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3화 (223/1,303)

223화 편해져야 되는데? (3)

이틀 연속 신규 패혈증 환자가 열 건이 넘어가다니.

제아무리 환자가 몰리는 태화 의료원이라고 해도 예삿일은 아니었다.

전원 온 환자를 포함한 수치라면야 노상 있는 일이라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이 수치는 오로지 병원 내에서 발생한 것만을 추려 낸 결과물이었다.

이상했다.

“음……. 협진이 몰리긴 했어.”

해서 내과 과장이자 감염 내과 교수 신현태를 곧장 찾아갔다.

다른 놈의 말이라면야 가뜩이나 바쁜데 와서 훼방 놓는다고 뭐라고 했겠지만.

상대가 수혁이지 않은가.

신현태는 곧 진중한 얼굴이 되어 협진창을 띄웠다.

원래도 감염 내과가 협진이 좀 많은 과이긴 하지만.

어제오늘은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몰려 있었다.

“음……. 이틀 사이에 18건이나 되네. 죄다 패혈증이야. 항생제 문의도 아니고.”

게다가 평소 협진과는 내용마저 달랐다.

보통 감염 내과로 주는 협진은 배양 검사에서 MRSA(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 감염: methicillin-resistant Staphylococcus aureus infection)와 같은 내성균이 나왔으니 항생제 사용 제한 좀 풀어 주세요, 또는 이러이러한 균이 나왔는데 대체 항생제는 뭘 써야 합니까가 주를 이루었다.

당연히 감염 자체를 해결해 달라는 협진도 있기야 했지만, 지금처럼 이렇게까지 많지는 않았다.

“이상하긴 하네.”

“환자들 사이에 상관관계는 없을까요?”

수혁은 자신의 당직방에 깔린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아직 베타 버전이라는 말도 붙이기 좀 그런 초기 버전이라 그런지, 사용자 편의는 개나 줘 버린 프로그램이었다.

어디 병동에 알람이 울린다 정도만을 알려 줄 뿐, 환자가 어느 병실에 있는지, 심지어 어느 과에 입원해 있는지조차 알려 주지 않았다.

해서 바로 파악이 좀 어려웠는데, 다행히 협진 노트는 그렇지 않았다.

“잠깐만……. 일단 내과가 둘. 외과 여섯, 정형외과 넷, 이비인후과 넷, 성형외과가 하나, 안과 하나. 중구난방이네, 일단 과는.”

“음……. 그렇네요.”

어느 한 과 소속 인원이 여기저기 다니면서 감염을 퍼뜨렸다는, 조금 서글픈 가설은 다행히 빗나간 셈이었다.

[하긴 태화 의료원이 원내 감염을 얼마나 신경 쓰는데, 그럴 리는 없죠.]

‘그렇지? 심심하면 의료진 손 닦기 검사하잖아.’

그냥 손 닦으라고 교육만 하는 게 아니었다.

레지던트들 사이에서는 암행어사로 불리는 의료 질 관리 향상팀의 일원들이 사복을 입고 돌아다니면서 손 제대로 안 닦는 인원을 적발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그렇게 적발되면 어떤 식으로든 불이익이 주어지기 마련이었다.

꼭 직접적인 불이익이 아니더라도, 레지던트 입장에서는 소속과 위 연차나 교수에게 알려지는 것만으로도 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예고라도 하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었기에 다 같이 조심하고 있었다.

“입원 일자를 볼까? 음……. 이것도 중구난방이야. 이비인후과, 안과, 성형외과는 전원 수술 전날 입원한 환자들이야. 그냥 루틴 환자들이지.”

“기저질환이 있거나 하지도 않겠죠?”

“일단 볼게. 음…….”

신현태는 수혁의 말을 듣자마자 차트를 하나하나 까 보기 시작했다.

사실 까 보지 않는다 해도 기저질환이 있진 않을 거란 확신이 있기는 했다.

이비인후과의 경우 두경부 암센터 수술이 아니라면 대개 삶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수술 아니겠는가.

마취가 위험할 정도의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가 단지 불편 해소를 위한 수술을 받지는 않을 터였다.

안과나 성형외과도 대개는 그랬다.

“없어. 야, 이비인후과는 나이도 다 20대 아니면 30대야. 성형외과……. 안과도 그렇고. 그래서 그런가. 감염이 있기는 한데, 코스가 나쁘진 않네. 여긴 항생제 문의를 위해서 협진을 냈어. 너네한테도 냈네.”

