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36화 (236/1,303)

236화 역풍 (2)

“어……. 인사부장님. 어서 와요.”

원장은 아까 안국태를 대하던 때보다는 많이 진정한 상태였다.

상황이 진정되어서는 아니었다.

인터넷 뉴스나 댓글 여론은 아까보다 더 난리였다.

이현종의 근엄하면서도 관대한 제안이 유튜브나 네이버 TV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네, 원장님. 찾으셨다고요.”

박국진 교수는 감염내과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 칼바람에서 아주 조금은 자유로운 편이었다.

아니, 안국태랑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서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

해서 방에서 여유롭게 드립 커피 내리던 중에 불려온 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에이.”

원장은 애써 뉴스 창에서 눈을 뗀 후, 말을 이었다.

“이번 거……. 태화 말이에요. 이수혁이라는 레지던트가 개발한 A.I.인지 뭔지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는데, 뭐 아는 거 있습니까? 이수혁이라는 친구.”

“아……. 네.”

한편 박국진 교수는 이제야 왜 불려왔는지 알겠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지금껏 수혁에 대해 알아본 바를 자세히 풀기 시작했다.

1년 차 때 사고를 당했다는 것부터 그 이후 어마어마한 업적을 쌓아 왔다는 것까지.

사실상 2년 차까지의 수혁에 대해 박국진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신현태 또는 이현종 혹은 조태진뿐일 터였다.

그만큼 분석이 세세했다.

‘아……. 바루다 터질 때……. 그때 인명 사고가 크게 없어서 다행이지.’

박국진을 비롯한 거의 모든 칠성 병원의 의료진은 아직도 바루다의 폭발이 그저 사고인 줄로만 알고 있을 터였다.

원장은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박국진 교수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언제 그렇게 알아본 겁니까?”

“인사부장으로…… 제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인재 영입 아닙니까?”

“그렇죠.”

칠성 병원은 현재 그룹 차원에서의 투자를 약속받은 상황이었다.

그냥 회장이나 사장이 지나가는 말로 언급한 수준이 아니라, 이미 토지 매입은 끝났고 시공사 선정까지 마친 참이었다.

그 말은 곧 병상이 늘어날 거란 얘기였는데, 필요한 의료진의 수가 적지 않았다.

도저히 칠성 병원의 수련 시스템만으로는 수급이 안 된단 뜻이었다.

그 때문에 인사부장인 박국진은 오히려 안에서 인재 발굴하는 일이 아니라 밖에서 스카우트해 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대개는 지방 병원에 있는 능력 있는 젊은 교수들이 대상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검증된 사람들이니까.

“그런데…… 레지던트에까지 관심을 두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전문의도 아닌 거 아닙니까?”

원장은 의사는 아니지만, 병원에 거의 오자마자 시스템을 파악했을 정도로 우수한 재원이었다.

애초에 칠성 물산, 칠성 SDS 등의 요직을 거쳐 온 인물이지 않은가.

박국진은 처음 비의사 출신 원장이라고 무시하다가 큰코다쳤던 일을 상기하며 입을 열었다.

무척 조심스러운 표정을 지어 가면서였다.

이제 눈앞에 있는 원장은 무시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네, 원장님. 아직 전문의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아까 제가 말씀드린 업적을 달성한 친구입니다. 경험이 더 쌓이면 어디까지 갈지 모릅니다.”

“포스트 이현종이라도 된다 이겁니까?”

포스트 이현종이라 함은 일종의 월드 스타를 뜻하는 말이었다.

태화에는 이현종과 간이식 파트의 스타가 있었고, 칠성에는 폐암과 위암의 권위자가 있었다.

그에 반해 칠성에는 이렇다 할 스타가 없었는데, 그것이 콤플렉스였다.

“네,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미 동 나이대의 이현종 원장의 위상은 뛰어넘고도 남았습니다. 태화에서는 거의 교수 대우를 받고 있어요.”

