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64화 (164/1,303)

164화 누가 같이 있느냐에 따라 (3)

가가각.

과도하게 눌러 대던 것을 관두자, 곧 혈압이 돌아왔다.

거칠 게 없어진 흉부외과 교수는 전기톱으로 가슴골을 완전히 갈라내었다.

숙달된 펠로우와 레지던트는 곧장 그 가슴골을 좌우로 벌려 놓음으로써 교수가 심장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도왔다.

“음.”

적어도 겉으로 보았을 때는 큰 이상이 없어 보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심장은 아니, 대동맥의 뿌리는 한없이 늘어져 있었다.

안쪽 벽이 녹아 버리면서 외형까지 변화된 탓이었다.

“이거…….”

펠로우의 입에서는 탄식마저 튀어나왔다.

정말이지 조금만 더 늦었으면 대동맥이 터져서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자연히 이 판단을 내린 수혁에게로 고개가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미친.’

[실제로 보면 저렇게 되는군요.]

그렇게 보게 된 수혁 또한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초음파로 계속 살펴보긴 했지만, 역시 두 눈으로 직접 보는 것과는 달랐다.

‘진짜 죽을 뻔했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쉬운 수술이 아니에요.]

‘하긴. 그건 그래.’

건드리는 수술마다 다 성공시키는 외과 의사는 존재할 수 없는 법이었다.

만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이야기라는 뜻.

객관적으로 눈앞에 있는 흉부외과 교수도 물론 훌륭한 외과 의사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수술을 반드시 성공적으로 끝내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후. 기계 준비됐어?”

“네, 교수님.”

“연결한다.”

“네.”

교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의 얼굴 또한 긴장감이 그득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자칫하면 환자가 사망할 수 있었으니까.

“괜찮을까요?”

마취과 의사 또한 덩달아 긴장해 있었다.

수술이 제법 많이 진행된 것 같았지만.

실제로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 초입이었다.

그런데도 벌써 두 번이나 활력징후가 크게 흔들리거나, 또는 흔들릴 뻔한 이벤트가 있지 않았는가.

마취과 의사로서 진땀이 흐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일단…… 리듬하고 혈압 추이는 괜찮아요.”

하지만 수혁의 눈은 차갑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가 수술에 익숙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흉부외과 교수의 손놀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다만 그로 인해 어떤 활력징후가 어떻게 변할 건지는 대강이나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출혈 예상됩니다.]

‘양은?’

[역량에 따라 100mL에서 200mL까지 추정합니다.]

‘그럼 수액 양으로 커버하자.’

[그게 좋겠습니다.]

바루다의 예상 시스템 덕이었다.

[정확한 이번 이벤트로 인한 출혈량은 142mL 정도로 보입니다. 수액 300mL 풀 드립을 추천합니다.]

심지어 바루다는 실제 벌어진 출혈량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우징(oozing: 새는 출혈) 양은 분당 3mL가량으로 추정됩니다. 현재 기저로 들어가고 있는 수액 및 수혈만으로도 커버 가능합니다.]

거기에 더해 새는 양까지 대강 추정하고 있었다.

‘정확도는 얼마나 돼?’

[82% 정도 됩니다.]

‘그럼…….’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만, 판단의 근거로 삼아 주시기 바랍니다.]

‘알았어.’

물론 수혁의 시력 및 시야 그리고 애초에 모습을 드러낸 수술 부위의 한계 때문에 백 퍼센트 확실하다고 보는 건 어려웠다.

“와……. 혈압 안정적이네요.”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일단 환자 활력징후를 유지하는 것 정도는 가능했더랬다.

“일단 체외 순환기 돌아가고 있으니까요.”

“아니, 그래도…… 이 정도로 하는 건…….”

마취과 의사는 쉬지 않고 움직이는 수혁의 눈동자와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수술 부위를 내려다보면서 실시간으로 환자의 전신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듯했다.

‘이게 가능한가?’

그 또한 마취과 수련을 받으면서 많은 것을 배워 온 몸이었더랬다.

어디 작은 병원도 아니고, 태화 의료원 마취과 아니던가.

