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42화 (242/1,303)

242화 3년 차 (1)

TV에 나가고 나서 유명인이 된 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하지만 병원 내에서만 활동하는 수혁이 체감할 수는 없었다.

그저 간혹, 수혁이 보기엔 백 퍼센트 태화 측에서 흘린 자료들이 기사화가 되거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는 것이 잦아졌을 따름이었다.

‘와, 대박. 내 글이 여기 베스트 10위 안에 들었네.’

[심지어 여성분들이 주로 이용한다는 카페 글이네요. 댓글 좀 봅시다.]

‘상처받기 싫은데.’

[모든 여성들이 수혁을 싫어할 거라는 피해 의식에서 좀 벗어나시죠.]

‘그게 아니라…….’

[그리고 지금 이분들이 보는 수혁은 이 수혁이 아니라, 방송에서 만들어 준 수혁입니다.]

수혁은 지금 잠에서 깨자마자 컴퓨터를 켠 참이었다.

다시 말하면 수혁이 보여 줄 수 있는 가장 추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반면 화면에 뜬 수혁은 같은 사람이 아닌 거 같았다.

웬 연예인이 하나 앉아 있었다.

그 괴리감은 수혁을 조금 슬프게 했다.

‘그렇게 차이가 나냐?’

[양심 어디 갔습니까?]

‘아무튼……. 그래, 댓글이나 한번 봐야지. 혹시 나쁜 댓글 있으면 데이터화하지 마.’

[실패를 토대로 데이터를 쌓아야 발전할 수 있는데도요?]

‘얼굴 실패를 대체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는데?’

[타당한 의견이군요. 알겠습니다. 외모 관련 악플은 배제합니다.]

둘은 잠시 서글픈 대화를 나누다가 비로소 스크롤을 내렸다.

게시글의 내용 자체는 맨날 보던 것이었기에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저 반응만 궁금했다.

[이 사람 완전 취저다.]

대개 비슷한 댓글들이 있었는데, 그중 눈에 띄는 건 이거 하나였다.

‘최저래…….’

[취저라고 쓰여 있는데요?]

‘오타겠지. 너 취저라는 단어 알아?’

[모릅니다. 최저는 알죠. 아, 그렇다면 오타겠군요. 이 댓글은 배제합니다.]

‘하아.’

[웬 한숨입니까? 나머지 댓글은 그래도 다 호의적이었는데요?]

‘원래 선플 100개가 악플 하나 못 이긴다잖아.’

[이해하기 어렵군요.]

수혁은 바루다에게 사람의 감정에 대해 떠들려다가, 이내 고만두기로 했다.

그걸 이해하면 얘가 사람이지, 기계겠는가.

최근 점점 바루다가 사람 같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지하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해서 수혁은 아예 화제를 돌리기로 작정했다.

‘오늘이지? 1년 차들 들어오는 거.’

[네. 수혁은 3년 차 첫날이고요.]

‘음.’

3년 차.

다른 과에서는 바이스 치프라고 불렸는데, 보통은 전공의 4년 중 제일 편한 과정이었다.

별명이 투탕카멘인 사람도 있을 지경이었다.

깨우면 저주를 받는다나 어쩐다나.

하지만 내과는 사정이 달랐다.

원래 4년이었던 과정이 3년으로 줄어들면서 어쩔 수 없이 수련 과정이 촘촘해진 탓이었다.

내과는 3년 차가 치프였다.

다시 말하면 해당 분과의 선장이었다.

‘1년 차……. 하윤이지?’

[네. 의국장 권한으로 그렇게 하셨죠. 저는 아직도 권력 남용이라고 판단합니다.]

‘새꺄……. 그게 남용이니? 1년 차 중에 나랑 돌고 싶다고 한 애들이 80%가 넘는데. 그중에서 나랑 제일 친한 애 뽑은 거 아냐.’

[아무튼 뽑은 건 수혁이지 않습니까? 원하는 사람 곁에 두는 거, 그게 권력의 전횡이라고 배웠습니다.]

‘누구한테!’

[그렇게 말려도 수혁이 보는 텔레비전한테요.]

‘하.’

왜 나는 단 한마디도 이놈을 이길 수 없는 걸까?

수혁은 짙은 한숨을 쉬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뭐가 되었건 간에 3년 차로서의 첫날이지 않은가.

게다가 한 달도 못 채우고 두바이로 떠야 하는 몸이기도 했다.

