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5화 (255/1,303)

255화 산모 (1)

사망 가능성 50%.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루다가 한 말이지 않은가.

그래서 그런가 어쩐지 더 엄중하게만 들렸다.

‘근…… 근거는?’

[통계죠. 급성 간염에 의해 산모의 의식이 흐려질 정도의 간 기능 부전이 있는데, 그것이 출산 후에도 지속되는 경우 예후는 극히 나쁩니다. 병원에 온 이후로는 결론을 빨리 내려서 최대한 빠른 시간에 출산을 하긴 했지만, 그건 태아의 예후에 긍정적인 것이지 이 환자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음.’

바루다의 말투는 평소와 별로 다른 것이 없었다.

그저 언제나처럼 지극히 사무적일 따름이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언급하면서 이럴 수가 있다니.

아마도 깡통이라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반대로 말하면 수혁은 도저히 덤덤하게 있을 수가 없었다.

‘보통 사망에 이르는 경위는 뭐지?’

[출혈입니다. 간부전이 있는 경우 출혈에 취약해지니까요.]

‘뭐…… 수술 부위? 수술 기록 보면 거긴 괜찮아 보이는데.’

[뇌출혈이 동반되는 경우가 상당수 있습니다. 아.]

‘그럼 지금 의식 저하되는 거 이거…….’

[확인이 필요합니다.]

누가 봐도 싯누런 눈동자.

초기 랩에서 뜬 간 수치와 혈중 암모니아 농도.

누구라도 간 기능 부전에 의한 간성혼수만 떠올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바루다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 교수님.”

“응?”

다행히 진태림과 신현태는 아직 환자 곁을 떠나지 않은 상황이었다.

혈압이나 기타 활력징후들, 그리고 환자의 수술 부위 및 의식 상태까지 볼 게 너무 많아서였다.

수혁이야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힐끔 본 것만으로도 데이터화시킬 수 있다지만 이들은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아무튼, 수혁의 말을 들은 둘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답 없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는 느낌이다 보니 둘 다 꽤나 절박해 보였다.

“브레인 확인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응? 간성혼수잖아. 일단은 경과를 봐야지.”

“아뇨, 간 기능 부전이 산모에서 발생한 경우……. 뇌출혈이 발생할 확률이 올라간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아.”

신현태는 그 말이 맞냐는 얼굴로 진태림을 바라보았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진태림은 그제야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맞아. 그럴 수 있어. 빨리 어레인지 해서 찍지!”

“네, 연락은 제가 하겠습니다.”

수혁은 즉시 전화기를 빼 들고는 CT실에 전화를 걸었다.

주치의인 정다와는 처방창을 띄워 Brain CT를 처방했다.

수혁은 전화를 마치자마자, 그런 정다와를 향해 물었다.

“정 선생님, 혹시 환자 의식이 괜찮았던 게 마지막으로 언제였죠?”

“제가 봤을 땐 내내 혼탁했습니다.”

“음.”

그 말은 곧 수혁이 환자를 보낼 때 즈음부터 환자의 의식 상태가 쭉 이상해져 버렸단 얘기였다.

[수혁, 그때는 난폭한 모습을 주로 보였습니다. 뇌출혈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지만 드뭅니다. 전두엽 억제는 간성혼수의 주된 증상이지, 뇌출혈의 증상은 아니니까요?]

‘그럼? 아, 의식이 아예 깔아졌을 시점이 중요하겠구나.’

[그렇습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환자가 수술방에 들어갔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했습니다.]

‘오케이.’

그렇다면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것은 환자의 의식 저하 수준이 언제 발생했는지였다.

“정 선생님.”

“네.”

그렇지 않아도 수혁이라고 하면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 정다와 아니던가.

이번엔 아예 그 위력을 몸소 체험하고 있었기에 군기가 바짝 들어가 있었다.

“그럼 환자분 의식이 깔아진 건 언제인지 기억하나요? 깔아지지 않고, 수술방에 들어갈 때 내내 난폭했다면 그것도 좋습니다.”

