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2화 (222/1,303)

222화 편해져야 되는데? (2)

수혁이 바루다가 띄워 준 정시윤 선생의 손가락 사진을 보며 절망하고 있는 동안, 바루다는 성실하게 청진음을 분석해 내었다.

[분석 결과 청진음은 깨끗합니다.]

‘역시 그렇구만.’

[본인이 들은 것처럼 으스대진 마시고…….]

‘내 귀로 들었잖아. 인지한 게 너지.’

[어차피 남친 있다니까요?]

‘남친 있으면 자랑도 못 하냐?’

[왜 굳이 자랑을……. 대체 왜 점점 사람이 찌질해지는지……. 주변에서 그렇게 우쭈쭈해 주는데, 그걸론 모자랍니까?]

수혁은 마지막 팩트 폭행을 애써 무시하고는 정시윤을 돌아보았다.

바루다의 말과는 관계없이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태화 의료원 개원 이래 최고의 천재라는 수혁과 함께 진단 과정에 참여하고 있지 않은가.

비록 같은 과 소속이라곤 해도 쉬이 접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태화 의료원은 아주 바쁜 병원이었고, 그중에서도 기둥이라 할 수 있는 내과는 더더욱 바빴으니까.

“내가 듣기에도 깨끗해. 증상이 없어졌고, 엑스레이 소견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청진음도 뒷받침해 주고 있어. 새로운 증상으로는 설사가 있고……. 뭐 더 봐야겠지만, 이쯤 되면 다른 질환이 생겼을 가능성을 의심해 봐야 해.”

“아……. 그럼…… 대장 내시경을 해 볼까요?”

“그전에 일단 직장 수지 검사(DRE, digital rectal exam)해 보고. 피가 묻어 나오면 더 의심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잖아? 의뢰서에 쓰기도 좋지.”

“아……. 그거, 그렇네요. 선생님. 역시…….”

수혁은 정시윤의 감탄한 얼굴을 뒤로하고 환자를 바라보았다.

이제 겨우 폐렴이 좋아지나 싶었는데, 설사가 시작된 직후라 그런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전하고자 하는 말도 딱히 좋은 말이 아니다 보니 수혁으로서도 조금은 민망함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사가 된 이상 나쁜 소식 전하기는 숙명이었다.

따지고 보면 또 그렇게까지 나쁜 소식도 아니지 않은가.

귀찮아졌을 뿐, 치료 방법은 있으니까.

“환자분, 새로 생긴 설사 말입니다. 원인이 장염일 수도 있겠어요. 몇 가지 검사를 해 봐야 할 거 같은데, 괜찮으실까요?”

“아……. 네, 뭐. 이거 꼭 필요하다면…….”

다행히 환자는 아주 협조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수혁이 설마하니 자랑하려는 의도 하나만 가지고 환자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댔겠는가.

바로 앞에서 주치의를 부드러운 어조로 가르치는 것만큼 환자에게 신뢰감을 심어 주는 일도 드물었다.

“네. 이게 좀 불편한 검사가 있어요. 아무래도 설사다 보니.”

“어……. 지금 해요?”

환자는 다짜고짜 장갑을 끼고 있는 수혁을 보며 살짝 불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결코 오버하는 것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 할 검사는 언제 어디서 받아도 꺼려지는 검사였으니까.

“네. 잠시만 일어날 수 있어요? 시윤아, 너는 커튼 좀 쳐 줘.”

“네.”

“커튼……?”

물론 환자는 직장 수지 검사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그게 무슨 검사를 말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저 시키는 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앉을 뿐이었다.

그사이 정시윤은 커튼을 쳐 바깥에서 안을 볼 수 없도록 조치했다.

“자, 이제 저기 침대 머리맡에 있는 철 있죠. 그걸 잡으면서 허리를 숙여 보세요.”

“이렇게요?”

“아니, 아니. 엉덩이를 제 쪽으로요.”

“어……. 설마 엉덩이를?”

“네. 손가락을 살짝 넣어서 양상을 볼 겁니다. 아주 빠르고 간편하게 검사할 수 있어요.”

“그…….”

“아프지 않아요. 여기 보시면 마취액도 바릅니다.”

수혁은 일부러 ‘나는 공감 능력이 떨어집니다’라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예전에는 이 검사가 꼭 필요하고, 또 안 불편하니까 좀 꺼려져도 꼭 받으셔야 된다 뭐 이런 식으로도 설명하곤 했지만.

