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8화 이수혁 (1)
“약 좀 듣는 거 같지?”
“네. 다행히 중환자의학과에서 환자 상태 잘 따라가 줘서 시간을 벌었고……. 약도 잘 듣고 있습니다.”
“좋아.”
신현태는 허허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수혁의 시원스러운 답변을 들어서만은 아니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환자의 바이털 사인을 나타내는 모니터가 있었다.
이제 일부러 알람을 끌 필요가 없었다.
정상 수치로 돌아왔으니까.
‘뭐……. 몇 번 더 돌려야 된다고는 하는데…….’
급성 신부전이 만만한 질환은 아니지 않은가.
자칫 잘못하면 만성 신부전으로 가 버리거나, 혹 그것 때문에 환자가 사망해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원인 질환이 사라진 후에는 대개 예후는 좋았다.
평생 주의는 해야겠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 될 일은 없다는 얘기였다.
“투석은 언제까지 한대?”
“사실 수치 거의 다 좋아져서요. 아마 오늘 돌리는 거 끝나고 나면 한 번 정도 더 돌릴 거 같습니다. 신장 내과 측이랑 의견 조율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음, 그래.”
세상에 그 어떤 레지던트가 이놈처럼 믿음직스러울까.
신현태는 이제 예의 그 보살 같은 얼굴이 되어 허허 웃고 있었다.
제아무리 집단 감염을 빨리 알아차리고 제대로 된 치료를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지난 일주일은 정말이지 지옥 같았다.
워낙에 많은 환자가 감염에 노출된 상황이지 않은가.
그것도 비특이적인 병원균인 데다가, 원내 감염이라 내성균주까지 끼어들어 있었다.
감염 대응을 진두지휘하는 일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다.
“에고고.”
그 한 가지 증거로 신현태의 다리는 완전히 풀려 있었다.
지난 일주일간 집에도 못 가고 고생한 탓이었다.
밥도 라면으로 떼우는 게 예사였고.
잠은 쪽잠이 다였다.
밑에 있는 교수들이나 수혁도 가서 좀 자라고 했지만.
어차피 누워 봐야 잠도 안 왔다.
‘이제는 더 죽을까 봐 걱정 안 해도 돼…….’
눈만 감으면 자꾸 환자가 눈 감는 생각만 떠오르는 탓이었다.
“오, 고생했어.”
그 원흉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이현종이 들어오며 인사를 걸어왔다.
지난 한 주간 통화만 했지, 직접 얼굴 보는 건 퍽 오랜만의 일이었다.
“내가…… 내가 형 때문에…….”
“뭘 인마. 다 잘 될 거 알고 한 말이지.”
기자 회견할 때마다 어찌나 당당하고 단정적으로 말하는지.
이러다 환자 한 명이라도 잘못되었다간 신현태가 옴팡지게 뒤집어쓸 거 같단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물론 이현종이란 인간이 후배 뒤에 숨을 비겁한 인간은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부담감에 죽는 줄 알았다.
“아들, 이제 다 끝난 거지?”
이현종은 연거푸 한숨만 내쉬고 있는 신현태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 또한 신현태와 완전히 같은 스케줄을 보낸 참이었지만.
몰골은 훨씬 나았다.
입 밖에 내기는 싫지만, 전적으로 바루다 덕이라고 보면 되었다.
[거봐요. 언제 얼마나 잘 수 있을지 알고 일하는 게 엄청 중요하다니까.]
바루다는 수혁의 뇌 기능 중 일부를 휴식 시간 분배에 할애한 참이었다.
처음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지내다 보니 바루다가 옳았다.
안 그랬으면 애초에 신현태보다 체력이 좋지 못한 수혁으로서는 절대 버티지 못했을 터였다.
“네, 다 끝났습니다.”
“야……. 젊음이 좋다. 쌩쌩한 거 보소.”
“일단 마지막 환자까지 좋아졌으니까요……. 며칠 더 두고 보다가 일반 병실로 올리긴 해야겠지만. 그래도…… 홀가분합니다.”
“그래, 네가 진짜 고생 많았다.”
이현종은 대견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을 한 채 수혁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신현태로서는 복잡미묘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어째 감염관리실장은 난데, 일은 수혁이 다 한 거 같지 않은가.
