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화 피똥도 종류가 한 가지가 아냐 (2)
“궤양이라고?”
장강명 교수가 놀란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당연히 대장암이 나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전 7시, 그러니까 아직 정규 내시경이 시작되기 전에 대장 내시경을 잡아 둔 참이었는데.
CT 결과는 그게 아니었다.
“네, 교수님. 그리고 비장에는 이렇게…… 다수의 괴사 된 병변이 관찰됩니다.”
“어…….”
장강명의 두 눈동자에 뜬 감정은 ‘뭐지’로 요약할 수 있었다.
바루다도 수혁도 그랬으니 당연한 얘기였다.
전혀 뭐가 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저…… 뭐가 잘못됐나요?”
그렇지 않아도 살이 쭉쭉 빠지고 있는데, 혈변도 발생한 상황에서 관장까지 한 환자 아니던가.
걱정 어린 표정까지 짓고 있다 보니 세상에서 제일 불행해 보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장강명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 아뇨. 아닙니다. 하하. 다른 얘기 중이었어요.”
“아……. 네…….”
“우선 어제 설명 드렸던 것처럼 대장 내시경을 해 볼 겁니다. 밤새 관장하시느라 고생하셨죠?”
“아…….”
병원 내에서 하는 관장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행하는 관장과는 조금 달랐다.
특히 이 환자처럼 어딘가 덩이가 있을 거라 의심이 되는 환자는 더더욱 그러했다.
만약 폐색이 심한 상황이라면, 괜히 관장하겠답시고 관장액을 잔뜩 먹였다가 입으로 변이 나오는 수도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종종 볼 수 있는 사례였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주로 항문으로 관장액을 쏘는 방식을 사용했다.
효과는 좋았지만, 어쨌거나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네……. 했어요. 간호사 선생님이 고생이죠…….”
“덕분에 깨끗이 볼 수 있다면 담당 간호사분도 좋아할 겁니다.”
장강명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환자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먼저 내시경실로 들어갔다.
수혁 또한 환자에게 뭐라 위로의 말을 건네주고 장강명 교수의 뒤를 따랐다.
안에는 이미 준비가 한창이었다.
먼저 온 간호사 중 하나가 장강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센터장님. 좋은 아침입니다.”
“아, 아. 미안해. 30분 당겼지?”
“아닙니다. VIP이신 거 아니에요?”
입원 환자라 해도 내시경실 스케줄을 당겨서 하는 건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보통 응급이 아니라면 중간에 낑겨 넣거나, 그냥 원래 첫 시간대로 낑겨 넣었다.
장강명 교수는 즉시 답해 주는 대신 수혁을 돌아보았다.
‘VIP라면 얘가 VIP지.’
비록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트리오가 시끄럽게 굴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그간의 우수함을 보면 탐이 나는 걸 어쩔 수는 없었다.
장강명의 짧다고 할 수 없는 교수 생활 동안 본 녀석 중 최고이지 않은가.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전까지 최고라 여겼던 김유나 교수도 수혁에게 대면 빛이 바랬다.
‘뭐…… 그래도 그쪽에서 계속 강경하게 나오면 한번 숙이긴 해야겠지?’
장강명 교수는 잠시 안주머니를 돌아보았다.
아까 신현태가 보낸 문자를 떠올리면서였다.
나이도 꽤 있는 양반이 새벽녘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나 어쨌나 4시 반에 보낸 문자가 와 있었다.
<수혁이 포기하면 나 다음 과장 자리 넘길게.>
물론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과장이라는 게 일본에서처럼 소위 다이묘를 연상케 하는 자리인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돌아가면서 맡는 자리에 불과했고, 어떤 과에서는 심지어 기피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태화 의료원 내과쯤 되면 얘기가 좀 달라지기 마련이었다.
‘나랑 신현태 교수님 사이에만 열 명은 있는데……. 그거 제낀다 이건가.’
워낙에 교수 수가 많은 병원 아니던가.
내과 교수만 거의 100명이었다.
