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49화 (249/1,303)

249화 국건영 (2)

바루다는 대답만 세차게 해 준 것이 아니라, 아예 수혁의 머릿속에 화면까지 떠올려 주었다.

나름 혼자 정보를 각색하고 또 가공했는지 지도가 떠 있었다.

각 도시 위로는 날짜별 미세 먼지 수치를 시각화한 그래프가 떠 있었고.

아마 아직까지는 대한민국에 있는 그 어떤 기관에서도 이런 그림은 만들지 못했을 거 같았다.

‘허…….’

[이걸로 놀라면 어쩝니까. 이건 그냥 날씨 정보 보면 다 나오는 걸 이쁘게 꾸민 건데.]

‘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한 거라는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슬금슬금 다시 수혁을 무시하려는 바루다 아니던가.

이유는 알 거 같았다.

최근 성능이 조금 더 좋아진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수혁의 부족한 뇌 기능이라도 잘 굴리기 위한 프로세스라도 만든 모양인 듯했다.

[여기에 방금 본 상기도 감염 환자 추이를 덮어씌워 보겠습니다. 조금 어지러울 수도 있어요.]

물론 그런 말은 일절 꺼내지 않았다.

인정하긴 싫지만, 바루다는 아주 많은 부분에서 수혁을 닮아 있지 않던가.

안 그래도 자기 자랑이 심해졌는데 굳이 이런 말로 그걸 가속화시킬 필요는 없을 거 같았다.

“음.”

바로 다음 순간, 아마 어떤 말을 하고 싶었어도 무리였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어지러울 수 있다고 하더니 이건 숫제 눈앞이 하얘지는 듯한 느낌이지 않은가.

어디선가 한번 겪어 본 거 같다 싶었는데, 다쳤을 때 같았다.

마취할 때 딱 이런 느낌이었다.

“다음은 인플루엔자에 대한 통계입니다. 아직 b형 독감은 계속 유행하고 있는데……. 아마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 등교 시작되었으니 올해도 5월까지는 산발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 수혁의 신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관계 없는 과 의사들은 나가거나 딴짓하고 있는 게 다 보이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마다 질병관리본부 소속 사무관 김영희는 괜히 의사들은 오합지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각 과마다 거의 대학교 학과 나뉘듯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에 모두가 합심해서 하나의 일을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러니까……. 어떤 정권이 들어서도 의사 때리는 건 무서워 안 하지.’

의대생 때는 대체 왜 그럴까 싶었다.

이제 의사 면허가 10만을 넘어 15만을 향해 가고 있다는데, 그럼 적은 수는 아니지 않나?

그만한 집단을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한결같이 배척한다는 게 이상했다.

실제로 전문가들인데 늘상 배제되다 보니 의료 정책에 문제가 생기지 않았던가?

그래서 행정 고시를 공부해서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참이었다.

그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의사는 15만의 거대한 집단이 아니라, 40개의 전문의 집단 및 일반의로 나뉘어 있었고 거기에 더해 개원의, 봉직의, 교수 등으로 또 나뉘어 있는 모래알 같은 집단이었다.

그걸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 같았다.

‘뭐……. 내가 걱정할 사안은 아니긴 하지.’

김 사무관은 속으로 한숨을 내쉰 채 발표를 이어 나갔다.

맡은 바 일은 국건영 사업을 이용해 국민 건강 지표를 개선하는 것 아니던가.

언젠가 더 직급이 높아지면 의사 전체와 교섭할 일도 생기긴 하겠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제 됐습니다.]

사무관이 나라와 민족을 걱정하는 동안, 바루다는 수혁의 뇌를 십분 활용하여 결과표를 도출해 냈다.

그 결과는 상당히 놀라웠다.

‘허……. 이거…….’

[어떻습니까? 꽤 의미 있어 보이지 않나요?]

‘꽤? 이게 꽤냐?’

수혁은 한창 연구 계획서 짜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여러 가지 주제들이 있었지만, 어떤 교수라도 한 번쯤 입에 올렸던 단어가 하나 있었다.

미세 먼지였다.