“허……. 물밑 접촉은?”

“그게…….”

준비한 카드는 많았다.

교수 자리 보장에 석·박사 장학금에 10억이라는 계약금까지.

거기에 더해 원하는 곳으로 해외 연수도 보내 줄 요량이었다.

진짜 황당한 곳만 아니면 숙소까지도 해결해 줄 생각이었고.

이현종만 아니었으면 필시 그렇게 됐을 터였다.

“그게 뭐요.”

“이수혁이 그 친구가…… 이현종 원장의 숨겨 둔 아들이라고 해서요.”

“어? 아들?”

원장은 이게 무슨 막장 드라마 같은 소린가 하는 얼굴이 되었다.

병원장에게 숨겨 둔 아들이 있는데, 그게 하필이면 불세출의 천재라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대본을 썼다간 개연성 없다고 작가 몰매 맞을 만한 얘기였다.

“네. 자기 아들이니 자기가 챙기겠다고 하도 난리법석을 피우는 바람에……. 지금 영입 계획은 취소된 상황입니다. 그래서 프로그램 개발 건에 대해서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그거 아까운 일인데. 이런 친구는 영입할 수 있으면 영입하는 게 좋은데…….”

박국진은 원장의 중얼거림을 들으면서 진심으로 감복했다.

어떻게 자신의 적을, 그것도 지금 큰 피해를 주고 있는 적을 영입할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과연 병원 정치 따위는 애들 장난으로 보는 대기업에서 살아남은 사장다운 발상이었다.

“근데, 아들인 건 맞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숨겨 둔 아들이라는 말이 좀 마음에 걸리는데.”

“그…… 그 후로 거기에 대해서는 알아본 적이 없습니다.”

“이거야 원.”

원장은 인사부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그 전에 칠성 병원 교수라는 직함까지 달고 있는 박국진을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각종 매체에서, 특히 드라마에 나오는 의사들은 철두철미하기 짝이 없지만.

실상은 이랬다.

의사들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냥 이현종 원장의 말 아닙니까? 알아봐야지.”

“아……. 네, 알아보겠습니다.”

“아뇨. 제가 직원들 통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박 교수는 지금 이 사태 수습이나 하세요. 의사잖아요. 수수방관하고 있을 겁니까? 지금 세부 분과에 맞춰서 행동할 때라고 생각해요?”

“아……. 네. 죄송합니다. 그럼 지금 바로.”

“네. 나가 보시고. 방송하세요. 대형 재난에 준해서 가용한 모든 인원 원내 감염에 대응하라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원장은 도망치듯 사라져 가는 박국진 교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이내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수혁에 대해 알아볼 것을 지시했다.

“아, 열나네…….”

그 시각 수혁은 중환자실에 있었다.

신현태와 어깨를 나란히 한 채였는데, 표정이 그렇게 좋지는 못했다.

환자 중 눈에 띄게 상태가 나빠지는 케이스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밝혀진 균주만큼은 제대로 커버할 수 있는 항생제를 쓰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 말은 곧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균이 있다는 뜻이었다.

“지금 반코에……. 메트로니다졸, 레보 들어가지?”

“네. 설마 반코에 내성이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럼 이니페넴으로 넘어가야 되는데, 아직 그런 보고는 없어.”

“대체 뭘까요?”

“음.”

신현태는 수혁의 근심 어린 질문에 답하는 대신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기다리고 있던 연락은 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일단 장 교수가 가져온 검체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뭐라도 나오면 연락이 올 거야.”

“그거 서두르지 않으면…….”

수혁은 모니터를 바라보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딱 맞는 항생제를 쓰기 시작한다 해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감염병에서 항생제가 제대로 된 효과를 보려면 혈중 농도가 어느 정도 이상 올라가야 했으니까.

그걸 단기간에 맞추겠답시고 고용량을 때리게 되면 그만큼 부작용이 따르게 되니, 결국은 시간이 필요한 치료였다.

