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이게 왜 (5)
이현종의 미소는 보는 이로 하여금 불안감에 휩싸이기에 충분할 만한 위력이 있었다.
특히나 속으로 좀 켕기는 게 있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설마 이거 진짜 칠성에서도 돌고 있는 거 아냐?’
기자는 아까 잠시 들렀던 칠성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한국 방송에 장덕수라는 그렇게 유명하지 않은 감염내과 의사가 나온다길래 그냥 유명무실한 해명이나 하겠지 했다가, 뜬금없이 칠성을 물고 늘어지는 걸 보고 난 직후였다.
원인이 태화에 있지 않고 외부에서 들어온 약물에 있는데 그 약물이 칠성과 아선에도 갔다고?
이건 칠성 일보 기자이기 전에 제대로 된 저널리스트이고픈 그에겐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였다.
‘아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감염관리실장님은요?’
‘외부 출장 중입니다.’
‘중환자 의학실장님은…….’
‘출장 중이세요.’
해서 병원에 찾아갔으나 문전박대만 당하고 쫓겨 나왔을 뿐이었다.
매번 좋은 일, 자랑할 만한 일이 있으면 그렇게 불러 가지고 써먹더니.
이번엔 거의 30분 넘게 체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 본 사람이라곤 홍보팀인지 어딘지 소속도 모르겠는 직원 한 사람뿐이었다.
‘아냐……. 설마 병신들도 아니고 자기네 병원에 뭐가 도는데 남을 찔렀겠어?’
하지만 기자는 칠성의 역량을 믿기로 했다.
본인이 다닐 때만 해도 칠성의 순위가 고작해야 5등 안에 겨우 들어갈 정도였지만.
칠성에서 막대한 투자를 시작한 이후부터는 슬금슬금 치고 올라가더니, 이제는 아선과 1, 2등을 다툴 정도로 커다란 병원이 되지 않았는가.
심지어 지금 눈앞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나름 대한민국 내과계의 살아 있는 전설 이현종이 있는 태화보다도 순위가 위였다.
“어서 말씀해 주시죠! 칠성 측에 대한 음해라고 생각합니다!”
해서 악다구니까지 써 보았다.
그럴 때마다 다른 방송국 카메라들이 자신의 얼굴을 잡아 주었는데, 기꺼운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기자라고 해서 점잔 떨며 엄숙한 어조로만 말하던 시대는 끝나지 않았는가.
대중에 자꾸 노출이 돼야 스타 기자가 되고 또 승진도 할 수 있었다.
“음해라는 건 부정확한 사실을 사실인 양 보도하면서 상대를 공격하는 걸 말하는 건가요?”
얼마 전 회사에서 만든 유튜브 채널에 얼굴을 비추더니 단독 프로그램까지 맡은 선배를 떠올리고 있으려니 이현종이 역으로 질문을 던졌다.
구구절절 맞는 소리라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음해는 도리어 칠성 일보에서 우리 태화에 한 짓을 뜻하는 말인 거 같은데요.”
“그게 무슨…….”
“아닌가요? 우리 태화는 선진화된 방법을 통해 자칫 잘못하면 전 수도권을 아우르는 집단 감염 사태로 번질 수 있었던 사고를 불과 3일 만에 발견하여 진화에 들어갔습니다. 제일 먼저 발견했다고, 원인이 우리한테 있다고 하는 건 음해죠.”
“그냥 말뿐이지 않습니까? 그게 칠성 병원에 들어갔다는 증거는 어디에…… 어디에요……. 그거 뭡니까?”
이현종은 기자가 말을 끝마치기 전에 통 같은 것을 집어 들었다.
마개가 있는 불투명한 유리 소재의 통이었는데,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방금 전 칠성 병원에서 입수한 통입니다. 마취 약통이죠. 여기, 스티커 보이죠?”
“어…….”
스티커 한복판에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칠성 그룹 마크가 박혀 있었다.
옆에는 관리 책임자의 이름도 쓰여 있었던 거 같은데, 미리 지웠는지 빗금이 처져 있었다.
