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화 피똥도 종류가 한 가지가 아냐 (1)
[아까 뉴스에서 본 사고 때문일까요?]
‘아, 아마 그럴 거 같다.’
수혁은 버스 전복 사고를 떠올렸다.
인천 대교도 아니고 한강 다리에서 버스가 넘어질 줄이야.
부상자만 수십 명이라고 했으니, 제일 가까우면서 동시에 제일 커다란 태화 의료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려올 것은 안 봐도 비디오였다.
그러라고 있는 게 응급실 아니겠는가.
나름 태화 그룹에서 사명감을 가지고 돌리고 있는 중증외상센터도 그래서 있는 것이었고.
[그럼 지금 오는 환자는 문진이 제대로 안 되었을 가능성이 있겠는데요.]
‘초진 환자면 진짜 그럴 거야.’
문제가 있다면 그렇게 갑자기 환자들이 몰렸을 때 일반 환자들이 소외된다는 점이었다.
응급실은 테마파크가 아니기에 온 순서대로 진료받을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던가.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환자들이 계속 온다면 하염없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대개는 현장 의사의 판단이 옳았지만.
때론 그 중증도가 간과되어 나중에 잘못되는 경우도 있었다.
“선생님, 응급실에서 보낸 환자 접수됐습니다. 앞에 잠깐 계시라고 할까요?”
잠시 붐비고 있을 응급실을 생각하고 있으려니, 사원이 환자 도착을 알려 주었다.
이미 예약 환자는 거의 다 본 상황 아니던가.
지체할 이유는 없었다.
“아뇨, 바로 볼게요.”
“네, 그럼 들어오시라고 하겠습니다.”
사원은 밖으로 잠깐 나갔다가, 휠체어에 앉은 환자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 42세, 창백해 보이고, 전반적으로 기력이 없어 보이는군요.]
그 순간 바루다는 첫인상을 데이터화해서 정리했다.
별거 아닌, 그러니까 다른 의사들도 다 하는 과정이겠지만.
이게 싹 데이터화되어서 분석 가능한 형태로 남아 있다는 건 대단한 차별점이었다.
[중증 가능성 61%입니다. 긴장하시죠.]
‘갑자기 뭐야?’
[새로 도입해 봤습니다. 외래 보다 보니, 쓸데없이 긴장하거나, 긴장해야 되는데 마음 놓는 경우가 너무 많더군요.]
‘음……. 필요하긴 하겠다.’
당장 오늘 외래만 해도 그랬다.
그냥 간단한 환자임에도 괜히 긴장해서 심력을 소모하는 일이 있었으니까.
아직 외래가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이현종이나 신현태가 던져 주는 케이스들이 워낙에 무거운 케이스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에러였다.
다행인 것은 바루다 덕에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는 극복이 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아무튼, 수혁은 조금은 긴장한 채로 환자를 바라보았다.
“네, 성함이…… 김보영 씨 맞으신가요?”
“아, 네.”
목소리는 물기 하나 없이 건조하기만 했다.
성대가 메말랐다는 뜻인데, 이 말은 곧 일정 수준 이상의 탈수가 진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혈변을 보셨다고요.”
“네.”
말하는 게 힘들어서 그런지.
아니면 긴장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대답은 주로 단답형이었다.
아직 수혁이 경험이 많이 적은 의사였다면 좀 힘들었겠지만.
이젠 아니었다.
말이 적다면 끌어내면 될 일이었다.
“얼마나 되셨어요?”
“음…….”
“정확한 날짜를 말해 주시면 더 도움이 됩니다.”
“5일…… 정도요.”
“양은 어땠을까요?”
“양이…… 많아 보이진 않았어요.”
“색은요?”
“붉었습니다. 새빨갛지는 않은데.”
붉다라.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우선 상부 위장관 출혈 가능성은 어느 정도 배제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위에서 피가 났다면 소화가 되어서 검게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물론 그 양이 너무 많으면 붉게 나올 수도 있지만.
그랬다면 지금 이렇게 앉아 있지는 못했을 터였다.
“흠…….”
양이 그렇게 많지 않은, 시작된 지 5일 된 하부 위장관 출혈이라.