수술이 험한 만큼 그 수술을 인도해야 하는 마취과 또한 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걸 해내는 교수님들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워 왔다고 생각했는데.

하늘에 맹세코 이런 식으로 활력징후를 잡아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더랬다.

[이제 대체 들어가는군요. 지금부터는 더 흔들릴 겁니다. 약을 쓰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거?’

[체외 순환기 사용 중이니 심장에 작용하는 건 별 의미가 없겠죠.]

‘오케이. 그럼…….’

[수축제를 추천합니다.]

바루다는 약의 종류뿐 아니라 용량도 정확히 계산해 내었다.

수혁은 그것을 마취과 의사에게 물어 확인한 후, 정주하도록 지시했다.

바루다의 말만 따르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현장에 계속 있어 온 사람의 말도 들어 보는 게 낫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아……. 그…… 약용량 좀 더 줄이고. 지금 들어가고 있는 진정제 용량도 줄이는 게 어떨까요? 아무래도 환자 패혈증 쇼크 상태라, 부담스러워서요.”

“오. 그게 더 낫겠습니다.”

“네, 그럼 그렇게 하겠습니다.”

확실히 훨씬 나은 판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바루다나 수혁은 물론 활력징후 잡아내는 데에는 도가 튼 존재들이었지만.

마취된 상황에서는 얘기가 좀 다르지 않겠는가.

[오호……. 진정제를 줄여서 혈압을 높인다라…….]

‘외줄 타기 같은 방법이기는 한데, 생각지도 못했어.’

[지금 심도가 깊으니까요, 어차피 진통제가 들어가고 있으니 깨어날 일은 없겠죠. 수술도 장기 쪽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응. 영리하네.’

[마취도 재밌네요.]

‘그렇다고 마취까지 공부할 생각은 없으니까, 눈 빛내지는 마.’

같이 들어와 있기는 했더랬다.

실제로 도움이 되고 있기도 했고.

하지만 내과는 정말이지 방대한 학문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점점 더 방대해지고 있기도 했고.

그거 하나만 공부하기도 벅차다 이 말이었다.

[안 돼요?]

바루다는 동의하지 않는 듯했지만.

‘내과 의사야, 나는. 마취과 의사가 아니라…….’

수혁의 뜻은 아주 확고했다.

[알겠습니다, 뭐.]

해서 바루다는 더 수혁을 밀어붙이지 못했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해도 그럴 만한 시간이나 여유는 없었을 터였다.

“이제……. 밸브 치환한다.”

수술이 점점 더 복잡하고 또 위험한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까지 술기들이 차례차례 잘 마무리되었다는 점 정도였다.

그럼에도 흉부외과 교수는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지금 수혈 몇 팩 들어갔지?”

“8팩입니다.”

마취과 의사의 말마따나 벌써 너무 많은 피가 들어간 참이지 않은가.

거기에 더해 체외 순환기도 돌아가고 있었고.

삭감이니 뭐니 하는 문제를 떠나서 이렇게 되면 환자 생명이 위험할 수 있었다.

언제나 대량 출혈 및 수혈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파종성 혈관 내 응고를 주의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아…….”

“일단 30분 전에 나간 피 검사는 괜찮습니다.”

두려움이 몰려오려는 순간, 수혁이 입을 열었다.

수혁은 놀란 흉부외과 교수가 고개를 돌리는 동안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이미 중환자실에서도 수혈한 기록이 있고, 이미 패혈증이 온 상태인 데다가 신장 기능이 조금 불안한 상태라 팔로우 업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괜찮으니, 일단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음, 으음.”

흉부외과 교수는 간신히 잘했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어우, 감동했잖어? 이현종이 아들한테?’

이렇게까지 세심하게 환자를 봐주는 사람은 흔치 않지 않은가.

사실 주치의가 수술실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는 거 자체도 감동할 만한 일인데.

와서도 한시도 쉬지 않고 환자 상태를 돌보고 있다니.

이런 친구를 최근 본 적이 있던가.

‘아니, 그래도 안 돼. 싫어.’

하지만 이현종의 아들이었다.

