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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닥터-209화 (209/1,303)

209화 어떻게 꼬시나 (1)

장강명이 병원에 도착한 것은 아까 말했던 대로 20분이 좀 지나서였다.

새벽이라 차가 없는걸 감안하더라도 꽤 밟은 모양이었다.

도착 시각 외에도 그가 무척 서둘러 왔다는 걸 증명하는 것은 꽤 많았다.

우선 머리에 여전히 잔뜩 졸음이 묻어 있었고.

옷도 위아래 색이 맞지 않았다.

그냥 자다 일어났나 싶을 지경이었다.

“갑상샘 기능 검사가 나왔나?”

다행히 의사들은 가운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하얀 가운으로 대강 추레함을 가린 후, 병동 스테이션에 와 물었다.

당연히 검사는 나왔고, 그 수치를 말해 줄 거라 기대하면서였다.

그렇지 않은가.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확정적으로 노티하는 건 불가능했다.

적어도 장강명이 생각하기엔 그러했다.

그런데 수혁은 그의 기대를 확실하게 저버리고야 말았다.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으면서였다.

“아뇨. 아직…… 안 나왔습니다.”

“어? 그런데 약을 그렇게 썼어? 아, 아직 안 들어간 거고……. 의심만 하는 건가? 그렇지?”

장강명은 ‘그렇다고 말해’라는 얼굴로 말했다.

그냥 약을 썼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잔뜩 묻어 나왔다.

물론 수혁은 이번에도 그의 기대를 저버렸다.

“아까 말씀 드린 대로 임상적 양상이 전형적입니다. 우선 약은 썼습니다, 교수님.”

“어……. 그래?”

안 되는데.

분명 그렇게 하면 안 될 거 같은데.

‘이놈은 왜 이렇게 당당하지?’

지금까지의 상식은 아니라고 하는데, 수혁이 너무 당당하니까 또 맞는 거 같았다.

해서 화도 못내고 그렇다고 달리 의견도 못내고 있으려니, 수혁이 말을 이었다.

“환자 상태는 우선……. 좀 안정적입니다. 구토, 오심 사라졌고, 싸이코시스 호전되었으며 심장박동 수가 110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다분히 안심시키려는 듯한 말투였다.

말투만 그런 게 아니라 내용도 그러했기에 장강명의 얼굴은 순식간에 편안해질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바이털이 좋아졌다는 건 좋은 사인이지 않은가.

수혁은 그런 장강명의 변화를 확인하면서 동시에 말을 이었다.

“다만 체온이 여전히 37.8로 높은데, 이건 혹시 몰라서 포터블 엑스레이 찍었고 정상임을 확인했습니다.”

“아.”

장강명 교수는 이어지는 수혁의 말을 듣고서 아까 화 안 내기를 참으로 잘했다 생각했다.

‘그래…….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고……. 환자가 좋아졌다잖아.’

그냥 좋아진 것도 아니고 지금 들어서는 꽤 드라마틱한 변화였다.

아주 약간의 호전만 보였다면 그냥 막 때려 넣은 약의 효과라기보다는 질병의 경과나 또 다른 치료의 효과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겠지만.

이만한 변화를 보이려면 환자의 진단에 맞는 제대로 된 약들이 들어갔어야만 했다.

그에 더해 루골 솔루션(Lugol solution)이니, 프로필티오우라실(propylthiouracil) 같은 약들은 딱 갑상샘 폭풍에서 쓸 수 있는 약이지 않은가.

그 말은 곧 수혁의 진단이 정확했다는 뜻이었다.

“그렇구나. 좋아지고 있구나.”

“네. 그래도 일단 중환자실로 내리긴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래야지. 삐끗하면 증상 따라가야 되니까……. 삽관 준비도 했지? 환자 호흡 망가지기 시작하면 골 때릴 텐데.”

“네. 혹시 몰라서 준비해 두었습니다. 기관 절개 세트랑 함께 환자 바로 옆에 프렙 해 두라고 처방해 두었습니다.”

“그래……. 잘했네. 아, 지금 이송 요원 오네. 보호자는 왔나?”

