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66화 (166/1,303)

166화 만들어 봅시다 (2)

“저, 수혁아.”

신현태는 조금은 겸연쩍은 얼굴로 수혁을 불렀다.

‘네 말대로네.’

[방법이 없을 테니까요. 외주 줬으면 반의반으로 후려쳤을 테지만.]

‘후려치긴 뭘 후려쳐.’

[다들 그렇게 말하던데요?]

‘거…….’

수혁은 바루다의 거친 어휘에 관해 뭐라 하려다 말았다.

어차피 그런 말을 해 봐야 수혁 얼굴에 침 뱉기 그 이상이 되기는 어려울 테니까.

[일단 답변하시죠. 준비 중이라고.]

‘알았어, 알았어.’

게다가 지금 수혁을 향한 눈은 한두 쌍이 아니었다.

질문을 던진 신현태는 물론이거니와 조태진, 홍창기도 수혁만 보고 있었다.

조태진이야 워낙에 수혁의 덕을 많이 보아 온 참이었지만 홍창기는 그렇지도 않은 주제에 이러고 있었다.

“네, 교수님.”

“일단 내과 중환자실 쪽 자료야 우리가 프로스펙티브 하게 다 잡긴 할 거야. 그건 뭐……. 어렵지 않지.”

신현태 혼자 한다 해도 크게 문제가 없을 터였다.

그가 내과 과장인데, 과장이 모니터링 자료 좀 달라고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엔 원장도 있었고, 중환자실 단골이라 할 수 있는 호흡기내과 교수와 혈액종양내과 교수까지 있었다.

“그리고 일반 외과계 중환자실하고 신경외과 측하고도 대강 얘기는 됐거든? 근데 뭐 너도 알다시피 사실……. 외과계 쪽은 수술 후 관리 때문에 있는 거라 우리랑은 좀 핀트가 달라.”

“네, 알고 있습니다. 출혈이나……. 수술 후 감염 등을 주로 보겠죠. 아니면 수술 상처 자체라거나.”

“그렇지. 그래서 이번 A.I. 개발에 쓸 자료가 아주 많이 확보되지는 못할 거야. 그…….”

신현태는 그 말을 하다 말고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 사태의 원흉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현종은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뭐.”

“아니, 아뇨. 뭐. 형 보고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놈들이 좀생이인 거야.”

“그…….”

도발한 놈이 잘못 아닌가 하는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신현태는 벌써 이 주제로 지난 수십 년간 이현종과 왈가왈부해 온 몸이었다.

그 결과 이현종은 절대로 변할 놈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굳이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대신 이쁜 수혁만을 바라보기로 했다.

“수혁아. 혹시 흉부외과 쪽이랑 사이 어떠니? 어제 그…… 뭐야. 수술방도 들어갔다고 하던데.”

신현태는 이 말을 하면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만 했다.

이현종 하나 때문에 흉부외과라는 주요 과랑 원수처럼 지낸 게 벌써 몇 년째란 말인가.

그래도 신현태가 성격도 서글서글해서 여기저기 친한 사람들이 많은데, 유독 흉부외과만 없지 않은가.

‘이현종파로 소문이 나서 그렇지…….’

어떻게 보면 또 맞는 말이긴 했다.

사실 신현태가 논문 쓰는 법이니 뭐니 배운 게 다 이현종 덕이지 않은가.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흉부외과 쪽과는 아예 연이 없었다.

아마 수혁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지배적이기도 했다.

이 녀석은 아예 이현종파가 아니라, 아들이었으니까.

“사이는 나쁘진 않습니다.”

“그래, 뭐. 할 수 없……. 응? 나쁘지가 않아?

“네. 뭐 큰 자료 달라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입원하는 환자 데이터 정도는 충분히 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대신 그쪽 교수님 이름 하나쯤은 넣어 드려야 도리일 거 같긴 한데…….”

수혁의 말에 뚱한 얼굴로 있던 이현종이 발작하듯 몸을 일으켰다.

“이름을 넣는 건 안 되지!”

“형, 앉아요! 앉아! 형 이름 뺀다?”

“음.”

하지만 신현태에게 금세 제압되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지금 수혁이 기안한 이 연구는 될 거 같았으니까.

일단 저 까다로운 태화 전자에서도 딴 데 주지 말고 자기네들이랑 같이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그 말은 곧 이 연구는 논문으로 이어짐은 물론이오, 상용화까지도 가능할 수 있단 얘기였다.

