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죽을 뻔 (2)
조금은 이상한 장면이었다.
다 큰 성인이 바지에 실례를 했다는데 의사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으니까.
지금껏 실력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또 교수에게 크나큰 신뢰를 받고 있는 몸이란 걸 보여 주지 않았다면 큰 불만을 야기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어……. 다행인가요?”
하지만 이미 환자는 수혁에게 넘어온 지 오래였다.
병실에 올라온 후에도 수혁에 관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병실 간호사들이 어찌나 칭찬을 해 대는지.
이 병원의 마켓팅 포인트인가 싶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옆 환자들에게 들어 보니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네, 이게 갑자기 진행한 것이라면 정말 큰일이거든요. 그렇다고 아주 안심할 건 아니긴 해요. 빨리 검사를 진행하긴 해야겠습니다.”
“근데…… MRI 저번에 보니까 시간 꽤 걸리던데요.”
“아, 최대한 밀어 넣어 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그…… 근데 계속 이러면 어쩌죠?”
환자는 여전히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아까 실례한 침대는 정리가 한창이었다.
환자의 시선은 침대 자체가 아니라, 쇠로 이루어진 폐기물 정리용 바구니에 닿아 있었다.
[의학적 소견상 호전 안 되면 계속 지릴 수 있다고 하시죠.]
‘넌…… 새꺄. 사람한테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럼 거짓말을 합니까?]
‘거짓말이 아니라…… 같은 말도 좀 부드럽게 할 수 있다 이 말이지.’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넌 아직 멀었다는 투로 고개를 저었다.
환자를 향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입을 열면서였다.
“아무래도 치료 시작 전에는 실수하실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선은 병동에 비치된 성인용 디스펜서 드릴게요. 보호자 분은 지하에 가시면 편의점 있어요, 거기서 사 오시면 되겠습니다.”
“아……. 그…… 그게 기저귀죠?”
“네. 잠시만 차고 계실게요. 검사해서 진단명 나오는 대로 바로 치료하겠습니다.”
“그…… 네. 알겠습니다.”
환자는 짙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 나이 마흔둘, 기저귀를 차게 되다니 라는 얼굴이었다.
수혁은 아직 그 나이가 되려면 한참 남은 몸이었지만.
그렇다고 이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진 않았다.
20대에 영구 손상이 된 환자들을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은 외상에 의한 손상이었는데, 그래서 더 힘들어했다.
‘인턴 때…… 오토바이 환자들이 주로 그랬지.’
[그 이동 수단은 없애 버려야겠던데요?]
바루다 또한 수혁의 데이터를 읽어 낸 것을 토대로 지껄였다.
의학적인 이유만 놓고 본다면 아주 타당한 발언이었다.
아무래도 같은 교통사고라고 해도 오토바이 사고는 치명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니.
동시에 오토바이가 사회에서 갖는 의의는 무시한 발언이기도 해서 허점이 많았지만.
수혁 또한 자기 전공 말고는 전혀 관심도 없고 모르는 전공 바보이지 않은가.
‘그러니까.’
해서 가볍게 동의한 후 말을 이었다.
“우선 외상에 의해 잘린 게 아니라…… 덩이에 의해 눌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거든요. 이런 경우엔 대부분 덩이가 작아지면 회복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위로의 말이었고 동시에 거짓말도 아니었다.
물론 이놈의 덩이가 암이면서 또 침습을 잘하는 놈이라면 누르기보다 파괴해 버렸겠지만.
이전 영상을 보면 딱히 그렇게 나쁜 놈으로 보이진 않았다.
[그저 바람일 뿐 아닙니까? 진행이 빨라요.]
바루다는 연신 삐딱선을 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혁의 예상이 맞았다는 사실에서부터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수혁은 승자의 여유를 부리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저는 검사 예약을 해 보도록 할게요. 지금 상황이 일단 MRI랑 CT는 돼야 뭘 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서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지금 이 상황이 계속될 가능성은 적어요.”
“네…….”
환자는 수혁의 입에서 ‘가능성은 없어요’란 말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적다는 말에도 실망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차마 없다고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의학은 언제나 확률 싸움이었으니까.
게다가 지금처럼 아예 검사가 안 된 상황에서는 섣불리 말하는 건 지양해야 했다.
