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7화 (227/1,303)

227화 집단 감염 (2)

“야, 근데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CNS, coagulase-negative staphylococcus)면 심내막염 호발균이잖아. 일단 심장 초음파도 싹 긁자. 적어도 중환자실 내려온 환자들 중에서는.”

“아, 네. 그거 형이 좀 어레인지 해 줘요. 아니면 직접 하던가.”

“아까 통화하는 거 보니까 벌써 열 명 내려갔던데 그걸 내가 언제 다하고 앉았어. 밑에 잘하는 애들 많아. 어레인지 할게.”

“오케이. 그럼 일단 항생제는 됐고……. 아직 다발성 장기 부전으로 가는 환자는 없겠지? 혈압들 다 어때, 이거.”

신현태는 왜인지 모르게 수혁을 보며 물었다.

수혁 또한 계속 이 자리에 있었지 환자 옆에 있었던 건 아니란 것을 알면서였다.

‘야, 모르냐?’

그리고 수혁은 그 눈빛 비슷한 것을 고대로 바루다에게 전달했다.

바루다로서는 아주 황당할 따름이었다.

이럴 거면 와이파이라도 달고 살던가.

죽자고 머리 위에 이고 사는 주제에 이런 질문을 해?

가당치도 않았다.

[알겠어요? 내가 뭐 스카이넷이야? 사방팔방 네트워크 깔았게?]

‘모르면 모른다고 하지. 왜 이렇게 승질이야, 승질은.’

[원래 모르는 걸 당연히 알겠거니 하는 얼굴로 묻는 게 제일 화가 나는 법입니다.]

‘그게 아니라…….’

[그게 아니라 뭐요.]

‘지금 이 상황에서 네가 아니라 새로운 깡통이 도움 되고 있는 게 초조한 거 같은데?’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니에요. 정말입니다. 이거 뭐 속고만 사셨나. 아니라고요.]

‘뭐……. 그래, 알았다.’

수혁은 쓸데없이 혀가 길어지는 바루다를 뒤로하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실로…… 중환자실로 가 봐야 할 거 같습니다.”

“하긴, 미안하다. 알 수 있을 리가 없는 건데. 일단 일반 병실에 있는 환자들은 해당 과에 맡기더라도……. 중환자실로 내려온 환자들은 우리랑 호흡기내과가 봐야 될 거 같은데…….”

신현태의 얼굴이 말을 이어 가면 이어 갈수록 일그러졌다.

현재 태화 의료원 내의 중환자실은 신생아 중환자실을 제외하고도 총 6곳이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본관과 암센터에 각각 있는 내과계 중환자실과 외과계 중환자실, 흉부외과 중환자실 그리고 신경외과 중환자실로 구분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이 만들었음에도 항상 부족하기만 한 게 중환자실인 데다가, 감염처치실이라 불리는 중환자실 내에 있는 1인실은 더더욱 부족했다.

그나마 태화 설립자인 이태화 전 회장이 돈 생각하지 말고 만들라고 했음에도 이랬다.

병원이 커질 때마다 늘리기에는 늘릴 때마다 적자가 대폭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꾸역꾸역 집어넣긴 했지만, 병실이 중구난방이었다.

“일단…… 내가 본관 커버할게. 홍창기도 불렀으니까 둘이 보면 될 거 같고……. 수혁아, 네가 장덕수 교수랑 암센터 좀 봐줘.”

“네.”

“현종이 형은…….”

“야, 나 심장이야. 감염 아니라고. 왜 자꾸 나를…….”

“형은 흉부외과는 좀 그렇지?”

“어? 야, 미쳤냐. 거기 가면 인마……. 뒤에서 찌른다, 진짜.”

이현종은 흉부외과 얘기를 듣자마자 손을 절레절레 저어 댔다.

나는 감염이 아니란 말 따위는 잊어버릴 정도로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현종이 칼 들고 뛰어가는 흉부외과 의사들을 제치고 활로 심근경색을 잡는 일러스트를 이용해 무려 국제 심장 학회에서 발표한 이후, 온갖 협박성 이메일이 날아들었으니까.

“그럼 신경외과로 가요. 호흡기 어레인지 되면 바꿔 줄게.”

“아……. 나 힘든데. 나이 많어, 나.”

“그럼 감염내과 교수 좀 뽑아 주시든가.”

“돈 안 된다고 위에서 자르는데 어쩌냐.”

