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44화 (244/1,303)

244화 3년 차 (3)

“어…….”

“왜요?”

“우리끼리 보라고 하시네? 이제 나 2년 차라고.”

어찌 보면 섭섭할 수도 있는 답문이었다.

지금까지는 1년 차랍시고 어화둥둥 취급을 받아 왔으니까.

게다가 1년 내내 이어진 수혁의 주말 티칭을 단 한 번도, 정말 휴가 빼놓고는 단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받아 온 것이 안대훈 아닌가.

“이제 날 믿으시는 건가…….”

하지만 안대훈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이미 수혁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정상이 아니게 된 탓이었다.

아마 수혁이 어떤 말을 해도 그저 좋게만 받아들일 게 뻔했다.

“그런가 봐요!”

문제는 옆에 이는 우하윤 또한 비슷한 처지란 점이었다.

둘 다 초대 이수혁 팬클럽 회장, 부회장 출신인 데다가, 지금도 그 직함을 이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수혁이 보기에도 정상이 아니었으니, 객관적으로 봤을 땐 정말 이상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그럼 해 볼까.”

심지어 대훈은 이 말을 하기 전에 잠시 허공을 바라보기까지 했다.

그의 우상인 수혁이 늘 그러지 않은가.

실제로는 바루다와 대화하기 위함이었지만.

대훈은 그게 범주를 넘어선 천재만의 습관 같은 것이라 여겼다.

그걸 자꾸 따라 하다 보면 비슷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고 있었다.

“병동은……. 암센터 7층 고형암 병동입니다. 아마 응급실로 오자마자 혈종에서 받아 간 거 같아요.”

“그랬나 봐. 하긴 이제 혈종에서 팔로우업 하고 있으니까.”

“바로 가실 건가요?”

“응, 뭐. 병동 가서 랩이랑 보자.”

“네.”

둘은 이러쿵저러쿵 대화를 주고받고는 암센터로 향했다.

감염내과 병동은 본관에 있기에 가는 길은 꽤 길었다.

엘리베이터 타고 내리는 시간을 빼고, 순수 걷는 시간만도 15분은 족히 될 지경이었다.

“어우.”

“힘드세요?”

“어? 어. 우리 병원은 다 좋은데 너무 커.”

“운동 좀…… 운동 좀 하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이수혁 선배도 가끔 헬스장 오시는 거 같던데.”

“응? 운동을 하셔?”

“네. 진짜 하기 싫은 얼굴로.”

바루다가 시켜서 주마다 2회가량은 가고 있었다.

그래 봐야 다리가 불편해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아주 많지는 않았고, 애초에 바루다도 몸을 만든다기보다는 그저 죽지 않고 오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키는 거라 열심히 하진 않았지만.

아무튼, 여기 있는 안대훈보다는 사정이 나을 터였다.

“오……. 역시 수혁이 형……. 더 정진해야겠다.”

안대훈은 작은 거 하나에도 감동한 채 병동에 도달했다.

수혁과는 달리 안대훈이나 우하윤을 알아보는 간호사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병동 스테이션에 있는 컴퓨터 하나를 차지했을 뿐이었다.

“어디……. 음. 3년 전에 좌측 유방에 만져지는 덩이가 있어서 내원했고 바로 조직 검사 했구나.”

“검사에서 HER-2(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 양성이었네요.”

HER-2란 암 표지자 중 일종으로 표적 항암제의 타김이 되는 녀석이었다.

그 말은 곧 표적 항암제를 썼을 때 잘 들을 거란 얘기도 되었다.

암이 걸렸다는 것부터가 불운이었지만, 이게 양성이라면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은 쓸 수 있었다.

“아……. 병기는 이미 수술은 불가한 수준이었네. 그래서 항암제는…… 그래, HER-2 양성이었으니까 허셉틴(트라스투주맙, trastuzumab)하고 파클리탁셀(Paclitaxel) 12바퀴 돌렸어.”

“12바퀴…….”

“그리고 완전 관해됐네.”

관해란 질병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즉 치료 상태를 뜻햇는데, 이게 유지되어야 암에서는 완치라는 단어를 쓸 수 있었다.

“아……. 아까 그 항암 치료가 신보강항암화학요법(Neoadjuvant chemotherapy)이었나 봐. 이렇게 조절하고 결국에는 좌측 유방 완전 절제술하고 림프절 절제술까지 시행했어.”

