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29화 (229/1,303)

229화 집단 감염 (4)

“어, 어어어어!”

신현태가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 있는 동안 움직인 것은 의외로 수혁이었다.

“아, 아빠!”

수혁이라고 해서 몸으로 막아서거나 하지는 못했다.

가뜩이나 지팡이 짚어야 하는 몸인데 레벨 D 방호복까지 입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입고 벗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위기가 도래하는 느낌이라고 보면 되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현종을 멈추게 하는 데에는 수혁의 말 한마디만큼 효과 있는 것도 드물었다.

“어, 아들. 아오.”

이현종은 여기서 멱살을 잡고 흔들면 일순간 시원하겠지만.

그 이후 자신의 행보가 꼬이게 됨은 물론이오, 어쩔 수 없이 같이 묶여 가야 하는 수혁마저 꼬이게 될 거란 사실을 상기했다.

덕분에 기자는 뒤로 슬며시 내뺄 수 있었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여기까지는 딱히 출입 금지 영역도 아니지 않습니까?”

뻔뻔스러운 말을 해 가면서였다.

이현종이 역시 잡아야 했다는 생각을 할 때쯤에는 신현태가 나설 수 있었다.

“후.”

잠시 숨을 몰아쉰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기자분이시죠? 보호자 아니시잖아.”

“그…….”

기자는 눈을 끔뻑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내과 과장 신현태와 원장 이현종이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사실 제아무리 기자라 해도, 그리고 이현종이 의료계에서는 거물이라고 해도 얼굴을 알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보건 이슈는 상대적으로 국민적 관심이 떨어지는 분야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팬데믹 상황이 벌어진다면야 얘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관심이 딱히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들에게 쏟아지진 않을 테니, 아마도 이현종이라는 이름 석 자를 국민이 알게 되는 일은 없을 터였다.

‘박국진 교수님 말대로네.’

그럼에도 이 기자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기자가 단순 기자가 아니라 의학 전문 기자이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칠성대학교 의과 대학 출신이면서 동시에 칠성 장학금 수혜자였고, 또 칠성 일보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이를테면 이현종이 이름만 들어도 이를 북북 가는 프락치 중 하나란 얘기였다.

“신현태 과장님 맞으시죠?”

“아……. 내 이럴 줄 알았어. 누가 흘렸어요? 어떻게 알고 오신 거예요?”

“그게 중요할까요? 태화 의료원이라는 초거대 병원에 집단 감염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 중요하죠.”

“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군 하나라도 더 살리려고 난리 치고 있는데, 누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다행인 것은 그나마 사태 파악이 어느 정도 된 후에 왔다는 것이었고.

또 대처가 이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을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거기까지는 알 리 없는 기자가 계속 말을 이었다.

“사실 칠성 일보 이름으로 이미 기사는 나갔습니다. 태화 의료원에 집단 감염이 일어났다고. 저는 그 보도의 정확성……. 어어. 멱살 잡으시려고요? 이것도 보도해요? 에?”

“형. 일단 뒤로 가 있어 봐. 원장이 이러면 어떡해.”

“넌 얄밉지도 않냐? 밤새 개고생하고 좀 쉬려는데 와서 엿 먹이는데?”

“그…….”

사실 얄미운 정도가 아니긴 했다.

옆에 있던 수혁조차도 지팡이가 사실 땅 짚는 데만 쓰이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옳지. 그렇게 들어서 수직으로 찍으면 대가리 깨지겠는데요?]

바루다마저 의학적, 수학적 분석을 해 가며 수혁의 시뮬레이션을 돕고 있었다.

아직 바루다로서는 의학적인 것 외에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른 톱니바퀴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칠성이라니.

창조주 태화 전자에서 심심하면 칠성 전자를 까 대던 것이 떠올랐다.

[칠성 놈들은 다 죽여도 무죄라고 들었습니다.]

