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이게 왜 (3)
‘아, 알고 있구나.’
기자와 카메라맨은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이며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편집장님이 그랬지……. 제일 중요한 고객이니까 최대한 협조하라고.’
누구 선에서 청탁이 들어왔길래 이럴까.
설마 이장복 회장?
아마 아닐 터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건강상의 이유로 칩거에 들어가지 않았던가.
“자, 그럼 시작합니다.”
“아, 네.”
쓰잘데기없는 생각을 이어 나가는 사이, 이현종은 레이저 포인터를 집어 들었다.
“먼저, 우리가 처음 이상을 감지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3일 전입니다.”
“3일 전이요? 얼마 안 됐네요?”
3일이라는 말을 듣고서 얼마 안 됐다는 말을 하려면 배경지식이 좀 있어야 했다.
그 말은 곧 그냥 기자로는 안 될 거란 얘기였다.
뭔가 냄새가 났다.
전문가의 냄새가.
“아, 의학 전문 기자예요?”
“네. 내과 전문의 따고 의학 전문 기자하고 있습니다.”
“오……. 전문의라.”
예전과는 달리 요새 의사들은 진로가 다양해졌다더니.
내과 전문의까지 따고 의학 전문 기자가 되었을 줄이야.
이현종은 잠시 고개를 끄덕끄덕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가 되었건 후배란 생각이 들어서 그런가, 표정이 조금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태화?”
“아뇨, 아선입니다.”
“아…….”
그리고 부드러웠던 표정이 다시 똥 씹은 얼굴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선이라니.
태화 입장에서 보자면 칠성이나 아선이나 고놈이 고놈인 상황 아니던가.
특히 우창윤 그놈이 당일 외래 시스템 만들었단 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열불이 터져 나왔다.
“중간에 껴들지 말고 일단 들어요.”
“아……. 네.”
반면 기자는 이현종에게 함부로 대하기가 좀 어려웠다.
단순히 편집장의 부탁이 있어서만은 아니었다.
교과서에 떡하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가 중의 대가 아니던가.
어쩐지 좀 반갑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까 어디까지 했더라?”
“아…….”
“왜 답이 없어?”
“끼어들지 말라고 하셔…….”
“융통성이 없네. 묻는 말에는 답을 해야지.”
“아, 네. 3일…… 3일 전에 인지했다고요.”
물론 계속 존경심을 유지하는 게 어려운 일이긴 했다.
이현종은 그저 논문으로 만나거나, 진료 보는 의사로 만나는 게 최선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외의 일로 만나게 되면 무조건 깨게 되어 있었다.
“아, 그래. 맞아. 3일. 그때 갑자기 신규 패혈증 환자들이 병동 가리지 않고 1일 10명 이상이 발생했어요. 카메라 돌아가니까, 존댓말로 할게.”
“아, 네.”
존댓말을 할 거면 계속 하든지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려다가 말았다.
일단 뒤에 있던 신현태와 수혁 그리고 홍창기, 장덕수까지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었기 때문이었다.
또 이미 몇 분 겪어 보지도 않았지만, 대강 이현종의 캐릭터를 깨달은 덕이기도 했다.
해서 이현종은 아무 방해 없이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전원이나 응급실 통한 입원이 아니라, 원내에서 발생한 것만 열 명이었다고. 수가 꽤 많은 거지요.”
“어……. 왜 말을 하시다 말고 저를 보세요?”
“이렇게 말하면 궁금한 거 안 생겨요? 질문 하나 해야지.”
“어……. 뭐, 뭐를…….”
“전문의 맞아? 아선 이거 안 되겠네. 아무렇게나 수련하나 봐.”
이 말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전문의에게 있어서 수련받은 병원을 모욕하는 것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었다.
비록 진료를 보고 있지 않은 기자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 잠시만요.”
해서 기자는 머리를 풀가동하기 시작했다.
진료 본 지 좀 돼서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아선은 아선이었다.
