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이게 왜 (2)
“수혁아, 처음 네가 나한테 전화한 게…….”
“3일 전입니다. 시간은 여기.”
“아, 맞네. 통화 내역 보면 되지, 참.”
신현태는 꽤나 긴장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 이현종과 김다현 이사의 통화를 지켜봤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단순히 원내 집단 감염이 일어났고, 조기 발견 및 치료에 들어갔다고 의사 신현태로서 뿌듯해하고만 있었는데.
지금은 일이 훨씬 커져 버리지 않았는가.
그저 감염내과학만 공부하고 싶은 신현태로서는 감당이 잘 안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다 놓고 생전 처음으로 아빠에게 전화라도 걸고 싶은 심정이었다.
“교수님, 협진 내역도 다 정리해 놨습니다. 처방 일시 및 처방 종류입니다.”
“아, 그래.”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그저 시킨 일만 열심히 하고 있는 수혁을 보고 있자니 생각이 좀 달라졌다.
‘이런 대미지가 축적되면…… 병원 입지가 좁아져…….’
그 말은 곧 태화 의료원 교수가 될 것이 분명한 ―물론 수혁의 앞날을 본인이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굳게 믿고 싶었다― 수혁이의 입지마저 좁아진다는 뜻이었다.
본인이야 이미 50이 넘은 몸이고 남은 세월 동안 얼마만큼의 일을 할 수 있을지 대강 보이는 사람이라지만.
수혁은 그야말로 어디가 한계인지 알 수 없는 친구이지 않은가.
능력 때문에 겪는 좌절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게 병원의 역량 때문이 되는 건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현종이 형도 발 벗고 나선 거지……. 그래, 우리 현종이 형이 만만한 사람이 아니지.’
마냥 의학만 들들 파는, 소위 의학자였다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을까?
평소 보여 주는 모습처럼 헐렁하고 또 털털하기만 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터였다.
처음 흉부외과 쪽을 도발할 때도 그랬다.
이미 다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를 조사하고, 대응 방도를 생각한 다음 움직였다.
이번엔 선빵 날린 게 이현종이 아니라 칠성이긴 했지만.
아무튼간에 한번 대응에 나선 이상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을 터였다.
“현재 바이털 사인은 내가 뽑았어. 다행히…… 홍창기 선생이 잘 버텼어. 지금은 중환자 의학과 팀에 인계돼서 보고 있고…….”
“위험한 환자는 없을까요?”
“신장 내과 환자들이 문제지, 뭐. 워낙에 기저질환이 안 좋으니까…….”
그렇다면 본인은 이현종이 시킨 일이나 열심히 하면 된다는 뜻이었다.
나머지는 어른이자 선배이자 또 원장인 이현종이 알아서 할 터였다.
해서 신현태는 아까보다 훨씬 단호해진 얼굴로 차트를 살폈다.
“일단 투석 들어가긴 했어, 둘 다. 이 두 분만 버티면…… 나머지는 괜찮아.”
“음. 투석이라. 장기 부전으로 넘어가는 건 아니겠죠?”
“원래도 말기 신부전이라 투석 하던 사람들이야. 지금 좀 수치가 올라가고 있긴 한데……. 딱히 패혈증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수준은 아냐. 당연히 주의야 해야겠지.”
“네, 교수님. 저도 환자 열심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어, 어 그래. 너 지금 홍창기 교수 파트지?”
“네. 중환자의학팀은 아니고 병동 파트이긴 한데……. 이럴 때는 파트 구분이 의미가 없죠, 뭐.”
세상에 어떤 레지던트가 이런 기특한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똑똑하기만 해도 이뻐서 정신을 못 차릴 거 같은데.
태도마저 좋았다.
이러니 다른 녀석들을 보면 마음이 차겠는가.
신현태는 잠시 보살 미소를 짓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고맙다. 수혁아. 덕분에 이거…… 그래도 대강 넘어가긴 하겠어.”
“아닙니다, 교수님. 저야 뭐……. 프로그램 도움을 받았을 뿐인데요.”
“야, 프로그램 도움도 나름이지. 다른 놈이 봤어 봐라, 알람 끄고 잤을걸.”
