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열이 난다고 (4)
검사 결과를 보는 심정은 마치 택배 받으러 가는 그 기분과도 비견될 정도라고 보면 되었다.
뭐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이상하게 생각되겠지만.
적어도 수혁은 늘 그랬다.
[두근두근하지 말고요. 아니, 이게 뭐라고 매번 심장박동 수가 올라?]
‘설레지 않냐?’
[제가 설레기 시작하면 진짜 이상한 일이죠.]
‘아, 하긴 깡통이지.’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우스를 두드렸다.
혼자 종알거리면서 고개도 흔드는 모습이 이상했지만.
다행히 이제 내과 병동에서 수혁의 이러한 행동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또 원장네 아들이 별난 짓 하는구나 이러고 말 뿐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어떠한 방해도 없이 창을 띄울 수 있었다.
‘AST/SLT(간 수치)가 올랐네.’
[50/57. 아주 높은 편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는 없겠군요.]
사실 저 정도 수치는 그 흔한 지방간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다.
증상이 없는 상태라면 무시해도 좋을 만한 수준이라는 뜻.
하지만 지금은 절대 그러면 안 되었다.
환자는 열이 나니까.
이게 혹 소스일 수도 있지 않은가.
바루다는 빨간색으로 표시된 수치를 데이터에 정리해 두었다.
‘감염병은 어떤가…….’
데이터 등록이야 뭐 바루다가 다 알아서 할 거 아니던가.
해서 수혁은 가볍게 넘어가기로 작정했다.
‘음?’
하지만 내내 속 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다 음성인데?’
[비형 간염, 씨형 간염, 에이형 간염 모두 음성이군요. PCR 나간 것도……. 이거 호흡기 감염 바이러스였죠?]
‘응. 그것도 음성이야.’
[HIV나 매독도 음성이고.]
이를테면 흔한 감염 질환은 싹 다 음성이 나왔다고 보면 되었다.
세균 감염일 가능성이 커지는 순간인데, 혈액 배양 검사 결과를 보기엔 너무 일렀다.
이제 겨우 검사 나간 지 만 하루도 안 되었을 무렵이었으니까.
이때 뭐가 나온다면 그건 환자 피에서 자랐다고 보기보단 검사 과정에서 오염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았다.
‘감염이 아닐 수도 있겠는데?’
예전의 수혁이었다면 이 결과에서 크게 당황하거나 그저 기다릴 생각만 했을 터였다.
그야말로 애송이 시절이었다면 그랬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수혁은 애송이라고 하기엔 제법 관록 있는 얼굴을 하고 있지 않은가.
허세가 아니라 진짜 실력이 생겨서였다.
[뭘 의심합니까?]
때문에 바루다 또한 밑도 끝도 없이 비아냥대기보다는 우선 질문을 던졌다.
이러다가 가끔 대박 치는 게 수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루프스 아닐까? 환자 나이도 그렇고……. 원인 없는 열도 그렇고. 멍은 없지만…….’
[흠……. 나비 반점도 없는데요? 의심해 볼 만한 가치는 있지만, 확신은 위험해 보입니다. 가능성이 작아요.]
‘그럼…….’
[우선 음성 데이터보다는 양성 데이터에 좀 더 집중해 보도록 하죠.]
‘무슨 뜻이야?’
[간 수치가 오르지 않았습니까?]
‘아.’
[하지만 여전히 발열의 원인 감별은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니…… CT를 찍어 보도록 하죠.]
‘CT라.’
암도 아니고 감염 질환에서 CT를 찍는다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겠지만.
실제 현장에선 CT만큼 감염 질환 감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녀석도 드물었다.
특히 조영제를 쓰게 되면 염증이 있는 부분에 조영 증강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환자를 설득하는 것인데, 다행히 이곳은 개인 의원이 아니라 태화 의료원이었다.
“그런 고로…… CT 촬영이 필요합니다. 마침 예약 환자 한 분이 부도를 내서 바로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아……. 필요……한 거죠?”
“네.”
“위험하지는 않고요?”
CT 자체는 위험할 것이 하나 없는 물건이었다.
노상 노출이 되면 방사선 피폭이 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일회성 촬영에 있어서는 안전하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영제는 얘기가 좀 달랐다.
