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화 피똥도 종류가 한 가지가 아냐 (3)
수혁은 이제 계속 내시경실에 남아 검사를 진행해야 하는 장강명 교수를 남겨두고 병동으로 향했다.
원래 같으면 계속 내시경실에서 어시스트를 서야겠지만.
수혁은 다리가 불편한 몸 아니던가.
아까 하나 지켜본 것 정도는 괜찮겠지만.
지팡이를 놓고, 수술복을 입은 채 어시스트 하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조차 어려울 지경이었다.
‘다리만 아니면 지금 당장 꼬시겠는데.’
수혁은 아까 장강명 교수가 보내던 눈빛을 떠올리면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잊어보려고 해도 쉽진 않았다.
그 눈빛에 동정이 담겨 있든, 경멸이 담겨 있든 약점을 향한 시선은 원래 떨쳐 내기 어려운 법 아니겠는가.
그나마 평소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병원에서 보내기에 다리가 크게 불편한지 어떤지 모르고 지나는 편이었지만.
이럴 땐 확실히 ‘아, 내가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구나’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내과 의사인 게 천만다행 아닙니까? 외과계 의사였으면 당장 전공부터 바꿔야 했을 겁니다. 가령 일반 외과였다면 그날로 의사 생명 끝이죠.]
당연하게도 바루다는 이러한 수혁의 비감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않았다.
늘 그러하듯 담담한 아니, 듣기에 따라 냉정하게 들릴 수도 있는 목소리로 대꾸할 따름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상처받았을 텐데.
이젠 수혁도 제법 강해진 마당이었다.
동시에 다리의 불편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 아니겠는가.
‘암, 다행이지. 근데 말이야.’
게다가 지금은 그런 게, 그러니까 본인 다리 같은 게 급한 게 아니었다.
아까 보았던, 그러니까 지금은 병동으로 먼저 올라간 환자에 대한 어세스가 급했다.
진단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환자를 잃을 수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는 역시 제대로 된 진단이 중요했다.
또 빠르면 빠를 수도 좋았다.
‘일단 비장에 있는 다발성 괴사 병변은……. 심내막염 아니면 항인지질항체 증후군에 의한 것일 테고. 대장염은 거대세포바이러스에 의한 거겠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추론하자면 그렇습니다. 다른 질환일 가능성은 떨어집니다. 거의 1, 2% 정도의 확률만을 지니고 있습니다.]
‘흐음…….’
바루다의 대답에 수혁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개무시하고 그냥 넘어갔을 테지만.
이제 수혁도 나름 뛰어난 의사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감이 좋았다.
한 번쯤 확인하는 건 필요했다.
[왜 그러시죠?]
‘혹시 대장염하고 비장 병변이 같은 원인에 의한 건 아닌가 해서. 두 질환 다 드문 편인데……. 그게 동시에 나타났다고 하면 좀 억지스럽지 않아?’
[음.]
바루다가 침음을 삼키는 동시에 아주 잠깐 동안의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비틀거릴 정도는 아니었는데, 바루다도 수혁도 이 상황에 익숙해진 덕이었다.
이를테면 기생충은 기생충인데, 매너 있는 기생충이 된 셈이었다.
이런 말 하면 엄청 싫어하긴 하지만.
아무튼, 수혁은 그렇게 여기고 있었다.
[억지스럽긴 하지만, 현재로써는 이게 가장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만…….]
‘다만 뭐?’
[더 드물게는 베게너 육아종증(Wegener’s granulomatosis)을 의심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베게너……?’
수혁의 되물음에는 불신이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지가 물어봐 놓고 왜 이러냐’라는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수혁의 불신이 꽤나 타당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네, 베게너 육아종증이요.]
‘그게 대장을 침범하는 경우가 있나?’
바로 이 점이었다.
베게너는 대장을 잘 침범하지 않았다.
아니, 침범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의사들도 있을 정도였다.
적어도 수혁이 알기엔 그랬다.