괜히 희망 줬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나쁜 거네요 하는 것만큼 환자 힘 빠지게 하는 것도 없었다.
검사 결과를 못 믿어서 정처 없이 떠돌다 치료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봤다.
[갱년기가 왔나, 오늘 왜 이렇게 감상적이래. 빨리 전화나 하세요. 검사 잡아야지. 처방은 아까 내놨고, 코멘트도 ASAP 넣어 놨으니까 어쩌면 바로 될 수도 있습니다.]
‘오케이. 해 보자.’
MRI 같은 검사는 원래 교수 컨펌이 있어야 가능한 검사지만.
수혁은 아까 조태진에게 전권을 위임받은 몸이지 않은가.
처방은 한참 전에 내놨고 이제 남은 건 푸시뿐이었다.
“MRI실입니다.”
“아, 네. 내과 2년 차 이수혁입니다.”
“아……. 네, 이수혁 선생님.”
“오늘 입원한 환자 중에 MRI 빨리 찍어야 되는 환자가 하나 있는데요.”
“안 그래도 그 환자 때문에 연락드리려고 했습니다. 그 환자…… 18일 전에 같은 세팅으로 MRI 찍었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건 아닌지요?”
과연 태화는 태화였다.
이미 방사선 기사는 환자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만큼 시간이 난다는 뜻이기도 했지만, 수혁은 아직 이면까지 파악하는 건 무리였다.
“아…… 아뇨. 팔로우업을 해 보려고 합니다.”
“아, 그렇구나. 음.”
“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건가요?”
“그게, 김선웅 교수님 꼼꼼한 거 아시죠?”
“알죠? 근데 이 환자 입원한 걸 알진 못할…… 텐데요?”
“네네. 그렇죠. 근데…….”
기사는 뭔가 눈치를 보는 건지 뭔지 한참을 망설였다.
“여보세요?”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후하면서 동시에 조금은 날이 서 있는 듯한 목소리.
수혁이 한때 진료 보러 다녔던 그 사람, 김선웅 교수였다.
“아, 교수님. 저 이수혁입니다.”
“알지, 이수혁 선생. 내가 지금 입원 환자 수술 후 촬영 때문에 내려왔다가 ASAP 문서를 우연히 봤는데 거기 이름 익숙한 환자가 있길래…… 내 환자네? 근데 상태가 안 좋아져서 이수혁 선생 외래를 보고 입원한 게 좀 이상해서 말야.”
“아…….”
사람이 꼼꼼해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뭔 놈의 교수가 자기 환자 MRI 찍는데 그걸 따라가서 본단 말인가.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김선웅 교수는 수술 후 자신이 없으면 무조건 가서 본다더군요. 환자, 보호자 모두 감동했다고 칭찬합시다에도 종종 올라왔습니다. 아마 그거 때문에 지금까지 태화 의료원 정형외과에서 의료 소송률이 제일 낮습니다. 거의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입니다.]
‘이런 제기랄.’
남 칭찬합시다 오르는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남의 환자 뺴돌린 게 들통나게 생겼는데.
이게 검사 후 이상이 발견된 후 얘기하게 된 거라면야 훨씬 나을 테지만.
그게 아니니 문제였다.
‘당신 환자 당신한테 입원 안 시킨 이유가 순전히 내 감 때문이오’라고 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ASAP으로 낸 거 보면…… 뭔가 이상한 거 생각하는 거 같은데…… 혹시 뭐 생각하는 거지?”
“저…….”
“괜찮으니까 말해 봐.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일 거 아냐?”
그게 아니면 뒤집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김선웅 교수가 신사다운 편에 속하긴 하지만.
그래도 정형외과 아니던가.
거칠기 짝이 없는 집단이라는 얘기였다.
심지어 김선웅은 털이 북실북실해서 외모만 놓고 보면 좀 무서운 축에 속하는 인간이기도 했다.
“음.”
절로 마른침이 넘어갔다.
[뭘 망설입니까? 납득할 수 있유라면 된다는데요.]
아마 바루다가 없었다면 떨기만 했을 터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늘 수혁과 함께이지 않은가.
어느새 떨림은 잦아들고 있었다.