아주 적은 확률이지만, 그로 인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10만 명 중의 1명? 내지 3명꼴로 치명적인 부작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어요. 혹 전에 검사해 보신 적이 있나요? 그때 괜찮았으면 괜찮습니다.”
“아뇨, 처음이에요.”
“앞서 통계를 말씀드렸다시피 정말 드문 부작용이에요. 게다가 태화 의료원은 응급 의료진이 24시간 대기 중이라서 혹 부작용이 발생해도 바로 대처가 가능합니다.”
그 외에도 환자는 아직 젊고 기저 질환이 적어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적다는 말도 덧붙였다.
환자도 차일피일 원인도 모르는 열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았던 터라 더 이상의 설득은 필요 없었다.
다만 아주 약간의 불만은 표했다.
“보니까…… 다른 환자들은 교수님들도 오고 하던데, 저는 선생님하고…… 어제 그 외래에서 본 선생님이 단가요?”
밑도 끝도 없는 불만이 아니라, 아주 합당한 불만이었다.
대학 병원에 입원했으면 교수를 봐야지, 왜 레지던트만 보냐는 말 아니던가.
그것도 본인이 원한 것도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아……. 상의 드리겠습니다. 그 점은 염려 놓으셔도 됩니다.”
“그…… 네. 알겠어요.”
해서 수혁은 CT에서도 단서를 찾지 못하면 교수님께 가야겠다고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환자를 밑으로 떠나 보내고 난 후에야 지상이 나타났다.
밤새 콜에 시달렸는지 퍽 피곤해 보였다.
“어…… 어? 환자 없네?”
“CT 찍으러 보냈어. 발열 원인이 안 보여서.”
“아……. CT? 폐?”
“아니, 복부랑 회음부. 여자분이라, 혹시 모르잖아.”
“아……. 근데 너도 아직 모르겠어?”
“내가 무슨 요술 방망이냐? 보자마자 알게. 검사는 해 봐야지.”
“그건……. 그렇긴 한데.”
지상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완전히 납득하진 못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2년간 수혁의 무용담이 얼마나 많았던가.
교수님도 못 찾은 걸 찾았더랜다.
응급실에서 딱 보자마자 환자를 일으켰더랜다.
장님도 눈을 뜨게 했다 등등.
도무지 믿지 못할 만큼 대단한 일들이 많았다.
[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일 가능성이 크군요.]
‘그러니까. 왜 이렇게 눈알을 굴려?’
[예전에 수혁이 이랬죠.]
‘하아……. 그건 너 때문이야…….’
[설마?]
‘설마 뭐.’
[지상에게도 저 같은 것이 붙었을까요?]
‘아……. 아니, 그럴 리가 없어.’
언젠가 수혁은 바루다와 같은 인공지능이 이식될 가능성에 대해 계산해 본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인공지능이 시현 중에 터지고, 그게 머리에 박혔는데 안 죽고 오히려 이식이 될 가능성.
그건 그냥 기적이었다.
그런 일이 동시대에 두 번이나 벌어졌다?
차라리 신이 현신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었다.
“어……. 벌써 영상 넘어오네?”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수혁의 말대로 환자 영상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예약 환자가 한 명이 아니라 둘 정도는 부도가 난 모양이었다.
최근 저기 아선 병원하고 칠성 병원에서 미친 듯이 따라온다더니, 확실히 환자가 줄었나 싶었다.
뭐 그거야 경영진인 이현종이 걱정할 일 아니겠는가.
당장 환자를 봐야 하는 입장인 수혁에게는 잘된 일일 뿐이었다.
“음……. 나는 뭐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는데.”
지상은 수혁 앞에선 아무리 무식해 보여도 괜찮다고 여기는 건지 뭔지 모른다는 말을 연신 해 댔다.
“아니, 잠깐만. 여기. 여기 이상한데.”
수혁이야 이미 레지던트 레벨을 넘어선 지 오래 아니었던가.
지상에게는 다행히도 수혁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영상을 딱 트는 순간부터 지상에게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영상에만 집중하고 있을 뿐이었다.
[음……. 림프절이 커져 있네요?]
‘그냥 커져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조영 증강되어 있어.’
림프절의 비대 및 조영 증강.
이 말은 곧 림프절이 어떤 이유에서건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는 얘기기도 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도 그닥 좋아 보이지 않지 않은가.
수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지금까지 환자에 대해 알아내었던 정보를 정리했다.
