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35화 (235/1,303)

235화 역풍 (1)

“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병원에 돌아온 안국태는 숨을 씨근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상대는 레지던트였는데, 당연하게도 아는 건 전혀 없었다.

교수가 하라는 대로 하다가 불려온 마당이지 않은가.

죄가 있다면 그저 열심히 한 죄뿐이었다.

“모르겠습니다. 방송 보고 오더 내려왔는데……. 알아보니까 정말 지금 열나는 환자 대부분이 수술방 11번 그리고 14번 방에서 수술받은 이력이 있습니다. 그중 절반은 패혈증이고……. 익스파이어(Expire: 사망) 할 거 같은 분도 있습니다.”

“익스파이어? 아니, 환자를 니들은 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네? 그…… 안티를 써도 안 듣고……. 점점 나빠지기만 해서요…….”

“하.”

안국태는 눈앞의 전공의를 발로 차 버리려다가, 힘도 덜 들고 욕도 안 먹을 방법인 한숨 쉬기를 택했다.

레지던트 때린다고 일이 뭐가 달라지겠는가.

애초에 원인 모를 균으로 인한 패혈증이지 않았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막 이현종이 힌트를 주었다는 점이었다.

“일단…… 반코 전부 허용해.”

“네? 반코를요?”

“TV 안……. 아니지. 아냐.”

한창 일해야 하는 시간에 레지던트가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면 그게 정말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안국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대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이 환자들……. 원인균이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이야. 메티실린 내성이고. 반코 깔아.”

“배양이 벌써 나왔습니까?”

레지던트는 며칠 전 협진 받았던 환자를 떠올렸다.

받자마자 처방을 내긴 했는데, 벌써 검사 결과가 나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안국태는 태화 이현종이 뿌려 준 정보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바루다 이후 꾸준히 네거티브 전략을 이용해 태화를 가라앉히고 있던 것이 바로 칠성 아니었던가.

처음엔 비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였다.

모르긴 해도 눈앞에 있는 2년 차라면 알고도 남을 터였다.

“어, 그래. 결과 나왔어. 감염관리실 의견이야. 일단 싹 깔아.”

“네, 교수님.”

해서 눈 가리고 아웅이라도 하고 싶었다.

조금 이따가 스마트폰이라도 켜 보면 바로 답을 알게 되긴 하겠지만.

시간을 약간만이라도 미루고 싶다고 하면 너무 없어 보일까.

안국태는 총총걸음으로 사라져 가는 레지던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사정없이 울리기 시작한 폰을 집어 들었다.

원장단의 호출이었다.

“이런 젠장.”

지금 상황에서 감염관리실장인 자신이 좋은 소리 들을 확률이 있을까?

있다고 믿는다면 당장 병원부터 가 봐야 할 터였다.

안국태는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는 전화를 받았다.

“네, 기조실장님.”

레지던트 앞에서와는 천양지차였다.

목소리부터가 조심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 집담회에서 안국태에게 당했던 다른 레지던트들이 본다면 이부터 갈 터였다.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놈 아닌가.

역겨움을 유발하는 데 이만한 방법도 없었다.

“어디야?”

기조실장은 역시나 가타부타 말도 없이 소재지부터 찾았다.

말이 어디냐고 하는 거지, 지금 당장 튀어 오라는 말일 터였다.

“지금 가겠습니다.”

“빨리 와.”

“저, 근데 어디로…….”

“원장실이지!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지금 너 때문에 얼마나 내가…….”

“네, 죄송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안국태는 전화를 끊고는 애꿎은 의자를 한번 걷어찼다.

“아야…….”

바퀴 달린 건 줄 알고 있는 힘껏 찼는데 바닥에 박힌 녀석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아파도 되나 싶을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생각 같아서는 주저 앉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눈을 감자마자 성난 원장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칠성은 병원 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일환으로 의료원장에 의사가 아닌 전문 경영인을 앉힌 지 좀 되지 않았던가.