“호흡기요?”

“응. 전과 요청도 냈는데? 안과는?”

“거참…….”

환자 좀 안 좋아졌다고 바로 전과 요청이라니,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마이너 서저리 과에서 폐렴을 볼 수 있겠습니까? 안과는 중환자실 배정도 안 되는 과예요.]

‘그건 그렇지.’

[그리고 마이너 서저리 과들과는 사이가 좋으면 좋을수록 좋습니다. 어찌 되었건 부탁할 일이 많은 건 우리 쪽이에요.]

‘그것도 그래.’

바루다의 폭풍 같은 조언에 마음을 고쳐먹었다.

구구절절 옳은 얘기 아니던가.

비록 마이너 서저리 과들, 즉 안과, 이비인후과 등이 사람 생명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아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중증 상황에 익숙하지는 않지만.

직접적으로 불편할 수 있는 감각을 다루는 과들이었다.

내과 환자들 중 만성 환자들은 결국 저쪽으로 불편함이 쏠리는 경우가 많기에 늘 신세를 진다고 보면 되었다.

“그건 제가 이따가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이거 그럼 집단 감염 가능성은 없는 거겠죠?”

“아니, 그렇게 단언할 수는 없어. 과가 달라도…… 약제실에서 제조되는 약을 썼으면 혹시 모르는 일이야.”

“아……. 그렇구나.”

수혁은 대번에 다른 병원에서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불특정 다수에게서 갑자기 심각한 감염이 발생했던 사고였는데, 원인은 약제실에서의 감염이었다.

다행히 감염 관리실에서 빠른 대처에 들어가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참사로 이어질 뻔한 사고이기도 했다.

“아무튼, 알려 줘서 고마워. 우리 팀 돌려서 확인해 볼게.”

“네, 교수님. 저도…….”

“어, 당연히 알려 줘야지. 진행 상황 업데이트되면 싹 공유할게. 이거 만약 의미 있는 데이터로 나오면 우리 프로그램에 플러스야.”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수혁은 신현태 교수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가장 가까운 병동으로 가서 컴퓨터를 확인했다.

과연 감염내과 쪽으로 협진 의뢰가 나간 환자 중 일부는 호흡기내과 쪽으로도 나 있었다.

호흡기 증상을 동반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화내면 안 되겠지?’

[수혁도 이비인후과에 어지럼증 협진 낼 때, 어지럼증 검사하고 냅니까?]

‘아니……. 아까부터 자꾸 뼈 때리네?’

[자꾸 화낼 생각만 하니까 그렇죠. 물론 호흡기내과 협진 내는데 엑스레이도 안 찍은 건 좀 너무하긴 했습니다.]

‘그래도 참으라 이거지? 어차피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거 없으니.’

[네, 몰라서 그렇겠죠. 폐렴을 안 보는 과이니까요.]

‘오케이.’

다른 내과 분과에서 낸 협진 케이스는 그래도 동맥혈 성분 검사부터 해서 흉부 엑스레이에 각종 피검사까지 싹 나가 있었지만.

정형외과나 이비인후과를 비롯한 다른 과 협진은 그저 ‘환자가 기침과 가래, 발열을 동반합니다. 고진선처 부탁드립니다.’ 정도의 문장만 적혀 있었다.

심지어 어떤 주치의는 ‘호흡기 진료 필요합니다’라는 문장만 띨룽 남겨 놓기도 했다.

[수술이 바빴겠죠.]

‘아까부터 지나치게 다른 과 두둔한다, 너?’

[데이터 분석 결과 교수 임용 시 타과 평판도 중요하다고 하는군요. 태화는 기업 병원이라 위에서 판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해도, 조심해서 나쁠 거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호. 그래, 그럼…….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처방은 내가 내지, 뭐.’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수혁은 화를 내지 않았다.

바루다의 의견이 퍽 설득력이 있어서이기도 했고, 생각해 보니까 수혁 또한 해당 과에 대한 지식은 개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바루다가 순간 띄워 준 수혁이 이날 이때껏 낸 협진을 보고 나자 더더욱 실감할 수 있었다.

‘일단 처방은 다 냈고……. 흠…….’

[왜 그러십니까?]

‘이게 그냥 우연은 아닐 거 같아서.’

