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01화 (201/1,303)

201화 죽을 뻔 (3)

“응?”

환자가 죽을 뻔했다니.

의사에게 이보다 더 섬뜩한 말이 또 있을까.

특히 환자가 자기 예상보다 안 좋을 때마다 안절부절하는 김선웅 교수에게는 거의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수염이 곤두서네요.]

심지어 온 얼굴에 가득한, 슬프게 정수리만 빼고 가득한 털들이 바로 서는 게 육안으로 확인 가능할 정도로 놀랐다.

“이게…… 뭐 염색해 봐야 더 정확하긴 할 텐데. 그냥 밀어서 보기만 해도……. 림프종 일종 같아. 이거…… 이거 놓쳤으면 환자 죽지…….”

“림프종? 암이라고?”

“어. 100%는 아냐. 근데 거의 그렇게 보여.”

병리과 교수는 다시 한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악성이다 그 뜻이었다.

“혹시 종류는 아직 알 수 없을까요?”

둘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으니 크게 놀랐지만.

수혁은 벌써 한참 전부터, 그러니까 환자를 처음 봤던 그날부터 의심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냉정한 얼굴로 진단에만 신경 쓸 수 있었다.

그 말에 병리과 교수는 습관처럼 현미경으로 눈을 가져갔다가 다시 떼어냈다.

“아니, 아직은. 뭐…… 림포이드 티슈로 보이긴 하는데…… 염색을 해 봐야 해요. 근데…….”

그렇게 한참 변명처럼 주절거리다가 좀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눈앞의 수혁이 너무 어려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발언하는 것만 봐서는 일개 레지던트가 아니라 교수 같았다.

그가 입을 열 때 김선웅 교수가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면 그랬다.

“근데, 누구시지? 새로 오셨나?”

병리과는 수술실 아니면 지하에 있는 판독실에만 있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사교적인 사람이거나 과장이면 여기저기 회의실을 돌아다니면서 주워듣는 게 많았지만.

이 교수는 사람 만나는 것보다 슬라이드 보는 게 더 좋은 타입이었다.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도 두루두루 잘 지내는 편이면서 동시에 동기인 김선웅 교수밖에 없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내과 레지던트 2년차 이수혁입니다.”

“레지던트? 아니, 근데…… 아까 김 교수 말이 이거 의심한 게…….”

“네, 제가 의심했습니다.”

“어…….”

병리과 교수의 해명을 바라는 눈이 김선웅 교수를 향했다.

“아, 그게.”

김선웅으로서는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이수혁의 명성이 온 병원에 퍼진 게 벌써 언젠데.

저런 얼굴을 하고 있다니.

‘그러게 슬라이드만 들여다보고 있지 말고 사람도 좀 만나라니까.’

물론 그래서 좋아하는 거긴 했다.

언제 말해도 바로바로 결과를 알 수 있지 않던가.

지금도 다른 교수 같았으면 화부터 냈을 터였다.

하지만 이 녀석은 이상한 케이스가 있다니까 한달음에 달려온 참이었다.

나이가 어느 정도 먹은 후에도 돈 얘기 대신 의술 얘기에만 눈을 빛내는 참 드문 친구였다.

“그 이현종 원장님 아들이야. 엄청 똑똑하다고 소문났는데,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어?”

“아…… 아니, 없는데. 이거 의심했다니까 알겠네. 흠.”

병리과 교수의 세모난 눈이 다시 한번 수혁을 훑었다.

총기 가득한 눈에 굳게 다문 입에선 왠지 모를 신뢰감이 풀풀 풍겨 왔다.

거기에 더해 이상한 의심마저 들었다.

‘이 녀석 설마…… 세부 종류까지 의심하고 있나?’

임상적인, 그것도 아주 단편적인 정황만으로 이미 조직검사까지 다 나와 있던 것을 뒤집을 만큼 확신을 가진 녀석 아니던가.

그렇다면 혹시 알 수 없었다.

해서 물었다.

“그…… 이수혁 선생은 뭘 의심하지?”

수혁이 예상했던 질문은 아니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이건 좀 너무 선 넘는 예측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바루다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 모양이었다.

[얘기하시죠. 림프종…… 아니, 림포이드 티슈가 보인다고 한 이상 범위는 크게 좁혀졌습니다.]