적어도 지금 교수 나이 또래의 흉부외과 교수라면 이현종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니, 이현종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그놈 피피티가 눈에 선해.’

아직도 하고 있는 콘퍼런스긴 하지만.

한때는 지금처럼 험악하지 않고, 화기애애했던 흉부외과 X 심장내과 콘퍼런스 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이제 막 마흔이 될락 말락 하던 이현종이 피피티를 들고 와 발표랍시고 할 때, 몇몇 고령의 교수님들은 뒷목을 잡고 쓰러지고야 말지 않았던가.

세상에 흉부외과 의사들이 칼 들고 뛰어가는 그림 뒤에 자신의 얼굴을 합성한 로빈 후드가 화살을 쏴서 치료라는 과녁을 먼저 맞히는 그림을 쓸 줄이야.

내과끼리 하는 콘퍼런스에서 썼다면 그래도 참을 수 있었을 텐데.

빌어먹을 놈이 흉부외과와 함께 있는 발표에서 그걸 써 버린 것이었다.

“교수님, 일단 활력징후는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주치의로서 마취과 선생님을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수혁 또한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바 있었다.

당연히 이현종을 통해서는 아니었고, 신현태를 통해서였다.

[미친 사람이죠. 이현종은.]

‘너무 혈기 왕성해서 그랬다잖아.’

[20대도 아니고, 불혹 아닙니까?]

‘뭐……. 지금은 그래도 그때보단 나으니까.’

[아무튼, 잘하고 있습니다. 현재 개발 예정 중인 진단 보조형 A.I.의 데이터 습득을 보다 빨리하려면, 흉부외과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물론 수혁이 교수에게 잘하는 건 그 일이 미안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필요할 뿐이었다.

교수의 협조가.

아무래도 심장이 흔들리는 흉부외과 중환자실의 데이터가 훨씬 더 드라마틱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 데이터로 보조 A.I.를 훈련시킨다면 개발 시간을 거의 절반 가까이 줄일 수도 있을 터였다.

‘알았어, 알았어. 웃고 있잖아. 나 잘해, 이런 거.’

[너무 잘하고 있습니다. 소름이 돋아요, 네.]

‘비꼬지는 말고.’

[아뇨, 진심입니다. 제 분석조차 수혁의 현재 표정을 호의 100%로 분석하고 있으니까요.]

바루다는 정말로 소름이 돋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A.I. 주제에 기분이 든다는 표현을 쓰는 게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쩌겠는가.

실제로 그러한데.

그만큼 수혁의 연기는 완벽했다.

“어, 그래……. 그, 그래.”

바루다의 분석 시스템조차 못 잡아낼 정돈데 어찌 교수가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근데 저놈은 사람이 썩 괜찮네…… 어떻게 저런 아들을 낳았지?’

심지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지경이었다.

흐뭇하고 또 안심이 돼서 그랬을까?

갑자기 수술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더랬다.

“랩 괜찮고 활력징후 괜찮습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오케이.”

수혁은 수술 중간중간 일부러 보고를 해 주었다.

그 중간중간이 그냥 중간이 아니라 꽤 절묘한 타이밍이었기에 교수에게는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면 어딘가 중요한 곳을 쨌거나, 또는 째야 하기 직전에 괜찮다는 말이 날아오는 식이었다.

‘이 자식은 마음에 드는데?’

덕분에 교수는 불과 수 시간에 불과한 수술 시간 동안 수혁에게 홀라당 마음을 빼앗기고야 말았다.

“교수님.”

“어. 말해 봐.”

해서 수혁과 조금 더 길게 말을 섞게 되었는데, 그게 패착이었다.

“아무래도 수술이 어려워서 그냥 내과 중환자실로 가면 관리가 어려울 거 같습니다. 교수님 도움도 계속 받아야 되는데 그것도 어렵고…….”

“어, 그렇겠지. 그래.”

“그래서 과는 내과로 그대로 두고, 병실은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하면 어떨까 싶은데, 교수님 생각은 어떠신지요?”

“좋지. 좋아. 그렇게 해. 자주 보겠네.”

“네, 교수님. 자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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