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3년 차 (2)
<그래? 수혁이가 애들 갈궈?>
<네, 장난 아닌데요? 엄청 갈궈.>
<다 컸네……. 때리진 않지?>
<당연하죠. 그냥 말로 하는데, 수위는 적당해.>
<역시 내 아들이다.>
신현태는 신나게 문자를 주고받다가 잠시 멈추었다.
내 아들이라니.
이 말을 남들 앞에서가 아니라 둘이서만 있을 때도 하는 걸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묘한 기분이라기보다는 걱정이 되었다.
‘머리가 좀 이상해진 건 아니겠지?’
가뜩이나 이현종이 정상인은 아니란 생각을 늘 하고 있던 참이지 않은가.
요새 자꾸 수혁이가 아들이라고 하는 게 설마 진짜 그렇게 믿고 있나 싶기도 했다.
실제로 이현종은 친자식이라 해도 이렇게까지는 못 해 주겠다 싶을 만큼이나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씹냐?>
잠시 망설이고 있으려니 문자가 또 왔다.
신현태는 뭐라 하지 하고 고민하다가, 이내 도망가기로 마음먹었다.
여기서 괜히 형 진짜 아들이라고 생각해? 라고 물었다가, 무슨 소리야 진짜 아들이지 라는 답이 오면 감당이 안 될 거 같았다.
<어……. 나 이제 회진 돌아야지. 1년 차까지 와서. 이따 봐.>
해서 신현태는 대강 톡을 끝내고는 흐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굳이 수혁처럼 엄청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도, 3년 차쯤 되면 과장 헛기침 소리 정도는 분간하게 되는 법이었다.
아니, 2년 차도 그랬다.
해서 수혁은 티칭과 갈굼 사이 어딘가에 있던 것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교수님.”
“어. 회진 돌았나?”
“아뇨, 지금 일단 환자 브리핑만 받고 있었습니다.”
“어……. 그래, 그럼 간단하게 해 볼래? 우하윤 선생, 한번 해 보지.”
신현태는 지금껏 수혁과의 대화를 다 엿들었기에 환자 파악은 제대로 된 상황이었다.
사실 듣지 않았다 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오기 전에 벌써 차트 한번 싹 보고 왔으니까.
온종일 수술실에 사는 외과계 교수가 아니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위인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네, 교수님.”
반면 그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우하윤은 아까보다는 좀 더 자신 있는 얼굴이 되어 노티를 시작했다.
내내 수혁에게 1대1 과외받다시피 했던 몸 아니던가.
이 환자가 왜 왔는지, 검진에서는 어떤 소견이 보였는지, 그래서 담당 의사가 뭘 의심했고, 어떤 검사를 추가로 했는지 등등을 군더더기 없는 말투로 쏟아 내었다.
아마 이전 대화를 모른 채 처음 이 노티를 들었다면, 신현태는 제2의 수혁이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었을 터였다.
그만큼 훌륭했다.
“음, 잘하는데? 그래, 그럼 한번 얼굴 보자고.”
“네, 교수님.”
해서 신현태는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회진을 돌기 시작했다.
딱히 어려운 환자도 없고, 또 힘든 환자도 없어서 회진은 금세 끝이 났다.
1년 차로서 도는 첫 회진이라 잔뜩 긴장하고 있던 우하윤으로서는 조금 맥이 탁 풀릴 지경이었다.
신현태는 그런 우하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이런 말을 입에 올렸다.
“첫날이라 그런가, 나름 수월하네. 이렇게 시간 나는 날이 많지는 않을 테니까……. 틈틈이 공부해 두고.”
“네, 교수님.”
그렇다고 환자가 없네 어쩌네 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그런 소리 했다가는 교수고 나발이고 욕을 얻어먹기에 십상이었다.
미신일 뿐이겠지만, 신기하게 저딴 소리 한 날은 밤이고 낮이고 중한 환자들이 미어터지도록 왔다.
심지어 천방지축이라 할 수 있는 이현종도 지키는 금기였다.
“수혁이는 오늘 오전에 외래지?”
“아, 네.”
“그래……. 나도 외래거든? 어차피 할 얘기도 있으니까, 같이 가지. 안대훈 선생은 협진 난 거 1년 차 선생이랑 같이 챙기고. 모르겠으면 수혁이한테 노티하고.”
“네, 교수님!”
