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화 이수혁 (2)
눈물 찔끔 났던 중환자실에서의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수혁이나 이현종이나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정 없이 바로 헤어진 것 또한 아니었다.
수혁은 이현종의 손에 이끌려 원장실 안에 들어와 있었다.
신현태도 마찬가지였는데, 어색해하기는 셋 다 똑같았다.
“형, 형은 왜 그렇게 어색해해?”
어이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지 방에서 지가 어색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건.
“뭐 인마. 요새 너무 바빠서 여기 들어올 일이 없어서 그랬지.”
“요새라고 하기엔 좀 오래 안 들어오신 거 같은데요?”
그런 이현종을 향해 수혁이 무언가를 집어 들어 보였다.
창가에 놓여 있던 컵라면이었는데, 무려 유통 기한이 지난 컵라면이었다.
‘생각 없이 뜯어 먹었다가 뒤질 뻔…….’
[제 분석이 수혁을 살렸군요.]
‘이번에는 진짜 인정이다.’
수혁은 솔직히 라면에도 유통 기한이 있고 그걸 유심히 봐야 하는 상황이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참인지라 진심으로 놀란 얼굴이었다.
반면 그 말을 들은 이현종은 물론이거니와 신현태도 별반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아……. 집에 가면 맨날 그렇…… 아, 너 안 가 봤어?”
“네, 아직.”
“와……. 이 형 맨날 아들이네 뭐네 하더니. 입만 사셨네.”
신현태의 말에 이현종은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얼굴로 외쳤다.
“인마! 우리 집이 그게……. 어? 솔직히 사람 사는 집이니? 그런 곳에 어떻게 수혁이를 불러?”
“하긴……. 그것도 그렇다. 나도 이 형 집 두 번인가 가고 다시는 안 가. 그냥 집 앞에 호프집을 가야지, 저 집 안에 가면 아파.”
“아프긴. 나는 그럼 어떻게 살아 있냐?”
“그게 미스터리야. 형 가끔 열날 때 있지? 나는 그게 다 감염 같아. 알 수 없는 병원균에 걸린 거지. 거기 살면…….”
이대로 시답잖은 잡담 시간이 더 이어지나 싶을 무렵, 누군가 원장실 문을 두드렸다.
“어어. 왔다.”
동시에 이현종은 딱 대화를 멈추고 가운을 점검한 후, 신현태를 향해 턱으로 신호를 보냈다.
“수혁이는?”
신현태로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반응이라 할 수 있었다.
아무리 수혁이 기특하고 또 훌륭한 제자라지만.
아무튼 간에 제자 아닌가.
나이도 한참 어리고.
딱히 유교 문화권이 아니라 해도 이 상황에서 문 여는 건 수혁의 몫이어야 할 거 같았다.
“저는 이게.”
“아……. 알았다…….”
하지만 수혁이 지팡이를 보인 후로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해서 신현태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방문을 열어 주었다.
아니, 열다가 말고 꽤 놀랐다.
방문 앞에 선 사람 때문이었다.
“어……. 이사님?”
태화 생명 남 이사가 서 있었다.
말이 이사지, 사장 간 주최 회의에 가 보면 사장보다도 발언권이 센 양반 아닌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여길 와?
이상한 일이었다.
“안녕하세요, 과장님. 안녕하세요, 원장님.”
남 이사는 멀뚱히 서 있는 신현태를 지나쳐 이현종에게로 다가가서 종래에는 수혁을 바라보았다.
“이수혁 선생, 오랜만이에요.”
“아, 네. 남 이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수혁은 바루다 덕에 딱히 사람 얼굴 기억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고개를 숙였다.
남 이사는 잠시 수혁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원장님, 이번에 정말 잘해 주셨어요. 덕분에 저도 그렇고, 우리 김 이사님도 그렇고 면이 섰습니다.”
“아뇨, 뭘요. 의사가 환자 열심히 잘 보는 게 당연하지.”
“그건 그렇고……. 오늘 한국 방송에 뉴스 데스크에 이수혁 선생이 나갈 거죠?”
“네, 이사님.”
