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186화 (186/1,303)

186화 뭐여 이게 (2)

폐렴, 아마도 바이러스에 의한.

아니면 심내막염.

또는 아직 모를 제3의 원인 질환.

바루다와 수혁은 세 가지 가능성을 두고 유지상을 바라보았다.

고민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왜 그러니…… 내가 뭐 잘못했니.’

지상은 그런 수혁을 보며 또 다시 긴장했다.

“어…….”

“버벅대지 말고 빨리하지. 아직도 입원 안 했어, 환자.”

하지만 이현종이 워낙에 다그치는 통에 머뭇거릴 새도 없었다.

솔직히 내내 떠들다가 한 2, 3초 머뭇거린 거치고는 제법 날이 서 있었다.

억울하단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상대가 이현종인데 어쩌겠는가.

컨퍼런스에 잘 안 와서 그렇지, 한번 오면 피바람이 불게 만드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 네. 입원 시점에서 문제 목록은 승모판 폐쇄 부전에 대한 판막 치환술. 심부전, 심장박동 조절 장치 삽입, 항응고제 복용 중, 최근에 나빠진 호흡 곤란, 발열, 양측 폐의 음영 증가, 호흡성 알칼리증과 동반된 저산소증, 혈뇨입니다.”

워낙에 어려운 환자다 보니 문제 목록만 해도 한가득이었다.

저렇게 많이 써 놨는데도 놓친 부분이 좀 있을 지경이었다.

[청진 소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군요.]

‘뭐…… 심장 잡음이랑 호흡 시에 폐 파열음 같은 게 있겠지. 몰라서 말 안 했겠어, 설마.’

[저번에 환자 던지는 솜씨 보니까 별로 아는 게 없어 보여서요.]

‘음…….’

수혁이 동기에 대한 변호를 할까 말까 하는 사이, 지상이 계속 말을 이었다.

“처음엔 심내막염과 심부전에 의한 폐부종, 폐렴으로 어세스를 잡았습니다. 진단 플랜은 심초음파 및 혈액 배양 검사. 객담 배양 검사 및 혈액 검사를 정했고…… 치료 플랜으로는 원래 먹던 약에 이뇨제를 더하기로 했습니다. 항생제는 세프트리악손에 아지트로마이신을 투여했습니다. 아, 엑스레이는 계속 추적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수혁이나 바루다가 생각한 것과 크게 엇나가지 않았다.

그 말은 곧 신현태는 역시나 어려운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했다는 말이었다.

[항생제를 좀 세게 갔네요. 감염내과답지 않게.]

‘상태가 너무 안 좋잖아. 여기서 더 나빠지면 어떡해.’

[하긴…… 저라도 경험적으로 때려 부었을 거 같긴 합니다.]

지상은 부리나케 슬라이드를 넘겼다.

입원 일자가 워낙에 길어서 보여 줄 게 너무 많았다.

대학 병원 의사들은 제아무리 재미난 케이스라도 발표가 20분 넘어가기 시작하면 짜증 내기 마련이지 않은가.

다들 바쁜 시간, 심지어 밥 먹을 시간도 아껴서 맛도 없는 샌드위치 씹고 있는 마당에 시간 끄는 건 도리가 아니었다.

3년 차를 앞둔 시점이라 이 정도 눈치는 있었다.

“입원 3일째, 환자는 입원 당시보다 더 심한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활력징후 자체는 별로 변화가 없었고…… 객담 배양 검사에서는 아무것도 자란 게 없거나, 피부 상재균만 나왔습니다. 혈액 배양 검사에서도 나온 것은 없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자란 게 없다고 막 당황하거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원래 균이라는 게 배양이 되려면 1주일 이상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약을 쓰고 있는데도 증상이 나빠진 건 좀 잘 봐야 한다는 사인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대다수 청중들이 자세를 바로 했다.

뭐야 대체, 라고 중얼거리면서였다.

“백혈구가 이니셜에 비해 올라갔습니다. CRP는 13.6으로 상승했으며 동맥혈 배양 검사는 계속해서 호흡성 알카리증 소견을 보였습니다. 엑스레이는…….”

