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40화 (240/1,303)

240화 이수혁 (3)

“그런 말은 또 어서 배웠어. 존잘이라니.”

이현종은 자기는 미친이라고 한 주제에 일단 신현태에게 시비부터 걸었다.

하지만 신현태는 그런 이현종에게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하지 못했다.

수혁의 외관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존잘……. 맞잖아요. 와……. 어떻게 한 거지?”

“존잘이 뭐냐고.”

“와…….”

“야, 그게 뭐……. 에이.”

시대에 뒤처진 이현종이 네이버 창에 존잘을 쳐 보기 시작했을 무렵, 수혁 또한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 화장하는 내내 들여다본 얼굴이긴 했지만.

조명이 달라지다 보니 느낌이 또 색달랐다.

“오…….”

무슨 나르시시스트도 아니고.

자기 얼굴을 보며 감탄하는 사람이 정상일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음, 변장하니까 좀 낫긴 하네요.]

바루다조차 일정 부분 인정하고 있을 지경이었다.

지금의 수혁은 확실히 멋있었다.

“딱 뉴스데스크실 조명에 맞춘 거예요. 가서도 좀 만져 드리긴 할 텐데……. 화면에서는 더 잘 나올 겁니다.”

자아도취 된 수혁을 보며 스타일리스트가 입을 열었다.

대부분 못 알아들었지만, 더 잘 나올 거라는 말은 놓치지 않았다.

“여기서 더 잘 나와요?”

“네. 저희가 중요한 방송국 스튜디오 정도는 어떻게 생겼는지 숙지하고 있거든요. 특히 조명은 기본이라……. 방송 보시면 놀랄 겁니다.”

“오…….”

“어쩌면 이거 보고 선생님 좋다는 사람 나올 수도 있어요. 이렇게 보니까 본판이 진짜 나쁘지 않아요. 아무리 꾸며도 안 되는 사람이 있거든요.”

스타일리스트는 누굴 떠올린 건지는 몰라도 한숨을 푹 하고 쉬었다.

누구라도 멋지게 보이게 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에게 어떻게 해도 멋이 안 나는 사람만큼이나 좌절감을 심어 주는 일도 없을 터였다.

“아무튼, 이제 가시죠. 저희 스텝 한 명이 따라갈 거예요. 가서 조명 보고 맞춰 드릴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뇨, 뭐. 저희는 고객사 요구에 맞춰 드릴 뿐이에요. 태화 전자 김 이사님은 실제로 저희 숍 단골이기도 하고요.”

“그래도……. 저 그냥 레지던튼데, 이렇게까지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네. 다음에는 교수님 되셔서 오세요. 더 멋지게 해 드릴게요.”

그에 비하면 수혁은 썩 괜찮은 결과물이었던 모양이었다.

스타일리스트는 내내 웃으며 수혁을 배웅했고, 스텝까지 하나 붙여 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역시나 한국 방송이었다.

태어나 처음 와 보는 방송국이라 할 수 있었는데, 괜히 심장이 뛰었다.

[제 덕에 출세했군요, 수혁.]

바루다가 감격에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바루다 때문에 비록 다리를 다치긴 했어도, 지금에 와서는 얻은 게 훨씬 많다고 봐야 했다.

‘그래, 뭐.’

[감사 인사가 영 성의가 없군요?]

‘이따가 아마 방송 끝나면 원장님이 맛있는 거 사주실걸.’

[음……. 종목이 뭘까요?]

‘네가 원하는 거 있으면 내가 이따가 슬며시 말해 볼게.’

[은혜를 아는 사람이군요, 수혁은.]

그리고 의외로 다루기도 쉬웠다.

언제부터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는데, 지금은 거의 식탐의 노예라고 보면 되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맛있는 것만 입에 들이밀어 넣어 주면 만족했다.

“뉴스 데스크 녹화실은 지하에 있습니다. 일단 신분증 저 주시고요.”

“신분증이요?”

“네. 이거 맡겨야 출입증이 나와요. 방송국이다 보니……. 간혹 막무가내로 연예인 보려고 들어가는 분들이 계셔서.”

“아…….”

“원장님, 과장님도 주시죠.”

스텝은 벌써 여러 번 이곳에 와 본 경험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주 능숙하게 신분증을 출입증으로 교환해 오더니, 뉴스 데스크 녹화실 바로 앞까지 안내까지 해 주었다.