최근 몇 년간 무척 심해진 데다가, 앞으로도 더 심해질 거란 얘기가 나돌지 않는가.

개인적인 노력으로 개선할 수 없는 문제인지라 그로 인한 보건의학적 문제의 심각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어떤 이들은 이미 흡연의 유해성을 넘어갔다고도 했다.

흡연은 선택할 수 있지만, 이건 선택할 수 없고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논문 싹 리뷰 했는데……. 별거 없잖아, 의외로.’

[아주 없지는 않죠. 하지만 이론상 의심 가능한 결과가 도출이 되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일반인들이야 비교적 최근에 대두된 문제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 연구는 이미 10년도 더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

어디에나 선각자들은 있다 이 말인데.

문제가 있다면 10년 전에 진행한 연구들의 결과 및 설계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 대규모 스터디가 필요한 상기도 감염과 미세 먼지와의 상관성은, 분명히 있을 거 같지만, 아직 그렇다고 발표된 적이 없었다.

있다 해도 영향력이 오전이나 기타 유해 물질에 비하면 훨씬 약하다고만 나왔다.

‘이건 다른데……. 통계 돌려 봐야 알겠지만……. 그냥 로우 데이터만 봐도 보여. 달라.’

[네, 상기도 감염의 유병률, 이환 기간, 증상의 중증도 모두 미세 먼지 수치가 높을 때 심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때문에 지역별로 인구당 상기도 감염의 유병률도 미세하지만 차이가 있을 거 같네요. 다 분석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수혁의 머리가 타 버릴 거 같아서 그만뒀습니다.]

‘자, 잘했다.’

머리가 탄다니.

보통의 환경에서야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바루다에 의해 강제적으로 오버 클럭킹 될 수 있다면 아주 불가능할 거 같진 않았다.

적어도 신경 회로의 손상이 있을 수는 있을 거 같았다.

[아무튼, 이 자료는 흥미롭군요. 지금 저 사무관이 보여 준 건 일부일 텐데도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됩니다. 모든 상기도 감염 환자 추이 자료를 획득할 수 있다면 얘기가 달라질 거 같습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머리 탄다는 말이 그렇게 걱정입니까? 의학적으로 별 가치 없는 발언이었는데……. 역시 공부가 부족하군요.]

바루다는 수혁의 얼굴이 굳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갈궈 댔다.

[음.]

하지만 수혁의 반응이 심상찮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뭔가 더 생각나는 게 있는 겁니까?]

최근 상대가 더 발전했다는 걸 느끼는 게 비단 수혁만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바루다도 수혁의 능력이 확실히 늘었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아무래도 수혁보다는 훨씬 객관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요새 수혁의 신경 회로의 시냅스 수가 늘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여전히 바루다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긴 하지만.

예전의 수혁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한다면 태반이 오판이 될 여지가 있을 지경이었다.

‘응. 미세 먼지 수치를 다 들고 있잖아.’

[그렇죠.]

‘근데 왜 그걸 굳이 상기도 감염에만 국한해?’

[네? 그게 무슨……. 아.]

‘동물 실험에서는 이미 미세 먼지가 각종 만성 질환 및 암의 원인이 된다는 걸 확인 했잖아? 산부인과적으로도 미숙아 출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도 확인했고.’

[그렇죠. 이걸……. 음……. 그게 얼마나 이론적인 근거를 확보할 수 있을지는 더 알아봐야겠지만, 아예 의미가 없을 거 같진 않습니다.]

생각보다 미세 먼지에 대한 연구는 아주 어려운 축에 속했다.

동물 실험이야 동물이 있는 챔버의 미세 먼지 농도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을 거 같겠지만, 사실은 이것도 어려웠다.

일단 순수한 미세 먼지는 엄청 비쌌다.

흡연에 대한 영향은 아무 담배나 사 와서 태우면 될 일이었으나, 미세 먼지는 가격이 그 수백배에 달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지역별로 미세 먼지의 종류가 다르지 않은가.