그 인간은 의사 출신 원장에 비하면 피도 눈물도 없다는 말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시발…….”

가고 싶지 않은데 가야 하는 이 심정.

아마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끼이익.

안국태는 본인이 참석하는 집담회에 발표자로 서야만 했던 수많은 레지던트의 심정이 바로 그랬다는 건 깨닫지 못한 채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이게 뭐냐고! 지금 위에서 어떤 얘기까지 나오는 줄 않아? 원장단 물 갈으래! 뭐 이딴 전략이 다 있냐고!”

정말이지 닫고 싶었다.

열자마자 원장이 기조실장 뺨을 서류로 때리는 모습을 떡하니 봤는데 어떻게 계속 열 수 있단 말인가.

“어, 왔네. 안국태 교수. 당장 이리 와.”

“아……. 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원장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당신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야! 어? 저쪽을 집단 감염으로 때린다는데 점검을 안 해? 제정신이야?”

“그…… 그때는…….”

“그때는 뭐. 얘기나 들어 보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그때는…… 협진 들어오는 양이 좀 늘긴 했지만 이상할 정도는 아니…….”

“아……. 그러셨어? 저쪽을 때린다는 데 이쪽 협진 양이 느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지금 어떤 꼴이 됐는지 알아? 이거 좀 보라고!”

원장은 얼굴이 시뻘개진 채 스크린을 가리켰다.

이게 피가 거꾸로 솟는 사람의 얼굴이구나 싶을 지경이었다.

상당히 진귀한 구경거리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계속 볼 수는 없었다.

“어디 봐! 어이, 어디 보냐고!”

원장이 거의 미친 사람처럼 설쳐 대는 통에 도저히 보라는 곳을 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뉴스 봐. 지금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있다고.”

“아…….”

제목을 보니까 원장이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는 갔다.

숫제 대놓고 조롱하는 기사들까지 있었다.

<똥 묻는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태화 의료원 감염 관리 실태 꾸짖은 칠성 병원. 되려 본원 감염은 제대로 파악조차 못 해.>

<찌르고 보니 우리가 아프네, 정신 못 차리는 칠성 병원.>

<감염의 온상 된 칠성 병원.>

<한창 환자 봐야 할 시간에 TV 나오더니……. 칠성 병원 감염관리실장 안국태는 뭐 하는 사람일까?>

안국태를 개인적으로 저격하는 기사마저 있었다.

“아…….”

“입이 있으면 뭐라고 좀 해 봐. 우리가 이거……. 이거 정보 입수하고 당신 불렀어, 안 불렀어!”

“부, 부르셨습니다.”

“그때 뭐라고 했어. 저쪽은 집단 감염……. 그것도 원내 감염이 확실하고 우리는 깨끗하다고 했지?”

“그…… 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게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배우는 기분이었다.

지금 같아서는 열 개가 아니라 백 개가 있어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거 같았다.

“근데…… 근데 이게 뭐냐고. 지금…… 지금 몇 년간 공들인 거 다 날아가게 생겼어!”

원장이 스크롤을 내리자 더 많은 기사들이 떴다.

아침부터 커다란 떡밥을 칠성이 던졌는데, 그 떡밥에 칠성이 맞아 죽게 생긴 마당 아닌가.

원래 아이러니는 크기가 크면 클수록 재미를 주는 법이었다.

당연하게도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뛰쳐나오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제목의 기사들이 있었는데, 그건 다 김다현과 이현종이 뒤에서 조종한 기사들이었다.

평소라면 대놓고 태화 밀어주는 기사라고 배척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일종의 정의 구현 타임이기에 대중의 선택을 받았고, 심지어 많이 읽은 기사 1위까지 올라간 놈도 있었다.

<태화 의료원이 도입한 A.I.가 대체 뭐길래 패혈증을 잡았을까? 개발진 인터뷰!>

원장은 정말이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그 기사를 노려보다가 궁금하긴 했는지 클릭해서 들어갔다.

