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만들어 봅시다 (1)
드르륵.
환자는 곧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은 대동맥 치환술, 판막 치환술 했으니까 상처 잘 봐 줘.”
“네, 교수님.”
아무래도 이러한 수술에 관한 경험치가 쌓인 병실이다 보니 교수도 간호사도 의사소통이 아주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쓸데없이 약은 뭐 써라, 얼마마다 바이털을 재라 와 같은 말은 없었다.
그냥 수술명만 말해 주니까 알아서 착착착 이었다.
[데이터 얻는 것과 별개로 여기로 오길 잘했네요.]
바루다의 말대로였다.
아마 내과 중환자실로 되돌아갔다면 시행착오가 있었을 터였다.
중환자실이라고 해서 다 같은 중환자실은 아니었으니까.
‘그러게. 뭔가 안심이 딱 되네.’
확실히 외과계는 외과계에서 봐야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광경이었다.
그렇게 대략 5분여가 지나자 환자는 완전히 정리되어 중환자실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교수는 잠시 마취과 쪽에서 먼저 세팅해 준 벤틸레이터를 들여다보고는 담당 간호사를 찾았다.
“아, 얘기 들었겠지만. 담당은 우리가 아니라 내과야. 그…… 신현태 알지? 과장.”
“네, 알죠. 신현태 교수님. 그럼 연락은 신현태 교수님 주치의분한테 하면 될까요?”
“아, 왔어. 같이. 저기.”
“같이요? 아, 아.”
담당 간호사는 수혁을 딱 보자마자 그게 누군지 알아보았다.
지팡이 짚은 내과 의사라고 하면 적어도 이 병원에 딴 한 명뿐이지 않은가.
‘별일이네.’
그 때문에 간호사는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간호사 급은 아니더라도 시니어였기 때문이었다.
짬이 찬 만큼 흉부외과에 관해서는 빠삭했고, 다른 과들 간의 관계에 관해서도 어느 정도는 잘 알았다.
‘이현종 교수님 아들인데…… 이렇게 친근하게 대한다고?’
이현종이라고 하면 자다가도 벌떡 깨는 게 태화 의료원 흉부외과 아니던가.
“어. 주치의인데 야……. 수술방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어. 이 친구 아니었으면 오늘 사고 났을 수도 있어. 덕분에 편하게 수술했지.”
“와……. 정말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다니까.”
하지만 교수의 말을 끝까지 듣고 보니 그 이유를 아주 잘 알 수 있었다.
‘처음 아닌가?’
흉부외과 수술이 10분 20분 안에 끝나는 것도 아닌데 처음부터 끝까지 있었다니.
게다가 교수 얼굴을 보아하니 정말로 결정적인 도움이 된 모양이었다.
성격이 절대 더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억지로 칭찬할 만큼 호인은 또 아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이수혁 선생님.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일단…… 처방 챙기고 갈게요.”
“네. 선생님.”
원래 중환자실 간호사들은 엄밀히 말하면 한 과에 소속되어 있는 존재는 아니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흉부외과 중환자실처럼 주로 한 과를 중점적으로 받는 병실은 어느 정도 소속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흉부외과는 외과 중에서도 호탕한 편에 속하는 곳이라 항상 과 행사가 있으면 안면 트고 지내는 사람들은 죄다 부르는 과였고.
[그러니 간호사들에게 잘하면 자연히 말이 흘러들어 가게 되어 있습니다.]
적어도 바루다가 판단하기론 그러했다.
‘내 생각도 그래. 게다가……. 원래 교수님들이 간호사들 사이에서 도는 평판 중요시하기도 하고.’
수혁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개차반인 놈들일수록 간호사에게 함부로 하는 편이지 않던가.
아마 의사 간호사 관계를 평등한 관계라기보다는 수직적인 관계라 생각해서이긴 할 텐데.
도리어 연차가 낮을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편이었다.
전문의만 따도 내 위에 있는 사람은 교수고, 밑에 있는 사람은 전공의라는 걸, 즉 간호사는 하는 일이 좀 빗겨 나 있다는 걸 알아차리겠지만.
레지던트 저년 차들은 그러기가 어려웠다.
워낙에 일이 몰려서 그런가, 시야가 좁아져 있기 마련이었다.
[네. 내과도 펠로우 뽑기 전에 항상 간호사들 의견도 참고하죠.]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하면, 간호사에게 잘하는 사람치고 이상한 놈은 없을 거란 얘기도 되었다.