안에는 작가와 피디가 여럿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악수를 청하며 다가왔다.

“김 이사님께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원장님. 직접 나오시는 건 아니고……. 여기 이수혁 선생님께서 나오신다고요?”

“아……. 네. 김 이사님이 여기에도 연락을 주신 거예요?”

“공식적인 루트는 아니고요. 사적으로, 하하.”

털을 복스럽게 기른 피디는 자신의 핸드폰을 탕탕 두드렸다.

약간 안하무인으로도 보일 정도로 호방했는데 아무도 뭐라 말 못 하는 걸 보면 이 자리에서 제일 높은 모양이었다.

[김다현 이사……. 인맥이 장난 아닌데요?]

‘그 나이에 거기 이사하려면 일만 잘해서 되겠냐? 정치력도 엄청나겠지.’

[그렇겠죠?]

사실 말하는 수혁이나 듣는 바루다나 소위 사회에서의 정치력이 뭘 말하는 건지 제대로 알진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김 이사의 정치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이었다.

인맥 관리 또한 그 일환이었는데, 도움이 될 만하면서 동시에 사람이 괜찮다 싶으면 꽉 움켜쥐고는 절대로 놓는 일이 없었다.

‘이 친구를 스타로 만들어 주라……. 이 말이지?’

담당 피디는 조연출일 때부터 김다현 이사가 찍어서 키워 주다시피 한 인물이었다.

태화에서 새로운 제품이 나오거나 할 때마다 정보를 이쪽으로 흘려 줬으니, 아주 노골적으로 키워 줬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머리 검은 짐승이니만큼 진짜 크고 나서는 나 스스로 큰 거요 하고 뒤통수를 때릴 수도 있었겠지만.

김다현의 사람 보는 눈은 퍽 정확했다.

동시에 피디만 큰 게 아니라 김다현이 더 커 버렸다는 것 또한 배신을 꿈꿀 수 없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다.

“이수혁 선생님? 인물이 정말 좋으신데요?”

“아이고, 아닙니다. 피디님. 화장해서 이렇습니다.”

“음, 목소리 톤도 좋고요. 환자분들 설명하실 때 이 톤으로 하시나 봅니다?”

“아, 네. 평소에는 이렇지 않은데, 긴장했나 봐요.”

실제 의사들은 의사들 특유의 톤이 있기 마련이었다.

좀 더 세세하게 들어가 보면 과마다도 조금씩 다르긴 했는데, 아무튼 간에 의사 생활을 하다 보면 싫어도 발음이 교정되고 말투도 교정되기 마련이었다.

특히 내과처럼 환자를 많이 봐야 하는 과 의사들은 더더욱 그랬다.

그중에서도 수혁은 바루다의 지나칠 정도로 객관적인 시선에 의한 훈육법으로 인해 훈련이 된 편이었다.

“아뇨, 아뇨. 아주 좋아요. 저희가 이번에 받은 내용으로 대본 적어 둔 게 있어요. 생방이라 프론트에 대본 띄우긴 하는데……. 긴장하면 많이 놓치거든요? 숙지해 두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럼 딱 이대로 가나요?”

“그게……. 앵커분이 돌발 질문을 할수도 있어요. 당연히 저희랑 사전에 조율이 되서 곤란할 만한 질문을 하진 않을 텐데, 아시죠? 저희 앵커분 고집 센 거.”

“음, 알죠.”

사실은 몰랐다.

병원 생활 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앵커가 어떤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대충 안다고 하십쇼. 이게 사회생활의 일환입니다.]

‘알았어, 알았어.’

해서 모른다고 하려는 것을 바루다가 교정해 주었다.

바루다도 수혁도 한숨이 나올 만한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세상에 멀쩡한 인간이 깡통한테 사회생활에 대해 배워야 하는 상황이라니.

“잘됐네요. 잘 대응해 주세요. 라이브라……. 그래도 인기 많잖아요. 시청률 아직도 15% 이상 나오는 뉴스 저희밖에 없어요. 말씀만 잘해 주시면 하루 아침에 유명해지실 수 있습니다.”

“네, 잘해 볼게요.”