“하긴 유방암에서 완전 절제가 진짜 중요하죠.”

“응. 그 후에도 보조 항암 치료를 했는데……. 아이고. 혈액 검사에서 혈장 HER-2가 증가해서 보니까 폐하고 간에 다발성 전이가 있었네.”

“2주 전까지 다시 항암 치료를 받았네요. 3회.”

“음.”

“음.”

질병 경과가 나쁜 환자 케이스였다.

당연하게도 둘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다.

애초에 혈액종양내과 병동에서 난 협진인데 상태가 좋을 거라 기대하는 게 좀 이상한 일이긴 했지만.

그래도 재발한 케이스, 그것도 다발성 전이 형태로 재발한 케이스인 줄은 몰랐다.

“일단 항암 치료를 최근까지 계속 받았으니까……. 면역은 떨어져 있을 거야. 발열을 일반적인 발열로 생각해서는 안 돼.”

그나마 먼저 입을 연 것은 안대훈이었다.

지난 1년간 내과 의사로 있으면서 수많은 환자를 봤고, 그중 일부는 떠나보내야만 했던 경험 덕이었다.

이게 익숙해질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견디는 법은 배워 가는 법이었다.

또 의사가 너무 흔들리면 다른 환자마저 잃게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아……. 네.”

“랩 보자. 아마 별로 안 좋을 거야.”

덕분에 우하윤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렇게 띄운 입원 기록에서 제일 눈에 띈 것은 역시나 입원 당시 환자가 보였던 활력징후였다.

“혈압은 괜찮은데……. 심장 박동수가 휴식 상태에서 133회?”

“엄청 빠른데요? 부정맥은 없었나?”

“그냥……. 빈맥이네. 그리고 음, 열은 37.8도였고.”

“흐음.”

나직히 한숨을 내쉬는 우하윤의 옆 얼굴을 보면서, 대훈은 저도 모르게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한숨이 지금은 하윤의 입에서 나왔지만.

자신의 입에서 나온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수혁을 부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냐……. 나를 믿고 주신 건데……. 첫날부터 그럴 순 없지.’

안 될 일이었다.

이제야 겨우 한 사람의 의사로 인정받은 참인데.

물론 수혁은 전혀 그런 생각일랑 하지 않았지만.

착각은 자유지 않은가.

해서 안대훈은 마음을 다잡고 다시 한번 케이스를 살폈다.

“생각보다 백혈구 수는 정상인데요?”

그사이 우하윤이 먼저 혈구 결과를 보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마 1년 전의 안대훈이었다면 냅다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그래도 지난 1년간 혹독한 환경에서 배우지 않았던가.

그중 수혁과 함께했던 시간도 적지 않았다.

당연히 우하윤보다는 훨씬 나았다.

“아냐, 이 환자……. 면역이 어찌 되었건 약해져 있을 거야. 절대 수치만 보면 정상이지만……. 비율을 보면 중성구 비율이 90% 이상이잖아. 뭔가 균에 감염이 되어 있는 거야. 아마 그거 때문에 평소 떨어져 있던 수치가 올라온 거겠지.”

“아……. 이게 바로 수혁 선배가 말하는 어떤 환자는 정상인 게 비정상이다 라는 건가요?”

“어, 그래. 맞아. 역시 너는 알아먹는구나.”

대훈은 대견하다는 듯 옅은 미소를 지은 채 결과를 계속해서 살폈다.

처음 환자 병력을 봤을 땐 온통 새빨갛기만 할 거 같았는데.

의외로 대부분의 랩은 정상이었다.

다만 급성 감염 지표로 쓸 수 있는 crp는 20mg/dL을 넘었다.

정상 수치가 0.6mg/dL 이하여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높은 수치라 할 수 있었다.

원인이 뭐가 되었건 간에 아주 심각한 급성 감염이 있다는 걸 의미했다.

“음……. 생각보다는 이게 또 괜찮네?”

“아……. 동맥혈 검사 결과 첨부된 거는 좀 이상한데요?”

“응? 아, 어디?”

하윤은 아무래도 얼마 전까지 인턴이었던 사람답게 인턴들의 주된 업무 중 하나인 ABGA, 즉 동맥혈 검사 수치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대훈도 살펴보니, 확실히 좀 이상했다.

