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2화 (252/1,303)

252화 연구도 외래도 (2)

“으…… 응급실로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환자를 보자마자 일단 이 말부터 튀어 나갔다.

그도 그럴 것이, 환자는 산모였다.

그것도 누가 봐도 배가 남산같이 불툭 튀어나온 만삭의 산모.

멀쩡히 걸어 들어온 게 아니라 휠체어를 타고 들어왔으니 일단 응급실 생각이 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녜요. 그냥…… 그냥 좀 몸이 안 좋은 거예요.”

“몸이……. 안 좋으시다고요?”

수혁은 산모분이 단어 뜻을 헷갈리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땐 안 좋다는 말보다는 너무 힘들다라거나, 죽을 거 같다는 말을 써야 할 거 같았다.

괜히 그런 것은 아니었다.

짤막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수혁은 재빨리 눈을 위아래로 움직여 환자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물론 수혁이 터미네이터는 아니었기에 바루다의 도움이 아주 많이 필요했다.

[하혈이 있거나 양수가 터진 것은 아닙니다. 휠체어 하방으로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습니다.]

‘그건 다행이긴 한데…….’

사실 다행이라는 말도 좀 모자랄 지경이었다.

수혁이 암만 뭐든 잘하는 의사라 해도 애를 받아 본 경험은 없지 않은가.

이곳은 병원이니 바로 산부인과에 넘길 수는 있겠지만.

그사이에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하나도 알고 있는 게 없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산부인과 공부도 좀 해야겠군요.]

‘뭔 이런 상황을 대비해. 이런 상황은 있으면 안 되는 상황인데.’

[벌어졌잖아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적어도 출산은 아냐.’

[그거야 그렇긴 하지만…….]

‘아무튼, 눈이 좀 노랗게 보이는데, 황달은 아냐?’

[가지고 있는 데이터와 비교해 봤을 때, 정상인 범주를 넘어섭니다. 황달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음.’

황달이 보이면서 전반적으로 컨디션이 떨어져 보이는 산모라.

의심해야 할 질환이 한두 개가 아니었는데, 그중에는 당연히 아주 치명적일 만한 것들이 잔뜩이었다.

특히 시기를 놓치면 산모뿐 아니라 아이도 잘못될 수 있었다.

수혁의 얼굴에 스친 불안을 읽어 냈는지, 보호자가 아까보다는 다급해진 얼굴로 물어 왔다.

“사실……. 아내가 어제부터 조금…… 횡설수설하기도 하거든요? 이건 어떤가요?”

“횡설수설이요?”

횡설수설이라는 건 꽤 모호한 단어였지만.

적어도 황달이 있을 때 동반되었다면 간 기능 이상 정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가 될 수도 있었다.

해서 되물으려 하는 찰나에 산모가 끼어들었다.

어디를 보고 있는지 모호한 눈을 한 채로였다.

“무슨 횡설수설이야, 내가. 미친 소리 하지 마. 짜증 나게 하고 있어 정말. 아유, 병원 가자니까 왜 이렇게 꾸무럭거려.”

“이, 이런 식으로요.”

“아, 이렇게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던가.

남편이 설명하려고 했다면 굉장히 오래 걸렸을 텐데, 산모가 이렇게 얘기를 해 주니까 단번에 명확해졌다.

‘간성혼수가 있어.’

[간 기능이 크게 떨어졌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가능성 있는 진단명으로는 급성 간염, 또는 급성 임신성 지방간 등이 있겠습니다.]

‘뭐가 됐든, 외래에서는 못 봐. 맞지?’

[네. 즉각적인 처치가 필요합니다.]

‘오케이.’

빠르게 결론을 내린 수혁은 대기 중이던 사원을 돌아보았다.

짬밥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이라 그런지 이미 전화기를 들고 대기 중이었다.

“응급실로 이송할게요. 콜 해 주세요.”

“네.”

사원은 수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응급실 내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보호자가 재차 입을 열었다.

몸을 자꾸 일으키려는 아내를 힘으로 눌러 앉히면서였다.

다행히 산모는 간 기능 때문인지 뭔지 완력이 떨어져 있어 제압이 그리 어려워 보이진 않았다.