지나고 보니 민망할 만한 검사나 술기를 할 때는 이렇게 하는 게 피차 편했다.

상대가 나를 너무 인간적으로 대해 주고 있는데 엉덩이를 까려면 얼마나 곤욕이겠는가.

“알겠습니다. 그…….”

환자는 정시윤에게 눈길을 주다가 이내 두 눈을 질끔 감고는 바지를 내렸다.

“자, 그럼 바로 갑니다.”

“네. 윽.”

이럴 때 망설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

바지를 서슴없이 내린 환자의 용기에 부응해 줘야만 했다.

해서 수혁은 검지를 쑥 넣었다가 뺐다.

예고했던 대로 순식간이었지만, 수혁이 알아낸 정보는 적지 않았다.

[촉감 분석 들어갑니다.]

‘음.’

[왜 그렇게 찡그려요?]

‘이런 감각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걸 느끼는 게……. 그렇게 좋은 일은 아니거든.’

[그럼 해당 검사에 대한 데이터화를 중단합니까?]

‘아니, 아니. 그래도 해야지……. 저장해.’

[어쩌라는 건지 원.]

바루다는 수혁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이때까지 수혁이 수행했던 직장 수지 검사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다.

“음.”

“왜 그러세요?”

“아니, 아냐. 잘 봐 봐. 피는 전혀 묻어 있지 않지?”

“아, 네. 그렇네요?”

“성상은 물 같고.”

“네.”

분석에 들어가자마자 검지로 쓸데없이 디테일한 감각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수혁은 그것을 애써 잊기 위해 부지런히 입을 놀렸다.

장갑만 봐도 알 수 있는 정보를 얘기하면서였다.

‘하아.’

환자는 아주 복잡한 심경이 되고야 말았다.

자신의 엉덩이에 들어갔다 나온 것을 보며 의사 둘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정시윤이라고 하는, 자신의 주치의라 얼굴이 익숙한 선생은 메모까지 하고 있었다.

“물 같으면서…… 혈변은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슈도 멤브라노우스 콜라이티스(Pseudomembranous colitis: 거짓막대장염) 가능성이 있는 걸까요?”

“알 수 없지만 그럴 공산이 크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분석을 끝낸 바루다도 의견을 보탰다.

[검지로 느껴진 변들의 양상이 덩어리져 있지 못합니다. 거의 준액체 수준이에요. 치핵은 문제없어 보이고……. 손가락이 닿은 부위까지는 덩이가 있진 않습니다.]

‘그럼 결국 거짓막대장염 가능성이 제일 높은 거지?’

[제 판단은 그렇습니다.]

‘오케이.’

수혁은 자신의 의견과 바루다의 의견이 합치되는 순간, 재차 입을 열었다.

“일단 그렇게 의뢰를 내자. 확인하기 전에 약은 메트로니다졸 추가하고.”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수고해.”

“네, 선생님!”

수혁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대는 정시윤을 뒤로하고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도 잠시 정시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원래 1년 차 입장에서는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위 연차가 명확히 지시해 주면 지시해 줄수록 좋은 법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위 연차가 수혁과 같이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았다.

그 구체적인 지시가 정확할 가능성이 더 커질 테니까.

‘나 좀 멋지지 않냐.’

[왜 그러세요, 정말. 그냥 우리 의학만 들들 팝시다. 네?]

‘그렇게 의학만 파다간 끝이 딱 이현종 원장님이라고…….’

[얼마나 좋아요? 가는 곳마다 존경받고.]

‘집 가시면 혼자라 심심하시니까 맨날 신현태 과장님 방 놀러 가거나, 아예 병원에만 있잖아. 난 외롭게 살기 싫다…….’

[제가 평생 지켜 줄게요.]

보통은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좋아야 하겠지만.

깡통에게, 그것도 바루다에게 듣는다면 싫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이놈만 지켜 주는 미래가 그려지기도 해서였다.

묘한 현실감이 더 싫다고나 할까?

‘으.’

[왜 소름이 돋죠? 흥분했습니까?]

‘꺼, 꺼져…….’

[저까지 꺼지면 진짜 혼자일 텐데.]

‘하지 마……. 그런 말……. 나 아직 어리다고.’

[이제 곧 29살인데요? 20살 때 3개월인가 사귄 게 마지막이었으니 사실상 29년 혼자서 지낸…….]