실제로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고 집에 딱 한 번이라도 다녀왔다면 덜 억울할 거 같은데.
사태 터지고 아내 얼굴 본 적이라곤, 면회 비슷하게 속옷 가져다주러 들렀을 때뿐이었다.
“형, 그럼 나는 뭐가 돼.”
“야, 너는 감염관리실장 아냐. 보직 맡아서 어? 월급도 더 나오는데. 그 월급 왜 받어. 다 이럴 때 일하라고 주는 거지.”
“그…….”
“근데 수혁이는 뭐야. 레지던트잖아. 얘 월급 얼마나 받는지 아냐? 네 반도 안 돼. 근데 일은 비슷하게 하잖아. 그럼 누구 칭찬해.”
“수혁이…….”
하지만 말을 듣다 보니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했다.
자본주의 시대에 돈 받는 만큼 일하는 게 상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수혁은 수련의 신분이라는 명분하에 정말이지 헐값에 더럽게 많은 일을 해 주고 있었다.
능력은 이미 어지간한 교수들보다 낫다는 것을 감안하면 착취도 이런 착취가 없었다.
“생명 측에서 금일봉 나올 텐데, 일단 수혁이한테 젤 많이 줄 거니까 그렇게 알어.”
“네……. 근데.”
“근데 뭐.”
“원장 아들이라고 너무 챙긴다는 말 나오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신현태는 친수혁파가 아닌 이들의 말을 떠올렸다.
원래 같으면 골수 친수혁당원인 신현태에게는 이런 말이 들어가선 안 될 터였다.
하지만 신현태는 인격자로 유명한 사람인 데다가, 과장인지라 반대파의 의견도 들어가고 있긴 했다.
‘TV에 과장님이나, 원장님, 홍 교수 등이 나가는 건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근데 이수혁? 레지던트가 왜 나가죠? 신문 기사는 또 왜 나고? 그럴 만한 일을 했나요? 원장님……. 아들이라고 말년에 너무 감싸는 거 같아요. 학자 명예가 실추될까 염려됩니다.’
신현태가 보기엔 학자의 명예 운운하지만, 그냥 눈꼴 시렵다 이거였다.
다른 의견이 아니라 틀린 의견으로 보인다고 할까.
하지만 과장으로서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틀린 의견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면 뭐 어쩌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눈앞에 있는데.
“챙기긴 뭘 챙겨. 이거 프로그램. 수혁이가 만들고 분석한 거 아냐? 우리가 했냐?”
“그건 그런데…….”
“나도 알아. 불만 나오는 거.”
“그럼 안 되잖아요. 교수 회의 통해서 신규 임용도 결정되고, 원장단도 어찌 되었건 과 내 교수 의견 반영해야 되는데…….”
이러다 수혁이 교수 못 되면 어쩌냐는 게 신현태의 걱정이었다.
갸륵한 생각이긴 한데, 이현종이 볼 때는 그저 아둔한 생각일 뿐이었다.
‘멍청한 놈이……. 누가 수혁이 백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생각 같아서는 팍 던져 버리고 싶은데.
지금은 안 됐다.
옆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에이, 시끄러. 아무튼, 수혁이 시간 되고 체력 괜찮은 거지?”
“음. 네, 뭐. 근데 어쩐 일로요?”
“이제 우리 병원 상황 정리됐잖아. 기자 회견하면서 프로그램 얘기 흘렸는데……. 너 한번 나오래.”
“네? 어디로요?”
“어디긴 어디야. 한국 방송 뉴스 데스크지.”
“네에?”
한국 방송 뉴스 데스크라니.
공영 방송 뉴스는 이미 시청률이 망해 버려서, 한국 방송 뉴스 데스크가 뉴스 중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게 된 지 오래였다.
이쪽에 나가게 된다는 건 전 국민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자리에 신현태나 이현종이 아니라 수혁이?
[왔다, 왔다.]
바루다야 좋아했지만.
수혁으로서는 부담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로 인한 유익 또한 뭐가 있을지 조금 헷갈리는 게 사실이었고.
물론 수혁이 걱정하거나 고민할 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건 이현종의 일이었다.
“수혁아, 너 그거 화이자 콘퍼런스에 낼 거잖아. 그치?”
“네.”
