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47화 (247/1,303)

247화 와라? (2)

“음.”

먼저 어렵게 입을 연 것은 수혁이었다.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였지만, 신현태는 늘 수혁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곧장 반응할 수 있었다.

“어, 수혁아. 할 말 있어? 있는 거지?”

제발 그러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세상에 갑자기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이라니?

물론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 하기엔 그나마 그럴싸한 의견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 케이스에서 제일 윗줄에 와야 할 진단명은 아니었다.

%로 따지자면 1% 남짓이나 되려나?

다른 진단명을 말하고, 감별해야 할 질환명에 이걸 넣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럼 진짜 내가 얼싸안아 줬을 텐데.’

어화둥둥 소리가 절로 나왔을 터였다.

설마하니 이거 하나로 수혁과 비등하네 소리를 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제법 우수한 녀석이란 생각은 들었을 테니까.

하지만 제일 윗줄에 두는 순간 그런 생각은 산산 조각나고야 말았다.

‘노티하는 태도나……. 파악한 수준은 괜찮아. 썩 괜찮지만…….’

아쉽게도 2년 차 중 잘하는 수준을 벗어나진 못했다.

그렇다면 우리 수혁이는 어떨까?

신현태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 줄, 사이다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수혁을 돌아보았다.

수혁은 그런 기대를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대훈아, 환자 파악 잘했네. 환자가 어떤 경과를 밟았고, 그에 따라 어떤 치료를 했는지도 파악 잘했고……. 특히 마지막에 치료 변경이 있었고, 그 때문에 기회 감염이 의심된다는 것까지도 잘 잡았어.”

우선은 칭찬이었다.

이제 3년 차지 않은가.

어차피 1, 2년 차 때처럼 윗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 관대하게 나가도 될 터였다.

[안대훈, 우하윤은 몇 안 되는 수혁의 진짜 신봉자라는 것도 명심하십시오.]

바루다의 조언이 있기도 했다.

연애에 있어서는 바루다의 조언이 개판이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의 조언은 들어 봄 직하지 않던가.

해서 수혁은 전격적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까도 부드럽게 까기도 했다, 이 말이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일단 기회 감염이라는 게 익숙지가 않지? 1년 차 때는 중환자실 많이 안 가니까. 아마 그럴 거야.”

“네. 그……. 네, 그렇습니다.”

중환자실 환자 관리는 딱 듣기만 해도 느껴지겠지만, 정말로 쉬운 일은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일반 병동에서 날고 기는 수준이 되어야 갈 수 있다는 뜻이었고.

그 말은 곧 1년 차 때는 백이 있지 않는 이상 환자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안대훈에게는 경험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러다 보니까……. 너무 배운 거 위주로 접근한 거 같아. 잘 봐 봐. 엑스레이부터.”

“어……. 네.”

수혁의 입에서 조금씩 부정적인 언급이 나오고 나서야 대훈은 자신의 답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또 신현태나 수혁이 지었던 표정이 놀란 게 아니라 조금은 실망해서 지었었단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에효.’

정답이 아니었다는 것에 제일 실망한 사람은 역시나 대훈 본인이었지만.

그걸 티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단 모양새가 썩 좋지 않았고.

이제부터는 수혁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귀를 기울여야지, 다른 짓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엑스레이를 보면……. 아까 네가 말한 대로 양측 폐 하에 음영이 증가되어 있지. 특히 폐실질 부근에.”

“네.”

“그런데 엑스레이 소견 자체는 심하지 않아. 하지만 환자가 응급실에 왔을 때 동맥혈 검사 소견을 보면 산소 분압이 굉장히 낮지? 이거 상당히 특징적인 소견인데……. 혹시 지금은 떠오르는 거 없니? 거대세포바이러스 감염이라고 하기엔 이걸 염두에 두지 않은 거 같아.”

“어…….”

대훈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봐야 뭐가 나오진 않았다.

애초에 쥐어짜 낼 만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뭔 짓을 해도 답이 나오진 않지 않던가.

지금 대훈의 상황이 딱 그렇다고 보면 되었다.

