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1화 (251/1,303)

251화 연구도 외래도 (1)

“음.”

수혁은 숙소로, 그러니까 당직실에 돌아와 한숨 비슷한 것을 내뱉었다.

술 향이 조금 배여 있었는데 이건 다 이현종 때문이었다.

[양주 몇 잔 마셨죠?]

‘세 잔?’

서울역 근처는 이현종이 잘 아는 지역이 아니었던지라, 아무래도 인상적인 식당은 찾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그걸 만회하겠답시고 양주를 사 주었는데 어차피 수혁은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이라 정작 취해서 돌아간 것은 이현종, 신현태 둘이었다.

언제는 수혁을 자기가 더 사랑한다고 그렇게 싸우더니 갈 때는 어깨동무하고 사라졌다.

이현종이 무리해서 신현태 집 바로 옆 동으로 이사 간 덕택에 아예 같은 택시를 타고서였다.

[알코올 분해 효소가 진짜 부족하군요, 수혁은.]

‘묘하게 나를 강조하지 마. 우리 라 사람들은 태반이 부족하거든?’

때문에 정작 수혁이 마신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머리가 무거웠다.

뿐만 아니라 입에서는 소주 냄새가 풀풀 풍겨 오고 있었기에 수혁 본인도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이 상태로 논문을 쓸 수 있을까요?]

‘네가 보정만 해 주면 돼. 넌 멀쩡하잖아.’

[착각하고 있는 모양인데, 수혁이 취하면 저도 기능이 떨어집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가 사용 가능한 뇌 기능 자체가 많이 떨어져요.]

‘자꾸 떨어진다고 하지 말고. 앉아 있는데 뭔 뇌를 그렇게 써? 남은 거 좀 써 봐.’

한때 유행했던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자신의 뇌 기능의 1%만 쓴다는 말.

진짜 그런가 싶기도 하겠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소리라고 보면 되었다.

사람의 뇌는 거의 100% 풀가동하고 있다.

그중 대부분은 몸 쓰는 데 쓰였는데, 수혁의 말대로 가만히 있으면 조금 용량이 빌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심장 뛰고, 자세 유지하고, 소화 시키는데 상당 부분이 쓰이긴 하겠지만.

아무튼, 의학적으로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말이었기에 바루다도 완전히 무시하진 못했다.

[음……. 일단은 해 보겠습니다만, 수정이 필요할 가능성이 큽니다.]

‘오케이.’

그렇게 시작된 논문 작업은 생각보다 꽤 수월했다.

일단 바루다가 데이터화한 미세 먼지 데이터가 있는 데다가, 지금까지 나온 논문들의 수도 적은 건 아니라 서론 정도 쓰는 건 일도 아닌 수준이었다.

‘자……. 일단 이건 상기도 감염 부분이니까……. 미세 먼지가 종류와 관계없이 크기가 작다는 것만으로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써 줘야겠는데.’

[세포막의 항균성 단백질(Antimicrobial protein, AMPs)을 소모 시킴으로써, 상대적으로 세균 또는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해진다는 동물 실험 결과가 있습니다. 근거 논문은…… 환경 의학 2017년 논문입니다.]

‘내가 그런 것도 읽었냐? 환경 의학? 어디 논문이야. 의학 논문은 맞아?’

[의학이 붙었으니까 환경 의학은 맞죠. 아마 전에 대학원생 회의 참석했을 때, 이것저것 주제 내 보다가 나왔을 겁니다.]

‘그렇구만. 아무튼……. 이거 좋네. 확실한 이론적 근거가 되어 주겠어.’

통계적으로 아무리 미세 먼지와 상기도 감염의 상관관계가 증명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의 이론적 근거가 없다면 아무래도 현대 의학에서는 완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전문가 의견 중심의 의학에서 근거 중심 의학으로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지 오래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교수가, 그것도 경험 많고 명망 있는 교수가 하는 말이라고 해도 근거가 없다면 일개 인턴의 말보다도 가벼워지기 마련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서론 됐고. 이제 방법인데……. 이건 네가 좀 더 나서 줘야겠는데.’