“어유, 그놈의 돈돈돈. 돈 되는 과만 뽑고 이게 대학 병원이야, 뭐야.”

“야, 그 돈 되는 과에서 버는 돈으로 중환자실 적자 메워 주는 거야 인마. 너 그런 말 어디 가서 하는 건 아니지? 정형외과 쪽 안 그래도 불만 많다, 돈은 이쪽에서 벌고 투자는 저쪽 가서 한다고. 정 그러면 수가 투쟁해. 중환자실 수가 인상 투쟁.”

“아.”

정작 돈에 대해 불평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한 건 신현태였지만.

그 돈 얘기를 깊숙이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할 말이 없었지는 게 사실이었다.

정형외과 쪽 말마따나 재주는 그쪽이 부리고 돈은 중환자실이나 외상센터 혹은 응급실 등에서 가져가는 게 현실이었으니까.

그렇다고 이현종이 방금 말한 것처럼 수가 인상 투쟁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몸 사리는 게 아니라 이미 다 해 봐서 알고 있는 것이었다.

보건복지부라고 적자 보는 거 모르겠는가.

더 쓸 돈이 없는 것일 뿐이었다.

보험료 인상을 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긴 할 테지만.

글쎄, 어느 정치인이, 어느 여당이 감히 증세를 함부로 논할 수 있을까.

지난 수십 년간 싸워 왔지만 결국, 신현태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그냥 이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환자나 잘 보자.

“알았어요, 알았어. 아무튼, 좀 부탁할게.”

“그래. 인마 나도 돈……. 그거 얘기 진짜 많이 해. 알지?”

“알죠……. 그나마 우리 병원이 처우가 낫지…….”

“알면 됐다. 아무튼, 각자 위치로 가자고. 혹시 우리 컨타 됐을 수도 있으니까, 저기서 제독하고 가야지. 중환자실은 사람들 약해서 안 돼. 다 레벨 D 하고 가. 우리 보호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남들 보호하기 위함이야.”

“네, 형.”

“네, 아빠. 아니, 원장님.”

이현종의 말은 그야말로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었다.

동시에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보호 장구를 착용하는 게 우리를 보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상대를 보호하기 위함이라니.

‘캬.’

[아빠가 그렇게 좋습니까? 양아빤데요. 법적으로는 아직 아니고.]

‘얼굴도 모르는 친아빠보다는 훨씬 낫지.’

[뭐, 이현종이 수혁에게 잘 대해 주는 건 사실입니다. 의학적으로 대단한 선배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솔직히 저 없었으면……. 눈길도 안 줬을 겁니다.]

‘꼭 그렇게 뼈를 때려야 속이 시원하냐?’

[속이 시원하냐는 게 지금 느낌을 말하는 거라면. 네, 그렇습니다. 연산 속도가 향상됩니다.]

‘하, 이 새끼…….’

처음엔 자기 놀리면 연산 속도 올라간다는 게 개소리 같았는데.

자꾸 경험하다 보니까 맞는 얘기 같았다.

그래서 더 기분이 나빴다.

무슨 놈의 기계가 남의 불행을 양분 삼아 돌아간단 말인가.

“수혁아, 그럼 파이팅이다! 홍창기한테는 내가 말해 둘 테니까……. 회진 같은 건 급한 환자 아니면 제껴, 그냥.”

“아, 네! 교수님.”

하지만 계속 꿍해 있을 수도 없었다.

벌써 까마득한 선배이자 훌륭한 스승인 신현태, 이현종이 각자 배정받은 일터로 가고 있었으니까.

심지어 수혁이 알기로 둘 다 내일 외래였다.

밤새운다고 다음 날 일 빼 줄 정도로 널널한 직장이 아닌 만큼, 개고생 예약이라는 뜻이었다.

‘일단, 가자.’

[네, 수혁.]

한낱 레지던트에 불과한 동시에 한참 어린 수혁이 꾸물거릴 틈은 없었다.

“아, 선생님! 이게 무슨 일이에요, 대체.”

암센터 내과계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안면 있는 간호사들이 너스레를 떨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과장된 몸짓으로 말을 이어 가는 사람은 거의 수혁하고 비슷한 연차의 서혜원 간호사였다.

“난데없이 감염처치실 비우라고 하더니 거길 다시 꽉 채울 줄이야……. 와 나 진짜 3년 만에 이런 건 처음 보네?”

