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5화 (225/1,303)

225화 편해져야 되는데? (5)

“뭐야, 잘 안 돼?”

신현태는 한껏 으스대다가 혼비백산한 얼굴로 전화를 끊고 있는 이현종을 보며 물었다.

벌써 앉은 자리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였다.

절반은 못 듣긴 했지만.

아무튼,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환자가 산모래! 응급 씨섹(C-sec: 제왕절개) 하러 들어가는 거라……. 이게 마취과에도 지금 연락 갔대!”

“아, 이런 망할!”

제아무리 응급 수술이라 해도 수술을 하고 싶다면 일단 마취과에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현대 의학에서 수술의 발전은 곧 마취 의학의 발전이라 해도 좋을 만큼 커다란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취가 없으면 대부분의 수술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될 지경이었다.

즉 일단 마취는 필수였다.

그리고 마취에서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마취과에서 일단 랩이라도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몇 가지 예외로 두는 상황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산모였다.

분초 사이에 두 사람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었다.

“수혁아! 너도 따라…… 아니, 천천히 와! 일단 우리가 갈게!”

“오늘 산부인과 당직 누구야? 왜 전화가 안 돼!”

오랫동안 대학 병원에서 일해 온 사람들인 데다가, 보직도 맡고 있는 사람들 아닌가.

몇 마디 대화가 없어도 각 과 돌아가는 사정을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다.

[와, 빠르다.]

바루다는 눈 깜짝할 새에 달려 나가 시야에서 사라진 둘을 보며 감탄했다.

수혁도 나름 지팡이 짚고 선전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아예 노인들도 아니고, 맨날 나다니는 사람들이 전력을 다해 달리는 것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산모라니. 괜찮겠지?’

[산부인과 쪽에서 밀고는 들어가도 마취까지 걸지는 않으니까요. 그래도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난리날 뻔했네요. 왜 3번 방으로 가는 거야?]

‘나도 모르지. 거기 들어가 본 지 오래돼서.’

인턴 때나 몇 번 들락거렸을 뿐, 레지던트 이후로는 일전에 흉부외과 수술 따라 들어간 거 말고는 경험이 아예 없었다.

[일단 천천히 가 보죠. 어차피 수술방 안을 들여다보긴 해야죠. 마취 가스가……. 의외로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지?’

[네. 진심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한번 보긴 봐야죠. 그게 이현종, 신현태의 가르침 아닙니까? 바루다 또한 둘의 지침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나도 그렇긴 해.’

수혁은 바루다와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며 발을 옮겼다.

간혹 내가 예전처럼 잘 달릴 수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좋게 생각하면 또 장점도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과장하고 원장은 뛰는데 레지던트인 자신은 걷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하지 않았다면 후레자식 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수혁은 참 긍정적이어서 좋습니다.]

이 점은 바루다마저 인정하는 바였다.

덕분에 수혁은 이번에도 딱히 우울해지는 일 없이 수술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원래 같으면 탈의실로 가서 수술복으로 갈아입고 들어가야 하겠지만.

응급 상황에서는 모든 규정이 뒤바뀌는 법이었다.

“이수혁 선생님?”

딱 들어서자마자 대기실 간호사가 덧가운을 챙겨 주었다.

“원장님이 곧 오실 거라고 하셔서요.”

“아, 감사합니다.”

“혼자 괜찮으세요?”

“이 정도는 괜찮아요. 여기 앉아서 하면 됩니다.”

“네, 지팡이는 저 주세요.”

“환자는 어떻게 됐어요?”

수혁은 간호사에게 덧가운을 받으며 지팡이를 건네주었다.

간호사는 지팡이를 한 손으로 든 채 대기실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딱 방금까지만 해도 미친 듯이 번잡스러웠는데, 지금은 고요하기 짝이 없었다.

“원장님이 잡아서요. 지금은 4번 방으로 갔어요.”

“아……. 3번 방엔 아예 안 들어간 거예요?”

“아뇨. 들어가긴…… 했죠.”

“아, 그렇군요. 음.”

가능성이 작은 것은 사실이었다.

수술실 내에서 마취 가스 말고 다른 원인으로 감염이 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가동 중일 땐 항상 공기를 밖으로 내보내고 있는 데다가, 주기적인 소독도 이루어지는 곳이지 않은가.