[맡겨 주십시오. 이미 데이터 받아 온 것도 있고 하니……. 일단 인천, 부천 지역 위주로 해 볼까요? 이쪽이 아무래도 미세 먼지 영향을 아주 많이 받는다고 판단됩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야지.’

방법도 일사천리였다.

실험 논문과 달리 이건 이미 데이터가 쌓인 상황에서 다른 데이터를 연결 지어 쓰는 논문이지 않은가.

다른 데이터를 무엇을 쓸지, 그리고 어떻게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만 끝났다면 그걸로 끝이었다.

‘왜 교수님들이 국건영, 국건영 하는지 알겠네.’

[그러니까요. 데이터의 보고군요.]

정부가 국민의 보건 데이터를 잘 알고 있는 건, 어찌 보면 기본적인 일이라 생각될 수도 있었다.

보건 데이터는 국민 건강과 직결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국민 건강 향상에도 직결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이게 가능한 나라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그러했다.

대한민국은 적어도 보건 의료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거의 세계 제일을 노려볼 만큼의 선진국이었다.

‘이거 진짜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다 보면 뭐 계속 나오겠는데?’

[그렇다고 데이터만 들들 팔 수는 없습니다. 바루다의 목적은 임상 의사에 있지, 연구 의사에 있지 않습니다.]

‘나도 뭐……. 딱히 연구만 할 생각은 없어. 환자 보는 게 재밌어.’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더랬다.

물론 모든 의사는 어느 정도 환자 보는 것에 재미와 흥미 그리고 보람을 느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부담이나 공포를 동시에 느끼는 경우도 많았고, 어떨 땐 이게 긍정적인 것을 넘어서기도 했다.

[저와 함께라서 가능한 생각이라고 판단합니다.]

바루다는 그런 부담이나 공포를 극복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었다.

그걸 굳이 본인 입으로 내세우지만 않았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

이 녀석도 참 입이 방정이었다.

‘알지, 안다.’

[지금도 그렇지 않습니까? 술 취한 채로 디스커션까지 일필휘지로 휘갈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거 같습니까?]

‘어?’

정신을 차리고 보니 논문 하나가 완성이 되어 있었다.

아니, 완성이라고 하기엔 아직 도표나 그림이 없었지만.

그 외에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미세 먼지 농도 변화와 그 지역의 상기도 감염자 증가 및 중증도의 변화 그리고 이환 기관의 연장까지 다 통계적으로 증명되어 있었다.

[제가 파악하기로 이 둘의 상관관계를 이만한 환자 수를 가지고 발표하는 논문은 전 세계에서 이게 유일합니다.]

‘이거 이론적 근거만 좀 더 확실하게 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생체 실험을 말하는 겁니까? 그건 윤리적으로 위배되는 생각입니다. 가끔 수혁은 사회가 정한 선을 아득히 넘어서곤 하시는군요.]

‘아니……. 미친놈아. 동물 실험이지.’

[아까 AMP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시는 겁니까?]

‘부족하지. 한참 부족하지. 그거만 영향을 미칠 거 같냐?’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루다는 잠시 입을 다물고 분석에 들어갔다.

수혁은 아직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논문 쓰는 데 벌써 3시간여가 투입된 마당이었다.

그만큼 술도 깬지라 분석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그렇겠군요. 통계적으로 파악되기로는 심근경색, 부정맥, 당뇨, 고혈압, 뇌경색, 뇌출혈 등 아주 다양한 질환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고 추정이 되고 있습니다만. 아직 어떻게 그렇게까지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오류가 있을 수도 있고요.]

‘그래. 미세 먼지가 많은 곳은 상대적으로 도심이라……. 어쩌면 도시 사람들의 행태가 그 질환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일 수도 있거든. 그러니까 좀 더 연구가 필요한 분야야.’

[이거 다 동물 실험하려면 평생을 바쳐야 될 거 같은데요? 그리고 제가 판단하기로 수혁은 실험 쪽 지식은 거의 전무합니다. 처음부터 다 배워야 하는데…….]

‘돈 있으면 왜 내가 하냐. 아이디어 주고 연구원분들 고용해서 써야지.’

[아하. 확실히 마인드가 좋으시군요? 드라마에서 본 듯한 느낌입니다.]

‘악역이지?’

[네.]