해서 이현종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자리에 앉기는 했다.

“형은 좀 가만히 있어요. 애가 어? 해 보겠다는데 응원은 못 할망정 초를 치려고.”

“끄응…….”

“아무튼, 수혁아. 되겠어? 이게?”

“네. 뭐……. 지금 당장 확답을 드릴 수는 없는데. 그래도 첫 단추는 꽤 잘 끼웠다고 생각합니다.”

“오…….”

수혁이 어디 허튼소리 하는 녀석이란 말인가.

이 녀석이 그렇다고 하면 그런 거라고 봐야 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일단 우리 데이터 수집부터 해야겠네. 조 교수, 홍 교수.”

“네. 오늘부터 싹 모아 보겠습니다.”

“일단 목표는 패혈증 감지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딱 그 데이터만 넣으면 선별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냥 모든 중환자 데이터는 다 넣어 달라고 하더라고. 거기선 기준에 맞춰서 프로그래밍하겠다고 하니까. 그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고.”

“아, 그렇군요.”

의사들이 사실 프로그래밍에 관해 알면 뭐 얼마나 알겠는가.

전문가가 그렇다고 하면 그냥 그런갑다 하는 것이지.

“아, 저 잠깐 흉부외과 중환자실 가 봐도 될까요?”

그렇게 다들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수혁이 손을 들었다.

울리는 핸드폰을 가리키면서였다.

“어? 어. 환자 안 좋나?”

“아뇨. 교수님 오는 시간에 전화 달라고 해 놨거든요. 병동에.”

“병동……? 간호사들이 그런 것도 해 주나, 보통?”

“어제 제가 커피 쏘면서 부탁했죠.”

“이야……. 수혁이 대단하다.”

신현태는 진심으로 감명받았다는 눈으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어쩜 커피까지 쏴 가면서 병동 간호사들의 환심을 살 생각을 했을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 어. 그래. 갔다 올 필요 없어. 회의 끝이지 뭐. 파이팅이다, 우리 수혁이.”

“네, 교수님.”

수혁은 그렇게 내과 과장실을 빠져나온 후, 흉부외과 중환자실로 향했다.

사실 전화가 아니라 그냥 알람이었던 핸드폰을 갈무리하면서였다.

[어째 나날이 연기가 늡니다?]

‘뭐……. 반쯤은 사실이잖아?’

[그건 그렇죠.]

커피 사다 주면서 물어봤더니 외래 있는 날엔 늘 시간을 정해 놓고 회진 온다는 사실을 전해 듣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그 15분 전에 알람을 맞춰 놓았는데, 회의가 길어지는 바람에 아까 안에서 울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걸 좀 더 어필하는 방향으로 포장했더니 신현태를 비롯한 다른 내과 교수들은 다들 수혁이 이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중이었다.

‘아무튼……. 환자는 괜찮겠지?’

[아까 새벽에 봤을 땐 안정적이었습니다. 확실히 주요 감염원이 사라져서 그런가……. 발열도 없어졌고요.]

‘아직 의식이 없는 게 좀 걸리긴 하는데……. 뭐 어차피 재워 두고 있으니까 기다려 볼 수 있겠지.’

[네. 약 들어가고 있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아예 후유증이 없지는 않겠지만……. 심내막염에 의한 다발성 색전증이라는 걸 감안할 때 이만하면 대단히 예후가 좋은 편입니다.]

수혁은 그런 교수들을 뒤로한 채, 바루다와 환자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중환자실에 도달했다.

중환자실 풍경은 어제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거의 일주일이 지나도 그대로 있을 때가 있는 내과 중환자실과는 확실히 다른 곳이었다.

“어? 여기 옆자리 빠졌네요?”

“아……. 일반 병실 올라가셨어요.”

“저긴요?”

“저긴 어제 어레스트 나서…….”

“아.”

아무래도 심장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그중에서도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환자들을 다루는 곳이라 변화무쌍한 모양이었다.

수혁의 환자 양옆으로 하나는 호전되어 일반 병실로 갔고, 다른 하나는 돌아가시지 않았는가.

확실히 흉부외과는 만만한 과가 아니었다.

드르륵.

그런 생각이 들 때쯤, 방금 열고 들어왔던 중환자실 문이 다시금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 또한 들려왔는데 주인공은 빤할 빤 자였다.

