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14화 (214/1,303)

214화 피똥도 종류가 한 가지가 아냐 (4)

“베게너?”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은 장강명은 아주 당황스러워했다.

아까 수혁이 말한 진단명에 더없이 만족하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아직 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으니,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정답에 가까운 상황 아니던가.

근데 몇 시간도 채 지나기 전에 엉뚱한 진단을 들고 와?

“네, 교수님. 교수님 내시경 하시는 동안 몇 가지 검사를 더 해 보았는데, 베게너성 육아종증에 가장 부합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사라.”

장강명은 아직 수술 가운도 채 벗지 못한 상황이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과연 아직 12시였다.

수혁이 나간 게 8시 좀 전이었으니까 기껏해야 4시간밖에 흐르지 않았단 얘기였다.

그사이에 무슨 검사를 했다는 걸까.

“환자에게 문진해 보니 몇 달 전부터 코막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베게너성 육아종증에서 코막힘을 일으키는 경우가 아주 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비인후과 협진을 보았고……. 지금 제가 보내 드린 사진 소견을 보였습니다.”

“사진? 보냈니?”

“네.”

“잠깐만.”

“네, 교수님.”

장강명은 잠시 핸드폰을 내려 두고는 가운을 부리나케 뜯어냈다.

폐기물 통에 던지다시피 한 후 바라본 핸드폰에는 아주 전형적인 베게너성 육아종증 환자의 내시경 사진이 떠 있었다.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이었는데, 코만 그런 게 아니라 목도 그랬다.

“아.”

베게너성 육아종증에서 가장 흔하게 침범하는 부위가 바로 귀, 코, 목 아니던가.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확률로 따지면 90%도 넘어갈 터였다.

수혁은 장강명의 탄식을 배경 삼아 말을 이어 나갔다.

“올라온 후, 확신을 가지고 보니 환자분 눈도 빨간 게 괜히 빨간 게 아닌 거 같았습니다.”

“눈이 빨갰나?”

“네, 환자는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고 진술했고……. 저도 간과한 사항입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냐.”

교수인 자신도 전혀 생각지 못했던 사안 아닌가.

그걸 레지던트가 놓쳤다고 뭐라 한다면 그건 또라이였다.

아니면 이제는 잘려 버린 서효석이거나.

“해당 소견에 대해 안과 협진을 봤는데, 안과에서는 양측 눈동자 가장자리에 궤양성 병변이 관찰된다고 합니다. 이 또한…….”

“베게너에서 나타날 수 있는 소견이지, 근데 말야.”

계속 놀라고만 있던 장강명이 다급히 수혁의 말을 끊었다.

지금 들은 소견과 사진을 보니 환자에게 베게너성 육아종증이 있는 건 맞는 말인 거 같았다.

‘그래, 그러고 보니……. 흉부 엑스레이 소견도 들어맞아.’

결핵이나 농이라기엔 모양이 좀 달라 보이지 않았던가.

물론 흉부 CT를 찍어 봐야 더 확실해지긴 하겠지만.

베게너라고 하면 엑스레이도 좀 더 그럴싸했다.

하지만 문제는 대장이었다.

다년간 아니, 십 년도 넘게 대장 내시경을 해 온 몸 아니던가.

이 병원이 작은 병원이라면야 또 모르겠지만.

불과 1, 2년 전까지만 해도 부동의 1위였던 병원에서 그만큼 열심히 내시경을 했는데 베게너가 대장 침범한 경우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더랬다.

‘케이스야…….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확신해선 안 돼.’

의학은 수학처럼 공식대로 딱딱 맞아떨어지는 학문이 아니었다.

그런 부분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어떤 현상을 통계적으로 정리한 학문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

즉 너무 드문 상황을 산정하고 치료에 임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 말이었다.

“베게너성 육아종증이 대장을…… 아니, 소화기계를 침범하는 게 얼마나 드문지 아니?”

혹시 그런 걸 이놈이 모르나 싶었다.

교수의 노파심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이렇게 물었더니, 수혁은 정말이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꾸했다.