‘어휴.’

어쩜 바루다라는 놈은 늘 이런 식으로만 대화를 이끌어 가는 걸까.

수혁은 잠시 한숨을 쉬다 말고 고개를 휙 하고 돌렸다.

술 냄새가 옅어진 것을 이제야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이미 새벽 2시였다.

주경야독이라더니.

이건 야독도 아니지 않나?

‘야……. 시간 이렇게 될 때까지 나 그냥 뒀어?’

[논문 쓰시고 싶다면서요?]

‘이게 그렇게 급한 논문이냐? 막 촌각을 다퉈?’

[아니죠.]

‘그럼 인마, 일단 자라고 했어야지. 나 내일 외랜데!’

[말을 해야 알죠. 제가 독심술을 쓰기 원하시는 겁니까? 수혁의 생각을 전부 다 읽어 내면 좋겠어요?]

‘어…….’

그건 아니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훅 하고 끼쳐 왔다.

머릿속에 이상한 깡통 달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겠지만.

그건 익숙해진 마당이었다.

그런 수혁도 생각도 읽어 내는 깡통은 싫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러니까요.]

‘일단 자자, 그럼. 졸리면 뭔 실수할지 몰라. 외래는……. 나 요새 어려운 환자 좀 오잖아, 그것도 당일로.’

이상한 일이었다.

왜 레지던트 외래로 어려운 환자들이 오는 걸까.

기껏해야 3년 차인데.

안에서야 천재네 어쩌네 해도, 환자들이 볼 때는 그냥 레지던트 아닌가.

그런데 수혁을 지정해서 오는 환자들이 있었다.

[아마 이현종 원장이나 신현태 과장이 수 쓴 게 아닐까요? 아니다, 신현태 과장은 아닐 거 같고. 이현종 원장이 확실합니다.]

‘설마…….’

[원장이니까 가능할 겁니다. 원무과 측에 요청해서 심각해 보이는 내과 환자는 일단 수혁 외래로 넣으라고 하면 될 테니까요.]

‘그게……. 아니, 그래도 되나? 교수님 외래로 가야 되는 환자가 나한테 올 수도 있는 거 아냐?’

[누가 보면 매일 외래 보는 줄 알겠습니다?]

‘아…….’

암만 실력은 레지던트를 뛰어넘었다 해도, 신분은 그럴 수가 없지 않은가.

때문에 스케줄 자체는 레지던트의 그것을 철저히 따르고 있었다.

레지던트에게 외래는 일이라기보다는 교육의 일환인지라, 당연히 그 수는 적었다.

일주일에 기껏해야 2타임에서 3타임만 주어질 뿐이었다.

‘하긴. 그래, 뭐……. 좋은 일이지. 경험 쌓고.’

[네, 그러니까 일단 자시죠. 저도 슬슬 걱정이 됩니다. 수혁의 뇌 기능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지만, 아직 자만해도 될 정도는 아닙니다. 제가 원래 있던 슈퍼컴퓨터에 비하면…….]

‘거기에 비하면 누구라도 모자라지!’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러십니까? 저도 이해하고 있는 부분인데.]

‘말을……. 아니다, 말자.’

[내, 화를 가라앉히시죠. 주무셔야 합니다. 자장가라도 불러 드려요?]

자장가라.

이건 또 좀 끌렸다.

혹시 잠자는 데 도움이 되는 주파수라도 흘려 줄 줄 누가 알겠는가.

방금 다툰 것을 생각하면 기대해서는 안 될 생각이었지만, 수혁은 언제나 그렇듯 지나치게 긍정적인 인간이었다.

‘해 봐, 어디 한번.’

[루저 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야! 이게 자장가냐? 우울해서 눈물 나겠어!’

[그럼 그냥 조용히 할까요?]

‘제발.’

‘씹냐?’

[조용히 하라면서요?]

‘에이.’

수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대며 베개에 머리를 파묻었다.

숨을 몰아쉬어야 할 정도로 화가 나 있었지만, 그보다 더 피곤한 상태였기에 잠드는 게 어렵진 않았다.

어려운 건 오히려 외래였다.

‘음……. 뭐냐 이거?’

[이현종이 오버하는데요? 너무 어려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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