임기 2년짜리 과장을 돌아가서 한다고 하면 200년이 되기에, 애초에 보직 욕심이 있거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사람이 맡게 되었다.
그 말은 곧 과장을 성공적으로 보낸 사람은 어떻게든 병원 보직으로 나가게 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가뜩이나 젊은 나이에 센터장까지 맡은 장강명으로서는 욕심이 날 수밖에 없었다.
‘뭐, 더 있어 보고……. 이수혁 선생 가치를 가늠해 봐야겠지.’
욕심을 아주 잠시라도 접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수혁은 대단한 놈이었다.
“자……. 이제 약 들어갔네. 호흡 잘 보고. 어지간하면 사고 안 나는데, 대학 병원에서는 오히려 위험해. 왜 그렇지?”
그사이 환자는 미다졸람을 맞고 잠에 빠졌다.
장강명은 내시경 끝에 윤활제를 바르며 수혁을 바라보았다.
바루다는 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 양반이 개무시하나?]
‘야야, 이 양반이라니. 물어봤으면 답해야지. 혼자하기 적적하셔서 그럴 거야.’
[검진 센터 삐까번쩍한 거 보더니 부쩍 소화기에 잘 보이려 노력하시는군요.]
‘뭐 인마…….’
[아뇨, 보기 좋습니다. 사사로운 인간의 정 따위 다 무슨 소용입니까? 이기적으로 살아야죠.]
‘아니…….’
[일단 답이나 하시죠.]
하지만 결국, 교수의 질문엔 답부터 해야 한다는 의견엔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중증도의 차이 때문입니다. 검진 목적으로 내시경 하는 건강한 사람들에 비해 대학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내시경은 진단 목적 또는 치료 결과 확인이나 치료 자체를 위해 이루어지기에 더 위험합니다.”
“그래, 맞아. 역시…… 음. 자 여기 보라고. 보통 여성분들이 여기……. 이 시그모이드 콜론(Sigmoid colon: S상 결장)에서 디센딩 콜론(Descending colon: 하행결장)으로 이어지는 부분 진입이 어려워. 아주 부드럽게……. 자 이렇게. 이렇게 들어가야 해.”
“아……. 와……. 그냥 쑥 들어가는 거 같은데요?”
“너무 빨랐나? 기회 되면 다른 펠로우 선생들 하는 것도 좀 봐. 그럼 얼마나 애먹는지 보일 거야.”
“네, 감사합니다.”
장강명 교수는 정말 상하부 내시경의 달인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환자가 바짝 마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슥슥 안으로 밀고 들어가는데, 그 시간이 불과 몇 분도 채 안 걸릴 지경이었다.
[야……. 이건 숙달되려면 시간 꽤 걸리겠는데요?]
‘그러니까. 꼭 이현종 교수님 스텐트 보는 거 같네.’
[그렇게 말하면 화낼 거 같긴 한데……. 적어도 느낌은 비슷하네요.]
‘흐음…….’
장강명 교수는 딱 내시경이 상행결장 끝에 다다르자마자 천천히 빼내기 시작했다.
들어갈 때와는 달리 대장 표면을 꼼꼼히 살피면서였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좋지 못한지라 관장도 제대로 되지 않았어야 정상이었지만.
애초에 먹은 것도 별로 없는 상황이지 않던가.
덕분에 상당히 깨끗한 뷰를 볼 수 있었다.
“궤양이……. 궤양이 진짜 많은데, 이거.”
장강명이 탄식하듯 소견을 입에 담았다.
그가 방금 말한 것처럼 환자의 대장은 거의 궤양으로 뒤덮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었다.
장강명은 잠시 비슷한 소견이 이어지는 대장 벽을 천천히 빠져나오다가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딱 봐도 완전히 집중한 것 같았다.
장강명쯤 되면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이놈이 관심 있는 척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관심이 있는 건지.
‘흠……. 이거 소견 물어보면……. 맞힐까?’
장강명은 수혁이 단순히 관심을 넘어 지식도 가지고 있을지 궁금했다.