‘아, 시끄러워.’

수혁은 더 듣기 싫다는 얼굴로 당직방 문을 밀어 열었다.

이현종이 원장이 된 이래 레지던트를 비롯한 병원 내 약자들 복지에 제법 신경 써 준 덕에 이제는 더 이상 문에서 삐걱대는 소리가 나진 않았다.

하지만 바루다도 수혁도 사정없이 울려 대는 소음에 귀를 막을 수밖에 없었다.

진원지는 컴퓨터였다.

[안 껐어요? 소리?]

‘껐는데 이러네?’

[껐는데 이런다고요? 깡통이라 그런가, 바꾼 지 얼마나 됐다고. 아, 시끄러.]

잠시 태화 전자가 컴퓨터를 잘 못 만드나 싶을 정도로 시끄러운 소음이었다.

수혁은 분명 자신이 소리를 껐다는 걸 바루다가 쌓아 둔 데이터를 통해 재차 확인하며 다시금 알람 소거 버튼을 컸다.

띠띠띠.

하지만 그럼에도 알람은 수그러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시스템 오류인가보다. 이거 보고해야겠는데?’

[제 조물주들께서도 실수를 하긴 하는군요.]

해서 아예 본체 쪽에서 음소거를 하려는데, 바루다가 빽 하고 소리쳤다.

[잠깐, 잠깐!]

‘아, 왜. 너도 고장 났어?’

[그럼 제일 큰일 나는 건 수혁 아닙니까?]

‘어……. 그건 그렇지. 고장 나지 마라, 제발. 근데 왜 그래, 인마.’

수혁의 말에 바루다는 수혁의 망막에 맺힌 상 중 어느 것을 가리켰다.

바로 수혁이 음소거한 버튼 옆으로 떠 있는 작은 글자였다.

“뭐야 이거.”

[저랑 대화 중일 때 소리 내서 말하지 말라니까요? 99% 확률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뭐 어때, 둘밖에 없는데. 아무튼, 뭔데 이게. 뭔 소리지?”

[‘예외 상황을 제외한 경우의 알람음을 소거합니다’라고 써 있네요.]

“그럼 지금 예외 상황이 발생했다, 이거야? 예외 상황에 뭐가 있지?”

[어제 받은 설명서 켜 보시죠. 같은 폴더 내에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예외 상황이 뭔지 바로 그 자리에서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아무래도 베타 버전이라 그런지, 사용자 편의를 고려한다기보다는 순 개발자 편의대로 만들어져 있었다.

어차피 이 상황에서 이런저런 불평을 늘어놓는 건 아무 의미 없기 때문에, 수혁은 군말 없이 설명서를 켰다.

검색해 보니 예외 상황이란 다음과 같았다.

[대형 재난(경증 외상 환자 10명 이상 또는 중증 외상 환자 3명 이상)]

[집단 감염 의심 상황(당일 패혈증 의심 환자 열 명 이상)]

[중환자실 내에 인접한 환자에서 동일한 곡선을 그리는 활력징후 변화]

항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신현태가 요청한 사항인 듯했다.

비의료인은 이러한 사정을 결코 알 수 없을 터였다.

게다가 묘하게 초점이 주로 감염에 가 있기도 했고.

아무튼,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하는 상황이 터진 모양이었다.

‘뭐지, 뭐야?’

[띠띠띠는 집단 감염 의심 상황이군요. 근데…….]

‘근데 뭐.’

[오늘 발생한 패혈증 의심 환자 수가 열 명을 돌파한 것은 맞습니다만, 병동이 제각각입니다.]

‘아씨.’

하루 만에 패혈증 의심 환자가 열 명 넘게 신규로 발생한 것은 물론 큰일이었다.

제아무리 큰 병원이라 해도 이상하게 많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하지만 서로 접점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것은 전혀 주목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감염을 일으킨 게 아니라, 그냥 각 과에서 그런 환자를 많이 입원시켰을 테니까.

‘이것도 꺼 버려야지.’

[네, 아무래도 깡통이다 보니 많이 모자라군요.]

해서 수혁은 개선 사항에 이런 경우를 제외할 것을 요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전체 알람을 음소거 처리했다.

그랬던 수혁이 조금 긴장한 얼굴이 된 것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오늘 신규 발생 패혈증 환자가 열 건이 넘는군요?]

‘이틀 연속……?’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건 좀…… 이상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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