“아니에요. 저는 정말……. 프로그램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신현태는 프로그램 타령하고 있는 수혁을 보며 이놈이 또 겸손 떨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현실은 크게 달랐는데, 신현태가 알 수는 없는 현실이었다.
[그래요. 좀 더 하세요.]
‘더? 이러다 프로그램이 우리가 개발 중인 프로그램이 아니란 걸 아시면 어떡해?’
[알겠어요? 머릿속에 박힌 칩이 정상적으로 활동하는데 심지어 그게 바루다라 의학적인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면 신현태는 지금 당장 오진승 교수님 만나야죠.]
‘하긴 그런가.’
[저랑 너무 오래 있어서 익숙해진 거지, 절대 일반적인 일은 아닙니다.]
‘근데 더 하라고? 꼭 그래야 해?’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 이름도 없는 깡통 A.I. 칭찬만 하고 있으니 열불이 뻗치네요. 과열된 걸 식혀야 자료 정리가 빨리 될 겁니다.]
‘알았다…….’
바루다에게는 아주 다양한 능력이 있는데, 그중 어마어마한 성능을 자랑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 수집 및 정리였다.
지금 타임 테이블 작성에 있어 필수적인 능력이라 이 말이었다.
이현종이 하도 성화를 부려 댄 통에 한국 일보 기자는 출근을 이쪽으로 하겠다고 한 마당 아닌가.
그 말은 곧 주어진 시간이 정말이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뜻이었다.
“인간보다 나은 거 같아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요.”
“어……. 그래. 좀 너무 나가는 거 같지만, 뭐.”
“없었으면 환자 다 죽었을 겁니다.”
“응…….”
신현태는 마지 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남몰래 오진승 교수 번호를 띄웠다.
여차하면 전화해서 부를 생각이었다.
‘형, 얘 또 이래……. 스트레스받으면 심해지나 봐. 어떡해.’
마음속으로는 이미 이현종을 골백번도 더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수혁은 신현태의 걱정과는 달리, 한 열댓 번인가 프로그램 찬양을 늘어놓고는 집중해서 타임 테이블 정리에 들어갔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손도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아무거나 쳐도 저거보단 느릴 거 같은데.
혹 정말 아무거나 치고 있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여기서 정신 놓으면 큰일인데…….’
과장씩이나 되서 일개 레지던트에게 의지한다는 게 좀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쩌겠는가, 의지가 되는 놈인데.
현재 신현태가 병원 생활 하는 데 있어서 이현종과 더불어 가장 힘이 되는 두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런데 하나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니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교수님, 다 정리했습니다. 한번 봐주실래요?”
“어, 그래. 상담……. 응? 다 했어?”
“네.”
“어디……. 어디 한번 봐 봐.”
신현태는 제발 정체불명의 말만 적혀 있지 않기를 기도하며 엑셀 파일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현재 패혈증 또는 집단 감염 환자로 분류되어 있는 환자 전원의 타임 테이블이 분 단위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환호성을 질렀다.
“미쳤다.”
그로서는 드물게 상소리를 내뱉으면서였다.
“어떤 거 같아요?”
“어떤 거 같냐고?”
“네.”
“완벽하지! 이거 그냥 기사로 내도 되겠다, 야. 오히려 너무 상세해서 정리가 필요하겠어. 근데…….”
“네.”
신현태는 다시금 환자들의 타임 테이블을 살폈다.
세세히 정리해 놓으니까 지난 8시간 남짓했던 시간 동안 바쁘게 움직였던 행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행적 중 잘못된 것이 없다는 것도 보였다.
감염내과 학회에 이게 바로 집단 감염에 대한 옳은 대응이라고 발표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칠성 오히려 곤란하게 되겠는데? 우리 병원 공짜로 광고하게 생겼어.”
“그렇게 돼야 되는데…….”
반면 수혁의 얼굴은 당장 밝아지지 못했다.
고개를 돌리자마자 과장 연구실 한편에 틀어 놓은 TV가 눈에 들어왔다.
아까부터 내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중이었다.