신현태는 협진을 2년 차 대훈에게 맡기고는 수혁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군기가 빡센 과들은 1년 차가 달려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야 하는 것이 원칙이었는데, 내과는 그런 분위기까지는 아니었다.
특히 신현태는 그런 종류의 의전은 아예 하지 말라고 공언한 바 있었다.
해서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려야만 했다.
“수혁아.”
둘이 말없이 기다릴 만큼 서먹한 사이는 아니지 않은가.
신현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고, 수혁 또한 귀를 기울였다.
“네, 과장님.”
“이제 3년 차지? 의국장이고.”
“네.”
“이번에 올라온 거 보니까 벌써 휴가 스케줄 다 정리해서 올렸던데……. 왜 너만 휴가 스케줄이 없냐?”
“저야 뭐……. 따로 만나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없어서요. 일단 스페어로 일정 빼놨다가 남들 안 갈 때 가려고 합니다.”
답을 들은 신현태는 저도 모르게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우리 수혁이가 애인이 없지.’
TV에 나온 모습만 보면 잘생긴 데다가 똑똑하니 바로 생길 것도 같은데.
이상하게 현실에서는 모솔이었다.
본인 말로는 언젠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야말로 본인 말일 뿐이었다.
수혁을 그렇게 좋아하는 이현종조차 그건 아마 거짓말일 거라고 여기고 있을 지경이었다.
얼마 전 소개팅 사건을 전해 듣고 나서는 의심이 확신이 되었다.
‘우리 앞에서는 그렇게 똑똑한 놈이 왜 소개팅만 나가면 병신 짓을 할까?’
이건 수혁도 궁금해하는 사안이었다.
왜 바루다는 의학적 분석이나 병원 사람들 분석 및 행태 파악은 잘하면서 연애 코치는 못 할까.
내면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 최고의 의사를 만들기 위한 큰 그림이 있었지만 바루다가 수혁에게 알려 준 적이 없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루다의 존재를 모르니 그저 수혁이 이상하다고만 여기고 있었다.
“야, 야. 인마.”
신현태는 본인이 너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는 사실을 민망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수혁은 딱히 그런 거로 상처받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네?”
“네가 왜 혼자야. 나랑 현종이 형 있는데. 이번에 저기 어디냐……. 괌에서 학회 있거든? 거기 말이 학회지, 사실 놀러 가는 곳이야. 일정은 하루뿐이야. 거기 가자. 6월에 휴가 내. 내가 승인할게.”
“어……. 의국장 휴가를 6월에 가도 되나요? 그때 다른 애들이랑…….”
“야. 원장이랑 과장이 커버 칠 텐데 뭐가 걱정이니. 너 쓸쓸하게 놀래? 아니면 우리 싫어서 그래?”
싫어한다니.
아마 친자식이면 오히려 그럴 수도 있을 거 같았다.
20대 후반에 아빠랑 삼촌 같은 사람 둘이랑 해외여행을 가?
어디 크게 사고 친 놈이거나, 돈이 급한 놈 아니고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수혁에게 이 둘은 생애 처음 갖게 된 가족 같은 존재였다.
“아, 아뇨. 저야 너무 좋죠.”
“그래, 그럼 가자. 가서 그냥 좀 놀자. 너 모르지? 현종이 형 나름 다이빙 선수야. 잘해. 가기 전에 가르쳐 준대.”
“다리가 이래서……. 괜찮을까요?”
“어차피 둘이 옆에 있는데 뭐. 괜찮을 거래. 강사도 붙어 있을 거고.”
“그럼 전 뭐 좋습니다. 내겠습니다.”
“좋아. 그리고…….”
그때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어차피 개인적인 얘기가 이어질 참이라, 신현태는 부리나케 수혁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 수혁이 하는 걸 보니 알아서 잘할 거 같긴 하지만.
스승 된 마음이 어디 그렇기만 하던가.
애정하면 애정할수록 노파심이 고개를 쳐들기 마련이었다.
“이제 3년 차잖아.”
“네.”
“넌 교수도 될 몸이고. 확정이지, 뭐. 그렇지?”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딴 데 안 가고 여기 남으면 태화에 이득이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미 수혁은 처한 상황이 바뀐 지 오래였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이적 시장에 풀릴 수 있는 사람이었으나 이젠 아니지 않은가.
이미 태화 전자와 개발 중인 A.I. 때문에 얽히고설킨 게 너무 많았다.
심지어 병원 복도 어딘가에는 수혁 얼굴이 박힌 병원 광고판까지 있었다.