“네, 교수님. 제가 이 환자를 받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해 봐.”
“이 환자는 하지 위약을 주소로 먼저 로컬 의원에 갔습니다. 거기서 바로 의뢰서를 작성해서 교수님 외래를 봤습니다.”
“알고 있어.”
“근데…… 의뢰서를 작성한 건 바로였지만, 진료를 받은 건 5일 후입니다.”
“그게 중요한가?”
김선웅 교수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지점을 수혁이 짚으니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다.
수혁의 명성이 워낙에 사방팔방 퍼져 있기 떄문이었다.
“보통은 그렇지 않지만, 이 환자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처방받았습니다. 그걸 5일간 다 먹고 내원 한 거고요. 실제로 증세 호전도 조금 있었습니다.”
“아……. 스테로이드를 고용량으로…… 얼마나 고용량이지?”
“일단 내원 당일 DEXA한 앰플을 맞았고, 프레드니솔론 5T씩 하루 한 번 복용했습니다.”
“그럼 꽤 높은데……. 어…….”
어느새 김선웅 교수의 목소리에서 날선 기운이 빠져 있었다.
[역시 아예 생각지 못했네요.]
바루다의 확인도 있었겠다. 수혁은 거침이 없어졌다.
“스테로이드를 쓰는 경우 조직 검사 결과가 부정확해지지 않습니까? 끊고 관찰해 봐야 알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 그 환자 지금 어딨지? 증상이 어때?”
허둥지둥하는 것이 전화상으로도 느껴질 지경이었다.
“환자는 지금 배변 조절이 잘 안 될 정도로 하지 위약이 진행해 있습니다. 모터는 없고…….”
“아. 아이고.”
“MRI 검사 대기 중입니다. 보고 바로 조직 검사 의뢰할 예정입니다.”
“지금, 지금 내려줄래?”
“지금요?”
“내 환자 잠깐 미룰 테니까. 보니까 그 환자가 훨씬 급하네, 이거.”
“아…….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조직 검사는 일단 내가 얘기 해 놓을 테니까, 여기서 바로 갈 수 있을 거야. 직접 가서 푸시할게.”
“어……. 네, 감사합니다.”
열혈 교수랑 일하면 이럴 때가 최고였다.
잘못하면 멱살도 잡힐 만큼 무섭지만, 한번 꽂히면 일사천리였다.
“어어. 이수혁 선생. 전보다 커졌어, 하……. 이거 커졌네. 바로 조직 검사 보낼 거야. 내가 따라가니까……. 어……. 올 수 있으면 좀 와 줄 수 있나? 환자 설명해야 되는데.”
“아, 네네.”
환자를 내리고 얼마 안 있어 전화가 왔다.
척수를 누르고 있던 덩이가 더 커졌다는 내용이었다.
어딘가 달려가면서 전화를 걸고 있는 거 같았다.
목소리가 심하게 울리고 또 떨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가죠, 저희도. 조직 검사에서 뭐 나올지 궁금한데.]
‘어, 근데 이렇게 막 해도 되나? 보통은…….’
[그 털보가 가서 비는데 누가 안 해 주겠습니까? 전에 봤죠? 조태진 교수 땡깡 부리니까 이비인후과에서 수술방 잡는 거.]
‘하긴……. 근데 그건 이낙준 선생님이 천사라서 그런 거 아냐?’
[아닙니다. 요새 어깨 다쳐서 싸우면 조태진 교수가 이긴대요. 그래서 해 준 거라는 소문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게 봐 줘도 헛소문 같은데.’
[아무튼, 서두르시죠. 이렇게 막무가내로 하는데 늦으면 진짜 싫어할걸요.]
바루다의 말이 맞기는 해서 수혁은 부지런히 지팡이를 놀려 댔다.
하지만 오늘따라 엘리베이터도 안 도와주고, 또 검사실이 워낙에 멀어서 세침 흡입 검사한 것을 슬라이드에 밀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현장엔 김선웅에게 끌려온 병리과 교수도 있었는데, 그는 왜 했던 검사를 또 하나 하는 얼굴로 내내 시큰둥해 있다가 슬라이드를 보고 나자마자 탄식을 내뱉었다.
“야, 선웅아……. 환자 죽을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