“솔직히 의학자 입장에서 프로그램 얘기만 들으면 듣는 생각이 그냥 아, 좋을 수도 있겠다. 조금 편해지겠다 수준이야. 너도 사실 그런 생각에서 낸 거지? 의료진 편의를 위해서.”
“그렇죠.”
이현종은 자연스럽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수혁을 이끌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속도가 조금 빨라서 지팡이 짚는 게 힘겹기는 했지만.
이미 이현종과의 걸음에 익숙해진 지 오래지 않은가.
어찌어찌 따라잡을 수는 있었다.
“근데 이번에 봐라? 집단 감염 이거 보통 일이 아냐. 진짜 수도권 병원들 다 마비될 뻔한 일이라고. 원래 감염이 그렇잖아. 1인실 써야 되고, 의료진 시간 화수분처럼 빨아들이고.”
감염병이라는 게 얼마간 정복되어 가고 있는 병이긴 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병원체의 감염이 번진다면, 제아무리 현대 의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무서운 것이 바로 이 감염병이었다.
수혁이야 아직 경험도 없고, 의료의 개념을 이현종처럼 넓은 시야로 바라본 적이 없어 몰랐지만.
경영자로의 시각을 배운 이현종은 달랐다.
이번 기회에 이 프로그램의 위력이 단지 연구 계획서를 낸 당사자들이 생각하고 있던 수준에 지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근데 그걸 미연에 방지해 준 거야. 이건 자랑해야 해. 전 세계적으로 알려야 해. 그럼 화이자에서도 집중할 거야. 어쩌면 전 세계에 이 프로그램이 깔릴 수도 있어.”
“아…….”
“그렇게 되면 이 병원에서 너는 갑이야.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사야 있지. 근데 세계적으로 쓰이는 프로그램 도입한 사람이 어딨어. 네가 처음이야.”
“그렇군요.”
“거기에 네가 나가면 네가 그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는 거야.”
이현종은 굳이 그게 윗선에서도 원하는 길이라는 건 얘기하지 않았다.
아직 수혁은 정치적인 건 몰라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원래 의사들이 순진한 구석이 있지 않은가.
예순 넘은 자신도 이제야 겨우 뭘 해야 할지 알겠는데.
너무 어린놈에게 괜히 알려 줬다가 쓸데없는 짓 하다 날아갈 수도 있었다.
“감사합니다. 원…… 아니, 아빠.”
수혁은 그제야 이현종이 무리해서 자신을 꽂은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은 수혁을 단순한 교수로 만들 생각이 없군요.]
전임을 받는다고 해서 어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다던가.
조교수에서 윗사람들 뒷치다꺼리해 가면서 몇 년을 버티고 또 버텨야 주어지는 게 부교수 직함이었다.
부교수가 되면 그나마 본인이 원하는 분야의 진료와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만, 온전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슈퍼스타를 만들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
‘어……. 이렇게 시작하면 난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을 거야.’
[역시 이현종은 수혁을 정말 아들로 생각합니다.]
‘진짜 고마운 일이지.’
눈시울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이만한 애정을 보여 줄 수 있을까.
“야, 울어? 인마……. 아빠가 아들한테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이현종은 수혁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현종 또한 진짜 아들은 없는 사람이다 보니 애정 표현에 미숙하기 짝이 없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건지 때리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아파서 또 감동해서 눈물이 찔끔 흘러나왔다.
“으엉.”
고아가 된 연고로 어린 시절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자라지 못한 수혁은 필연적으로 애정 가득한 관계에 익숙하지 못했다.
아마 이현종, 신현태가 아니었다면 이런 관계가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조차 배우지 못했으리라.
“무슨 얘기 하시는 거예요?”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참된 애정을 확인하고 있는 가짜 부자를 보며 누군가 물었다.
신현태는 서둘러 듬직한 등으로 둘을 가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형……. 눈물 글썽이는 거 거의 처음 보는 거 같아.’
한참 위의 선배인 데다가, 직함도 위인 이현종이지만.
어쩐지 물가에 내놓은 자식 같고, 좀 짠하기도 한 인간이지 않은가.
그런 인간이 진짜 가족을 만났단 생각이 들자 괜시리 찡해졌다.
“나중에 묻죠, 나중에.”
시큰해진 코 밑을 훑으면서였다.
“교수님, 울어요?”
“하품해서 그래요. 잠 못 자서 그런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