빠르게 자라면서 동시에 척수를 누를 수 있는 위치에 생기는 림프종 또는 림포이드 티슈와 관계된 종양이 많은 건 아니지 않은가.

한 손 이내로 좁힐 수 있다는 얘기였다.

‘이거 맞힌다고 뭐가 달라지나?’

[소문이 나겠죠. 진짜 천재라고. 당장 뭐가 있지는 않겠지만요.]

‘소문이라.’

예전 같았으면 소문 그까짓 거라고 여기고 넘겼을 터였다.

하지만 지난 2년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소문의 위력을 확인한 바 있지 않은가.

예기치 않게 원장의 아들이 되기까지 했더랬다.

헛소문의 진원지가 원장 입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매우 드문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아마 지금도 원장 아들이라는 걸 김선웅 교수가 인지하고 있지 않았다면 싫은 소리 몇 번은 들었을 게 뻔했다.

“네, 저는.”

해서 수혁은 잠시 뜸을 들인 후 입을 열었다.

[호지킨 림포마(Hodgkin‘s lymphoma) 또는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Langerhans cell histiocytosis). 이 두 가지가 현재로서는 가장 가능성이 큽니다.]

‘오케이.’

[근거를 알려 줄 필요는 없습니까?]

‘날 뭘로 보고. 내가 먼저 의심한 거잖아.’

[알겠습니다.]

바루다와의 짧은 상의를 마친 후였다.

“호지킨 림포마 또는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이 제일 의심됩니다.”

“호지킨…… 랑게르한스…….”

병리과 교수의 눈이 빠르게 왔다 갔다 했다.

듣기 전에는 주의 깊게 생각지 못했던 진단명들이었지만.

한번 듣고 나니, 어쩐지 방금 본 병리 슬라이드 소견과 들어맞는 것도 같았다.

“두 개 모두 척수 신경을 누를 수 있고, 스테로이드에 호전이 되며 스테로이드를 맞았을 시 양성 질환으로 마스킹 될 수 있습니다. 진행 속도는 천차만별이지만, 불과 몇 주 안에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죠.”

“그…… 그렇지. 흐음.”

이제 김선웅 교수는 존나 가만히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뒤로 아예 빠져 있었다.

사실 정형외과 중에서도 무릎만 하는 그로서는 호지킨이니 랑게르니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지러울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한 얘기로 망치와 톱 들고 수술하는 게 제일 적성에 맞았다.

“지금 슬라이드 보니까 더 확신이 드네요. 두 개 감별하려면 CD30 염색이 필수적인데…… 혹시 모르니까 CK, LCA, CD68, S-100 정도는 추가하는 것도 좋을 거 같고. 아니다, 어차피 돈도 얼마 더 안 드는데 지금 말씀드린 것만 포함해서 더 돌려도 좋겠네요.”

“허…….”

김선웅 교수는 다시 한번 더 뒤로 물러났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앞에 선 수혁이 훨씬 벽처럼 느껴졌으니까.

‘CD 뭐라고?’

학생 때인지 아니면 인턴 때인지 들어 본 거 같기는 한데.

그게 뭐냐고 하면 절대로 답해 줄 자신이 없었다.

“허…….”

반면 병리과 교수는 전혀 다른 의미의 탄식을 내뱉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내과 레지던트가 병리과 염색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걸까.

대강 아는 척하려고 주워 넘기는 것도 전혀 아니었다.

CD60은 호지킨 림포마를 진단하는 데 있어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었고, 그 뒤로 열거한 것들 또한 다른 질환과 랑게르한스 세포 조직구증을 감별하는 데 중요한 것이었다.

‘더블 보드인가? 병리과 전문의인 거 아냐?’

이런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수혁의 얼굴은 지나치게 뺀뺀했다.

더블 보드 하려면 적어도 삼십 대 초중반은 되어야 할 텐데.

아무리 높게 쳐줘도 아까 말했던 2년 차 수준이라 이 말이었다.

‘괴물…… 인가? 아니, 아니지. 확인…… 확인하자.’

다행히 병리과 교수는 그저 놀라고만 있진 않았다.

수혁의 말이 너무 그럴싸하니까 빨리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일단…… 일단 판독실로 가자. 이거 내가 푸시해서…… 염색해서 바로 볼게.”

해서 병리과 교수는 슬라이드를 챙겨다 일어났다.