하지만 그럼에도 완전히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주의에 주의를 거듭해야 옳았다.

“왜…… 무슨 문제 있나요? 아까 원장님이랑 신 과장님도 환자 일단 1인실로 보내라고 하시던데.”

“3번 방 오염 가능성이 있어서요.”

“네? 오염이요?”

오염 소리를 듣자마자 간호사 얼굴이 불그죽죽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수술실 관리는 수술실 소속 간호사들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게 기구의 오염이나 소독 미비로 인한 감염이라고 판정이 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암센터 수술실 수간호사부터 해서 간호부장까지 줄줄이 갈려 나갈 수도 있었다.

“아, 생각하시는 그런 오염은 아닐 거예요. 태화 의료원 프로토콜이 만만하지는 않잖아요.”

“그건 그런데…….”

“일단 들어가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진 마시고요.”

“아, 네.”

“그, 지팡이는 주셔야 갈 수 있어요.”

“죄송합니다.”

수혁은 당황한 간호사를 뒤로하고 3번 방으로 향했다.

딱 위치를 알자마자 왜 산부인과에서 굳이 3번 방으로 밀고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좌측으로 늘어서 있는 1번 방, 2번 방은 수술 중이었으니,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보인 게 3번이었을 터였다.

“어, 왔어? 혹시 모르니까 마스크 껴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먼저 들어와 있던 신현태가 마스크부터 건네주었다.

태화 의료원이라는 거대한 병원의 감염내과 교수이자 감염관리실장으로 있다 보니 별의별 일을 다 겪은 탓이었다.

아무리 조심해도 생길 감염은 생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지난 세월 동안 겪은 바 있었다.

어쩌면 여기 어딘가 공조 시설이 박살이 나서 이 방으로만 호흡기 감염원이 쏟아지고 있을 수도 있었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네, 교수님.”

수혁도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뭐가 되었건 신현태의 표정이 진중한 데다가 조심하는 게 좋다는 바루다의 의견도 있어서 순순히 마스크를 끼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게 문제지, 뭐.”

신중한 신현태와는 달리 이현종은 발로 마취 가스통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자꾸 저렇게 하다가는 멀쩡했던 것도 망가지는 거 아닐까 싶을 지경이었다.

“헥헥.”

해서 좀 말리려고 하는데 뒤쪽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수혁으로서는 얼굴이 낯선 누군가였다.

물론 신현태나 이현종에게도 그렇진 않은 모양이었다.

“어. 김 과장 왔어?”

“아……. 네. 그……. 마취과 때문에 감염이 일어났다는 게 무슨 일이신지…….”

마취과 김세희 과장이었다.

정말이지 놀란 얼굴이었는데, 머리까지 산발이라 안타까워 보일 지경이었다.

“아, 내가 그랬나.”

정작 그 모습을 야기했다고 볼 수 있는 이현종은 태평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취과 때문이 아니라, 마취 가스 때문에 일어난 거 같다고.”

“어떤……. 어떤 감염이요?”

김세희는 졸린 와중에도 본인이 며칠간 전해 들었던 일을 전부 떠올리려고 애썼다.

아무래도 과장 위치에 있다 보니 노력하지 않아도 이것저것 들려오기 마련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감염의 ‘ㄱ’자도 들은 게 없었으니까.

김세희 과장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만큼 수혁과 신현태 측에서 대응이 빨랐을 뿐이었다.

원인 미상의 집단 감염이, 심지어 딱히 보이는 직접적인 연관 관계도 없는데 이렇게 빨리 규명된 경우는 아마 세계 어디를 뒤져 봐도 찾아보기 어려울 터였다.

“세상에 병원이 뒤집어졌는데 그것도 몰라? 한 과의 과장이라는 사람이?”

물론 이현종은 상식이 좀 부족한 위인이었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무조건 상대도 알고 있어야 된다고 믿는 편이라고 해야 할까.

다행인 건 김세희도 이현종을 하루 이틀 대하는 건 아니란 점이었다.