시야가 넓어서 잘해 줬건 아니면 인성이 좋아서 잘해 줬건.
아무튼, 둘 중 하나는 된다는 뜻이었으니까.
‘오케이. 여기 지금 몇 명이지?’
[6명입니다. 교대 올 사람까지 생각하면 최대 열두 명이겠네요.]
‘중환자실 인턴까지 해서 넉넉하게 15명이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뭐……. 어차피 돈 쓸 일도 없는 사람이니까, 넉넉하게 생각해도 되겠지요.]
환심을 사는 건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단기간에 확실하게 친해지는 데에는 역시 먹을 거 쏘는 게 제일이었다.
수혁은 벌써 여러 병동에서 이 방법을 써먹은 적이 있었기에 매우 능숙했다.
‘돈 쓸 일이 왜 없어.’
[없죠. 까 놓고 연애를 합니까, 뭘 합니까.]
‘하…… 하윤이 있잖아…….’
[같은 과 돌 때나 인사하고 밥 같이 먹는 걸 연애라고 하나요?]
‘그……. 아니지.’
수혁은 금세 뼈 맞은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억지로 말이나 꺼낸 것이지, 그도 아주 잘 알고 있기는 하지 않던가.
하윤과는 절대 연애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걸.
그저 존경하는 선배가 되었을 따름이었다.
수혁 입장에서는 좀 더 발전하고 싶지만, 이전에 크게 덴 것 때문에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고.
[그런 표정 짓지 마십쇼. 저는 수혁이 이래서 좋습니다.]
‘모쏠이라 좋다고?’
[모름지기 학문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죠. 어디 학문하는 사람이 어? 연애하고 그런답니까? 이현종 보십쇼. 결혼 안 하니까 위대한 의사가 되었지 않습니까?]
‘행복한 건 신현태 과장님이 더…… 행복해 보이던데.’
[어차피 수혁에게는 없는 미래입니다. 수혁은 모쏠이 어울려요.]
‘이 새꺄……. 무슨 말을 그렇게…….’
[잘된 적이 있나요? 그럼 제 판단을 유보하겠습니다.]
‘그……. 아니다…….’
어째 말을 이어 나가면 이어 나갈수록 비참하고 한쪽 가슴이 아려 오는 느낌이었다.
해서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후, 분연히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서 편의점으로 향했다.
“2만 원입니다.”
“여기요.”
그렇게 15개의 음료를 사고 나니 조금은 기분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겁니다. 돈 쓰는 재미, 그거 하나만 느끼고 사세요. 나머지는 학문에 몰두합시다.]
‘시끄러, 이 새꺄…….’
[왜요? 돈 싫어요?]
‘그건……. 그건 아니지.’
[돈이라도 많이 법시다. 우리.]
‘알았다…….’
그러려면 진료만 잘할 게 아니라 연구도 잘해야만 했다.
사실 진료로 돈 벌겠다고 생각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환자를 돈으로 보는 건 의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는 너무도 먼 것이었으니까.
“자, 이것 좀 드시고 하세요.”
“와, 주치의 선생님 센스.”
“이거 남은 건 다음번 선생님들 오시면 드시라고 해 주세요.”
“네, 전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 첫걸음에 데이터 수집이 있었다.
그 수집을 위해서는 간호사들의 환심을 사고 평판을 공고히 하는 것이 필요했고.
물론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저절로 데이터가 모이는 곳이 있기는 했다.
바로 내과계 중환자실 및 감염내과 병동이었다.
“어제 수술까지 들어갔다고?”
신현태는 본격적인 얘기를 꺼내기 전에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언제나 그렇듯 예의 바른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그편이 환자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요.”
“역시. 역시 우리 수혁이는 참의사다.”
신현태는 그런 수혁을 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게 실력에 인성까지 두루 갖출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인재가 들어온 것은 태화 의료원 내과의 홍복이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냐. 흉부외과 맨날 바이털 잘 본다고 자랑하는데. 알아서 하라고 하지.”
반면 이현종은 비아냥거릴 따름이었다.
소싯적에 거 좀 잘못했다고 아직까지 꽁해 있나,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피차 어른스럽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는 이현종 편을 들어야 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불안하니까요. 내과가 역시 중심을 딱 잡아 줘야…….”
“그렇지. 그렇네. 그 환자는 네가 살렸네. 흉부외과가 아니라.”
“네, 뭐……. 내과 의사가 최고죠.”
“그렇지! 최고지!”
