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이수혁 (4)
“여러분, 집단 감염이라는 말을 알고 계시나요? 전염병이 한정된 지역의 사람들 사이에서 한꺼번에 발생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이 공간이 병원인 경우에는 그 심각도가 더더욱 높아진다고 합니다. 최근 이런 사건이 하나 있었죠? 수도권 내에 있는 스무 개가 넘는 병원에 집단 감염이 있었는데요. 사망자가 무려 다섯이나 나왔습니다. 그나마도 태화 의료원에서 빨리 진단하고 치료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피해가 열 배는 더 컸을 거란 분석이 있습니다.”
앵커는 청산유수로 뉴스를 진행하고는 수혁과의 코너에 앞서 혼자 말을 이어 나갔다.
[잘하네.]
‘잘하지, 그럼. 저게 직업인데.’
[그중에서도 잘하니까 유명한 거 아닐까요?]
‘뭐, 그렇긴 하겠지? 근데 너 내 자율신경 톤 너무 조절하는 거 아니냐? 라이브라는데 이렇게 안 떨어도 돼?’
수혁은 정면에 있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카메라에 익숙할 리 없는 사람이라 아무것도 없이 저것만 하나 띨룽 있기만 해도 떨릴 텐데.
지금은 각 조명에 에워싸고 있는 사람만 열 명이 넘었다.
신현태와 이현종을 제외한, 직원들 수만 그랬다.
[안 건드렸을 때 톤 보여 줘요?]
그러자 바루다가 한껏 비웃더니 조작을 중단했다.
‘어우.’
그와 동시에 일단 손가락부터 달달 떨려 왔다.
그뿐만 아니라 얼굴도 떨리기 시작했다.
겨드랑이도 축축해졌고.
덕분에 수혁은 마치 교감신경 과다 항진증 증세를 일부 경험할 수 있었다.
[조절하는 게 낫겠죠?]
‘어, 뒤지는 줄 알았네.’
[자……. 이쪽 봅니다. 이제 시작이에요.]
수혁은 아까 대기실에서 이현종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리며 앵커를 마주했다.
바루다에 따르면 뭔가 숨기는 게 있긴 한데, 긍정적인 거라 했다.
‘병원의 명운이 걸렸을 수도 있다, 수혁아.’
도대체 큰일 앞둔 제자에게 부담감을 더 실어 줘서 뭘 어쩌겠다는 건지 모를 일이긴 했는데.
그간의 이현종 캐릭터를 보면 아마도 격려였을 터였다.
“오늘은 그 주인공이신 태화 의료원 내과 레지던트 2년 차 이수혁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수혁입니다. 반갑습니다.”
“네, 레지던트라고 들었을 때 젊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직접 뵈니까 정말 젊으시네요. 혹시 실례가 안 되시면 몇 살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올해로 29입니다.”
“와……. 그런데 이번 집단 감염 사태를 맡은 장본인이시라는 거죠? 어떻게 그게 가능했을까요?”
일단 첫 질문부터가 대본이랑 달랐다.
피디가 열심히 그러지 말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다행한 일은 수혁이 이미 대본을 다 외웠을뿐더러 여러 돌발 변수를 상정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선 패혈증 예측을 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부터 말씀을 드려야 순서가 맞을 거 같습니다. 괜찮을까요?”
“네네. 물론입니다.”
“패혈증은, 이번 사태로 많이들 들어 보셨을 텐데, 어떤 감염이든 감염이 진행하면서 혈액으로 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한 것을 의미합니다. 전신 어디든 감염이 번질 수 있는 상황이기에 아주 위험한 상태라고 보시면 됩니다.”
“예방이 중요하겠네요?”
“네. 일단 패혈증으로 가서 전신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거나, 또는 혈압을 떨어뜨리는 등의 활력징후 변화를 보이게 되면 예후가 나빠집니다. 그래서 앵커님 말씀대로 예방이 중요한데요, 저희가 개발 중인 패혈증 예측 프로그램이 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 프로그램은 그럼 이수혁 선생님이 만들고 계신 건가요?”