“베게너성 육아종증에서 귀, 코, 목을 침범할 확률은 92%입니다. 폐가 85%, 신장이 77%, 관절이 67%, 발열이 50%, 체중 감소가 35%, 안과 질환이 16%입니다.”

“어…….”

장강명은 순간 내가 컴퓨터랑 통화하고 있나 하는 착각이 일었다.

뭔 놈의 인간이 확률을 줄줄 꿰고 다닌단 말인가.

막말로 베게너성 육아종증이 흔한 것도 아닌데.

‘아……. 노티 하려고 틀어 놨나?’

그런가 했는데, 자세히 들어 보니 딸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팡이 소리였다.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한 손으로 지팡이 짚고, 한 손으로 통화하고 있다면 남는 손이 없지 않은가.

‘외우고 다니는구나. 이 미친…….’

역시 괴물이란 생각이 들려는 찰나, 수혁이 말을 이었다.

“교수님 말씀대로 베게너에서 위장관 침범은 통계로 잡히지도 않을 만큼 드뭅니다. 10년 내로 발표된 케이스 리포트를 뒤져 봐도 한 건 정도 있을 정도입니다.”

“어, 그래. 그렇다니까, 너무 드물어.”

“하지만 교수님.”

“응?”

“그렇다면 베게너와 거대세포바이러스 대장염이 동반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어…….”

듣고 보니까 그렇긴 했다.

변수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확률은 낮아지니까.

“그렇긴 한데……. 치료가 정반대가 되지 않니?”

“그게 문제입니다. 베게너가 맞으면 면역 억제제를 써야 하는데…….”

“거대세포바이러스 대장염이 맞으면 미친 듯이 날뛰겠지. 흠.”

아까까지만 해도 환자의 존재 자체를 잠시 잊었을 정도로 확신에 차 있었는데.

베게너란 말을 듣고 나니 혼란스러워졌다.

수혁도 고민되기는 매한가지였다.

이런 경우가 제일 어려웠으니까.

가령 결핵성 장염인지 아니면 크론인지 여부는 단순히 내시경만 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치료를 막 미루기엔 환자 상태가 너무 나쁜 경우도 있는데, 둘 중 하나를 선택하기엔 치료 방법이 정반대였다.

하나는 감염 질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자가 면역 질환이니까.

지금 이 경우도 완전히 똑같다고 보면 되었다.

“우선 거대세포바이러스와 같은 감염 질환으로 상정하고 약은 쓰면서……. 아까 오전에 나간 조직 검사 결과를 푸시 해 보면 어떨까 합니다. 그러면 좀 더 빨리 환자 진단도 될 거고, 치료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넌…… 넌 아예 베게너로 확신하고 있구나.”

“네, 이 환자 전신 증상 전체가 다 베게너로 설명이 됩니다. 거기서 대장염만 다른 질환이라고 하는 건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면역 억제제를 썼다가 바이러스 질환이 맞으면 돌이킬 수 없으니……. 확인은 해 봐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으음.”

장강명은 장탄식을 내뱉다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무 감탄하는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그랬다.

‘얜 늘 논리가 단단해…….’

하지만 만약 들킨다고 하더라도 지나치단 소리는 안 들을 자신이 있었다.

우선 이현종, 신현태, 조태진 3인방보다야 낫지 않던가.

그 셋이 오두방정 떠는 거에 비하면 뭘 해도 오버는 아니었다.

게다가 이놈은 정말 대단한 놈이었다.

‘그런데 그 논리에서도 혹시를 염두에 둔다 이거지……. 아직 서른도 안 됐는데……. 혼자 결정해 온 것도 아닌데 말야.’

단순히 똑똑한 것을 넘어 겸손하고 또 신중했다.

솔직히 장강명 본인이 레지던트에 이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여 주고 또 이 정도의 사랑을 받았다면 훨씬 교만했을 거 같았다.

세상이 얼마나 쥐알만 해 보이겠는가.

다 쉬워 보일 텐데.

수혁은 신중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감이야 있어 보였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불쾌함은 단 한 번도 준 적이 없었다.

‘안 되겠는데?’