“아마 저희 내려가면 도착했을 거 같습니다. 엇갈릴 거 같아서 중환자실 보호자 대기실에 계시라고 했습니다.”

“그래, 음.”

장강명은 다시 한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수혁 그리고 환자와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듣던 대로 환자 상태는 꽤 안정적이었다.

여전히 불안해 보이긴 했다.

심장이 계속 빠르게 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다만 싸이코시스 증세는 확실히 없어 보였다.

장강명은 그 모습에 위안을 얻으며, 이번에는 자신이 위안을 주기로 마음먹은 채 입을 열었다.

“환자분, 이제 원인 확실히 잡아서 치료 중이니까 너무 걱정 마세요.”

“그……. 네. 근데…….”

“중환자실 가는 건 정말 만에 하나 있을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예요. 가능성은 크게 낮습니다. 혹 그렇게 되더라도 저희가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렇게 새벽에도 교수가 나올 정도로 대비 중입니다.”

“네, 감사…… 감사합니다.”

장강명은 일부러 환자의 축축해진 손을 잡은 채 최대한 낮고 힘 있는 목소리로 안심시켰다.

방금 말한 것처럼 새벽에 일어나느라 몇 번 삑사리의 위기가 있긴 했지만.

워낙에 이런 일에 익숙한 그였다.

[호오……. 심장박동 수가 더 줄었습니다. 이게 바로 버발 세대이션(Verval sedation, 은어)이군요.]

‘그렇네, 효과 좋다.’

직역하면 말로 안정시킨다, 뭐 이런 뜻인데.

주로는 환자나 보호자의 불만을 줄일 때 쓰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런게 교수의 관록이라고, 이런 걸 더 배워야 한다고 바루다는 거듭 강조했다.

드르륵.

어려운 진단을 맞힌 와중에도 이런다고 수혁이 불만을 품은 사이, 엘리베이터는 중환자실이 위치한 3층에 멈춰 섰다.

대기실에서 기다려 주십사 했던 보호자는 초조하기 이를 데 없는 얼굴로 입구 쪽에 서 있었다.

[말 안 듣네요?]

‘야, 당연하지.’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는가.

갑자기 A형 간염 걸린 것도 이상한 일인데 혈변을 보질 않나.

출혈 막았다 해서 안심하려는 찰나 설사를 시작하질 않나.

급기야 중환자실 얘기까지 들었는데 마음 편해 보인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었다.

“어, 이수혁 선생. 환자 데리고 들어가. 내가 얘기할게.”

“아…….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해서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하나 있는 머리 없는 머리 쥐어짜고 있으려니, 장강명 교수가 어깨를 두드렸다.

방금 본 바가 있기에 수혁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섰다.

미리 준비된 자리에서 간호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중환자실 신환만큼 손 많이 가는 환자가 없기에 다들 긴장하고 있다가, 환자를 직접 본 이후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선 벤틸레이터도 걸 필요가 없어 보이지 않은가.

그럼 중환자실에서는 더없이 경환이었다.

“뭐 하면 될까요, 선생님?”

긴장감이 풀려서 그런가 따뜻하게까지 느껴지는 질문이었다.

수혁은 베테랑답게 아까 처치실에서 내렸던 처방을 중환자실 상황에 맞게 조정해서 내렸다.

“아마…… 별일은 없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환자와 간호사 모두 안심시키는 말을 하면서였다.

“네, 감사합니다.”

“네, 선생님.”

감사 인사를 뒤로하고 고개를 숙여 보니, 중환자실 입구 쪽이 보였다.

보호자는 장강명에게 몸을 기댄 채 허물어지고 있었는데.

깊은 슬픔 때문이라기보다는 따뜻한 위로 때문인 듯했다.

[베테랑이네요, 저 사람.]

‘아무래도…… 검진 센터 같은 곳에 있다 보면 저런 스킬이 늘겠지. 안 좋은 소식도 자주 전하고…….’

[그렇군요.]

수혁은 바루다와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장강명이 오기를 기다렸다.