애초에 억센 사람이 들어가거나, 유한 사람도 들어가면 억세진다는 중환자실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 왔다.

일단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곳에서 3년을 버텼다는 게 대단한 일 아니겠는가.

수혁은 반가움과 존경을 담아 대꾸했다.

“미안, 미안. 집단 감염이래. 들었지?”

같은 연차다 보니 언젠가 모르게 말도 놓은 지 오래였다.

그럼에도 서혜원은 꼬박꼬박 말을 높였는데, 이쪽은 6년제, 저쪽은 4년제라 나이 차이가 좀 나서였다.

“들었죠. 근데 그걸 어떻게 알았대요? 암센터 3번 방은 유명하거든. 환자들 아무 과 환자나 막 들어가는 거로. 그거 혹시 또 이수혁 샘이에요?”

“어? 어. 우연히, 뭐.”

“와……. 진짜 대박. 천재 아냐? 와……. 아이고, 저기 혈압 간다, 간다. 이따 봐요. 오늘 뭔 날인지 다른 환자분들도 난리야, 난리.”

“응, 그래. 일단 온 김에 다른 환달도 처방 싹 점검 한번 할게.”

“오, 쌤이 해 주면 땡큐죠.”

서 간호사는 오케이 사인을 보내고 나서는 자기 환자를 향해 달렸다.

그리곤 능숙하게 약을 재고, 환자 상태를 파악해서 주치의에게 알렸다.

‘아깝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혁은 진심을 담아 중얼거렸다.

대단히 깽뚱한 말이라 할 수 있었지만, 바루다는 용케 알아먹었다.

어차피 이런 상황에서 수혁의 대화 패턴은 뻔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혁은 바로 얼마 전에도 바루다와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한 적이 있었다.

[결혼할 사람 있다는데 아깝다는 말이 나옵니까? 돌았어요?]

‘그 사람만 없었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 하지 마시고요. 제가 분석하건대 수혁이 평생 혼자 살 확률은 99%를 넘습니다.]

‘야, 인마. 그게 소름 끼치는 소리거든?’

[왜요? 요새 대한민국 가구 형태 중 1인 가구가 극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하던데요.]

‘그 사람들은 자발적 비혼이고. 나는……. 나는…….’

수혁은 나는 정말로 연애하길 원한다는 말을 몇 번인가 되뇌었다.

그 얼굴과 말투가 너무 처연해서 그런가 바루다도 더 팩트로 때리진 않았다.

이미 연산 속도 향상이 끝까지 이루어져서이기도 했다.

여기서 더 놀려 봐야 별 소용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다.

워낙에 긍정적인 사람이라 가능성은 적지만, 유독 연애에 있어서는 우울감에 빠지기에 십상인 사람 아니던가.

세로토닌 분비가 줄어들면 아무래도 연산에 영향이 왔다.

[에이, 수혁 정도면 괜찮죠.]

‘그, 그래? 아깐 혼자 살 확률 99%라며.’

[그건 수혁이 자발적 비혼을 택했을 때죠. 그때도 1%는 만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우수합니다.]

‘오……. 하긴, 나 정도면 괜찮긴 해?’

바루다는 이게 혹시 짜증이라는 감정인가 하고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겨우 대꾸했다.

[괜찮죠.]

‘그래, 내가 얼굴도…….’

[근데 일단 환자를 볼까요? 우리 환자 보러 온 거잖아.]

‘어……. 어, 그래. 말 자르는 게 좀 빠른 거 같은데 내 착각이지?’

[물론입니다. 애초에 이 바루다가 만들어진 목적이 의료에 있지 않습니까? 환자를 눈앞에 두고 다른 짓을 하는 게 무척 괴롭습니다.]

‘괴로우면 안 되지. 괴로우면 안 돼.’

수혁은 긍정적인 사람답게 바루다의 말도 안 되는 핑계에도 홀랑 넘어갔다.

이미 괜찮은 편이라는 말에 기분이 돌아온 후였다.

이게 좀 지나쳤는지 연산 속도가 살짝 줄었지만, 바루다는 일단 이대로 두기로 했다.

어차피 진단은 이루어진 상황 아닌가.

이제부터는 수혁 혼자서도 해결이 가능할 터였다.

정말이지 많이 컸다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우선 안티 바꾸고요, 혈압……. 혈압이 중요한데. 소변량은 어때요?”

물론 그렇다고 식은 죽 먹기라는 뜻은 아니었다.

길고 긴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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