남은 날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이 치프 된 도리이자, 의국장의 도리이기도 했다.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깔끔하게 씻고 밖으로 나가니, 하윤과 대훈이 인사를 걸어왔다.

이를테면 수혁의 팬클럽 멤버 둘이 다 여기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하게도 바루다가 다시 한번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댔다.

[권력의 횡포…….]

‘시끄러.’

수혁은 그런 바루다의 잡소리를 대번에 제압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녕. 잘 잤어? 오늘 첫날인데.”

“너무 긴장해서……. 사실 여기 4시에 나왔습니다.”

“4시? 4시에 나와서 뭐 했어?”

“환자 파악했습니다. 불안해서 어차피 잠도 안 오고요…….”

하윤의 말에 대훈이 웃음으로 화답했다.

본인 1년 차 때 생각이 나서였다.

“그땐 다 그래. 그럴 수 있어.”

그리곤 마치 이젠 안 그런 것 같은 답변을 입에 올렸다.

수혁이 보기엔 다 우스운 일이었다.

내과 병동에서 만 2년을 굴러먹은 베테랑 아니던가.

진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긴장 안 할 자신이 있었다.

“고생했네. 근데 첫날부터 너무 진 빼면 못 따라가. 1년 차 1년이잖아. 생각보다 길다, 하윤아.”

“네,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여기 세 명 중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군기가 빡 들어가 있었다.

‘귀엽네.’

[아직도 여자로 보이는 건 아니죠?]

‘후배로 귀엽다고. 후배로. 포기한 지 오래거든?’

[그런 슬픈 말 자랑하듯이 하진 말고요…….]

바루다가 중간에 좀 시비를 털긴 했지만, 대견하고 또 흐뭇한 건 사실이었다.

윗사람으로서 아랫사람이 열심히 하겠다는 열의를 불태우고 있는데 그걸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면 그게 이상한 놈이었다.

“자, 그럼 회진 돌까?”

“어……. 환자 보고 안 드려도 되나요?”

“아……. 난 원래 안 받긴 하는데.”

수혁은 잠시 걸음을 멈춘 채 생각에 빠졌다.

다시 말하면 바루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어떡할까?’

[이제부터 3년 차네 어쩌네 하고 폼 잡은 건 수혁이지 않습니까? 의국장이기도 하고. 가르쳐 줘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보고를 받고, 부족한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죠.]

‘오케이. 그게 좋겠네.’

수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학창 시절 좋아했던 교수님들을 떠올렸다.

인자한 미소와 함께 부족한 점을 차근차근 알려 주시던 분들.

시간이 지나도 감사한 인상이 남아 있었다.

“그래도 준비했으니까, 들어 볼까? 음……. 역시 1년 차부터 하는 게 좋겠지?”

다른 곳에서도 그렇겠지만, 아랫사람 앞에서 까는 거 만큼 비인간적인 일도 드문 법이었다.

해서 수혁은 안대훈을 두고 일단 우하윤의 보고부터 듣기로 했다.

대훈의 안도의 한숨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하윤이 입을 열었다.

“1203호 이다라 환자분. 내원 1주 전 시작된 등 쪽 통증을 주소로 외래 내원했고, 시행한 검사상 혈뇨 및 요중 백혈구 증가해 있었고, 복부-골반 CT에서도 신우신염 진단되어 현재 항생제 치료 중입니다. 상태 호전…….”

어떻게 들으면 꽤 똘똘한 노티이긴 했다.

상태가 호전되고 있으니, 이걸로 됐다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곳은 태화 의료원이지 않은가.

태화의 내과라면 최고여야 했다.

꽤 똘똘한 것으로는 좀 부족했다.

“잠깐. 환자 증상이 등 쪽 통증뿐이었나? 그것만으로 소변 검사할 생각을 어떻게 하지?”

“어…….”

“등 쪽 통증이 시사하는 질환이 뭐가 있지? 한번 말해 봐.”

“자, 잠시만요.”

반면 하윤으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말 그대로 새벽 4시부터 파악했는데, 증상에서부터 걸리는 게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도움을 줄 법한 안대훈을 바라봤는데 야속하게도 안대훈은 빠르게 눈을 피했다.

‘선배……. 선배도 3년 차 이수혁 선배는 처음이구나.’

원래 수혁의 가르침이라는 게 워낙에 혹독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현종이 주관하는 수업에 와서 더럽게 어려운 문제로 모든 본과 4학년 머리를 깨부숴 버린 적도 있지 않은가.