‘어……. 그거 연구실에서 들은 거지?’

[네.]

‘그거……. 그건 안 돼. 실수라도 너 네트워크에 연결시키면 안 되겠다.’

이렇게 삐뚤어진 놈이 인간 세계 여기저기 퍼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지 않은가.

“어유, 놀래라. 아무튼, 집단 감염의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약제실 오류인가요? 듣기로 스무 명이 넘는 환자가 감염되었다고 하던데요. 중환자실도 열 명인가 갔고.”

수혁이 바루다를 달래는 사이, 기자는 계속 입을 놀렸다.

보아하니 이미 태화 내에 심어 둔 프락치에게 이거저거 들은 게 많은 모양이었다.

‘어떤 새끼야, 대체.’

그 순간 신현태의 머릿속에 밀고자를 색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지만.

그러기엔 어제 사태를 경험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그걸 찾는 건 무리라고 보면 되었다.

지금은 이미 보도된 내용에 대한 반박이 우선이었다.

“약제…… 약제실 오류는 아닙니다.”

“그런가요? 그럼 접촉성 감염인가요? 의료진 감염 관리가 안 되는 건가요?”

어떻게 된 새낀지는 몰라도 질문 하나하나가 싸가지가 없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이현종이 이만하면 패도 무죄 아니냔 눈을 하고 있었다.

심정적으론 예스를 외치고 싶었지만.

역시나 내과 과장이자, 부족한 원장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교수라는 책임감이 그를 붙잡았다.

“아닙니다. 저희 태화 의료원 의료진들은 모두 손 씻기 및 마스크 등의 위생 관리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습니다.”

“아……. 아직 모르시는구나? 원인 불명의 집단 감염인가요? 그렇다면 이거 큰일인데요? 병원 폐쇄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무래도 경쟁사라 할 수 있는 칠성 출신이라 그런가 질문이 아주 매서웠다.

‘마취 가스 증발기 문제라고 할까? 그건 백 프로 제조사 책임인데……. 그런데 혹시 아니면 어떡해? 아직 전수 조사가 된 건 아닌데…….’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대응 준비를 했다면 모를까.

밤새 환자 보느라 정신없이 달린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무리였다.

해서 어쩌나 하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나섰다.

이 철없는 형이 이제 진짜 때리려는구나 했는데, 눈빛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정말 아주 가끔 보여 주는 원장 이현종의 얼굴이었다.

“칠성 일보 기자님? 아까부터 계속 추측성 질문하시는데, 근거 없는 질문은 진실을 호도하기 마련이에요. 질문만으로 의혹이 생긴다고. 그러니까 그런 짓은 그만하시죠.”

“그럼 제대로 된 답변을 해 주시면 되지 않습니까?

“이것 봐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집단 감염이 발생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집단 감염 대상자가 누구인지까지도 완전히 밝혀내고 모든 인원 격리 치료 중이에요.”

“이유는요? 원인은 규명되었나요?”

“가능성 큰 원인은 감별되었고, 확인 중에 있습니다.”

“그 말은 원인이 아직 불명확한데 감염 대상자를 찾아냈다 이 말씀이십니까?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은데요?”

“지금 말씀은 기자님 주관적인 의견일 뿐이지. 원인이 불명확하다고 왜 감염 대상자를 못 찾아? 동선, 증상 코스 등 근거가 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음.”

“당신 전문의 아니지? 대학 병원에서 일해 본 적도 없죠? 근데 뭔 의학적인 추론을 하려고 해. 그냥 사실 관계 보도만 하면 되지.”

확실히 이현종이 천재는 천재였다.

되도 않는 물리력 행사 대신 마음 먹고 입으로 조지기 시작하자, 아까까지만 해도 기세가 등등하던 기자가 우물쭈물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물러난 것도 아니었다.

“아무튼,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건 사실이네요? 저희 계속 후속 보도하겠습니다. 어떻게 대처하시는지 똑똑히 두고 보겠습니다.”