“으, 응급실이요? 위…… 위험한 건가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만, 일단 외래에서 그냥 볼 수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간성혼수가 진행되고 있다면 빨리 처치를 해야 해요. 수액으로 희석도 시켜야 하고요.”

“아……. 이런…….”

제법 친절하게 답한다고 답해 준 참이었지만.

여기서 남편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외래에서 그냥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때문에 말을 듣고 나서는 더더욱 패닉에 휩싸이는 듯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아이 걱정이 더해졌을 테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아쉽게도 수혁은 마냥 거기에 공감만 하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콜 했으니까 5분 이내에 오겠지?’

[네. 부리나케 따라가면 처음엔 보폭을 맞출 수 있겠지만……. 역시 5분 이상은 무리에요. 그다음부터는 뒤처져서 가야 합니다.]

그 말은 곧 보호자에게 수혁이 직접 문진할 수 있는 시간은 불과 10분 남짓하다는 뜻이었다.

낭비할 시간 따위는 전혀 없었다.

“보호자분, 지금부터 제가 묻는 말에 잘 대답해 주셔야 해요. 그게 환자분의 예후에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해서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그냥 말로만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있어서, 마냥 황망한 얼굴로 서 있던 보호자가 수혁에게 집중하는 기색을 보였다.

“아시겠습니까?”

그리고 한 번 더 재촉하고 나서는 고개까지 끄덕였다.

[된 거 같습니다. 물어보시죠.]

‘오케이.’

바루다의 확인까지 받은 수혁은 곧 질문을 해 대기 시작했다.

“산모분 이번이 첫 임신인가요?”

“아……. 아닙니다.”

“그럼 아이가 있나요?”

“네? 아, 네.”

“몇이나 있죠?”

“하나…… 하나 있습니다.”

수혁은 그 아이가 태어난 연도는 물론이고 몇 주에 태어났는지, 몇kg으로 태어났는지까지 물었다.

39주에 제왕 절개로 태어났으니 미숙아는 아니었고, 출생 당시 몸무게도 3.01kg으로 정상이었다.

“유산한 적은 없으신가요?”

“아……. 그건…….”

“필요한 정보입니다.”

“제가…… 제가 알기론 없어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왕 절개는 혹시 여기서 시행 받았나요?”

“네? 아, 네. 제가 태화 전자에 다녀서…….”

그 이후로도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예민한 질문도 더러 섞여 있었지만, 보호자는 거부감 가질 틈도 없었기에 바로바로 답을 해 주고 있었다.

“그럼 이번에도 여기서 출산 예정이셨나요?”

“네? 네.”

“산전 검사에서 이상은 없으셨고요?”

“네. 없었…… 없었습니다. 제가 알기론 그래요.”

“네, 여기 차트상에도 그렇네요.”

수혁은 산부인과에서 꼼꼼히 기록해 둔 차트를 교차 대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음파 소견도 첨부되어 있었는데, 가장 마지막에 검사했을 때까지도 아이는 건강해 보였다.

“이송 왔습니다!”

좀 더 캐묻기 위해 입술을 달싹이고 있으려니, 이송 요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문진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일단 빨리 응급실 처치실로 가서 필요한 처치를 받게 하는 게 우선이었다.

혹 너무 급박해지면 제왕 절개를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네, 바로 가죠!”

때문에 수혁은 지체 없이 환자를 이송할 수 있도록 도왔다.

머릿속으로는 환자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이어 나가면서였다.

‘애를 낳으면 괜찮나?’

[아직 35주긴 하지만 초음파 소견상 아이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갈 확률은 희박합니다.]

‘수술할 수 있는 컨디션이긴 해? 간성혼수인데?’

[급성 간염인 경우에는 마취나 수술에 있어 훨씬 더 주의에 주의를 요해야 합니다. 아직 그걸 배제하기엔 정보가 부족합니다.]

‘알았어, 더 물어볼게.’

수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보호자를 돌아보았다.

약간 어색한 행동이었지만, 워낙에 다들 다급하게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환자분 언제부터 이런 거죠?”

“일주일? 근데 그때는 그냥 약간 속이 미식거린다고만 했어요.”

“근처에 이 비슷한 증상을 보였던 사람은 없고요?”