아무래도 제일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대장암과 같은 질환이었다.
확인이 필요했다.
“최근에 혹시 몸무게가 빠지진 않으셨나요?”
“아.”
환자는 조금 놀랐다는 표정과 함께 같이 온 보호자를 올려다보았다.
그와 동시에 걱정 어린 얼굴로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중년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한 5kg은 빠진 거 같습니다.”
“5kg이라.”
“심각한 겁니까?”
“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알 수 없다고는 했지만.
바루다는 조용히 중증 가능성을 80% 위로 올려 둔 참이었다.
단순히 힘들어 보이는 것을 넘어 실제로 체중이 빠졌다면 그건 큰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입원해서 몇 가지 검사는 해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아…….”
“그런데, 혈변 외에 다른 불편한 건 없으신가요?”
진행한 암은 비단 국소적인 불편 증상 외에 다른 여러 증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
수혁은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태화 의료원 내과의 일원인 동시에 혈액종양내과 조태진의 총애를 받는 몸이기에 그러한 사례를 수도 없이 본 바 있었다.
“음.”
외래 들어와서 처음 들은 열린 질문 아니던가.
환자나 보호자 모두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에 빠졌다.
대학 병원에서조차 5분 진료를 강요받는 대한민국 의료 체계에서는 다소 답답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수혁은 누구보다 빠른 판단력으로 상대적 경환은 후루룩 처리해 온 참이었다.
게다가 아직 레지던트라 애초에 환자가 많지도 않았다.
기다리는 것이 마냥 부담스럽진 않았다.
“그…… 아내가 몇 달 전부터 여기저기 쑤시고 아프다고 했는데, 그게 혹시 상관이 있을까요?”
“아프다고요? 정확히 어디가 아프셨나요?”
“그냥……. 팔다리요. 무리해서 그런가 했는데.”
“팔다리라……. 증상은 점점 심해졌나요?”
“아, 네. 그래서 집 근처 정형외과에 갔었습니다.”
“거기선 뭐라고 했나요?”
1차 진료의의 의견은 퍽 중요했다.
설령 그것이 틀렸다고 해도 그랬다.
뭐가 어찌 되었건 전문의라면 최소 6년간의 의대 교육과 5년간의 대학 병원 수련을 받은 사람들 아니던가.
어떤 근거라도 있었을 터였다.
“그게…… 팔다리 아픈 건 잘 모르겠고, 엑스레이에서 폐에 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폐예요.”
대장암의 폐 전이인가.
[폐 전이가 잦은 편이죠.]
‘그러니까……. 음, 안 좋은데.’
전이 가능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려니, 보호자가 말을 이었다.
이런 경우가 흔한 건 아니었다.
같이 사는 가족이라 해도 이 나이대 부부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건 드물었으니까.
정말, 고아인 수혁으로서는 정말 이상한 일로만 보이는데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이 부부는 금실이 좋은 모양이었다.
“근데 이이가 결핵을 앓은 적이 있거든요. 그걸 말했더니 병원에서도 결핵 때문에 생긴 흔적에 농양이 찬 거 같다고 하면서 약을 썼습니다.”
“아……. 어떤 약인지는 모르시죠?”
“약까지는 제가 미처…….”
보호자가 죄스러운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환자가 그의 손을 잡았다.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듯했다.
수혁도 동의하는 바였다.
당사자도 잘 모르겠는 약을 어찌 보호자가 알 수 있을까.
“그건 저희가 알아보면 됩니다. 아무튼, 그리고 어떻게 되셨나요?”
“사실 폐는…… 뭐, 확인도 못 했어요. 증상도 없었고. 그냥 이틀인가? 치료받다가 혈변이 나왔고, 호전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이리로 온 겁니다.”
“그렇군요.”
정리하자면, 환자는 체중 감소가 있고 혈변이 있으며 폐에 결절이 있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농양으로 판단하고 약을 썼지만, 증상이 없었기에 확신할 수는 없었다.
[세상 모든 의사들이 태화 의료원 출신 같지는 않죠. 오진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슬픈 말이지만, 배제할 수는 없지.’
그 말은 곧 여전히 폐 전이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였다.
팔다리의 통증은 마음에 좀 걸리긴 했지만.