“뭐 눈 있으니까 보시기야 하겠지.”

“출입 금지 지역 아닌데 통제하지는 마시고요. 그렇게 치졸하게 나오지 않으실 거라고 분명히 믿습니다.”

“나는 믿을 만한 사람이니까 믿어도 되는데, 그쪽은 모르겠네. 아무튼, 알아서 해요. 알아서.”

“어……. 알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기자는 이놈이 대체 뭘 믿고 당당해하나 하는 얼굴을 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신현태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었다.

“흐아.”

“왜, 인마.”

“왜긴요. 이제 어떡해……. 칠성 일보 쟤네 만만치 않은데……. 집단 감염 이거 부정적인 이슈인 건 사실이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칠성한테 밀리는데…….”

“죄 졌냐? 지금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빨리 사태 파악해서 대처에 들어간 사례 본 적 있어? 난 못 본 거 같은데.”

“없기는…… 하죠.”

“환자 중에 하나라도 잘못된 환자 있어?”

“그것도…… 없죠.”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균을 그냥 호흡기에다가 때려 박았는데 하나도 죽은 사람이 없다니.

이게 다 엄청나게 빠른 대처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그 대처가 워낙에 정확하기도 했고.

또 의료진들이 목숨을 내걸었다시피 헌신하기도 했다.

“근데 뭘 쫄아? 오히려 우리가 잘한 건데? 원내 감염이라고 다 병원 탓이냐? 이건 제조사 문제지.”

“그…… 그래도 이게 보도가…….”

“나도 알아. 칠성 일보 보도 애매하게 하지. 댓글 공작도 할 거고.”

“네? 그렇게까지 한다고요?”

댓글 공작이라는 말에 신현태가 화들짝 놀라 이현종을 바라보았다.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를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마주했다.

“과장만 하니까 그냥 세상 물정 모르고……. 칠성 의료원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프락치 심는 거 보면 몰라?”

“그, 근데 왜 이렇게 태평해요…….”

“게네만 언론사 있냐? 우리도 있잖아.”

이현종은 뭘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는 전화기를 빼 들었다.

그럼에도 신현태는 어두운 낯빛 그대로였다.

계열사 내에서 병원 위치가 어떤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말을 들어 줄까요? 이참에 원장단 싹 갈리는 거 아닌가?”

“응? 우리가 왜 직접 말을 해, 인마. 더 윗줄이 있는데.”

“윗줄……? 우리 아버님이요? 안 돼요. 아버님은.”

“그 양반 학자 스타일인 거 누가 몰라. 거기보다 더 끗발 날리는 사람 있잖아. 야, 수혁아. 내가 걸었거든? 얘기 좀 해 드려.”

“네?”

갑자기 왜 화살이 여길 향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원장님? 웬일이에요?”

이현종 전화를 이렇게 편안하게 받을 수 있는 사람.

태화 전자 김다현 이사였다.

이미 그룹 내 새로운 먹거리라 할 수 있는 태화 생명·태화 바이오에도 빨대를 꽂은 참이라 차기 부사장이라는 얘기도 솔솔 돌 지경이었다.

세상에 40대 태화 전자 부사장이라니.

태화 일가를 제외하면 역대 최연소였다.

“아……. 저 이수혁입니다.”

“응? 이수혁 선생? 오랜만이에요. 반가워요. 은인인데 자주 찾아보지도 못하고.”

김다현 목소리를 듣자마자 수혁은 자신이 뭘 해야 할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어차피 보도 내용은 원장님이 짚어 주실 거야.’

[그럼 미팅만 주선해 주십사 하면 되는 건가요?]

‘그렇지. 김 이사님 입김이면 편집장까지도 흔들 수 있을걸. 뭔 내용이 어떻게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빨리 얘기하시죠. 이 사람 엄청 바쁜 사람일 텐데.]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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