아니나 다를까 이현종은 내과 최고라는 말에 흥분한 채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떻게 사람이 60 넘어서도 저렇게 순수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바루다가 끼어들었다.
[학문만 파서 그렇습니다. 수혁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죠.]
‘지양해야 할 모습 아니고?’
[지금……. 지금은 좀 그렇긴 하네요. 술 드셨나.]
‘그래……. 나는 적당히 하고 싶다…….’
이제 이현종은 두 주먹만 쥔 게 아니라 아예 몸을 일으킨 채 흉부외과 병동이 있음 직한 곳을 향해 손가락 욕까지 날리고 있었다.
“혀, 형. 앉아요……. 앉아.”
보다 못한 신현태가 말리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는지 흠흠 거리며 앉을 수 있었다.
신현태는 그러고 나서도 잠시 이현종의 어깨를 두드려 흥분을 가라앉혀 주고는 말을 이었다.
“아무튼, 오늘 이렇게 모이라고 한 거는……. 일단 돈이 들어왔어요. 원래 예상했던 게 2억인데 5억이나 들어왔어요.”
“오.”
“와우.”
“역시 태화.”
그 말에 나머지 교수들, 그러니까 혈액종양내과 조태진, 호흡기내과 홍창기 등등이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5억이라니.
국책 과제 아니고서야 절대 따 올 수 없는 액수 아니던가.
아니, 국책 과제라 해도 5억짜리 단일 프로젝트는 흔치 않았다.
“원래 개발 부서는 태화가 아니라 하청을 주려고 했는데…… 이번에 이유원 회장님 결정으로 태화 전자 부서가 나서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연구비 용역은 거기로 들어가야 해요. 단가가 좀 셉니다, 중소기업들보다는.”
“아…….”
태화 전자가 어디 구멍가게는 아니지 않은가.
그쪽의 부서 하나, 비록 부서 인원이라고 해 봐야 두셋 정도겠지만.
아무튼, 단가가 훨씬 센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 쪽 인건비에 한 1억 정도만 배당하고 나머지는 죄다 태화에 줘야 합니다. 기간은 1년이에요. 그쪽에서 대는 인력은 세 명입니다.”
“세 명에 4억이요? 비싼데……?”
홍창기가 4억이나 준다는 말에 대번에 손을 들고 불만을 표했다.
정확히 신현태가 전자 사람들 앞에서 지었던 그 표정이었다.
“그……. 세 명 모두 태화 모바일 인앱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그 알죠? 태화 헬스? 그거 만든 사람들이에요.”
“아……. 그럼 싸네.”
그리고 신현태의 말을 듣자마자, 신현태가 아까 그랬던 것처럼 곧장 납득할 수 있었다.
조금 비싸면 어떻단 말인가.
실력이 확실한데.
“그래서 말인데 최대한 빨리 데이터를 모아서 줘야 해요. 그래야 러닝 시키고 하지. 데이터 좀 있습니까?”
해서 단가 문제에 대한 합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해결한 교수들은 바로 다음 안건, 데이터 수집으로 넘어갔다.
물론 이것도 그렇게 녹록지는 않은 문제였다.
이번에 손을 들고 나선 것은 조태진이었다.
“근데 문제가……. 이게 레트로스펙티브 하게 하기가 어려워요.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했다고 해도 그걸 다 기록으로 남겨 두지는 않아서.”
“음……. 나도 그런데. 현종이 형은 어때요?”
“나도 그렇지. 그걸……. 그걸 남겨 두진 않지.”
활력징후 모니터링이 지나고 나서 뭔 필요가 있단 말인가.
당연히 그 어떤 기기도 자동으로 저장하는 기능을 달고 있진 않았다.
애초에 이런 연구를 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쌓아야 된다는 건데……. 그쪽 얘기로는 적어도 천 례는 있어야 신뢰할 수 있는 러닝이 될 거라고 하거든요? 이거 우리만으로 되려나…….”
신현태는 자기도 모르게 이현종의 눈치를 보았다.
만약 이현종이 지금이라도 흉부외과 가서 사과하고 석고대죄한다면 대번에 데이터를 받을 수 있을 터였다.
‘이 인간이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런 정치적인 인간이었으면 원장이 아니라 장관도 해먹을 스펙 아닌가.
‘수혁이가 해결할 수 있을까?’
해서 신현태는 차라리 수혁을 바라보았다.
물론 그도 알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걸.
교수도 못 하는 걸 어찌 레지던트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기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지금껏 수혁은 늘 그래 왔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