현재로서는 연관점을 찾기 어려웠다.
“답변 감사드립니다. 우선은 입원해서 더 보도록 하죠.”
“아……. 네. 입원은…… 입원은 되나요?”
“병실 사정 알아보긴 해야 하는데, 아마 될 겁니다.”
예전 같았으면 어림도 없었을 말이었다.
태화 의료원에 병실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다니.
하지만 지금은 병실이 남았다.
남아돌지는 않아도 잘 찾아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꼭 있었다.
이젠 태화가 위기라는 얘기가 교수들뿐만 아니라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도 돌 정도로 환자가 줄고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환자에게는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응급실에 하릴없이 깔려 있을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이 시기가 더 유지되었다간 깔려 있을 응급실이 문 닫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좋았다.
[대장암 가능성이 가장 크죠?]
‘그렇지, 뭐. 일단 랩 내고……. 대장 내시경, AP-CT(Abdomino-pelvic CT: 복부-골반 CT)랑 체스트 내자.’
[네, 그렇게 우선순위를 두면 좋겠습니다.]
‘뭐……. 아주 어려운 케이스는 아닌 거 같지?’
[진단만 얘기하시는 거면 그럴 거라 판단합니다.]
치료로 넘어가면 골 아프기 짝이 없을 터였다.
폐 전이가 있는 대장암이라니.
어쩌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가능성이 꽤 있다고 봐야 했다.
“음, 그래, 대장암 같네. 하아.”
노티 받은 장강명 교수도 수혁의 의견에 동의했다.
뒤에 꼬리처럼 달라붙은 한숨이 좀 이상했지만.
아무튼, 동의는 했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장강명의 노력 덕에 수혁은 꽤 친밀감을 느끼게 된 참이었다.
전화로 삭막한 얘기만 할 사이는 아니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아, 아냐. 음.”
장강명은 바로 너 때문이라고 말하는 대신 얼버무렸다.
설마하니 이현종 원장이 수혁이 얘기하면서 다이렉트로 전화를 걸어 올 줄이야.
그런 거 아니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믿는 거 같지 않았다.
[너, 너! 돈 좀 벌어다 준다고 이럴래? 아직 과장도 못 단 놈이. 현태가 가만히 있을 거 같아?]
되려 협박까지 해 왔다.
솔직히 신현태라는 사람이 아끼는 제자 교수 만들어 줬다고 보복할 거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꺼림칙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똑똑하지……. 탐도 나고. 근데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있을까?’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수혁에게 티를 낼 만큼 어설픈 위인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조태진과 같은 연배에 벌써 센터장을 역임하지 못했을 터였다.
괜히 아선에 우창윤이 있다면 태화에는 장강명이 있다는 말이 도는 게 아니란 얘기였다.
물론 나르시시즘이 있는 우창윤이 그런 얘기를 듣는다면 ‘장강명이? 나랑?’ 하고 웃겠지만.
아무튼, 처세술이 남다른 편이었다.
“처방 냈다고 했지?”
“네.”
“바이털도 괜찮고.”
“네.”
“검사가 저녁까지 안 되겠지?”
“푸시는 해 보겠지만……. 아마 밤이나 새벽에 하게 될 거 같습니다. 낮에는 예약 환자들이 있어서요.”
“그래, 그럼 저녁 회진은 그냥 가볍게 돌자.”
“네, 교수님.”
덕분에 수혁은 장강명의 심경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심지어 직접 회진을 돌고 나서도 그랬다.
그저 환자는 대장암인데, 진행했다 이 정도만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 뿐이었다.
[치료 계획부터 짜죠.]
‘그래, 근데 다른 거일 가능성은 없을까?’
[희박해 보입니다. 누가 봐도 진행 암 환자 모습을 하고 있잖아요?]
‘그것도…… 그렇긴 하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에 확인한 CT 양상을 보고 난 후에는 생각이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었다.
‘덩이가 없잖아. 이건…… 이건 궤양인데?’
[그렇네요?]
‘그렇네요가 뭐야, 인마. 대장암이 아니잖아. 그리고 이건 뭐야. 왜 비장에 괴사 된 부분이 있어?’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외칠 일이냐?’
[진짜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