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화 고칠 수도 있다고? (1)
불세출의 천재로 인정받고 있는 수혁의 다리를 고칠 수 있다.
이 말에 제일 눈을 빛낸 건 의외로 이현종이었다.
본인보다도 더 수혁의 다리 불편한 것을 애석해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쟤…… 저거 다리만 나으면 순환기내과야.’
순환기내과, 즉 심장내과는 과 특성상 오래 서 있어야만 했다.
이현종이 나이에 비해 굵은 장딴지를 자랑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물론 이런 과가 심장내과만 있는 건 아니긴 했다.
내시경을 주로 하는 소화기내과도 그랬다.
하지만 이현종이 왜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소화기내과 신경을 쓴단 말인가.
“정말이야? 고칠 수 있다고?”
이미 머릿속엔 본인의 정식 후계자가 된 수혁이 그려지고 있었다.
흉부외과에서만 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술기를 내시경으로 하는.
‘이 자식이 손도 은근히 좋단 말야, 이거.’
어지간한 절개 배농은 의뢰도 안 하고 직접 하지 않던가.
다른 놈들이 하는 거라면 관심도 없었겠지만.
수혁이라면 달랐다.
이현종은 심지어 몰래 숨어서 처치실에서 어떻게 하는지 보기도 했다.
외과가 아니니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 손이 생각한 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받았다.
술기를 함에 있어서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이현종이 제일 잘 알았다.
“야, 인마. 빨리 말해.”
“어어. 형. 왜 멱살을 잡고 그래. 어이고, 김 교수. 오늘 이거 여러모로…….”
“괜, 괜찮습니다. 아들 문제니까요.”
김선웅은 신현태가 말리고 있음에도 여전히 멱살을 잡고 있는 이현종의 손을 조심스럽게 풀면서 대꾸했다.
그래도 험악한 정형외과에 있으면서 이 꼴 저 꼴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교수가 돼서 다른 과 교수에게 멱살을 잡힐 줄이야.
그것도 제일 샌님들이라 평가받는 내과 의사에게.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무튼, 빨리 말해.”
“네, 변죽만 울리지 말고요.”
“우리 수혁이 놀리는 거면 가만 안 둬.”
아니, 조금 무서웠다.
차라리 한 사람에게 멱살 잡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현종이 그래도 이 셋 중에서는 제일 덩치가 작지 않은가.
특히 조태진은 씨름까지 해 놓은 몸이라 가만히 있어도 위압감이 있는데, 코앞에서 가만 안 두니 어쩌느니 하고 있으니 공포 그 자체였다.
“그…… 조금만 뒤로 좀…….”
“도망가려고?”
“제가 어딜 도망가요……. 원장님.”
“음.”
다행히 말이 아주 안 통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었다.
“형, 김 교수 말이 맞지. 도망을 어디로 가. 이리로 와, 좀. 조 교수도.”
“음.”
“음음 하지 말고. 왜 그래, 도대체. 수혁이 얘기만 나오면 눈깔이 돌아 가지고.”
“뭐, 인마?”
“아, 미안. 방금 선 좀 넘었지? 근데 아까부터 형도 계속 넘거든……. 역지사지 알려 주려고 그랬어.”
“아이고, 원장 체면이 이게…….”
솔직히 말하면 체면은 본인이 제일 많이 깎아 먹는 거 같았지만.
굳이 지금 그 사실을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 봐야 이 인간이 본인 잘못을 자각할 거 같진 않았으니까.
공연히 긁어 부스럼만 만들 뿐 아니겠는가.
특히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신현태는 그 말을 했을 시 이현종이 무슨 짓을 할지 눈앞이 선했다.
‘지랄…… 그래, 지랄하겠지.’
원장한테 이 무슨 말버릇이냐고 할 사람도 분명히 있긴 하겠지만.
단 일주일이라도 이현종과 함께해 본 사람이라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터였다.
당연히 그보다 훨씬 오래 함께한 조태진과 이수혁은 가만히 이현종 양옆에 자리했다.
혹시 모르는 사태를 대비해서 한쪽 손씩을 잡으면서였다.
“허허, 우리 수혁이 손이 따뜻하네.”
그나마 다행인 건 이현종의 수혁을 향한 지나친 애정이었다.