엑스레이 소견 자체는 별 변화를 보이진 않았다.

그걸 확인한 후에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던 이들 대부분이 뒤로 다시 기댔다.

항생제라는 게 쓴다고 바로 좋아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악화 소견이 명확하지 않다면 좋아지고 있는 과정 중에 있을 수도 있었다.

사람 몸이라는 게, 과학자들이 이런 말 하는 게 적절치 않을 수도 있겠지만, 신비했기 때문이었다.

“입원 7일째, 여전히 배양 검사에서는 나오는 게 없었습니다. 증상 호전은 없었으나 악화도 없어서 약은 유지했습니다.”

“입원 8일째, 활력징후 변화 없고, 증상도 변화 없었습니다. 배양 검사에서 나오는 거 없었고 CRP는 8.28로 약간 감소하는 양상 보였습니다만…… 엑스레이에서 병변이 번지는 소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7일째를 넘을 때까지 지지부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세프트리악손과 아지트로마이신이라는 항생제가 항생제계의 최강자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역 사회 폐렴 정도는 충분히 치료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감염내과에서 바로 받은 환자답게 항생제를 쓰기 전에 배양 검사를 나갔는데, 나오는 게 없는 것도 좀 이상했다.

‘항생제가 너무 안 듣네. 역시 바이러스에 의한 폐렴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경과가 느립니다. 환자 나이를 고려했을 때 지금쯤이면 결판이 났어야 해요.]

‘하긴 지지부진하지? 그럼 뭔가 특이한 세균인가?’

[모르겠습니다.]

신현태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배양 검사를 죄다 다시 나갔고, 항생제도 교체했다.

무려 피페라실린, 타조박탐에 시프로사신을 조합하는 방식이었다.

이거면 거의 균 입장에서는 융단 폭격을 받고 있는 셈이었다.

“입원 14일째……. 여전히 환자는 증상 변화 없으며 랩 변화도 거의 없습니다. 배양 검사 또한 모두 음성으로 자란 것은 없습니다.”

그럼에도 환자 상태는 변화가 없었다.

“이것은 어제 찍은 엑스레이입니다.”

아니, 더 나빠져 있었다.

병변의 범위가 늘어나 있었다.

“흐음.”

그때 옆에 있던 이현종이 턱 밑을 쓸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현태가 어제 바로 저 엑스레이를 가지고 찾아온 까닭이었다.

솔직히 기저 질환으로 심장 문제가 있긴 하지만 현 증상은 이현종하곤 전혀 상관없는데도 그랬다.

아마 신현태가 알고 있는 사람 중 최고의 내과 의사가 바로 이 이현종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나는 여기서 맞혔는데.”

그리고 이현종은 신현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몇 분 고민하는가 싶더니 음흉하게 웃으며 케이스에 내라고 했다.

환자는 무조건 멀쩡히 퇴원하게 될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하면서였다.

“우리 수혁이도 맞히겠지?”

이현종은 수혁도 자신과 같은 수준이기를 바라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아마 의학 말고 다른 분야로도 생각이 조금이라도 미치는 사람이라면 이게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걸 알았을 터였다.

이미 일가를 이룬 자신과 아직 전문의도 못 딴 햇병아리를 어떻게 같은 선상에 둘 수 있을까.

“음. 지금 알 듯 말 듯 합니다.”

“옳거니. 그래. 좋아.”

하지만 수혁이나 바루다나 1년 차 때부터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기대를 받아 온 몸 아니던가.

그냥 내실 없는 기대가 아니라 능력도 있었고.

그러다 보니 자연히 오기가 났다.

‘우선 저 엑스레이, 엑스레이 소견이 수상해. 왜 자꾸 번져?’

[번진다…….]

‘그래, 번지잖…… 응? 잠깐만.’

[하엽에서 시작해서 위로 계속 올라가는군요. 시간순으로 나열해 보면 이렇습니다.]

수혁은 바루다의 데이터화를 이용해 엑스레이를 입원 당시부터 입원 후 14일까지 쭉 나열했다.