딱 들어가자마자 누가 봐도 어려 보이는 놈 얼굴이 떴다.

“누구야, 이게. 이게 개발자야?”

“가운 입고 있는 걸로 봐서는 의사 같은데요.”

“누가 당신한테 물었어? 기조실장님 와 보세요. 이거…… 태화 교수진입니까?”

안국태는 분위기 좀 풀어 보려고 나섰다가 본전도 못 건지고 뒤로 물러났다.

그 대신 나선 기조실장은 안경까지 고쳐 써 가면서 얼굴을 살폈지만, 알아보진 못했다.

“글쎄요. 처음 보는 얼굴인데…….”

“이거 프레스 기관이 한국 일보잖아요. 딱 봐도 태화 측에서 기획해서 낸 건데……. 아무나 냈을 리가 없지. 상대 교수들 얼굴도 모릅니까?”

“그게…….”

태화에 교수만 몇백 명인데 그걸 어떻게 압니까란 말이 입 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기조실장은 눈치가 비상한 사람이었다.

그저 죽자고 미안하다는 표정만 지었다.

그때 안국태가 다시 한번 나섰다.

‘저거…… 저거 분명…….’

언젠가 집담회에서 된통 당한 적이 있지 않은가.

원래 집담회라고 하면 안국태의 스트레스 해소의 장이었거늘.

그날 이후론 집담회만 가려고 하면 식은땀이 나서 단 한 번도 간 적이 없을 지경이었다.

커다란 트라우마를 준 놈이니만큼 뇌리에도 깊숙이 박혀 있었다.

아깐 워낙 창졸간에 본 터라 기억하지 못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뭐예요. 나서지 말라니까?”

“제가 압니다. 이…… 이 녀석 레지던트예요.”

“어? 뭔 레지던트가 개발진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진짜예요. 잘 읽어 보세요. 이수혁이라고……. 이현종 원장이 제 새끼처럼 구는 놈이에요.”

“그래요? 음. 어디……. 아, 그렇네. 레지던트…… 이 프로그램이 그럼 레지던트가 만든 거라고?”

원장은 아까 거기서 더 눈알이 동그래졌다.

어떤 놈이 잘 나가던 전략에 어깃장을 놨나 했는데 이런 애송이라고?

‘아냐……. 애송이가 아니지…….’

애송이라는 건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나 쓸 수 있는 말 아니던가.

그에 비해 이수혁이라는 친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지 않았던가.

심지어 기사를 읽어 보니 이번 사태에 대해 파악한 것도 이 친구였고, 지금도 감염 관리에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는 듯했다.

이름 높은 이현종과 안국태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신현태의 인터뷰를 들여다보니 약점이라도 잡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수혁이라는 친구를 높여 주고 있었다.

“이거……. 보통 놈이 아닌데. 혹시 뭐 알고 있는 거 있어요?”

“죄송합니다, 저는…….”

“기조실장님 말고. 안 실장, 몰라요?”

원장은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이수혁이라는 인간이 초한지의 한신과 같은 인재라는 사실을.

‘어차피……. 지금 이 사태는 해프닝이야……. 조금 더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결국, 주도권은 태화보다 칠성이야.’

태화의 이유원은 전자에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미래 먹거리에 바이오를 언급하긴 했지만, 바루다의 실패 이후로는 소극적이다 못해 손을 떼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선만 제치면 내수 시장 일인자가 칠성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란 뜻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가 필요했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인재가.

“어……. 박…… 박국진 교수가 알 겁니다.”

“박국진? 인사부장?”

“네.”

“아, 검토한 적이 있나? 오라고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안 실장님은 이제 가 봐요. 환자…… 봐야지. 피해를 최소화합시다. 누구도 죽어서는 안 돼요. 알았어요?”

“네,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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