마치 손주 보는 노인네처럼 수혁을 보고 있었다.
덕분에 판독실 내 분위기는 차분해졌고.
김선웅 교수는 비로소 입을 열 수 있었다.
“그, 이수혁 선생 다리 말입니다. 비골 신경이 손상돼서 지금 저는 거잖아요?”
“그렇지. 그거야 다 알지. 아들인데.”
“네, 알고 있죠.”
“어휴, 이놈의 비골 신경.”
정작 수혁은 조용한데 나머지 교수들이 더 난리였다.
마치 자신이 수혁의 상처에 관해 제일 잘 알고 있다는 걸 어필하려는 거 같았다.
이게 그냥 평교수들도 아니고 원장에, 과장에, 나머지 하나는 혈종의 희망이라는 말 듣는 인간이라니.
김선웅 교수는 기회 되면 칠성이나 아선으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신경 손상 자체를…… 수복할 수 있는 방법은 현재로써는 없어요.”
“이 새끼가.”
“형,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된다니까.”
“그래요, 원장님. 들어 봐요.”
김 교수는 역시 뜰 수 있으면 뜨자고 다짐하며 또다시 입을 열었다.
“근데…… 사실 그 비골 신경이 뭐, 아주 결정적인 신경이기는 해도…… 나머지 부위의 근육이 단단하면 서는 건 가능해요. 보조기만 차면…… 꽤 오래 설 수도 있어요.”
“그래? 보조기만 있으면 돼? 그거 사 줄게. 얼마야.”
“비싸긴 한데, 그게 문제는 아니고요.”
“바람개비야 뭐야. 말을 왜 이렇게 빙빙 돌려.”
“보조기가 있어도…… 지금 이수혁 선생 다리는 너무 얇아져 있어요. 신경이 죽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죠.”
김선웅의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수혁을 향했다.
정확히 말하면 수혁의 다친 다리를 향했다.
확실히 왼쪽 종아리가 얇아져 있었다.
원래도 두껍던 사람이 아닌 데다가, 신경까지 다쳤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신경은 단지 움직이라는 신호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영양분을 공급받으라는 신호도 보내기 때문이었다.
“어휴. 나 울 거 같다…….”
“울지는 마요, 형.”
“으어엉.”
그에 비하면 조태진은 어지간한 사람 허리만 한 다리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다.
신경도 안 쓰고 있다가 두 다리를 비교하고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울어? 운다고?’
김선웅 교수는 이제 이들의 반응에 신경 쓰면 안 되겠다고 다짐했다.
해서 그나마 가장 덤덤하게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수혁만 보기로 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요?]
‘그러게…… 나도 작년까지는 꽤 열심히 논문 봤었는데.’
수혁이 담담할 수 있는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알아볼 만큼 알아본바, 현대 의학의 한계로 고칠 수 없다는 걸 뼛속 깊이 인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 마비가 걸었다는 글을 타고 들어갔더니 웬 카마르 타지란 말과 함께 마법을 익히면 된다는 글이 있지를 않나.
하여간 별의별 이상한 글들이 그를 현혹해 온 터였다.
해서 수혁은 그야말로 정중동을 유지할 수 있었다.
“최근 이비인후과나 성형외과에서 안면 마비에 대해 어마어마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는 건 다들 알고 계실 겁니다.”
“음.”
얘기는 점점 내과 의사들로서는 잘 모르겠는 쪽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현종이야 그럴수록 바람개비니, 선풍기니 하면서 비아냥거렸지만.
결국은 내과 의사로서의 학문적 호기심에 무릎을 꿇고야 말았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긴데요.]
‘이쪽으로 접근할 생각은 아예 안 해 봤으니까.’
수혁 또한 비슷했다.
아까보다는 귀를 기울이게 됐다는 뜻이었다.
김 교수는 드디어 의사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자세가 된 이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게 제대로 된 경청이지…….’
논문 설명하겠다는데 이 새끼, 저 새끼를 할 줄이야.
심지어 멱살도 잡히고.
나이 마흔 넘어서 멱살 잡히는 일이 흔한 건 아니지 않은가.
자칫하면 PTSD라도 올 거 같았다.