예상대로 그를 만난 보호자는 한결 후련한 얼굴이 되어 대기실로 돌아갔다.

“어, 좀 어때?”

자리로 온 장강명 교수는 우선 환자 용태부터 물었다.

수혁은 이미 자리가 정리된 환자를 가리키며 답했다.

“안정적입니다. 아까보다 심장박동 수가 줄어서 이제 100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갑상샘 폭풍 증세는 어느 정도 조절되고 있다고 봐도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분비내과 협진은 보자고.”

“아, 네.”

장강명은 이미 다 끝낸 마당에 협진 내자고 하는데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수혁을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얼굴을 보아하니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면피 구실을 만들자는 자신의 의도를 파악하고 있는 듯했다.

대단했다.

정말로.

[역시 높은 평가를 하는군요.]

‘네 말이 맞구나, 또.’

[당연하죠. 바루다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치킨이 생깁니다.]

다 의도한 바였다.

환자에게 해가 될 만한 지시가 아니라면 윗사람 말에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일 것.

여전히 도제식 교육에 익숙한 병원에서는 거의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봐야 했다.

‘보통 이렇게까지 뛰어나면 좀 모난 경우가 있던데…….’

장강명 교수는 점점 더 이런 친구를 빨리 발굴해 내고 끌어들이려 노렸했던 이들에게 감탄했다.

특히 그 셋, 그러니까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모두 여우보다는 곰 같다고 생각해 오지 않았던가.

이제 보니 곰은 이쪽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친구를 지들끼리만 싸고돌고 있었을 줄이야.

“걱정돼서 왔는데……. 그래도 이수혁 선생이 잘해 줘서 안심할 수 있겠어. 난……. 그, 연구실에서 한숨 붙이고 있을 테니까. 이수혁 선생도 좀 쉬어. 이제 한고비 넘겼잖아?”

그래도 혹시 몰라 확인하는 투의 질문을 던졌다.

[알죠?]

‘알지.’

물론 수혁은 낚시에 걸리지 않았다.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상태 더 안정되면 저도 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이 피곤한 새벽에 쉬라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다니.

얘는 정말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불세출의 인재였다.

‘이현종 원장님……. 미안하지만…… 솔직히 다리만 괜찮아지면 우리 소화기내과가 순환기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실제로 병원 나갔을 때, 로컬 페이가 제일 높은 분과이기도 하지 않던가.

‘아니지……. 다리가 안 나으면 간 하면 되지? 이렇게 뛰어난데 뭐 하러 술기를 해. 입만 털어 줘도……. 안심할 수 있겠다.’

아예 관심이 없을 땐 몰랐는데, 한번 관심을 갖고 나니까 진짜 천재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다리 다쳤다는 거 따위에 흔들려 이런 친구를 흘려보낼 뻔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 한켠이 서늘해질 지경이었다.

띠링.

이런저런 생각이 물밀 듯 밀려오는 데다가, 침대가 아니라 소파를 뒤로 젖힌 거라 그런가, 더럽게 불편했다.

나이가 든 이후론 중간에 깬 후 잠드는 것도 어려워진 참이다 보니 이리저리 뒤척이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에게 문자 하나가 날아들었다.

발신인은 수혁이었다.

<교수님, 이수혁입니다. 주무시고 계실 거 같아 문자로 노티드립니다. 환자 갑상샘 기능 검사 결과 T3는 180으로 어퍼 리미트에 해당하나, free T4가 3.4로 크게 증가해 있어 갑상샘 폭풍에 합당합니다. 기저에 있던 갑상선 기능 항진증에 에이형 간염과 출혈이 동반되면서 급성 악화 보인 결과로 생각됩니다. 우선 치료 지속하면서 랩 따라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완벽하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는 그런 노티성 문자였다.

“중동이야……. 중동에서 꼬시자. 나 법인 한도 얼마 있더라…….”

이제는 아예 잠이 달아난 장강명 교수는 헐레벌떡 몸을 일으킨 후, 꼬실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현종이 알게 되면 멱살이라도 잡힐 테니 우선은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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