‘왔구나.’

[이제 입 터세요.]

‘오케이.’

수혁은 그 발걸음 소리가 좀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가 목을 가다듬고는 환자 앞에 놓인 중환자 전용 차트를 두드렸다.

혈압, 심장박동 수, 호흡수, 체온과 같은 활력징후를 15분마다 기록해서 적어 둔 차트였다.

“이거……. 정상 범위에서 비정상 범위로 넘어가고 있을 때 그거 따로 캐치할 수 있는 인공지능이 있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상당히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였다.

당연히 어제 수술한 환자에게로 직행하던 흉부외과 교수 귀에 들리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거 앱이랑 연동시켜 두면……. 내가 어디 있든지 간에 환자 상태 대강 알 수도 있을 거고. 알람은 걸러서 오게 만들면 딱딱 감지할 수 있어서 정말 좋을 텐데……. 그나마 이 환자야 간밤에 괜찮았다지만…….”

누가 봐도 혼잣말로 중얼거리기에는 목적의식이 다분히 섞인 발언이었다.

‘뭐야, 그런 거 있으면 진짜 좋을 거 같잖아.’

하지만 그러한 수상한 정황들과는 별개로 확실히 혹하는 것이 있었다.

특히 흉부외과와 같은 외과계 의사들에게는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환자 상태를 대강이나마 알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아무래도 내과 의사들보다는 수술실이니 뭐니 여기저기 돌아다닐 일이 많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환자 곁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개발비는 땄는데……. 흉부외과 쪽 환자처럼 액티브하게 변하는 자료가 부족…… 어? 교수님!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수혁은 거의 흉부외과 교수 입김이 닿을 정도가 돼서야 아는 척을 했다.

너무 지나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허리를 숙여 가면서였다.

흉부외과 교수 기분이 좋아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어제부터 수혁이 보여 준 모습은 거의 완벽했으니까.

어쩜 이렇게 깍듯하면서 또 성실할 수 있단 말인가.

일단 지금도 환자 곁에 있지 않던가.

이현종 아들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다 보니, 방금 수혁이 지껄인 말도 더 좋게만 여겨졌다.

“어어. 그래. 그…… 근데 말야.”

“네, 교수님.”

“방금 내가 우연치 않게 들었는데……. 그 환자 상태를 뭐 앱으로? 그거 뭔 소리지?”

“아……. 그거…….”

수혁은 부끄럽다는 듯 뒤통수를 긁었다.

슬며시 얼굴까지 붉혔는데, 바루다의 감탄을 이끌어 낼 정도로 절묘했다.

[진짜 미쳤네. 나는 아는 데도 무슨 얘기할지 궁금해지잖아요.]

기계도 이러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뭔데. 뭐야.”

“아……. 이번에 제가 태화 전자 쪽에서 펀딩 받은 연구가 있습니다. 한 5억.”

“5억? 본사에서?”

“네.”

“와…….”

이건 정말이지 놀랄 만한 일이었다.

태화 전자 본사 펀딩은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그것도 교수도 아니고 레지던트가.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고……. 그냥 중환자실 모니터링이랑 연동해서 환자 상태를 좀 더 잘 파악할 수 있는 인공지능 개발에 관한 건입니다.”

“인공지능?”

거기에 더해 인공지능 얘기까지 나오니 흉부외과 교수는 거의 깜빡 죽을 지경이었다.

뭐가 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무튼 최근 제일 핫한 주제가 인공지능 아니던가.

그렇지 않아도 흉부외과는 뭔가 다른 거 해 볼 거 없나 하던 참이었는데 그 말이 딱 나올 줄이야.

“네. 뭐……. 패혈증 예측 인자도 있을 것이고. 심장을 예를 들면 심장박동 수나 혈압의 추이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걸 인공지능이 계산해 주어서 알람을 해 주는 거죠. 원할 때는 앱으로 환자의 데이터를 그냥 볼 수도 있고요.”

“오…….”

“근데 문제가 있어서요.”

“뭔데, 뭔데.”

바루다는 이제 다 왔다고 성화였다.

수혁이 생각하기에도 그러했다.

해서 승부수를 휙 하고 날렸다.

“데이터가 부족해요. 아시다시피 내과 쪽은 좀 드라마틱하지 못해서. 흉부외과 데이터가 있으면 훨씬 빨리 만들어지긴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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