“일련번호를 보며 태화에서 문제가 되었던 약통과 불과 넘버가 2개밖에 차이가 안 납니다.”
“그렇다고 그게 꼭…… 그건 뭡니까?”
“저희 감염 관리실 리포트입니다. 이 약통에서도 CNS, 즉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 구균이 검출되었어요. 그냥 면봉으로 훑기만 해도 드글드글하게 보일 정도이니, 그동안 여기서 얼마나 많은 양의 세균이 자랐을지 쉬이 예상이 가능하죠.”
“그렇지만…… 그렇지만 칠성에서는 미리 알고 환자에게 적용하지 않았을…….”
이제 기자는 더 이상 그게 뭐냐고 묻지 않았다.
이현종은 소싯적에 마술이라도 좀 배웠는지 어디서 뭔가를 자꾸 꺼내고 있었다.
이번엔 이상한 도표였는데 거리가 좀 있어서 글씨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금일 오전 7시까지의 칠성 병원 중환자실 입원 현황입니다.”
“그, 그게 어떻게! 어떻게 원장님 손에 들어갔습니까?”
세상에 다른 곳도 아니고 중환자실 입원 현황이 들어갔어?
이건 프락치를 심어 둔 수준이 아니라 거의 CCTV 해킹한 거 아닌가?
칠성 일보 측만이 아닌 다른 쪽에서도 술렁거림이 일었다.
이쯤 되면 말을 꺼낸 당사자인 이현종도 좀 당황할 만했을 텐데, 그는 생각보다도 더 노회한 사람이었다.
“아까 제가 기자님께 중환자실 대기실로 어떻게 들어왔냐고 물었었죠?”
“네? 아, 네.”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그때 제가 들었던 답으로 대신하죠. 제가 이걸 어떻게 들고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여기에 어떤 내용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이만하면 답이 되었을 테죠. 그럼 계속하겠습니다.”
그리곤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을 내던졌다.
그야말로 집어 던지다시피 한 강한 어조였기에 기자는 잠시 충격받은 얼굴로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다.
기대했던 반응이었는지, 이현종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는 말을 이었다.
“7시와 한국 방송에서 약품 오염 관련한 보도가 나가고 난 지 30분 후인 11시 중환자실 현황을 비교해 보면……. 감염 처치실 환자 중 무려 절반 이상이 교체되었습니다. 원래 감염 처치실에 실제 감염 환자만 들어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중환자도 자리 때문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있어서 교체되는 게 아주 이례적인 건 아닌데 그게 절반 이상이라면 이례적인 거죠.”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칠성 일보 기자는 아직 무너진 멘탈을 다잡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니, 다잡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환자가 교체되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더 무너져 버리고야 말았다.
다른 기자들이야 이게 무슨 소린가 싶거나, 혹은 어렴풋이만 이해할 수 있겠지만.
이 기자는 의학 전문 기자 아니던가.
의사 면허증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비록 실전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은 임상에서 활동하면서 배우는 것이라지만, 의대 교육 6년도 만만한 건 아니라 대강은 알아먹을 수 있었다.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는 뜻이죠. 아니지……. 제 말에 어폐가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고 그가 대강 알아먹은 사실을 이현종은 누구나 정확히 알아먹을 수 있게 자세히 풀어 주었다.
“원래 있던 집단 감염을 저 보도를 통해 인지했다고 봐야겠죠. 아마 지금 상태 나쁜 환자들이 꽤 있을 겁니다. 그 어떤 인터뷰 요청이나 기자 회견도 못 들어줄 만큼 바쁜 상태일 거다 이 말입니다. 제 말이 의심스러우시면 한번 TV 고려 틀어 보시죠. 패널들 사라졌을 겁니다.”
“어…….”
제일 먼저 움직인 것은 TV 고려 측이었다.
자기 방송사 얘기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잘 보지도 않는 채널이지만 윗사람이 시켜서 즐겨찾기 해 둔 덕도 있었다.