태화 의료원의 운영이 방만하니 어쩌니 하면서 한결같은 어조로 까고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별것도 없는 자료를 가지고 이리 봤다가 저리 봤다가 하면서 깔 수 있다니.
저런 앵커와 패널들에게는 돈을 좀 많이 줘야 할 거 같았다.
“저 개새끼. 저길 나갔네?”
수혁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린 신현태의 입에서 대번에 욕설이 튀어 나갔다.
패널이랍시고 앉아서 태화를 까고 있던 인물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네, 안국태 교수님. 이번 사태에서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요?”
“어떤 이유에서건 원내 감염이 발생했다는 것이 문제죠.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사실 지침만 따르면 원내 감염은 절대 생기지 않거든요. 저희 칠성 병원이 그런 것처럼요.”
“아……. 근데 생겼다는 건……?”
“지침을 따르지 않았다는 뜻이죠. 태화 의료원 감염 관리실의 역량이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허어……. 이거 큰일이네요.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 명문 대학의 병원인데요.”
“뭐, 이미 외래 환자 수나 가동 병상 수에서 칠성 병원에 뒤처지긴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병원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건……. 이거야 원.”
바로 집담회의 깡패 안국태 교수를 봤기 때문이었다.
실력보다는 인맥으로 교수가 된 주제에 노력도 안 해서 지금도 변변한 논문 하나 못 낸 놈이 저런 말을 해 대고 있을 줄이야.
신현태는 눈앞에 안국태가 있었다면 살인이라도 일으켰을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저, 저…….”
“어, 교수님. 전화 옵니다.”
“아, 형이다. 왔나 보다, 기자! 빨리 가자!”
“네.”
그렇지 않아도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하고 싶어진 마당 아닌가.
그게 기껏해야 전화 받고 오라는 곳으로 튀어가는 거라면 감사할 뿐이었다.
두다다다.
해서 신현태는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다리가 불편한 수혁을 저만치 떼어 두고 혼자 달렸다.
“미안! 먼저 갈게, 일단!”
“네, 교수님! 저도 따라갈게요!”
그렇게 남겨진 수혁은 그가 토의할 수 있는 유일한 상대인 바루다에게 말을 걸었다.
‘야, 넌 솔직히 어떻게 될 거 같냐?’
[제 의견을 묻는 겁니까?]
‘어. 내가 지금 누구한테 묻겠냐, 그럼.’
[저는 의료 목적의 A.I.입니다만.]
‘여태 주제넘은 짓 많이 했잖아? 인간관계 분석도 하고.’
[그렇긴 하지만 사회 현상 분석은 단 한 번도 경험이 없습니다. 대강 계산은 해 봤는데, 이거 분석하다 보면 수혁이 죽을 수도 있어요. CPU 용량이 부족합니다.]
‘놀리냐?’
[아뇨, 진지합니다. 정말 부족해요. 변수가 너무 많고, 지금 제가 넣는 변수가 충분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그제야 수혁은 이 일에 대해서만큼은 바루다의 도움을 받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서효석 하나 제낄 때도 노회한 인간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던가.
김다현 이사라던가, 우창윤 교수의 딸이라던가 하는 사람들.
그렇다면 이런 전략은 스스로 깨쳐야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어느새 이현종이 불렀던 원장실 앞이었다.
“아, 오셨어요?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꽤 오랜만에 보는 원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한국 일보에서 띨룽 기자 하나만 보낸 게 아닌 모양이었다.
연계된 방송사인 TV 고려도 나와 있었다.
장덕수는 물론이고, 외래 간다던 홍창기도 앉아 있었다.
당연히 중심에는 이현종이 있었고.
“어, 왔네. 다 앉아. 자료는 보냈지?”
“네, 원장님.”
이현종은 근엄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고는 그 짧은 새 만들어 둔 PPT를 열었다.
“좋아. 이제부터 브리핑 시작하겠습니다. 지금 칠성 측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에 대한 반박이니, 귀 열고 잘 들어주세요. 의학적인 지식이 충분하지 않더라도 듣다 보면 저 새끼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겁니다.”
“저 원장님. 지금 카메라 돌아갑니다.”
“알아요.”
“아…….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