“아뇨. 저는 아이디어를 냈고, 제작에 필요한 임상 데이터를 가공하고 제공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실제 프로그램 제작은 태화 전자 소속 바이오 전자팀이 맡고 있습니다.”
첫 대목부터 대본과 틀어졌지만, 품고 있는 내용이 부족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자연스러워서 전달이 잘되는 느낌이었다.
피디도 신현태도 이현종도 역시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뿐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김다현 이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나도 안 떠네? 방송해 봤나?”
“아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스타일도 좋네. 너무 어려 보이지 않으면서 젊어 보이고. 또 잘생겼네, 역시 거기가 잘한다니까.”
“네. 좋은데요?”
“응. 내용도 좋아. 어필도 부담스럽지 않게 잘하고 있고.”
김다현 이사의 말대로 수혁은 자신과 태화 전자 그리고 태화 의료원의 업적을 아주 자세히, 하지만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대견해할 만한 톤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심지어 노회한 앵커마저 수혁에게 호감을 품게 되었을 정도였다.
“와……. 천재 아닙니까?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제작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보통 일이 아닌데, 아직 완성되지 않은 프로그램으로 이번 집단 감염 사태를 잡아내다니요?”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열심히 했고,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감염 관리실 도움이 아주 컸습니다. 워낙 프로토콜대로 잘 움직이고 있어서 예상 가능한 변수가 적었습니다.”
“그렇군요. 괜히 태화 의료원이 환자분들에게 선택을 받고 있는 게 아니었네요. 이것 참. 시간이 벌써 15분이 갔네요. 생각 같아서는 더 붙잡아 두고 싶은데, 보내 드려야겠죠?”
“저도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아뇨, 아뇨. 기회가 되면 다른 일로라도 한 번 더 부르고 싶군요.”
“불러 주시면 꼭 나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15분이 지나고 스테이션에서 내려온 수혁을 향해 피디가 다다다 달려왔다.
방송한 건 수혁인데 어째 이 피디 얼굴이 더 상기되어 있었다.
“와……. 저 앵커님이 다시 나오라고 하는 거 여기 몇 년 있으면서 처음 봤어요.”
“진짜요? 너무 친절하시던데.”
“아니에요, 아냐. 원래 독설가로 유명하잖아요. 여기 불려 나와서 죽도록 깨진 사람이 몇인데……. 해명하러 나왔는데 관짝에 못 박는 방송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어요? 이거 다 선생님이 너무 잘해 주셔서 그렇습니다.”
“그런가요? 괜찮게 나간 거 같습니까?”
“어유, 말도 마세요. 야, 야! 그거 띄워 봐.”
피디는 수혁 앞에서는 껄껄 웃더니 무서운 얼굴로 누군가를 닦달했다.
막내 작가인지 누군지 모르겠는 사람이 급히 키보드를 두들겨 무언가를 띄웠다.
그 무언가는 시청자 게시판이었는데, 새 글 알람 표시가 주르륵 붙어 있었다.
그걸 본 피디는 아까보다 더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찌나 열정적으로 얘길 하는지 튀어 나가는 침이 다 보일 지경이었다.
“보세요, 지난 일주일 동안 쌓인 글보다 지금 15분 동안 쌓인 게 더 많아요. 보통 이러면……. 출연자가 물의를 일으켰을 때거든요? 원래 사람들이 칭찬하려고는 가입하고 로그인 안 해요. 욕하러 올 때나 하지.”
슬픈 현실이라 할 수 있었다.
대개 좋은 인상을 받은 사람은 속으로만 아 좋네 할 뿐 내색하지 않았다.
내 칭찬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지 잘 몰라서일 터였다.
그에 반해 화난 사람들은 물불 안 가리고 와서 악플을 달기 마련이었다.
아마도 그 악플이 상대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지, 심지어는 죽음으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는 아닐 거 같았다.
피디는 얼마 전 있었던 중대한 사태를 떠올리다가 몸을 부르르 떨고 나서야 말을 이어 나갔다.
“근데 봐요? 이거 아무거나 눌러 봐.”
“욕 나오면 어째요?”