‘더욱 치료가 정밀해지면 수술도 가능하려나?’

[무슨 개소리일까요?]

답답하다 보니, 수혁은 가만히 있던 바루다를 자극했다.

어떻게 들어도 멍청해 보일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짐으로써였다.

사람 같으면 무시했을 수도 있겠지만, 바루다는 기계 아니던가.

그것도 성격이 드러운 기계였다.

어김없이 파닥거렸다.

‘생각해 봐. 로봇 수술이 정밀해지면……. 균 단위 수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와우.]

‘왜, 너가 생각해도 훌륭하냐?’

[아뇨. 잉여로움의 정도가 제 예상을 아득히 넘어갔군요. 세상에 균 단위 수술이라니. 그걸 일일이 제거하느니 약을 쓰고 말지…….]

‘그런가? 나노 머신 써서 들어가면 어떠려나.’

[거기서부터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의 영역이라고 판단됩니다. 제발 그만 하시죠. 자꾸 그러면 아까운 뇌 기능 그냥 제가 점거하겠습니다.]

바루다는 수혁이 일부러 시간을 떼우기 위해 주절거리는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채 열심히 답변하고 있었다.

따르르릉.

생각 같아서는 좀 더 바루다의 시간 떼우기 기능을 활용하고 싶었는데.

신현태의 전화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인은 장덕수였다.

신현태는 마치 택배 기사님 전화 받듯 반가운 얼굴을 한 채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어, 어! 장 교수. 뭐 새로운 거 있어!”

새로운 거 없으면 죽이겠다고까지 들릴 지경이었다.

“없냐고!”

“어, 그.”

“야, 없으면 끊어!”

“아뇨, 아뇨아뇨. 있습니다. 뭐 나왔어요.”

“그래? 뭔데.”

장덕수는 잠시 당황한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하려던 말을 꺼내긴 했다.

“병원 검체에서는 나오는 게 없어요, 아직은. 이게 배양 바이어스 때문에 응고 효소 음성 포도상구균만 나오고 있는 거 같은데…….”

“어, 병원 검체는 그렇고.”

“공장에서 떼 온 검체에서는 새로운 게 잡혔습니다.”

“그래? 뭔데?”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불안정한 환자의 바이털 사인을 돌아보았다.

약이 다 들어가고 있음에도 열이 스파이크 치고 있었고, 혈압은 내려가고 있었으며, 소변량도 줄고 있었다.

신장 기능이 떨어지고 있다는 뜻인데, 이러다 다발성 장기 부전에라도 빠지면 사망 확률은 미친 듯이 올라갈 터였다.

딱 맞는 항생제를 찾지 못한다면 더더욱 그럴 것이었다.

“마이크로코쿠스(micrococcus)입니다.”

“마이크로코쿠스 뭔데.”

마이크로코쿠스란 말은 세균 하나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한 세균 속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안에 들어가 있는 세균 종류만 16가지가량이 되었다.

이것 중 무엇인지를 알아야 제대로 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아직 그거까진 모르겠지만……. 지금 공장 보고를 보면 아무래도 토양 오염이 의심된다고 하거든요?”

“토양? 아…….”

배양이 안 되었다는 건, 아직 관찰에 필요할 만큼의 개체 수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의사들이 균주를 파악하는 데 있어 필요한 정보가 반드시 배양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의사들은 인류가, 현대 의학이 지금껏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쌓아 온 지식이 있었다.

토양 오염이라는 말에서 신현태는 바로 특정 균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건 장덕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 테트라싸이클린이 들을 가능성이 무척 큽니다.”

“오케이! 수고했어! 이거…… 이거 들으면 자네 공이야, 다!”

“네, 교수님, 그럼…….”

“어어. 들어올 생각은 하지 말고. 계속 일해. 균주가 두 개가 다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

“아……. 네…….”

“그래, 수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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