‘뭣도 모르겠다……. 확실히 이상하긴 했는데…….’

그저 본인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사안이 남들이 보기에도 그랬다는 거 정도만 깨달을 수 있을 따름이었다.

수혁도 지금 당장 대훈이 뭘 떠올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기에 실망하진 않았다.

다만 덤덤한 투로 말을 이어 나갈 따름이었다.

“자, 거기에 네가 HRCT도 찍었잖아. 이거 잘했어. 엑스레이 소견에서 뭘 모르겠으면 CT를 찍어 보는게 답이지. 보면……. 네가 말했던 것처럼 GGO가 모자이크 패턴으로 흩뿌려져 있잖아. 이것도 상당히 특이한 소견이야. CMV에서도 보일 수 있긴 한데……. 그보다 이런 패턴을 잘 보이는 원인균이 있어.”

“음…….”

“모르겠지? 어려운 거라 그래. 하윤아 너도 잘 들어. 이건 Pneumocystis jirovecii……. 즉 폐포자충이 원인이야. 포자충이라는 건 원충이니까……. 일종의 기생충이지. 균보다는 그 입자가 훨씬 커.”

“아…….”

세균이 아니라 기생충이었구나.

그렇다면 엑스레이에서 증상에 비해 덜 심각해 보였던 것이 이해가 갔다.

수혁은 대훈은 대강 이해했단 것을 확인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의 하윤도 확인했기에 하려던 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그래서 엑스레이에서는 그렇게 심해 보이지 않을 수 있는 거야. 원인균주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엑스레이에서는 아무래도 덜 심해 보이거든, 감염의 중증도에 비해서. 그…… 돌을 유리병에 넣어 보면 그렇잖아? 작은 입자는 세밀하게 꽉 들어차는데, 큰 입자는 듬성듬성하지? 꼭 같은 원리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대강은 그렇게 이해하면 돼.”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보살 형상이 되어 버린 신현태가 흐뭇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다만 한구석에서는 불안해하는 표정도 있었는데, 그건 수혁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이 환자의 원인균주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게……. 예후가 아주 좋지는 않은 병이라는 거야. 일단 이 폐포자충에 의한 감염을 처음 발견한 것도 사실 부검을 통해서였거든. 워낙에 중증이라 환자가 대부분 사망하고 나서 발견이 됐어. 뭐…….”

수혁은 잠시 환자가 있을 병실을 바라보았다.

진짜 예전 같았으면 원인도 몰랐을 가능성이 컸고, 원인을 알았다 하더라도 사망에 이르렀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현대 의학은 빠르게 진보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 폐포자충 감염과 같은 이전에는 잘 관찰되지 않던 감염병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늘 그러하듯 방법을 찾아내고 있었다.

“지금은 그래도 대응 매뉴얼이 생겼어. 자, 일단 스테로이드 추가하자.”

“네? 스테로이드요?”

“응. 바이러스성 폐렴에서야 스테로이드 잘못 썼다가는 환자 바로 골로 가지만……. 원충은 아냐. 일단 염증을 좀 가라앉혀야 환자 예후가 좋아. 물론 이 폐포자충을 죽일 수 있는 약도 추가하기는 해야지. 음…….”

수혁은 스테로이드를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좀 더 설명을 이어 나간 후, 대훈을 바라보았다.

아까 수혁이 걸어 들어올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더니만.

지금은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당장에 들어갈 거 같은 표정이 되고야 말았다.

‘안쓰러운데?’

[뭔가 알 만한 걸 물어보시죠.]

‘뭐가 있을까……. 괜히 물어봤다가 또 모르면 더 의기소침해질 거 같아.’

[1년 차 시절의 수혁조차 알고 있었던 걸 물어보죠.]

‘오……. 묘하게 기분 나쁘네.’

[인정하십쇼. 절 만나고 난 이후의 수혁과 그 이전의 수혁은 아예 다른 인물입니다. 뭐 1년 차 초반에도 절 만나긴 했지만, 그땐 공부 안 하겠다고 징징거리고 있었으니 차이가 아주 크지는 않았을 겁니다.]

