로우였다.

“네, 그럼 인덕션 하겠습니다. 마취과 선생님, 이제 해 주시죠.”

“어……. 네. 네. 알겠습니다.”

체외 순환기만 달면 그래도 괜찮을 터였다.

체외 순환기란 말 그대로 인공 심장이었으니까.

요는 그걸 달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였는데.

그 시간은 수혁이 방금 벌어 준 셈이었다.

“마취……. 네, 됐습니다.”

인덕션은 다행히 성공적이었다.

예상대로 혈압이 조금 출렁이기는 했지만, 다행히 환자의 심장이 버텨 준 덕이었다.

“오케이. 그럼 바로 소독하고, 개흉 들어간다.”

마취가 되자마자 흉부외과 의사들 및 수술실 간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졌다.

누군가는 가슴을 베타딘으로 닦았고 누군가는 미리 손을 닦으러 밖으로 나갔다.

[음.]

바루다는 그 광경을 보며 신음을 내뱉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예전 같았으면야 결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제 함께한 세월이 적지 않지 않은가.

‘왜. 나도 수술했으면 좋겠냐?’

[최종 치료 옵션이 수술인 경우가 꽤 많으니까요. 이번에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긴, 그건……. 그건 그렇지.’

생각보다도 많은 질환에서 수술이 최종 옵션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바루다가 언급한 지금 이 수술 외에도 지금까지 수혁이 최종까지 관여하지 못한 환자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만약 수혁의 몸이 성했다면 담당 과와 관계없이 어떻게든 끼어들려고 노력을 했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다리가 불편한 몸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도 퍽 힘들 지경이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무리야, 수술은.’

[현재로써는 그렇죠.]

‘그렇게 말하니까 꼭 나중에는 될 거 같은데. 신경 다친 건…… 안 돼. 된다고 해도 난 늦었어.’

[알겠습니다. 수술은 포기하죠.]

다행히 바루다 또한 무작정 욕심만 부리는 녀석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혁의 몸 상태를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냉정해질 수 있었다.

[대신 마취 보조는 확실히 합시다. 인덕션이 끝났으니까 뭐 크게 문제는 없을 테지만…….]

‘그래도 체외 순환기 달기 전에는 안심할 수 없어. 아니…….’

[체외 순환기를 단다고 해도 심장 외에는 신경을 써야 합니다. 환자의 전신 상태는 사실…….]

원래 험한 환자 수술하겠다고 하면 제일 싫어하는 게 마취과였다.

환자의 전신 상태에 따라 난도가 급변하는 술기가 바로 마취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환자는 마취과는 물론이고 내과 심지어 집도 과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던 환자였다.

아마 환자 나이가 좀만 더 많았다면 안 들어왔을 가능성이 컸을 터였다.

‘응. 그래, 긴장하자고.’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아니, 환자를 위해서 긴장하자고.’

[앞으로의 환자를 위해서요.]

‘아니……. 그……. 아니다, 됐다. 그래. 그러자.’

수혁은 바루다의 삭막한 언동에 뭐라 하려다 말고 이내 활력징후가 뜨는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은 그냥 소독 다 하고 드랩만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물론 그걸 지켜보고 있는 마취과 의사의 표정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시작하자마자 골로 보낼 뻔했어…….’

바로 아까 환자가 죽을 뻔한 상황 아니던가.

이수혁이 아니었으면 아마도 그렇게 됐을 가능성이 컸더랬다.

해서 그는 부리나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원래 흉부외과 마취를 담당하는 교수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뭐? 야! 여기가 더 급해! 외상 환자라고!”

“아…….”

“가뜩이나 지금 혈압 흔들려서 죽겠는데, 뭐? 오라고? 정신 나갔어?”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거진 건 욕뿐이었다.

‘저쪽이 더 급한가 본데…….’

마취과 의사도 레지던트 3년 차이지 않은가.

이런 수술 아니면 짬밥이 꽤나 찬 상황이라는 뜻이었다.

그랬기에 외상이라는 말을 딱 듣자마자 느낌이 왔다.

‘하긴……. 외상인데 심장 다쳤으면 말 다 했지.’

설마 거기만 다쳤을까?

중증외상환자 특성상 아마도 몇 군데 더 다쳤을 터였다.

수술 부위가 여러 군데라는 뜻이었고.

그 말은 곧 마취과 의사가 신경 써야 하는 게 몇 배가 된다는 뜻이었다.

‘그럼 진짜 나 혼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는 순간이었다.

그때 수혁이 지팡이를 짚은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

“아, 이수혁 선생. 아깐 고마웠어요.”

“일단 바이털은……. 저도 도울게요. 제 환자니까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고마워요.”

“혹시 교수님은 언제 오시는지 말씀 있으신가요?”

“아까 119 통해서 온 환자가……. 상태가 많이 안 좋나 봐요. 아마 이 수술 끝날 때까지는 못 나올 겁니다.”

“아.”

마취과 의사에 비해 수혁은 사실 중증외상환자를 보아 온 경험이 많거나 하지는 않았다.

다만 중환자실이 부족할 때 가끔 외상 외과 병실을 빌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 곁눈질했던 것이 다였다.

[뭐, 장난 아닐 겁니다. 그쪽도.]

물론 그것만으로도 중증외상센터가 험악한 곳이라는 걸 깨닫기에는 충분했더랬다.

‘천생 여기는 둘이 해야겠네.’

[네, 긴장하죠. 라이브 수술은 처음이니까.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 두겠습니다.]