“진짜…… 진짜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텅 비어 버린 패널 석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빙글빙글 웃어 가며 신나게 태화 까 대던 안국태가 보이지 않았다.
워낙에 남 까는 데 도가 튼 데다가, 그걸 즐기기까지 하는 변태 아니던가.
어지간히 급한 일이 아니고서야 사라질 수가 없는 놈이란 뜻이었다.
“어, 없습니다. 정말 없어요. 그럼 진짜……?”
“칠성 병원에 있는 의사분들이라고 음해만 하고 싶겠습니까? 자기 환자가 생기면 그래도 환자를 볼 줄 아는 의사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다 병원으로 돌아가서 진료하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기자가 처음 중환자실 대기실로 쳐들어왔을 땐 죽이네 살리네 하던 주제에.
지금은 세상에 둘도 없는 호인인 양 말하고 있었다.
“와……. 말은 청산유수다.”
“그러니까요.”
같은 편 중에서도 중심축이라 할 수 있는 수혁이나 신현태조차 어느 정도 역겨움을 느낄 만한 태세 변환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태를 아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다르게 다가갔다.
-와……. 대인이시네.
-이현종? 검색해 보니까 완전 미쳤는데? 세계 최고 심장내과 전문의래.
-칠성 그럼 지들도 감염 생겼는데 그것도 모르고 태화 깐 거임? 지금은 똥줄 타서 튄 거고?
세상에 태화 의료원쯤 되는 커다란 병원의 원장이 이현종과 같은 성격일 거라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뭔가 좀 중후한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일 터였다.
그리고 이현종은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어느 정도 중후한 중년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어떻게 봐도 잘생겼다는 말이 나오긴 좀 어려웠지만.
아무튼간에 느낌은 그랬다.
“하지만 어려울 겁니다. 태화는 벌써 3일 전부터 의심했고 준비했는 데 반해 칠성은 이제 와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니까요.”
이현종은 기자들 중에서도 자신이 의도했던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는 말을 이었다.
할 수 있는한 최대로 목소리를 낮추고 진중한 얼굴을 하고서였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신현태나 수혁마저도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다.
“우리 태화는 그걸 수수방관할 만큼 책임감 없는 집단이 아닙니다. 지금부터 저희가 파악한 이 감염에 대한 모든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감염이 의심되는 병원 명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칠성 병원, 아선 병원, 수도 병원, 고려 병원, 한양 병원…….”
마취 약품을 제작 및 납품하는 회사는 지금껏 단 한 번도 감염 사고를 일으킨 적도 없었을뿐더러, 농도도 단 한 번도 틀어진 적이 없는 우수한 회사였다.
때문에 수도권 내에 조금 잘한다 싶은 병원은 다 이 회사 것을 쓰고 있었다.
어차피 마취약제라는 게 수입해 와야 할 만큼 최신 의료 물품은 아니었으니까.
이번엔 그게 오히려 독이 된 셈이었다.
기자들은 지금 이현종 입에서 거론되는 병원들 전부가 썩 괜찮은 병원들이란 걸 깨닫자마자 얼굴이 가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얽힌 부분이 있는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까지 걸기 시작했다.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함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이현종뿐이었다.
“원인균주 중 메인이라 생각되는 것은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이며, 메치실린에 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립니다. 저희 감염 관리실에서 추천하는 것은 반코마이신인데, 아직 다른 균주가 없다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때문에 메트로니다졸 및 레보플로사신 등 환자의 증세에 맞춰서 다양한 약제를 조합하셔야 할 겁니다. 지금 배양검사에 들어간 지 수 시간이 되었고, 가장 많은 검체를 보유하였으니 추후 정보가 업데이트되는 대로 알려드리겠습니다.”
이현종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하지만 내가 너희를 도와주겠다는 표정만큼은 확실하게 지어 가면서 말을 이었다.
기자들에게도 효과적이었지만 그 뒤에 있는 사람들, 즉 다른 국민들에게는 더더욱 효과적이었다.
-역시 근본 어디 안 가네.
-대한민국 최고 병원은 태화지, 역시.
-태화대가 입결 최고인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