“pH도 약간 높긴 한데……. 산소 분압이 되게 낮네?”

“원인 질환은 폐렴일까요?”

“음…….”

산소 분압이 떨어졌다는 건, 아무튼 간에 폐에서 가스 교환이 잘 안 된다는 뜻이지 않은가.

환자는 열도 동반하고 있으니 역시나 폐렴을 떠올리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조금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폐렴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분압이 떨어지나?’

동맥혈 검사에서 정상 산소 분압은 보통 80에서 100.

근데 이 환자는 기껏해야 47이었다.

그렇다 보니 산소 포화도 또한 83%였다.

엄청나게 낮은 수치라고 보면 되었다.

“엑스레이는……. 음.”

대훈이 고민하는 사이, 하윤은 폐렴이란 생각에 환자의 흉부 엑스레이를 띄웠다.

아무리 1등 졸업자라 해도 아직은 흉부 엑스레이에 익숙한 상황은 아니었다.

사실 대훈도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릴 수는 없었다.

흉부 엑스레이는 딱 한 장의 사진일 뿐이지만, 워낙에 내포하고 있는 정보가 많기에 제대로 보려면 엄청난 훈련이 필요했다.

“음.”

대훈은 머뭇거리는 하윤을 힐끔 바라보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자신은 2년 차이지 않은가.

그가 1년 차일 때 마찬가지로 2년 차였던 수혁이 보여 준 모습은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1년간 죽도록 노력을 하긴 했으니 뭔가 보여 주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있다, 대훈아.’

해서 대훈은 1년 전보다 눈에 띄게 적어진 머리를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잘 봐.”

“네.”

그야말로 두뇌 풀가동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그나마 수혁과 죽어라고 공부했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양측 폐 상엽에 보면 폐실질의 음영이 증가해 있어. 아예 하얗게 된 건 아니긴 한데……. 그래도 뭐 가벼운 폐렴 소견이기는 하지.”

“가벼운? 가벼운 소견이에요?”

“응. 그리고 음……. 우측 폐 상엽 여기 보면……. 공기랑 물 나뉘는 소견 보여? 이 덩이처럼 보이는 곳.”

“아……. 네.”

“어긴 농양이 좀 있는 거 같은데.”

“아……. 그럼 전체적으론 아주 가벼운 폐렴은 아니란 거네요?”

“어, 그렇지.”

하지만 아까 동맥혈 검사에서 봤던 수치가 나올 만큼 심한 폐렴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비록 영상의학과처럼 흉부 엑스레이를 잘 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폐렴 환자만 수백 명 본 몸 아닌가.

‘이상하네? 그럼 분압이 떨어진 건 다른 이유…… 인가? 대체 뭐가 있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그건 다른 검사 결과를 보거나 환자를 보기 전에는 오리무중일 터였다.

해서 일단은 다음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약은 뭐 쓰고 있지?”

“항생제가……. 아, 타조박탐이랑 피페라실린이랑 레보플로사신 들어가고 있습니다.”

“음……. 완전 광범위로 쓰고 있네. 근데 증상은 호전 보이지 않는다 이거지?”

“네. 배양 나가긴 했는데 아직 자라는 건 없다는 리포트구요.”

“흠.”

대훈은 탄식 비슷한 소리를 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우선 환자를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가 보자, 병동.”

“아……. 네.”

도착한 병동엔 환자가 몸을 살짝 세운 채 침대에 기대어 있었다.

누가 봐도 숨이 차 보이는 형색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암액질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살집이 있었다.

“아…….”

반면 우하윤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대훈은 아직 수혁처럼 홀로서기엔 먼 애송이였기에 대번에 하윤에게 반응했다.

“왜?”

“환자 숨 쉴 때마다 보조근이 너무 많이 움직여서요. 숨이 진짜 많이 찬 거 같아요.”

“아……. 보조근……. 음. 산소가 들어가는 데도 그러네. 뭐지?”

“그러니까요, 뭐지?”

둘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수혁은 외래를 끝마치고 아까 대훈이 물어봤던 환자 차트를 까 보고 있었다.

[조금 어렵긴 한데…….]

‘진단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태평한 소리를 지껄여 가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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