‘그래, 다 담아 놔.’

둘이 심기일전하는 동안 드랩이 끝나고 흉부외과 교수가 메스를 쥔 채 환자에게 다가갔다.

따로 국소 마취제를 찔러 넣거나 하진 않았다.

어차피 혈압이 낮기도 하거니와,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최대한 빨리 체외 순환기를 연결해야 안심이 되는 건 마취과뿐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오히려 칼을 직접 대야만 하는 흉부외과 쪽이 더더욱 그러했다.

지이익.

해서 교수는 곧장 메스로 가슴골을 수직으로 그어 내려갔다.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지만, 곧 보조로 나선 펠로우가 석션으로 제거해 냈다.

수술실에 들어온 지 벌써 2년 가까이 되어 가는,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럴 기회가 거의 없을 수혁에게는 흥미롭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수혁은 거기에만 시선을 둘 여유가 없는 상황이었다.

“혈압 어때요?”

“유지됩니다. 문제는…… 심장박동 수인데. 다시 빨라지고 있어요.”

환자의 활력징후 때문이었다.

설마하니 고작해야 저만한 출혈 때문에 이상이 생겼을 리는 없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쌓여 온 문제가 이제 터지기 시작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다시 약 쓰기는 어려운데.”

“네, 지금 쓰면 아마 혈압이…… 떨어질 겁니다.”

심장박동 수는 너무 빨라도 문제가 되지만, 너무 느려도 문제가 되는 법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죽을 때 심장이 멈춰서 죽지 않던가.

다시 빨라지는 추세에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범위가 정상일 때 약을 썼다간 큰일 날 터였다.

“어쩌죠?”

해서 수혁이 묻자, 마취과 의사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곤 흉부외과 쪽을 향해 입을 열었다.

“환자 심장박동 수 다시 불안정해집니다! 속도 좀 올려 주세요!”

“이런 젠장. 알았어!”

해결책은 흉부외과를 닦달하는 것이었다.

흉부외과 교수 또한 그러한 의견에 동의하는지 손에 속도를 붙여 나갔다.

그래 봐야 제삼자가 보기엔 천천히 하는 것처럼만 보일 따름이었지만.

[쉽지 않군요. 쓸 수 있는 약이 제한되는데…… 가능한 방법이 닦달이라니.]

‘기도라도 해야 하나.’

[누구한테요?]

‘글쎄.’

신이 있다면 아마 바루다를 머리에 박은 존재가 아닐까.

해서 수혁은 그 존재에 대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지금 순간에서는 기도 말고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쏘우 줘!”

그사이 환자 가슴골 절개가 완료되었는지, 교수가 톱을 찾았다.

그 말에 수술실 간호사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톱을 건네주었고, 곧 수술실 안은 요란한 뼈 갈려 나가는 소리로 가득 찼다.

위이이잉.

까가가가각.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다소 버거운 소음이었다.

세상에 뼈가 갈려 나가는 소리라니.

[음, 피치가 조금씩 변하는군요.]

물론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저 분석이 대상이 될 뿐이었다.

수혁은 기가 찼지만, 한편으로는 도움이 되기도 했더랬다.

워낙 객관적으로 보는 녀석이 있으니, 어쩐지 수혁의 마음도 차분해졌기 때문이었다.

‘피치가 변해?’

[네, 아무래도 뼈의 성분 차 같은데. 그 왜 있잖아요.]

‘아……. 단단한 곳에서 피치가 높나?’

[네. 흥미롭네요.]

‘그……. 뭐, 그래.’

수혁은 바루다의 관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다가 이내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아까보다 혈압이 좀 더 떨어져 있었다.

뼈를 갈라 들어가는 과정에서 어디가 좀 눌리는 모양이었다.

‘이거 괜찮은 건가? 물리적인 압력이 가해지는 거 같은데, 심장에.’

[안 되죠. 지금보다 더 눌리면…… 위험합니다.]

‘어쩌지?’

[아까 봤잖아요? 직접 할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에이.’

수혁은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바루다의 말이 사실인데.

껄끄러워도 해야 할 말은 해야 했다.

“저…….”

“또 왜?”

당연히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미 대외적으로 수혁은 이현종의 아들로 너무 유명하지 않은가.

이현종에게 감정이 좋지 못한 흉부외과 의사들이 수혁에게 친절하길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라 할 수 있었다.

“지금 그…… 종격동에 들어간 철판 말입니다.”

“어?”

“그거 너무 밑을 누르는 거 같아서요. 혈압이 점점 떨어지는데, 심전도 모양까지 감안해서 볼 때 심장에 직접 압력이 가해지는 거 같습니다.”

“잠만, 어디 봐 봐.”

하지만 감정이 안 좋다고 해서 환자에게 막 대할 의사는 어디에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 집도를 담당하고 있는 건 흉부외과 아니던가.

소위 돈 안 되는 과인 데다가 힘들기까지 한 과를 하는 사람들이니만큼 사명감이 다들 투철했다.

“야, 야! 너 인마, 너가 누르고 있잖아!”

그 결과 교수는 미묘하게 평소보다 더 철판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걸 어떻게 안 거야.’

보지도 않고 알아맞힌 수혁이 신기하긴 했지만, 굳이 칭찬을 늘어놓진 않았다.

다만 레지던트 1년 차를 죽도록 태울 뿐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는 좋았다.

“네, 혈압 돌아옵니다. 계속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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