“그럼 시간 드릴 테니까, 외우고 계셔요. 혹시 수정하고 싶은 부분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고요. 저희도 프론트용 대본이 있어서 바꿔야 하니까.”

“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받은 대본을 읽어내려 가기 시작했다.

할당된 시간이 15분이나 되는 데다가, 태화 전자와 생명 그리고 의료원 홍보팀에서 만든 자료가 너무 디테일해서 양이 꽤 되었다.

아마 보통 사람이었다면 아, 내가 대충 이런 톤으로 얘기해야 되는구만 하는 정도에 그칠 터였다.

“이야……. 내용 봐라, 이거. 너무 프로그램 칭찬하는 거 아닌가?”

“근데 이걸 어떻게 다 외워?”

검토 목적으로 같은 대본을 전달받은 신현태나 이현종도 감히 외울 생각을 하진 못했다.

“다 외울 수는 없고요. 톤을 익히시는 거죠, 뭐.”

피디도 마찬가지였다.

딱 내용을 전달받는 순간 이건 외우라고 주는 게 아니구나 싶었으니까.

하지만 신현태와 이현종이 피디와 다른 점 또한 있었다.

“아냐, 수혁이는 외워. 봐라, 이제? 쟨 외워.”

“형. 외우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이거보다 더 잘 말할걸.”

“하긴 괴물이지, 진짜. 발표할 때마다 놀란다니까? 이젠 놀라면 안 될 거 같거든? 이미 완벽하니까? 근데 놀래.”

“그건 형이 팔불출이라 그런 거고…….”

“뭐, 인마. 그럼 인마 쟤가 아들인데 자랑 안 하게 생겼냐?”

“어…….”

워낙에 진지한 얼굴이라 신현태는 하마터면 쟤 형 아들 아니라고 할 뻔했다.

이현종 또한 신현태의 말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입을 틀어막았고.

어떻게 봐도 집중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는데.

수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본을 이미 다 외운 참이었다.

[데이터화했습니다. 이대로 말씀 하시면 되긴 하는데…….]

‘약간 어색한 부분이 있지?’

[네. 이렇게 조정해 봤는데 어떻습니까?]

‘음……. 훨씬 낫네. 앵커분 질문을 예상할 수는 없나?’

[바루다는 A.I.로 만들어졌지, 점쟁이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대강 행동 예측은 가능하다며?’

수혁은 언제나 그 대상이 되어 주는 이현종과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바루다는 그런 수혁을 더없이 한심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말이나 해 봤어야 행동 예측이 되죠. 제 모든 분석은 선행되는 데이터 수집을 필요로 합니다. 아직도 이렇게나 모르다니……. 수혁은 역시…….]

‘역시 뭐. 바보 같다고?’

[행동 예측 잘하네요. 기반이 된 데이터가 있을 겁니다. 예측은 그런 식으로 하는 거예요, 무슨 별자리를 읽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오.’

바루다와의 입씨름은 언제나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미간에 절로 주름이 잡혔는데, 피디나 다른 이들에게는 암기가 어려워서 그런 것으로만 보였다.

“어이고, 우리 수혁이 고생하네.”

“그래도 이건 해야지. 이거 하면 야, 대박이다. 진짜.”

“뭐가 그렇게 대박인데. 쟤 나랑 똑같이 일했어. 어휴, 생각해 보니까 지금 뜨끈한 물에 몸 지지고 잤어야 되는데…….”

“철없는 소리 좀 그만해라. 앞길이 구만리인 애를 재우겠다고?”

이런저런 대화를 양산했을 정도였다.

그 모든 잡담이 멈춘 것은 앵커가 도착한 다음이었다.

스타 앵커라 그런지 아우라가 있었으나, 수혁의 눈에는 그저 아저씨로만 보일 따름이었다.

바루다 덕이었다.

[수혁은 너무 잘나 보이는 사람 옆에 서면 스스로 쭈굴거리는 단점이 있습니다. 자율 신경계를 조금 만졌으니……. 안심하십쇼.]

‘야, 그런 거 막 만져도 돼?’

[이제 데이터 쌓여서 괜찮습니다. 안 죽더라고.]

‘해 봤어?’

[잘 때, 가끔씩. 심심해요, 밤에.]

‘와……. 이 미친…….’

[불만은 나중에 늘어놓고, 이제 결전의 순간입니다. 가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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