스스로도 좀 너무한 질문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내시경 소견에 익숙한, 그러니까 소화기내과 펠로우들이라면 또 모를까.
이제 막 내시경실 출입하기 시작한 레지던트 2년 차가 맞히기엔 지나치게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수혁이라면 또 모르는 일이기도 했다.
이 녀석이 지난 몇 주간 보여 준 모습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이수혁 선생.”
“네, 교수님.”
“지금 이 궤양들 말야, 병변이 어떤 거 같지?”
“아…….”
장강명의 기우와는 달리 수혁은 평안한 얼굴이었다.
안 그래도 물어봐 주길 기다리고 있었던 덕이었다.
“궤양의 크기는 매우 다양합니다. 경계는 분명하고…… 깊이는 꽤 깊어 보입니다. 기저부는 삼출물로 덮여 있습니다.”
“음.”
병변에 대한 소견으로는 이보다 더 완벽하기도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아니, 약간은 소름이 돋았다.
장강명이 속으로 내시경 소견에 대해 이렇게 기술할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이 소견에서 뭘 의심해야 하는지도 알려나? 아, 이건 좀…… 너무 나가나?’
장강명은 이건 몰라도 수혁에 대한 평가를 바꾸진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이수혁 선생이 의심하고 있는 질환이 있나? 대장암은 이제 물 건너간 거 같은데.”
장강명이 들고 있는 대장 내시경은 이제 하행결장을 지나 S상 결장으로 빠져나오는 중이었다.
여태 발견한 것은 죄 궤양뿐, 종양 비슷한 것은 먹고 죽으래도 보이지 않았다.
이만하면 감히 대장암 가능성은 아예 없다고 단언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수혁이나 바루다도 이에 동의하는 바였기에, 수혁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대장암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궤양 양상만 보고 섣불리 병을 의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가능성이 큰 질환을 말씀드리자면…….”
그리곤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
장강명이 완전히 내시경을 빼고 수혁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예상한 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장강명은 역시나 고수라 빠져나오는 것은 금방이었기 때문이었다.
철커덕.
그는 항문에서 빠져나온, 마치 터미네이터에 나오는 로봇 팔을 연상시키는 대장 내시경 기기를 함 위에 내려놓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질문을 던질 때와는 달리 대단히 기대감에 차 보였다.
“거대세포바이러스(Cytomegalovirus)에 의한 대장염으로 생각됩니다. 정상 면역 환자에서는 아주 드물긴 하지만, 궤양 양상이 상당히 유사합니다.”
“허.”
장강명은 기대감을 충족 받았다기보다는 충격 먹은 얼굴에 더 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부터 수혁의 답이 자신의 생각과 흡사하지 않은가.
별거 아닌 케이스에서 그랬다면야 당연히 정답이니 그래야 한다는 생각을 했겠지만.
이건 드물기도 하거니와 어렵기도 한 케이스였다.
‘얘 이거 벌써 나랑 비슷한 수준 아냐?’
그렇다 보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 아니지……. 그건 말이 안 돼…….’
장강명은 겨우겨우 평정심을 되찾은 채, 수혁을 향해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젠 뭐 이걸 알겠지, 모르겠지 하는 생각도 없어 보였다.
그저 환자를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주치의의 의견을 묻는 사람의 얼굴일 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우선 아까 조직 검사 하신 거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또 CMV에 대해 PCR 돌려보고 또 항원 검사도 해 봐야 하고요.”
“아까 보니까 비장에 다발성 병변이 있었잖아? 그건 어떻게 생각해?”
“우선 저음영을 보이기 때문에 괴사 병변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인 질환으로는 이 역시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로써는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이나 다발성 색전을 일으킬 수 있는 심내막염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허…….”
장강명은 간신히 감탄사 뒤에 진짜 감탄사, 즉 ‘시발’을 삼킬 수 있었다.
이번 답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조차 넘어가 있지 않은가.
‘과장이고 나발이고 얘를 받는 게……. 장기적으로 보면 더 나을 수도 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