‘하.’

이렇게 할 말이 없을 수가 있나.

수혁은 바루다가 배운 논리가 대부분 자신에게서 갔을 거라는 걸 떠올리고는 잠시 통탄에 빠졌다.

그 시간을 길게 두지는 않았다.

얘기하다 말고 허공을 응시하는 게 누가 봐도 이상하다는 걸 얼마 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일단 원충이라는 걸 알았잖아? 그럼 뭘 쓰는 게 좋을까? 이거 없앨 수 있을 만한 약으로.”

“아. 잠시만요.”

꽤 사려 깊은 질문이었는데, 그 노력이 쓸모가 있었는지 대훈은 반가운 얼굴이 되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았다.

“트리메토프림과 설파메토나졸 복합 치료를 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좋아. 폐포자충이라는 걸 아니까 이제 바로 답이 나오네. 지금 환자 상태가……. 분압이 너무 낮으니까 스테로이드랑 같이 해서 써 보면 조금 호전이 있을 거야. 일단 그거 말고는 증상 따라가는 건데……. 그거야 혈종에서 알아서 잘해 줄 거고. 우린 이 두 개를 지침으로 주자고.”

“네.”

“참, 이거 확진하려면 기관지 내시경으로 세척 한번 하는 게 좋은데……. 환자 상태가 그게 되려나?”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이전에 이미 한번 해 본 경험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그래? 흠…….”

수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이미 정답은 알고 있는 상황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환자가 괴로울 만한 검사를 따로 할 필요는 없었다.

만약 치료하면서 경과가 좋지 않으면 또 모를까.

지금은 아닌 거 같았다.

“알았어. 일단 그대로 두고 보자고.”

“네, 선생님.”

“우리 병동 환자들은 나랑 교수님이랑 같이 이미 보고 왔거든? 코멘트는 스테이션 간호사님들에게 남겨 놨으니까 확인하고……. 모르겠는 거 있으면 연락 줘. 오늘 교수님이랑 가 볼 데가 있어서.”

“네, 선생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사이 협진 나면 일단 알아서 해 봐. 협진이 있다는 거는 노티해 주고.”

“네!”

해서 수혁은 환자 치료 지침에 대해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 후, 신현태와 함께 병동을 떠났다.

당연하게도 신현태는 엄지를 내둘었다.

“어쩜 너는 설명도 그렇게 잘하냐.”

“네? 아뇨, 하하. 다 교수님한테 배운 거죠.”

“나보다 잘하는 거 같은데?”

대체 이런 주접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도 모르겠습니다. 이 양반하고 이현종, 조태진 삼인방은 정도가 너무 심해요.]

척척박사인 바루다마저 난감해하는 주제라 할 수 있었다.

다행인 점은 신현태가 꽤 안전하게 운전하는 운전자라는 점이었다.

적어도 핸들을 잡고 난 후에는 쓸데없는 말을 삼가는 편이었다.

때문에 차에 오른 이후엔 주접 따위는 없었다.

그저 오늘 있을 회의에 대해서만 간간이 얘기할 따름이었다.

“국건영 회의 못 가 봤지?”

“아……. 네. 엄청 규모가 큰 사업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응, 그게 전국민 실태 조사 같은 거라……. 통계치가 엄청 커. 국가검진사업을 하는 나라가 생각보다 전 세계에 몇 개 안되거든. 여기서 아이디어 몇 개만 잘 내도 바로 대형 학술지에 낼 수 있어.”

“그럼 저희는 어떤 걸 내야 할까요?”

“일단 처음이니까 분위기만 봐. 이번 거는 내가 이미 진행중인 게 있어서 가는 건데……. 혹시 모르잖아. 네 눈에는 그 통계치를 어떻게 분석할지 보일 수도 있잖아? 넌 이수혁이니까.”

“아…….”

국건영 얘기 중에서도 결국은 주접이 나올 줄이야.

이건 예상치 못했던 일인지라 수혁도 바루다도 그저 입을 벌리고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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