과장 자리 그거 확실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병원 사람에게, 그것도 보직 맡은 교수에게 몇 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인데 고작 과장 하나 됐다고 기조실장 자리를 보장받을 수 있을까.

당장 내년 인사만 해도 신현태 말고는 죄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태화 의료원이 독보적인 선두 자리에서 무섭게 추월당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 와중에 제일 큰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현종과 그 추종자 신현태의 목이 안 날아간 게 이상하긴 했지만.

아무튼, 장강명은 차라리 이런 우수한 친구를 소화기내과 분과로 끌어들여서 같이 남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업적을 쌓는 게 길게 볼 때 더 나을 거란 판단을 내렸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내가 병리과 푸시 할 테니까……. 환자에게는 설명해 놔. 대장염이 거대세포바이러스가 아니거나, 맞는다고 하더라도 소견이 호전되면 바로 베게너성 육아종증에 대해 치료할 거라고.”

“아, 네. 교수님. 교수님이 직접…… 푸시 하신다고요?”

“어, 나 그쪽이랑 친해. 친하니까 아마 빨리해 줄 거야. 이수혁 선생은…… 환자에게 설명만 해 줘.”

“네, 교수님.”

장강명은 수혁의 목소리에서 끊으려는 의지를 읽어 냈다.

아마 예전 같았으면 그냥 그러라고 뒀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이놈은 무조건 잡아야 했다.

정말이지, 무조건.

“아, 그리고.”

“네.”

“잘했어. 내가 어지간해서는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대단하다, 진짜.”

“감사합니다, 교수님.”

해서 좀 작위적인 칭찬이라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중동 가서 확실하게 작업해야지.’

3월을 기약하면서였다.

[장강명이 확실하게 넘어왔군요.]

‘소화기내과라…….’

[커다란 과입니다. 교수만 마흔이에요.]

‘미쳤다, 진짜.’

교수만 많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는 부동의 인기 분과 1위이기도 했다.

맵고 짠 음식을 즐겨 먹는 데다가 국물은 나눠 먹는 식습관 때문에 위암 발병률이 세계 1위지 않은가.

위염이나 위궤양 등은 덤이었다.

거기에 더해 간암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비형 간염이 좀 줄어드나 싶었는데, 이제는 또 알코올성 간염 및 간 경화 그리고 간암이 기승인데, 이것도 OECD 국가 중 1위였다.

[술을 그렇게 먹고, 안주로 매운 거 같이 나눠 먹으니 속이 버티나요. 문화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닌 데다가, SNS 통해서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양상입니다. 아마 앞으로도 소화기내과의 미래는 밝을 겁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해…….’

[그에 비하면 감염내과는 어둡죠. 판데믹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글쎄요. 지금 같아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긴…… 사스가 마지막 아냐?’

[그렇죠. 순환기내과라고 밝은 건 아닙니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에 대한 대국민 홍보로 만성 질환자가 줄고 있어요. 실제로 심근 경색 환자가 점점 줄고 있습니다.]

‘통계로 보여 줬지.’

예전엔 당뇨니 고지혈증이니 하는 병들을 병이라고 인식하질 않았더랬다.

당연히 약도 먹지 않았고.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사람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점점 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약도 먹기 시작했다.

그 결과 심근 경색, 뇌출혈, 뇌경색 등의 질환들이 줄어들고 있었다.

한창 수혁이 필드로 나갈 때쯤이면 더 줄어 있을 게 뻔했다.

‘혈액종양내과는 어때?’

[미래가 밝죠. 하지만…….]

‘하지만 뭐.’

[지난 세기……. 100년간 인류가 온 힘을 다해 암과 싸웠지만 졌다는 최종 리포트도 있지 않습니까? 수혁이 드라마틱한 변화를 보여 준다면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이쪽은 약 개발이 우선이지, 임상의의 실력이 우선은 아닙니다.]

‘하긴 그것도 그렇네……. 하, 미치겠네?’

[우선은 환자부터 보시죠. 제일 잘 꼬시는 사람한테 가면 되겠죠. 아니면…….]

‘아니면 뭐.’

[아닙니다. 아직 판단이 서질 않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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