“아……. 병동과 관계없이 발생한 패혈증 환자들을 어떻게 합산한 거죠? 감염 관리실에서 모든 병실 환자들을 모니터링할 수는 없었을 텐데…….”
“그래, 좋은 질문이에요. 아선 누구한테 배웠어요?”
“정문현 교수님이요.”
“태화 출신인 건 알고 있죠?”
“아……. 네…….”
이현종은 돌아가는 카메라에 대고 한 번 더 어필을 하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 태화에서 원래 A.I.를 개발하고 있었던 건 알고 있죠?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었었으니.”
“아, 네. 바루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건 폭발 사고 때문이긴 했지만.
기자는 더 이상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현종을 자극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별 소용없는 일이었다.
뒤에 있던 카메라맨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린 까닭이었다.
“실패하지 않았나?”
“뭐?”
“아, 아뇨.”
“카메라 돌아가는 소리 땜에 안 들려서 그래요. 뭐라 그랬어.”
“아, 그냥 카메라 시끄럽다고…….”
“그래요? 그래, 그럼.”
이현종은 그냥 넘어갔지만.
바루다는 그럴 수가 없었다.
[실패작이라고? 죽인다!]
‘야, 야! 내 몸 막 움직이려고 하지 마! 너 안 되잖아, 어차피!’
[칼만 들어 봐요. 앞뒤로 움직이는 운동 정도는 할 수 있을 듯.]
‘미친놈이?’
때문에 수혁은 한동안 바루다를 달래야만 했다.
‘수혁아……. 또 왜 그래…….’
동시에 신현태는 이유도 없이 움찔거리는 수혁의 손을 잡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제발 10분만 가만히 있게 해 주세요. 지금은 안 됩니다.’
이현종은 이러한 속사정 따위는 꿈에도 모른 채 말을 이었다.
“바루다는 지금 잠시 중단됐지만. 그 노하우가 어디 가는 건 아니거든. 여기 이수혁 선생이 레지던트 2년 차인데, 아이디어를 내서 개발 중인 A.I.가 있어요. 아직 이름은 완전히 정한 건 아닌데……. 일단 편의상 패혈증 예측 A.I.라고 합니다. 그게 온 병동 환자의 활력징후와 중요한 검사 결과들을 살피고 있어요. 거기에 잡힌 겁니다.”
“아……. 그게…… 가능한 겁니까?”
“태화에서 쓰는 EMR. 즉 전자 차트와 연동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베타 테스트 중이긴 하지만……. 간단한 예측은 할 수 있어요.”
“오……. 그래서 어떤 대응을 하셨습니까?”
“처음엔 병동도 따로 떨어져 있고 과도 달라서 서로 간의 연관성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습니다. 원내 감염 가능성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죠.”
“그럴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병동도 다르고 과도 다르다면…….”
기자는 오랜만에 내과 수련받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지금이야 가운 대신 양복 입고 칼 대신 펜촉을 휘두르는 몸이지만.
매일 새벽까지 잠 못 들 정도로 빡센 수련이 어디 가겠는가.
여전히 영혼은 내과 의사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이틀째 지속됐습니다. 그러니까 2일 전에도 열 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다는 얘기죠. 그걸 우리 이수혁 선생이 프로그램 리뷰 하는 도중 인지했고, 감염관리실장인 신현태 감염내과 교수에게 보고했습니다.”
“레지던트가 다이렉트로요?”
“중요한 사항에 절차가 뭔 소용입니까. 바로 제일 위에다가 얘기해야 일이 처리되지.”
“그렇군요. 그래서요?”
이현종은 점점 자신의 논리에 빠져들고 있는 기자와 카메라맨, 그리고 곧 카메라 너머에 있을 시청자들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병원에서야 무시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신현태 교수는 바로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모든 환자들을 리뷰 했고, 그 결과 딱 하나의 접점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접점이 있나요? 의료진? 아니면 이송 요원?”
“아뇨.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의료진 또는 병원 내 직원으로 인한 감염은 절대 아닙니다.”
“그럼…… 뭐가 있죠?”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질문을 던졌다.