[기억 못 하시겠지만, 3개월 전에 읽은 케이스 리포트에서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걸 변수에 집어넣으면 이 환자의 증상을 모두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진짜 드문 거네.’
진짜 드물다기보다 이게 맞는다면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환자가 된다 이 말이었다.
말하자면 통계로 잡기도 어려운 수준이라는 얘기.
그렇다면 역시 바루다의 추론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이 옳았다.
[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두 질환이 같이 있을 가능성을 더 크게 봐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실제로 심내막염 또는 항인지질항체 증후군 모두 정상 면역 상태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즉 둘 중 하나가 발생할 수 있는 면역 상태라면, 거대세포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도 발생 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긴 하네. 오케이. 그럼 검사 진행하자.’
[네.]
수혁은 바루다의 설명을 마저 듣고는 환자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대장 내시경에 비하면 남은 검사는 별거 아니긴 했다.
흉부 CT야, 어제 새벽에 찍은 복부-골반 CT보다 더 빨리 끝날 검사였고.
나머지 검사들이라고 해 봐야 심초음파와 혈액 검사 정도가 다였다.
홀가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 이 말인데.
어쩐지 이렇게만 말하기가 좀 망설여졌다.
[왜 그러시죠?]
수혁의 망설임을 제일 먼저 읽어 낸 것은 역시나 바루다였다.
한마음 한뜻인 것도 모자라 한 몸인 거나 마찬가지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까 네가 말했던 베게너가 걸리는데.’
[그건…… 그건 수혁이 한 가지 질환일 가능성이 없냐고 해서 억지로 분석한 후 도출한 결과일 뿐입니다. 의학은 통계의 일종이므로 현재 가장 의심할 수 있는 질환부터 건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거야 그렇지. 그래도 확인은 해 볼래. 해 보고 싶어졌어. 아무래도 불안한데?’
[아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졌지?]
바루다가 투덜거리긴 했지만.
뭐 어쩌겠는가.
일단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주체는 수혁인데.
수혁은 뚜벅뚜벅 걸어가 환자 앞에 섰다.
가뜩이나 몸이 안 좋아 보였던 환자는 관장에 계속되는 검사 때문인지 더 힘들어 보였다.
이럴 땐 우선 희망적인 얘기부터 꺼내야 한다는 것을, 수혁은 경험을 통해 배운 바 있었다.
우선은 환자와 지금 그 환자의 손을 맞잡고 서 있는 보호자가 제일 걱정하고 있는 것부터 말해 주기로 했다.
“새벽에 찍은 CT와 방금 시행한 대장 내시경상 대장암의 가능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 암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
“아이고, 감사합니다.”
현대인에게 있어 암만큼 무서운 병이 또 있을까?
둘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제 더 물어볼 여지가 있겠어.’
수혁은 둘의 변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혹시 환자분.”
“아, 네.”
“기침이나, 가래는 없으셨다고 했죠? 폐에 어떤 병변이 보이긴 했지만……. 증상은 없었다고 하신 거 같아서요.”
“아……. 네. 없었습니다.”
“음.”
태화에 오기 전에 치료받았던 병원에 확인해 보니, 그 병원에서는 환자의 폐 병변을 환자가 얘기해 줬던 것처럼 농양으로 생각하고 치료했던 모양이었다.
처음엔 레보플록사신과 메트로니다졸을 쓰다가, 영상상에서 호전이 없자 기관지 내시경을 시행했고, 기관지경 소견을 토대로 결핵균 또는 진균으로 판단하여 아이소니아지드와 리팜핀과 같은 항결핵제 그리고 보리코나졸이라는 항진균제를 쓴 바 있었다.
판단의 플로우나 그 근거만 보면 상당히 그럴싸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환자의 흉부 엑스레이는 이전 병원에서 찍었던 것과 비교해 변화를 보이지 않았으니까.
‘농양이나 다른 감염 컨디션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커.’
그럼 대체 그 폐의 병변은 뭘까?