그러자 변화가 확연히 보였다.

‘약 쓰는 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어. 그냥 올라가기만 해.’

[그것만 이상한 게 아니라, 양측이 똑같이 번졌군요.]

‘항생제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진행했어. 그것도 양측이 똑같이.’

[바이러스도 양측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대칭적이진 않죠.]

‘그래, 이건…… 이거 감염이 아냐. 원인이 감염이 아니었어.’

바이러스건 뭐건 아무튼, 감염이라면 항생제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환자의 면역이 아예 없는 상황이라면야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미 환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야만 했다.

조금 쇠약하긴 하지만 정상 면역 체계를 가진 사람이 이렇게 마이웨이로 나빠지기만 한다는 건 감염이 원인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렇다면 뭘까.

원인이 뭘까.

‘환자 증상이…… 뭐였지.’

[숨찬 증세입니다. NYHA 클래스 II에서 III로 악화된 채 내원했습니다.]

‘NYHA…….’

New York Heart Association, 심장 기능 상실을 분류하는 기준이었다.

굳이 이걸 쓴 이유는 다름 아닌 환자의 기저 질환 때문일 터.

‘이게 정말 심장하고 관련이 있는 거야?’

[네?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더 명확하게 말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본격적인 진단 모드에 들어간 바루다는 평소보다 딱딱한 어투로 대꾸했다.

수혁의 뇌를 전부 진단에 쏟아붓기 위함이었다.

이럴 때마다 조금은 어색했지만, 수혁은 능숙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보통 우리가 숨차다고 하면 호흡기계 질환을 의심하잖아.’

[그렇죠.]

‘이 환자는 심장에 기저 질환이 있어서 NYHA 분류를 쓴 거지…… 실은 폐가 문제였던 거지.”

[폐만?]

‘그래. 잘 봐. 심장 초음파 한 거나 엑스레이상이나 심장은 변하는 게 아예 없어. 혈압하고 심장박동 수도 그렇고. 적어도 삽입한 심장박동 조절기는 정상 작동 중이라고. 위치도 좋고.’

[그렇군요. 동의합니다. 환자의 중점 문제를 심장에서 폐로 조정합니다.]

바루다는 수혁의 요청에 따라 현재 환자의 폐 질환 양상을 보일 수 있는 질환을 쭉 정리했다.

발열이 같이 들어가 있었기에 아무래도 폐렴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수혁은 거기서 항생제에 영향을 받을 만한 모든 것들을 제했다.

그러자 아주 적은 수의 진단명만 남았다.

[자가 면역 질환? 웨게너는……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타날 확률은 0.1%도 되지 않습니다.]

‘엑스레이 소견도 달라. 웨게너는 폐 입구 부분에 림프구 종대가 관찰돼야 하잖아. 게다가 다른 기관엔 전혀 침범하지 않고 폐만 이렇게 빨리 침범하는 웨게너는 없어.’

[그럼 무엇을 가장 의심하십니까. 데이터베이스 상 가능성이 1% 넘어가는 질환은 없습니다.]

이럴 땐 진단자의 감을 믿어야 했다.

촉이라고도 불리는, 아직은 바루다가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있는 힘.

수혁은 그것을 이용해 머릿속에 산발적으로 떨어져 있던 진단명 하나를 집어 들었다.

[약물 유도성 폐 질환(Drug induced lung injury)……?]

바루다가 의심했던 질환은 아니었다.

하지만 수혁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눈빛은 고스란히 옆에 있던 이현종에게 읽혔다.

“여기, 여기 수혁이가 할 말 있다는데!”

동시에 이현종은 수혁의 손을 잡아끌어 올렸다.

아주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제야 신현태는 왜 이현종이 굳이 자기 케이스를 컨퍼런스에 올렸는지 알 수 있었다.

‘형…… 우리 수혁이 의국장 시켜 주려고…… 주목받게 해 주려고 그러는 거구나.’

그런 거라면 굴욕쯤이야 얼마든지 오케이였다.

신현태는 그제야 겨우 웃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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