차이가 난다고 했을 때, 이게 정말 미세 먼지의 탓인지, 아니면 미세 먼지 안에 든 중금속 등의 다른 유해 물질의 탓인지 판단하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 대략적인 추세만 확인해도 엄청난 도움이 되긴 할걸? 미국 같은 나라야 별 관심 없겠지만…….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랑 동남아시아, 유럽은 관심 많을 거라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모든 자료를 일단 싹 훑어볼 필요가 있겠군요? 이걸 다 데이터화하는 건 무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쌓은 데이터도 좀 부하가 있어요. 수혁의 머리 용량이 터질 거 같습니다.]

‘굳이 그럴 거 있냐? 그냥 모아서 싹 넣고 돌리면 되지. 근데 왜 이 생각을 아무도 못 한 거야? 너무 좋은 데이터가 있는데?’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궁금증이 일었다.

너무 좋은 데이터인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너무 간단한 생각 아닌가?

해서 고개를 돌려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의사들이 졸고 있거나 딴짓을 하고 있었다.

딱 자기 과 얘기 나올 때만 눈이 빛나는 모양이었다.

때문에 반문은 오로지 바루다에게서만 나왔다.

[수혁. 수혁이 쉽다고 생각하는 건 다 제 덕분입니다. 남들은 미세 먼지랑 영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리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떠올린다고 해도 그거 데이터 모으는 데만 한세월입니다.]

‘음.’

[입 비죽거리지 말고요. 손만 있었으면 때렸습니다.]

‘뭐……. 인정. 아무튼, 이거 좋네. 좋아, 아주.’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그랬다.

미세 먼지는 그렇지 않아도 전 세계적인 화두가 아니던가.

이거 줄이겠다고 원전을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는 나라도 있을 지경이었다.

실제 국민 보건에 영향이 있어서였는데, 그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 또 어느 질환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 더욱 확실하게 볼 수 있는 논문이 나온다면 누구에게나 도움이 될 터였다.

[아, 신현태 돌아왔네요. 회의 온다고 하더니 태반을 땡땡이를 치시네.]

‘병원에서 너무 고생만 하잖아. 여기서라도 쉬어야지. 아. 쉬는 시간이라 들어온 거구나. 이건 좀…….’

[아무튼, 인사하네요. 받아 주십쇼.]

‘오케이.’

수혁은 바루다의 말에 따라 즉시 미소를 띠며 신현태를 바라보았다.

“교수님. 정말 좋은데요?”

좋다는 건 연기할 필요도 없었다.

정말이지, 이보다 더 진심일 수도 없을 거 같았으니까.

그리고 수혁의 진심은 곧장 신현태에게 전달되었다.

“응? 뭐 재밌는 자료라도 봤어?”

“상기도 감염 통계……. 이거 미세 먼지랑 이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요.”

“아……. 그거 이론적으로는 당연히 그럴 거 같은데 막상 그렇게 나온 논문은 없지 않아? 나도 환자한테야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학회 차원에서 얘기할 때는 세게 얘기 못하거든.”

“미세 먼지 변화 추이랑 감염 통계 잘 섞어 보면 결과 나올 것도 같아서요. 이걸로 국책 과제는 못 받을까요?”

“음…….”

희망에 가득 찬 수혁과는 달리, 신현태는 마냥 그런 모습만 보일 수는 없었다.

사기꾼들에게 나랏돈이란 곧 눈먼 돈이라는 공식이라도 있는 모양이었지만.

학자들에게 나랏돈은 세상에서 제일 타기 어려운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찌나 깐깐하게 살피는지, 통과하기가 정말로 어려웠다.

“얼마짜리를 원하니?”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혁의 청 아닌가.

금액이 적으면 쌈짓돈이라고 빼 주고 싶은 참이었다.

“일단……. 당장 필요한 돈은 없긴 한데. 이거 실험 논문도 하고 하려면……. 설비가 장난 아닐 거 같은데…….”

“장난 아닌 게 얼마나?”

“10억?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 10억.”

쌈짓돈은 아득히 넘어간 돈이었다.

‘내가 널 사랑하지만……. 아무래도 10억만큼은 아닌 거 같다, 수혁아.’

신현태는 빠르게 다른 수를 찾아보기로 작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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