수혁은 이건 바루다가 가능성으로 준 두 질환과도 또 안 맞는 소견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그럼 환자분. 혹시 코는 괜찮으세요? 코가 막히진 않나요?”
[베게너에 꽂혔네, 진짜. 어휴 제 입이 방정입니다. 제 입이…….]
바루다의 시비를 무시하면서였다.
“아…….”
그런데 환자 반응이 좀 이상했다.
마치 이걸 어찌 알았냐, 점쟁이 빤스라도 뒤집어썼냐, 뭐 이런 반응이었다.
특히 남편은 아예 입을 쩍하고 벌리고 있었다.
“어…… 어, 네. 아내가……. 벌써 몇 달 됐어요. 코 막힌다고…….”
“그래요? 그거에 대해 따로 치료받은 적이 있나요?”
“한 두 달인가? 전에 앞에 이비인후과 갔었는데 별 이상 없다고 해서요. 일단 두고 보고 있다가 뭐 팔다리 아프고 하면서부터는 신경을 못 썼습니다.”
“그 후로 증상이 좋아졌나요?”
“아뇨, 그렇진 않습니다.”
“음.”
코가 막힌다라.
워낙에 흔한 증상이긴 하지만.
굳이 연결 지으려면 베게너도 가능하긴 했다.
문제가 있다면 이전에 이비인후과에서 괜찮다고 했다는 점이었다.
수혁이 기억하기로 베게너로 코가 막히고 있다면, 절대 내시경상 괜찮아 보일 수가 없었다.
[아니죠, 아니죠. 초기라면 얼마든지 내시경상에서 별 이상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단순히 건조해서 딱지만 있어 보일 수 있단 말이죠.]
‘왜 갑자기 끼어들어? 잔뜩 흥분해 가지고.’
[항생제에 항진균제, 결핵 치료제까지 때려 부었는데도 폐 병변이 이상이 없다는 거 하나랑 그 폐 병변의 양상을 베게너랑 연결해 보니 비슷하게 보인다는 거 하나.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역시 그럴싸하지? 나 요새 감 좋지?’
[부정하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상황이군요, 인정합니다. 우선 이 환자 이비인후과 협진부터 봅시다.]
‘오케이.’
수혁은 그 자리에서 환자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이비인후과 협진방에 전화했다.
협진방 치프는 4년 차라 수혁보다 훨씬 위였지만, 전화 받는 태도도 그렇지는 못했다.
“아, 네. 선생님. 지금 바로 내려 주시죠. 코 보고 의견 남겨 드리겠습니다.”
원장님 아들이지 않은가.
굽실거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척을 질 필요는 더더욱 없었다.
“네, 감사합니다.”
수혁은 그렇게 환자를 내려보낸 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거 정말 베게너면 케이스 하나 씁시다.]
‘베게너 맞으면 쓰는 거야 뚝딱이지.’
[교신 저자는……. 역시 장강명 교수로 해야겠죠?]
‘지정의가 장 교수님인데, 그럼 어쩌냐.’
[사실 이번 진단 과정에 있어서 장 교수가 관여한 건 대장 내시경 하나뿐인데…….]
‘그렇다고 제껴? 그런 싸가지 없는 놈이란 거 알려지면 잘도 이뻐하겠다.’
[하긴 그렇습니다. 역시 세태와의 야합에는 수혁을 따를 자가 없어 보입니다.]
‘야, 인마 이게 무슨…….’
바루다가 투닥거리고 있으려니, 협진란에 이비인후과 차트가 남겨졌다.
여러 말도 써 있긴 했지만, 역시 이비인후과는 사진부터 보는 게 정석 아니겠는가.
해서 수혁은 일단 내시경 사진부터 보았다.
비중격은 괴사 되어 있었고, 양측 비강 모두 피딱지가 엉겨 붙어 있었다.
비중격 괴사가 어찌나 심한지 여기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코가 내려앉겠다 싶을 지경이었다.
이 사진이 향하는 진단명은 단 하나였다.
‘진짜 베게너성 육아종증이었어. 이게 정말 대장도 먹긴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