“네? 아……. 네. 없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 산모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아까보단 명료해 보이는 눈을 하고서였다.

“그제까지도 그냥 괜찮았어요. 여기 너무 오래 기다릴 거 같아서 동네 산부인과 갔더니, 검사 결과 나쁘지 않다고 하면서 계속 속 울렁거리면 내과 가라고 했고요.”

아무래도 간성혼수가 아직 온 건 아닌 모양이었다.

[간 기능 부전도 완전 심각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왔다 갔다 할 경우에는 수액만으로 좋아지기도 하니……. 우선 한시름 놓았군요.]

바루다도 비슷한 판단을 했기에 수혁은 걱정을 던 채 입을 놀릴 수 있었다.

“그때 어떤 검사를 했는데요?”

“간단한 피 검사요. 미식거리자마자 갔는데……. 다다음 날인가? 괜찮다고 했습니다.”

“거기 간 기능 검사 결과도 있었어요?”

“아……. 네. 약간 올라가긴 했는데, 그 정도는 임신 말기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던데요.”

“약간 올라갔다라…….”

수혁은 지팡이를 짚은 채 빠르게 굴러가는 침대를 쫓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이송 요원이 조금 속도를 낮추려고 하길래 그냥 가라고 한 채였다.

따라잡을 수 있어서 그냥 가라고 한 게 아니라, 응급실에 가는 게 급해서 가라고 한 거다 보니 아무래도 점점 더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고민에 빠진 상황이니 더더욱 그랬다.

“제가 전화해 둘 테니까, 일단 빨리 가세요!”

“아, 네.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해서 보호자와 이제는 다소 멀쩡해진 산모에게 이렇게 외친 후 완전히 멈춰 서 버렸다.

‘7일 전 증상 발생과 함께 간 기능 검사를 했는데 아주 심하게 오르진 않았다고 했지?’

[네. 수치는 기억 못 한다고 하고요.]

‘아까 차트상에 다른 바이럴 마커 중에 양성 소견은 없었지?’

[네. B형 간염, C형 간염 모두 음성입니다. 이전에 제왕 절개한 것도 태아가 거꾸로 서서 그렇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간성혼수까지는 아니지만, 의식의 혼탁은 있고?’

[네. 가능성은 여전히 A형 간염을 비롯한 급성 간염 또는 임신성 급성 지방간 또는 산욕증 등이 있습니다.]

세 질환 모두 임산부에 있어서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임신성 급성 지방간은 이름에 지방이 들어가서 좀 낫지 않으려나 싶을 수도 있겠지만.

질환의 중증도는 이름이 주는 느낌하고는 아무 관계 없지 않은가.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일단 세 질환 중 가장 가능성이 큰 건……. 내 생각에는 임신성 급성 지방간 같은데, 넌 어때?’

[저도 그렇습니다. 근거로는 바이럴 마커 음성, 첫 검사 시에 상대적으로 낮았던 간 수치, 현재 보이는 증상의 중증도 정도를 들 수 있습니다. 다만 증상이 일반적인 임신성 급성 지방간에 비해서 약간 더 심하기에 감별은 필요합니다.]

‘간성혼수까지 나타냈던 증례가 있지 않아?’

[증례는 있습니다.]

‘그럼 확률로 따지면 얼마나 돼?’

[음.]

바루다는 잠시 입을 다물고 분석에 들어갔다.

금세 어지러워진 수혁은 살며시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안 그래도 지팡이 들고 뛰다가 숨을 몰아쉬길래 따라붙었던 사람들이 앞다투어 괜찮냐고 말을 걸어왔다.

그중 발군은 조태진이었다.

“야, 수혁아! 왜 그래! 신 내렸어?”

남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였는데, 어떻게 보면 제일 그럴싸하기도 했다.

“아, 아뇨.”

다행히 바루다의 분석이 그리 길지 않았기에, 수혁은 손을 내저으며 눈을 뜰 수 있었다.

그리곤 방금 바루다가 말해 준 분석을 떠올렸다.

[급성 바이러스성 간염 48%, 급성 임신성 지방간 48%, 산욕증 4%. 우선 응급 제왕 절개로 분만할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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