물론 신현태는 그런 말을 굳이 입에 올릴 만큼 무신경한 사람은 아닌지라 전혀 다른 말로 말을 이었다.
“아무튼…… 교수가 말야. 뭐 대학 병원 교수는 사실 진료나 연구가 메인이긴 해. 학생 티칭이야 강의 뭐 일 년에 몇 번 하지도 않지. 학회 발표가 오히려 많지. 근데 그래도 전공의 교육은 신경 써야 되거든. 여기 교육 기관이잖아. 안 가르칠 거면 남아 있으면 안 되지.”
말을 하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몇몇 인물들이 있었다.
저럴 거면 대체 왜 대학 병원에 있나 싶은 사람들.
대학 병원이 곧 대형 병원이 되어 버린 대한민국 의료계에서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티칭 마인드가 너무 없는 인간들도 있었다.
예전엔 그래도 된다는 인식마저 있었다.
전공의는 그냥 일하다 보면 배운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 않은가.
신현태는 너무 방대한 영역이 되어 버리고 있는 현대 의학에서 제자들이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교수의 가르침이 절대적이라 여기는 위인이었다.
“너도 그러니까 티칭 마인드를 가져야 해.”
“아…….”
“아까 사실 좀 봤거든. 잘 가르치더라고. 근데 떠먹이는 것도 답인데 시행착오도 겪어 봐야 해. 뭐 사고 치게 두라는 건 아니고……. 바로 답을 알려 주진 말라고.”
“아, 그럼 아까 협진 대훈이한테 보라고 하신 게?”
“그래. 역시 수혁이네. 분명 모르겠는 협진 있을 거야. 2년 차라고 해 봐야 어제까지 1년 차였던 애가 뭘 알겠냐. 너처럼 똑똑한 애 아니고서야 어렵지. 그래도 바로 알려 주지 마. 이제 2년 차니까 알아서 해 보라고 해.”
“음. 알겠습니다.”
확실히 이게 과장이라 그런가, 식견이 달라도 달랐다.
[그러니까 갈구라 이건가요?]
바루다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지만.
수혁이 생각하기에 그리 틀린 생각도 아니었다.
‘아니, 좀 두라고. 내팽개쳐 두라는 거 아닐까?’
[아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알아서 해라?]
‘죽 되기 전에는 개입해야겠지?’
[잘 알아먹었습니다. 답답해도 참긴 해야겠네요. 그리고…….]
‘그리고 뭐.’
[아닙니다.]
바루다는 죽이 될지 밥이 될지 모르겠는 케이스보다 죽에 가까운 케이스가 되면 좀 더 어렵지 않을까요, 라는 말을 애써 삼켰다.
바루다가 판단하기에 수혁은 나름 열심인 의사이긴 해도 아주 인간적인 의사는 아닌데.
아무래도 본인이 판단하기엔 인간적인 의사라고 보고 있는 거 같았다.
왜곡된 셀프 이미지를 갖고 있다는 말인데.
어차피 교정되지 않을 거라면 굳이 건들지 않는 게 나을 거 같았다.
“그래. 그럼 외래 잘 봐라.”
“네.”
“이따 점심이나 같이 먹자고. 현종이 형이 제철 음식점 찾았더라고. 뭐더라. 봄도다리? 시골 사람이라 그런가 그런 거 잘 알아, 아주.”
“네, 과장님. 이따 뵙겠습니다.”
수혁이 신현태와 헤어진 후 진료실로 들어가는 동안, 안대훈은 우하윤과 함께 나란히 앉아서 협진 케이스를 두루 살폈다.
원래 감염내과로 오는 협진은 아주 간단한 거 아니면 아주 어려운 거로 나뉘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하나 있었다.
“3년 전 유방암으로 항암 치료했는데……. 4일 전부터 발열. 음……. 이건 수혁이 형한테 알려 두긴 해야겠다, 그치?”
“네, 예후 어떨지 모르겠어요.”
“기다려 봐. 외래시니까 문제 보내 볼게.”
수혁은 정말이지 환자 잘 봐주기로 소문난 위 연차였다.
그저 케이스를 모으기 위해, 그리고 사실 환자 보는 게 힘들지 않아서였지만.
아랫사람들에게는 호인으로 소문난 상황이었다.
해서 당연히 긍정적인 답이 올 줄 알았는데, 답문은 천만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대훈아, 이제 2년 차지? 한번 혼자서 봐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