“음.”
남 이사는 내내 띠고 있던 미소를 지운 채 찬찬히 수혁을 살폈다.
집도를 앞둔 집도의를 연상케 할 만큼이나 치밀한 관찰이었다.
어디서나 당당했던 수혁이 몸을 움츠렸을 지경이었다.
이어진 말은 더더욱 그를 작게 만들었다.
“이거 이대론 안 되겠는데.”
“응? 무슨 소립니까? 우리 수혁이가 어디가 어때서요.”
그리고 이현종을 발끈하게 만들었다.
방금 전에 부자간의 뜨거운 정을 확인했던 참 아니던가.
대놓고 아들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어디가 어떻다고 말하기도 좀 어려운데. 일단 머리 보세요. 덥수룩하죠? 원빈도 아니고……. 저런 머리 해서 나가면 가난해 보여요, 보통은. 게다가 안 그래도 나이 어린데 머리를 내리고 있어서 되겠어요? 조금 짧게 치고, 세우는 게 낫겠어요.”
“음.”
하지만 근거 중심 의학 시대에 살고 있는 의학자인 만큼, 조목조목 근거를 대가며 까기 시작하자 천천히 납득하기 시작했다.
남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현종과 어째 아까보다 더 볼품없어진 듯한 수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피부는……. 그나마 괜찮기는 한데, 안색이 안 좋네. 이번에 너무 고생하셨나. 이것도 톤업이라도 하고 나가야겠어요. 간단하게 메이크업하고……. 옷도…… 옷…….”
그러다 수혁의 옷에 이르러서는 더 말을 이어 나가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모양이었다.
그건 이현종이나 신현태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 우리 수혁이가 옷은 좀 못 입지…….’
좀 못 입는 게 아니라 옷이 없는 거 같기도 했다.
그래도 수혁과 여기저기 많이 나다닌 편인데 계절 별로 옷이 바뀌지, 날마다 바뀌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원장님, 이수혁 선생.”
“네. 말씀하세요.”
“우리 태화 이미지가……. 좀 세련된 느낌 아닙니까? 아선 하면 좀 노동 느낌이 강하다고 하면 우리는 첨단 느낌이죠?”
“그렇긴 하죠.”
기업 이름부터도 그랬다.
아선이야 말할 것도 없었고, 칠성은 별이 일곱 개란 뜻 같은데 무슨 뜻인지 알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삼성이라고 했으면 좀 더 세련된 느낌을 줬을 거란 얘기도 종종 돌았다.
그에 비해 태화는 어떤가.
세련미가 줄줄 흐르지 않는가.
게다가 태화는 태화 모직이라고 해서 자체 패션 브랜드도 있었고, 파리나 밀라노에서 패션쇼까지 주최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내보낼 수는 없어요. 그냥 뭐 명의 같은 프로그램 나가는 게 아니고……. 우리 태화 의료원의 젊은 의사를 대표해서 나가는 거지 않습니까.”
“음 그럼……?”
“제가 이럴 거 같아서 스타일리스트 섭외했어요. 생명뿐 아니라 전자 오프라인 행사 있을 때마다 이미지 만들어 주는 대행사인데, 실력 좋아요. 알죠? 얼마 전 비스포크.”
“몰라요.”
“아, 모르시겠구나, 참. 병원이 바쁘니까. 아무튼, 이번에 런칭한 제품 기념하는 쇼에서도 평이 좋았어요. 이수혁 선생이 뭐……. 본판이 아주 막 그런 건 아니잖아요. 괜찮을 겁니다. 일정 비워 주시면 지금 바로 숍 가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스타일링 해서 나가죠.”
스타일링이라.
수혁으로서는 너무 멀게만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뿐 아니라 이현종이나 신현태에게도 그랬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둘은 수혁보다 훨씬 학자 기질이 강해서,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단 점이었다.
이현종은 방금 마주친 신현태의 눈에서 뜻이 같다는 것을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그, 따라가도 되나요? 우리 어차피 이제 급한 불은 꺼서.”
“네? 따라와요?”
“거 스타일링이라는 게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해서.”