“그럴 리가 없다니까요. 봐 봐, 이거. 오늘부터 한석준 앵커 말고 이수혁 선생님 팬 할래요. 어쩜 그렇게 멋져요? 이수혁 선생님 외래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역시 태화 의료원이 전통이 있는 만큼 실력도 진짜네요. 천재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이수혁 선생님 말하는 거네요. 이거 봐요……. 누르는 것마다 이래요. 나 진짜 이런 건 처음 봅니다.”
대본이 우호적인 것도 영향이 있긴 했을 터였다.
원래 방송이란 게 보여 주고 싶은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여 주면 사실만 보도하는 건데도 전체 상황은 충분히 왜곡할 수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핫한 건 죄 수혁 덕분이라고 보면 되었다.
묻는 말마다 망설임 없이, 한결같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조리 있게 답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오…….”
“야, 이거 진짜……. 대박 났네. 내일부터 태화 의료원 미어터지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에 그 집단 감염 사태 대응 차이로 브랜드 이미지 많이 개선하셨던데, 오늘 건 진짜 묵직하네요.”
피디만 감탄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보다 조직적으로 반응을 모니터링하고 있던 김다현 이사 측은 오히려 더 놀라고 있었다.
“오렌지베란다 카페 어때요?”
전자에서, 특히 가전 파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보는 곳 중의 하나가 바로 맘 카페였다.
어떤 신제품을 출시했을 때 이곳에서의 반응이 별로면 그냥 망했다고 보는 게 맞다는 얘기까지 돌 지경이었다.
“장난 아닌데요? 일단 이수혁 선생이 오늘 진짜 잘생기게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 얘기가 많아요. 중간중간 태화 칭찬도 있고……. 심지어 바루다 프로젝트도 다시 해야 되는 거 아니냔 의견도 있습니다.”
“전체 글이 몇 갠데요?”
“지금……. 거의 200개도 넘습니다. 댓글까지 하면 2천 개도 넘고요.”
카페 하나에서 저만한 반응이 방송 직후 나타나는 건 퍽 오랜만의 일이었다.
물론 죽도록 잘못한 누군가가 있는데 하필 그 누군가가 호불호가 갈렸던 사람이라면야 욕과 옹호 글이 이보다 더 튈 때도 있지만.
칭찬 일색인 분위기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라고 단언해도 좋았다.
“오케이, 거긴 됐고. 커뮤니티는?”
“반응 있는 곳도 있고, 없는 곳도 있는데……. 오늘 방송 나간 거 짜집기 해서 한번 잘 돌려 보겠습니다. 아마 바이럴은 될 거예요. 바로 반응이 있으니까요.”
“좋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이수혁 선생으로 해요. 마스크 좋고, 이미지 젊고 좋잖아.”
“네.”
“대신 태화 얘기 항상 들어가게끔 하시고. 이미지 개선하면서 동시에……. 바루다나 이런 개발 중단된 거에 대해 아쉽다는 투로 해요. 그래야 티도 안 나고 그룹 압박도 하지.”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나대로 여기서 분사 프로젝트 이어 나갈 테니까……. 그것만 좀 해 줘요. 요새 그룹에서 바깥 시선만큼 두려워하는 게 없다는 거 알고 있죠?”
“물론입니다.”
남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을 나섰다.
바깥 시선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가면서였다.
대한민국에서 재벌이 두려워하는 게 있다는 게 좀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상은 이미 바뀐 지 오래였다.
소비자들은 가성비보다 가심비를 따지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올바른 소비에 몰두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지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단 얘기였다.
‘이미지 구축이라면……. 나나 김 이사님 따라올 사람도 없지.’
게다가 오늘 보니 이수혁이라는 친구도 스타 기질이 다분했다.
데뷔전부터 너무 큰 무대로 준비해서 체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멋지게 잘 해내지 않았던가.
그 말은 곧 이제부터 당분간 수혁이 걸을 길은 비단길이 되었단 뜻이었다.
‘좋아……. 교수로 바로 뽑든 뭘 시키든 너무 어리다는 얘기는 안 나오게 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