그땐 학생이라 더 어렵게 냈나 했는데, 인턴으로 들어와 보니 오히려 학생이라 봐준 것이었다.

2년 차 됐다고 1년 차들을 교육하겠답시고 괴롭히는데…….

처음 모였던 것이 1년 차 전원이었던 것에 반해 끝까지 버틴 건 안대훈 하나라는 것만 봐도 느끼는 바가 있을 터였다.

‘등 쪽으로 통증……. 통증…….’

아무튼 간에 하윤은 두뇌 풀가동을 시전했다.

수혁의 교육이 빡세다고 배움을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애초에 그런 핑계를 대는 사람이라면 의대에 들어오지 못했을 것이고, 설령 들어왔다 하더라도 졸업까지는 어려웠을 터였다.

“아, 일단 심각한 것부터 하면……. 심근경색이 있고, 췌장염에…… 근육통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그래. 심각한 질환들이 있지? 외래에서 그걸 어떻게 배제했지? 흔한 것부터 진단하는 게 원칙이지만, 일단 생명에 지장이 있을 거 같은 질환은 먼저 확인해야 되잖아? 외래에서 심전도를 했니?”

“음……. 아닙니다. 그런 기록은 없습니다.”

“그럼 어떤 증상을 보였을까?”

“음.”

하윤은 재차 생각에 빠졌다.

외래는 신현태 교수가 본 것이었고, 워낙에 편집증 비슷한 외래를 보는 양반이다 보니 기록은 많았다.

즉 노티가 빠꾸를 먹은 건 기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 기록을 선별하는 과정이 부족해서였다.

“발열과 빈뇨가 있었습니다. 잔뇨감도 있었고요.”

“좋아. 거기에 등 통증이 있었으니, 당연히 심근경색보다는 요로 감염을 의심해야겠지?”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무슨 검사를 했어? 바로 소변 검사를 했을까?”

“어…….”

“자, 등에 통증, 발열, 빈뇨, 잔뇨감. 뭐가 의심돼?”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윤으로서는 진땀 흐르는 순간일 뿐이었지만, 옆에 있는 안대훈에게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그래도 하윤보다는 내과 환자를 진단한 적이 있고, 또 주치의로서 끝까지 따라가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아……. 이거 진단 과정을 가르치는 거구나.’

진단이라고 하는 게 사실 별 게 아니었다.

머릿속에서 가능할 법한 진단명을 하나씩 지워 나간다고 보면 되었다.

물론 그게 더럽게 어려워서 경험 많은 의사들조차 오진을 하거나 진단을 놓치기도 하긴 하지만.

아무튼, 과정 자체는 지금 수혁의 질문대로 이어지는 법이었다.

“요로 감염……?”

“그래, 요로 감염에는 뭐가 있지?”

“신우신염, 방광염 등이 있습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은?”

“통증……. 아, CVAT(Costovertebral angle tenderness: 늑골척추각의 압통)!”

“그래, 그거 했을걸.”

“맞아요. 했고……. 양성 소견이었습니다. 그럼 교수님은 여기서 이미 신우신염을 의심하셨겠군요?”

“아마 그럴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그 이후에 처방하신 검사들이 자연스럽지?”

“네, 아…….”

수혁이나 다른 경험 있는 내과 의사들에게는 특별할 것도 없는 진단 과정이었다.

하지만 머릿속에 지식이 들었을 뿐, 아직 그 지식을 체화하지 못한 하윤에게는 너무 신기한 과정이었다.

학교에서는 신우신염에 대해 배우지, 등이 아파서 오는 환자에 대해서 배우진 않지 않은가.

아예 과정을 거꾸로 배운다고 보면 되었다.

병원에서는 그렇게 배운 지식을 해체해서 다시 배열해야만 했다.

“자, 또 해 봐.”

“네, 선생님.”

다음 노티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하윤도 똑똑한 사람이라 수정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어찌 세상에 오진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을까.

‘아이고……. 우리 수혁이가 애들 대신 잡는구나……. 마냥 여린 줄로만 알았더니 다 컸어……. 현종이 형한테 영상으로 보내 줘야지.’

시간이 좀 오래 걸려서, 신현태가 온 후에도 계속될 지경이었다.

신현태는 하윤과 대훈을 구해 줄까 말까 하다가 그냥 말기로 작정했다.

일단 교육법이 제대로 돼서이기도 했고, 수혁의 얼굴이 너무 밝아 보여서이기도 했다.

남을 괴롭히면서 즐거워진다니.

크게 될 인물의 상징 같은 특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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