“아……. 시간이 많으시나 봐요?”
“의사가 환자 봤으면 그때부터는 자유죠, 뭐.”
“안 될 건 없을 거 같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부를게요.”
“네.”
남 이사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고는, 홍보실로 향했다.
이번에는 정말 잘했지만, 사실 병원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게 이현종 아니던가.
차라리 얘기를 빨리 진행하려면 실무자랑 얘기하는 게 낫다는 것이 남 이사의 판단이었다.
이현종은 그 의견을 아주 존중했기에 이별은 신속했고 또 수월했다.
또다시 셋만 남은 참이었는데 장소만 달랐다.
이젠 로비에 있었다.
“저 진짜 TV 나가는 거네요?”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수혁이었다.
당연히 상기된 얼굴이었다.
그냥 뉴스 나간다고 할 때는 별 느낌 없었는데, 15분 넘게 편성이 되어 있고 그걸 위해 헤어·메이크업에 옷도 협찬으로 입는단 소리를 듣고 나니 긴장이 된 탓이었다.
“어, 야……. 네가 나보다 낫다. 난 이제 뉴스 나가게 되려면 아마 큰 잘못이라도 저질러야 될 거 같은데.”
이현종은 그런 수혁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업적으로만 따지면야 이현종의 스텐트가 훨씬 더 어마어마한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그 시절에는 아직 국민의 관심이 건강보다는 그저 수출이나 경제 성장에만 머물러 있었더랬다.
사실 스텐트도 K-스텐트로 만들었다면 수출과 경제 성장 모두 할 수 있었을 텐데.
이현종부터가 그걸로 돈 벌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형은 조심해야지.”
“내가 뭘 조심해, 인마. 나처럼 사생활 깨끗한 사람이 어딨다고. 집만 더러워, 나는.”
“어……. 그렇긴 하지. 맞네.”
“아무튼, 수혁아. 넌 진짜 내가 힘닿는 대로 키워 줄 테니까, 그저 열심히만……. 아니다. 그냥 지금처럼만 해. 그럼 세계 최고가 될 수도 있어.”
“세계 최고는 좀…….”
“초 치지 말고, 인마. 태화에서 맘먹고 밀면 안 될 거 같냐?”
신현태는 이현종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음을 먹으면 될 거 같은데, 마음을 먹지 않을 거 같았다.
여전히 바루다가 터져 나갔던 일이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그 피해자가 바로 앞에 있기도 했고.
“왜 고개를 삐딱하게 틀어?”
“아니, 그냥……. 뭐, 알겠어요.”
이현종은 그런 신현태를 보며 나직이 한숨부터 쉬었다.
‘아……. 대외비만 아니면 얘기해 주고 싶은데.’
이제 곧 태화 바이오가 전자와 생명 일부를 떼서 상장하게 될 것이고, 그 수장은 아마도 김다현 이사가 될 거란 얘기는 물론이오.
그 바이오가 주력하는 건 당연히 신약 개발과 CMO, CRO 등이 되겠지만, 지금 수혁이 건드리고 있는 의료 목적의 A.I. 및 디지털 치료제도 있을 거란 얘기는 비밀 중에서도 비밀이었다.
“어, 왔네. 가자.”
곧 다른 데로 시선을 돌릴 수 있다는 게 다행이었다.
차량은 청담에 있는 숍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수혁은 거의 신체 개조 수준의 변신을 감행했다.
“흐음……. 그래요. 음……. 머리 위로 해 볼래요? 음. 어디 보자……. 음.”
무려 태화의 오프라인 행사를 전담하고 있다는 스타일리스트는 여러 각도에서 수혁을 관찰했고, 제일 있어 보일 만한 머리와 화장 그리고 옷을 골라 주었다.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수혁이가…… 뭐, 아주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골라 줄 때까지만 해도 이현종이나 신현태 모두 회의적이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안 된다는 걸 몸소 겪어 온 세대라서 그랬다.
둘이 간과한 것은 이제 21세기에 접어든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수혁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을 때, 둘은 첫사랑에 빠진 소년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미친.”
“존잘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