그리곤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혁을 끌었다.

“자네, 자네도 가지. 어? 가서 보자고.”

“네?”

“아유, 이렇게까지 말이 나왔는데 직접 봐야지. 안 그래?”

“아…….”

당황하고 있으려니 김선웅 교수도 다가왔다.

그 또한 결연한 얼굴이었다.

“그래, 가지. 이수혁 선생. 이번에 진짜 그…… 그…….”

그런 거치고는 말을 좀 더듬었지만.

오래지 않아 말을 잇긴 했다.

“림포마랑 랑게르…… 그거 둘 중에 하나면 내가 이 은혜 잊지 않을 테니까. 가자고. 같이 좀 보자고.”

“어……. 네네. 근데 저…… 회진이…….”

“아, 지금 누구 담당이지?”

“조태진 교수님입니다.”

“아, 태진이. 태진이…… 가만있자.”

김선웅 교수는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고는 연락처를 뒤적거렸다.

하는 꼴을 보니 연락하고 지낸 지 한참 된 모양이었다.

뭔 이름으로 검색해야 하는지도 헷갈려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결국, 김선웅 교수는 원내 통신망을 통해 조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조태진입니다.”

“어어, 태진아. 나 김선웅이야. 정형외과.”

“아……. 어, 웬일…… 웬일이냐?”

동기긴 하지만, 워낙에 오랜만인지라 조태진은 꽤 당황한 모습이었다.

원래 환자에게는 잘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살가운 편이 아닌 사람이니 무리도 아니었다.

“어……. 그 내 환자 중에 하지 위약 환자가 있는데 오늘 이수혁 선생이 입원시켰거든.”

“응? 야, 그거 다 우리 수혁이가 생각 있어서 한 거야. 그걸로 혼낼 생각하지 마라, 어?”

그러다 수혁 얘기가 나오자 화부터 냈다.

내 이쁜 새끼 건드리지 말라는 건데, 김선웅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니었으니까.

“아니, 아니. 이수혁 선생 진단이 맞는 거 같은데…… 지금 그거 확인하러 병리과 가거든? 기억나나? 영훈이? 걔가 지금 바로 본대.”

“아……. 역시 우리 수혁이.”

“우리 수혁이라고 불러, 보통?”

“아무튼, 지금 병리과 가면 수혁이 있는 거야?”

“어……. 그렇지?”

“그럼 나도 거기로 갈게.”

“너, 너…… 회진이라며.”

“조금 늦지 뭐. 전화해 두면 돼.”

“허…….”

원장 아들이라고 하더니 얘 아들인가 싶을 정도로 빠른 대응이었다.

아니, 김선웅이 기억하는 학생 때 조태진은 친아들이라 해도 이렇지 않았을 터였다.

“뭐라고 하셔요?”

놀란 사이 전화는 끊겼고, 딸깍 소리를 들은 수혁이 물어 왔다.

“어? 어……. 아, 그리로…… 그리로 온다는데.”

“그리로…… 병리과요?”

“어. 원래…… 얘가 원래 이렇게 촉새였나.”

“네?”

“아니, 아냐. 가자고. 가.”

“네, 교수님.”

김선웅 교수는 대체 수혁의 내과 내에서의 위치가 어떤 건지 궁금했지만.

우선 급한 건 환자고 진단이니 병리과 쪽으로 향했다.

딸각.

딸각.

워낙에 서두른 데다가, 김선웅이 또 좋은 의사다 보니 수혁의 불편한 다리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 괜찮아? 요새?”

“네?”

“다리, 다리 말하는 거야.”

“아……. 네, 뭐 걸을 만합니다. 이제.”

“그래, 음.”

아마 시간만 더 있었다면 최근에 읽었던 논문을 떠올릴 수도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병리과 정영훈 교수가 너무 미친 사람처럼 서두르고 있었다.

게다가 병리과 판독실 안에 들어갔더니 조태진이 두 팔 벌려 달려와 수혁을 안아 드는 모습까지 목도했다.

“어이구, 우리 수혁이!”

“아, 네네. 여기 사람 많은데.”

“그런다고 너를 향한 내 사랑이 어디 가겠니!”

“아, 네.”

이런 걸 보고 있는데 어찌 차분히 생각을 이어 나갈 수 있을까.

다 때려치우고 병리 슬라이드나 보는 게 옳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