보아하니 이제 취재 나와 있는 몸이란 것도 잊은 것 같았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머리 일부분이 카메라를 가리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당황한 카메라맨이 위치를 조정하는 사이, 이현종이 입을 열었다.
“조사해 보니 수술방 하나가 겹쳐 있더군요. 한 과에 소속된 수술방이 아니라……. 스페어 용도로 남겨 둔 수술방입니다. 입구와 가장 가까이에 있는 방 중 하나인데, 혹 응급 수술이 필요한 상황을 대비한 방이죠.”
“아……. 외상 환자나 산모들을 위한 방이군요.”
“네. 그 방에서 감염이 일어났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었습니다.”
“누가 감염원이었나요? 수술방 간호사? 마취과?”
“아뇨. 마취 가스 증발기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마취 가스죠. 이건 우리 장덕수 교수가 대신 말씀드릴 겁니다.”
이현종은 고개를 단호한 얼굴로 저어 대고는 장덕수 교수를 가리켰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미친 듯이 밟아 의료기 제조사에 다녀온 그는 몇 장의 사진을 띄웠다.
바로 오늘 아침 촬영한 사진들이었다.
“가서 조사해 보니 마취 가스액을 제조하는 통 중 하나의 관이 완전히 오염이 되어 있었습니다. 아마 시설이 좀 노후화되면서 관이 갈라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관 하나가 통째로……? 그럼 거기서 만들어진 마취 가스액이 한둘이 아닐 텐데요?”
“네, 바로 그렇습니다.”
장덕수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다음 사진을 띄웠다.
엑셀 파일이었는데, 마취 가스액이 납품된 병원 이름이 씌여 있었다.
수도권에서 가장 큰 회사였기에 어지간한 병원엔 물건들이 싹 다 들어가 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칠성 병원도 있었다.
“상기 병원은 모두 오염된 마취 가스액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전수 조사가 필요한 상황입니다.”
“이렇게…… 많은 병원에 납품이 됐다면 왜 아직까지 보고가 없었을까요? 이상한 일 아닙니까?”
“음.”
장덕수는 대답 대신 이현종을 돌아보았다.
이현종은 당연하다는 듯 장덕수를 밀어내고는 다시 앞으로 나섰다.
“그건 제가 대신 답하죠.”
“네.”
“아까 제가 말씀드렸다시피 저희는 저기 이수혁 선생이 고안한 A.I.를 시범적으로 사용 중입니다. 다른 병원은 그렇지가 않죠, 그렇죠?”
“네.”
“그리고 저희는 이수혁 선생이 그 A.I.를 모니터링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바로 찾아낸 것이죠. 다른 병원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마 지금 괴질처럼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이라 이 얘기죠.”
이건 대박 건수였다.
먼저 깐 게 칠성이었는데, 알고 보니 칠성도 집단 감염이 있을 거란 얘기 아닌가.
심지어 거기선 그런 감염이 있는지 인지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란 얘기고.
기자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외쳤다.
“그렇…… 그렇군요! 그럼 이거 빨리 보도해야 되는 사안 아닐까요? 아니……. 질본에라도…….”
“이거 끝나면 바로 보고할 생각입니다. 보고서는 준비되어 있어요.”
“그 보고서…… 저희가 찍는 건 안 되겠죠?”
“안 되죠.”
“아…….”
“뭐, 우연히 찍히는 건 괜찮겠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해서 기자는 카메라맨을 닦달해서 얼른 필요한 것을 찍어 내고는 부리나케 방을 빠져나갔다.
한국 일보 기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빠르기는 이쪽이 더 빨랐다.
“편집장님께 메일로 넘겼습니다. 오타 없는지 감수만 하고 일단 인터넷 뉴스로 나갈 겁니다. 근데…….”
“근데요?”
“정확한 거겠죠? 역풍이…….”
“역풍은 그쪽이 맞겠지. 우리는 순풍이에요.”
“교수님 말씀이면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후속 보도도 잘 디자인해서……. 계속 때려 보겠습니다. 간만에 재밌겠는데요?”
“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