“이제 그쪽에서는 워낙에 기능이 중요하니까 멀쩡한 신경 부분만 따로 살려서 주요 근육에 이어 주는 게 오래된 일인데요. 이렇게 해도 움직임 자체가 돌아오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물론 최근 연구 보면 뭐 훈련을 따라서 웃기도 하고 하는데……. 그걸 하지에 적용하기는 어렵고요.”
“으음.”
“근데 움직임이 안 돌아와도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 주긴 했습니다. 바로 근육의 톤이 유지가 된다는 것 때문이죠. 사실 한쪽 마비가 있을 때 좌우 대칭이 안 되는 게…… 한쪽은 힘이 없고, 다른 한쪽은 힘이 있어서 딸려 가기 때문 아닙니까? 이 시술을 했더니 최소한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더라, 이거죠.”
“아하. 그럼 비골 신경을 이을 수는 없어도…… 어떤 식으로든 근육 톤을 유지할 수는 있다 이건가?”
“네네. 바로 그거예요. 좀 괴롭고 큰 수술이 되긴 할 거예요.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케이스도 없어서 관련해서 공부도 더 해야 하고요. 하지만 가능성은 있습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나아질 수 있어요. 지팡이라도 놓고 보조기만 차고 걷거나 뭐…… 아니면 지팡이 없이 서 있을 수도 있고요.”
“오호라…….”
이현종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생전 처음 듣는 얘기긴 했지만, 그 원리와 기전을 바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 확실히 김 교수 의견은 일리가 있었다.
[어떤 거 같습니까?]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을 거 같은데, 위험하지만 않으면.’
[제 의견도 그렇습니다. 더 서치가 필요할 거 같지만…… 적어도 이론상 허점은 없습니다.]
수혁과 바루다 또한 동의하는 바였다.
옆에 있던 조태진이나 신현태 또한 비슷했다.
내과 의사이기에 평소 안면 마비 환자를 볼 일이 없어 관심이 없었을 뿐.
이 정도 설명도 못 알아들을 정도의 의사는 적어도 이 자리에는 없었다.
다들 너무 고개를 열심히 끄덕이게 되었단 말.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도리어 김선웅이 불안해졌다.
“그…… 너무 기대는 마시고요. 아직 연구 중인 분야입니다.”
“자꾸 빼지 말고. 얘기 꺼냈으면 책임져야지. 돼, 안 돼가 아니라…… 해 볼 거야, 아니면 포기할 거야.”
이현종은 그런 김성웅을 진중한 얼굴이 되어 바라보았다.
아까보다 훨씬 몸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앉은 자리가 무색하게 느껴질 만큼이나 둘 사이는 가까워져 있었다.
남들이 볼 때는 좀 과하게 다가간 거 아닌가 싶었지만.
이현종 입장에서는 이것도 자제한 것이었다.
‘수혁이가…… 순환기내과를 올 수도 있다…….’
이미 마음속 깊이 수혁을 다른 분과로 놔주고도 그렇게 이뻐하던 것이 이현종 아니던가.
그런 녀석이 자기 분과로 올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으니 눈이 돌아도 보통 돌아가는 게 아니었다.
실제로 이현종을 마주하고 있는 김선웅은 이 사람이 이거 이러다 안 된다고 하면 찌르는 거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해 볼…… 생각입니다. 이론적으로 논거 충분하고요. 이제 우리나라도 슬슬 보조기 들여올 때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좋아. 시간 얼마나 필요해? 일주일?”
“네? 아니……. 이거 케이스 쌓이려면 좀 걸리죠. 수혁이보다 좀 쉬운 케이스들부터…… 해 봐야죠.”
“수술 그거 그냥 칼 대고 하는 거 아냐?”
“정형외과 의사로서 수술 폄훼하는 말은 조금…….”
이현종이 또 서두르자 신현태가 나섰다.
“하하, 김 교수님이 이해하시죠. 의사 아니고 보호자라고 생각해 주세요.”
“아, 그럴까요. 그럼 또 이해는 가는데…….”
“그리고 서두를 것도 없으십니다. 수혁이 중동도 가야 되고…… 레지던트 3년 차 말까지는 시간이 없을 거예요. 시험 준비하는 동안에 수술받고 하면 딱 좋을 거 같은데.”
“아……. 그럼 시간이 있네요. 열심히 준비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