김세희는 죽자고 당황하는 대신 신현태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신현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현종의 방금 전 외침은 없었던 일로 여기자고 따로 합의를 한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 이틀 전부터 감염내과 협진이 늘어서 조사하던 중이에요. 그런데 모든 환자가 여기 3번 방에서 수술받은 이력이 있고, 폐렴부터 진행하고 있어서 마취 가스 기원의 감염을 의심하고 있어요.”

“집단 감염이에요?”

“네. 사흘 전부터 이 방에서 수술받은 환자 전원이 가볍든 그렇지 않든 증상을 일으켰습니다.”

“전원 호흡기 감염이고요.”

“네.”

“사흘 전이라…….”

김세희는 아직 눈곱도 떼지 못한 눈을 끔뻑이며 사흘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떠올렸다.

[교수님 마취 가스 교체 작업 루틴대로 완료했습니다.]

마침 월요일이었다.

치프 레지던트가 아마도 병원 직원에게 전달받았을 것이 분명한 종이를 읽었더랬다.

내용은 분명 마취 가스 교체를 그날 했다는 내용이었고.

“저희 그날 마취 가스 교체한 이력이 있는 거 같아요. 확인이 필요하기는 할 텐데…….”

“그럼 이거 당장 까서 안에서 뭔 균 자라는지 봐야겠는데.”

“원장님, 일단 확인부터 하고. 아. 벌써 떼셨네.”

이현종은 김세희 과장의 바람 빠지는 소리를 뒤로하고 마취 가스 증발기를 통째로 뜯어냈다.

그리곤 약속이라도 된 사람처럼 신현태에게 건네주었다.

“무거워. 네가 들어.”

“아, 형. 나도 무거워.”

“그래도 네가 들어야지. 여기 너 말고 이런 거 들 사람이 어딨냐?”

“왜……. 아.”

왜 없냐고 화를 내려고 했는데, 정말로 없었다.

하나는 다리 불편한 수혁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 잠이 덜 깬, 팔다리가 얇기로 유명한 김세희이지 않은가.

이현종은 비교적 건장한 편이지만 이걸 건네주는 동시에 버릇이 없네부터 시작해서 너랑 나랑 몇 살 차이 나는지 아냐까지 거의 삼십 분은 주절거릴 게 뻔했다.

“알았어요, 내가 들을게.”

“그래야지. 근데 뭘 확인하는데?”

“기록이죠, 뭐.”

김세희는 앞장서서 마취과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어! 안녕, 안녕하십니까!”

안에 있던 오늘 밤 당직 치프는 마취과 과장에 원장에 누군진 몰라도 높아 보이는 사람까지 줄줄이 들어오자 부리나케 몸을 일으켜 인사를 올렸다.

“어, 그……. 이번 주 과 회의 자료 좀 줘 볼래?”

“네, 네. 교수님.”

그리곤 김세희 손에 회의록을 넘겨주었다.

김세희는 회의록을 뒤적거리곤 바로 원하는 자료를 찾아내었다.

“암센터 3번 방……. 교체했네요. 증발기까지 싹 해서……. 이 과정에서 오염이 있었나 본데요?”

“휴……. 그나마 찾았네. 감사합니다, 김 교수님. 일단 3번 방 폐쇄해 주시고, 저희는 다른 방 수술 이력 환자들 중에도 혹시 감염 환자 있는지 봐야 되니까 증발기나 가스 교체한 방 있으면 다 알려 주세요.”

“네, 여기. 이게 다예요.”

“그래요. 그럼 일단 가 보겠습니다.”

“네, 과장님. 원장님.”

그렇게 수혁은 신현태, 이현종과 함께 수술실을 빠져나왔다.

증발기를 통째로 든 채였다.

신현태는 손에 쥔, 결코 가볍다고 할 수 없는 증발기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수혁아, 여기서 뭐 나오면 진짜 대박이다. 환자들 대량으로 살린 건 물론이고…….”

“프로그램 효용성도 입증되는 셈인가요?”

“그렇지! 세상에 이렇게 빨리 뭘 찾아내는 경우가 어딨어?”

“그럼 빨리 가시죠.”

“어? 어, 어. 그래. 근데 이거 무거운데.”

“도와드릴까요?”

“아니, 아냐. 내가 들어야지. 하하. 앞장서, 앞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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