[약제실 확인해 보면 알게 되겠죠.]

‘그거로 결론 나면 좋겠네. 그럼 일이 좀 간단해지잖아?’

[그렇죠. 그럼 저 깡통이 홈런 친 셈이 되는군요.]

바루다는 어쩐지 좀 불만스러운 눈으로 당직방의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프로그램도 질투를 할 수 있다니.

이건 진화라고 봐야 할까, 아니면 쓸데없는 일에 심력을 소모하게 되었으니 퇴보라고 봐야 할까.

수혁은 잠시 세기말적 고민에 빠졌다.

우웅.

하지만 태화 의료원의 빡센 일상은 그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금세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인은 아까 만나고 왔던 신현태 과장이었다.

“아, 교수님.”

“어, 수혁아. 약제실 확인해 봤는데…… 일단 지금 감염 일어난 환자들이 공통된 약을 쓰질 않았어. 단 하나도 겹치는 게 없고……. 심지어 별관 환자들 있지? 이비인후과, 안과, 성형외과.”

“네, 교수님.”

“거기는 그냥 병동에서 믹스 해서 들어간 약들이 다야. 이제 막 항생제 올리고 있지, 원래 루틴대로 들어가던 약만 썼어. 약제실 감염이 원인은 아냐.”

“그럼 우연일까요?”

우연이라는 단어를 말하는데, 이게 참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세상에 학문을 논하는 데 있어서 우연을 언급하다니.

이렇게 나태할 수가 있을까.

심지어 의학은 사람 생명을 다루는 학문 아니던가.

우연이라는 말은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야 겨우 꺼내 봄 직한 이야기라고 보면 되었다.

신현태는 본인이 그렇게 가르치기도 하거니와, 또 이현종에게 그렇게 배운 몸이기도 했기에 대번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지. 그럴 수도 있겠지만……. 오늘도 협진이 나고 있어.”

“네? 오늘도요?”

“어. 정형외과에서 세 개.”

“정형외과에 패혈증 의심 환자가 많을 수는 없지 않나요?”

“그렇지. 당뇨 환자면 뭐 가능성이 있겠지만……. 보통 그러면 내분비내과에서 데리고 있고, 수술 자체를 협진으로 하지.”

“으음.”

“이거 생각보다 심각한 사태일 수도 있어. 나 퇴근 안 할 거니까 뭐라도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 줘. 현종이 형한테도 물어는 봐야겠다. 그 양반이라고 뭐 알까 싶긴 하지만서도.”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교수님도…….”

“응, 당연하지.”

신현태는 굳은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새로 난 협진 케이스를 노려보았다.

다른 창에는 이미 난 케이스의 경과 기록이 떠 있었다.

지금 당장 더 큰 문제로 인식되는 것은 새로 난 쪽보다는 이쪽이었다.

‘경과가…… 너무 빨라.’

나이는 고작해야 만 27살.

흡연을 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헤비 스모커도 아니었거니와 수술 전 시행한 엑스레이는 깨끗 그 자체였다.

평소 취미로 축구를 즐겨 했다는 것으로 봐서는 심폐 지구력도 나쁘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협진 받자마자 수혁이 처방 낸 것으로 보이는 엑스레이 사진은 지저분하기 짝이 없었다.

‘열이 40도……. 약이 들어가고 있는데도 이런 거지, 이거?’

발열이 전신 마취 후 일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분적인 무기폐 또는 탈수 등에 의한 것이 아니란 것은 이비인후과에서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신현태와 수혁이 필요한 검사 및 조치를 취한 다음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환자 증상 조절에 힘쓰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환자의 증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이 환자에게서만 그렇다면 좀 나을 텐데.

문제는 다른 환자에게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경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당직방에 앉아 있던 수혁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미쳤네, 뭐가 이렇게 빠르지? 이거 뭐…… 에볼라 같은 거 아냐?’

[무식한 소리는 하지 마시고요……. 딱 봐도 세균성 폐렴 양상이거든요?]

‘아니, 너무 빠르니까 하는 얘기지. 이건 마치…….’

[마치 뭐요.]

‘누가 일부러 폐에 균이라도 넣고 휘젓기라도 한…… 어?’

[어? 뭐. 야, 너 왜 혼자 알아차린 듯한 얼굴하고 일어나냐. 야, 어디 가. 어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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