‘젊은 여자, 진통 소염제에 듣지 않는 불명열, 폐 깨끗했고……. 범혈구 감소증.’
[그리고 림프절 비대가 있군요.]
‘이런 젠장, 백혈병인가?’
세상에 백혈병이라니.
열 좀 나서 왔다가 진단받기에는 너무 엄중한 병이었다.
비록 최근에 여러 항암제들의 개발로 인해 완치율이 높아졌다곤 해도.
환자 개인에 있어서는 여전히 비극이었다.
그리고 수혁은 아직도 그러한 비극을 좀체 잘 전달할 자신이 없었다.
운이 좋았건, 실력이 좋았건 지금까지 동년배 내과 의사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죽음을 겪어 왔기 때문이었다.
[현재로써는 가능성이 큽니다. 감염병을 의심할 증거는 없는 반면, 백혈병을 시사하는 지표는 많습니다.]
‘근데 그런 것치고는 또 범혈구 감소증이 현저하게 관찰되진 않지 않아?’
[음……. 뭐, 확실히 일리 있는 의견입니다. 하지만 백혈병이 아니라고 주장하려면 더 많은 논거가 필요합니다.]
논거가 필요하다라.
너무 맞는 말이라서 마땅히 반박할 말도 없었다.
해서 수혁은 의미 없는 입씨름에 나서는 대신, 그 논거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미 한차례 차트를 봤기에 소용없어 보이긴 했지만.
혹시 모르는 일 아니던가.
바둑 기사들이 복기할 때 비로소 실력이 는다는 말이 있듯 내과 의사도 차트 리뷰를 할 때 놓쳤던 부분을 확인하기도 하는 법이었다.
‘아까 혈압이 떨어졌다고 했지?’
[네, 92에 57입니다.]
‘확 떨어졌네. 그럼 심장박동 수는 떴나?’
[출력하겠습니다.]
보아하니 바루다도 영상 볼 생각에 바이털 사인은 그저 입력만 한 모양이었다.
분석은 하지 않았었다는 뜻이었다.
예측을 벗어나진 않을 테니 당연한 일이라고 여길 만했다.
하지만 잠시 후 묘하게 변한 바루다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심장박동 수는…… 58입니다.]
‘잉? 어제 몇이었지?’
[입원 당시엔 84회였습니다. 오히려 느려졌군요.]
‘혈압이 떨어지는데 서맥이 됐어? 이건 좀 이상한데?’
사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실제 대부분의 레지던트들은 여기서 별다른 생각이 들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수혁은 누차 말했듯 레지던트 수준은 아득히 넘어가 있었다.
어떤 면에 있어선 교수들조차 범접할 수 없지 않은가.
[감염 질환에서 상대적 서맥을 일으킬 수 있는 질환을 서치합니다.]
게다가 수혁에겐 바루다가 있었다.
단순히 이상하다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데이터로 풀어낼 수 있단 말이었다.
‘이 자식……. 아까부터 말없이 마우스만 돌리고 있네?’
머릿속에서는 치열한 진단 과정을 거치고 있지만.
밖에서 볼 때는 그저 노는 것으로만 보일 따름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상이 수혁의 어깨를 치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발생하지 않았다.
“어? 신…… 교수님?”
“얘기 들었어. 노티 없이 환자 보고 있다며?”
감히 수혁을 방해할 생각도 하지 못했거니와 신현태가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지상의 행태를 고해바친 펠로우를 대동한 채였다.
“어……. 그게…….”
지상도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기에 바짝 얼어 버렸다.
그러나 신현태는 지상의 예상과는 달리 그저 웃었다.
“괜찮아. 딱 보니까 수혁이랑 보고 있네. 그럼 됐지.”
“어…….”
그럼 된 건가?
수혁은 같은 레지던튼데.
뭐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화를 안 내는데 거기다 대고 뭐라고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해서 그저 신현태 과장을 따라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의 뇌를 기반으로 한 서칭이라 시간이 걸리는 점 양해 바랍니다.]
‘이미 알거든? 그걸 왜 상기시키는 거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이렇게 하면 연산 능력이 12% 개선됩니다.]
‘미친놈이?’
[아. 출력합니다.]
‘뭔데.’
[오.]
‘변죽만 울리지 말고 빨리 말해!’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