“아…….”

정다와는 우선 부정의 의미로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수술실에 들어갈 때쯤의 환자는 난폭한 모습도 보이지 못했으니까.

그땐 완전히 늘어져 있었다.

간성혼수라고만 생각했으니, 그게 더 심해졌구나 하고 말았는데.

지금 수혁의 말을 듣고 보니 어쩌면 뇌출혈이 발생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언제인지 기억하나요?”

혹 자신이 중대한 것을 놓쳐 버려서 환자가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걱정에 휩싸일 때쯤 수혁이 재차 물어 왔다.

그제야 정다와는 지금 중요한 건 눈앞의 환자이지, 자신의 죄책감 따위가 아니란 것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곤 머리를 굴려 아까 대충 스쳐 지나갔던 사안을 떠올렸다.

다행인 것은 정다와가 외과 중에서도 가장 응급한 질환을 보는 산부인과 의사란 점이었다.

“아, 그래. 그…….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갈 때……. 그때쯤부터 그랬던 거 같아요.”

“응급실에서 수술실이라……. 그럼 몇 시죠?”

수혁은 더 심각해진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시침은 이미 점심때를 훌쩍 지난 2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외래에서 환자를 떠나보낸 것이 12시 좀 안 돼서였지 않은가.

응급실에서야 정말 간단한 초음파만 하고 수술방으로 갔을 테니, 12시 반쯤부터는 이미 환자 의식이 나갔다고 봐야 한다 이 말이었다.

“12시 반쯤 됐을 겁니다.”

안타깝게도 정다와 선생의 말도 크게 다르진 않았다.

[1시간 반이면 뇌는…….]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아직 모르는 거잖아?’

[아직 모르는 거긴 하죠. 아, 오네요. CT실로 가는 건 무리니, 일단은 기다리죠.]

‘그래야지. 하.’

그야말로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고, 그 누구도 그러한 심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아이고…….”

신현태 또한 CT실을 향해 굴러가는 중환자실 침대를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물론 지정의로서 이미 임신 기간 동안 환자와 관계를 쌓아 온 진태림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뇌출혈이라…….”

더군다나 진태림은 산과 교수로 잔뼈가 굵은 사람 아니던가.

태화 의료원 특성상 어려운 산모가 몰려왔고, 그 때문에 안 좋은 기억도 많았다.

뇌출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여러 죽음이 몰려들 지경이었다.

“젠장.”

외과 의사 특유의 거친 욕설이 아주 자연스럽게 비어져 나왔다.

신현태는 그런 진태림을 비난하는 대신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환자를 잃어 가는 의사의 마음은 의사가 제일 잘 아는 법이었다.

“야, 일단 좀 봐. 아직 몰라.”

“간이 아예 나간 상황에서 뇌출혈이면 환자 죽어…….”

“아직 모르는 거잖아. 의식 수준은 간성혼수에서도 떨어질 수 있어.”

“그렇다면 다행인데……. 아니지, 다행이야 지금? 간 기능이 너무 떨어져 있잖아.”

“그건…….”

애써 위로해 주고 있으려니, 사진이 하나둘 넘어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모니터 앞에 앉아 있던 수혁이 제일 먼저 확인할 수 있었다.

“아.”

탄식이 터져 나온 것은 뇌출혈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어조가 아주 비감에 젖어 있지 않은 것은 범위가 작기 때문이었다.

“의식 수준을 건드릴 정도는 아니에요. MRI를 찍어 봐야 더 확실할 텐데……. 뇌출혈 크기는 작습니다. 이거…… 일단 NS랑 NR 콜은 해야겠는데, 수술은 안 할 가능성이 큽니다.”

수혁은 들뜬 나머지 바루다가 일러 주는 말을 고대로 옮겼다.

신현태야 워낙에 수혁이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지나치단 생각도 안 들었지만.

진태림은 좀 달랐다.

‘얘는…… 뇌출혈에 대해서도 잘 아네?’

대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척척 보자마자 진단을 내리는 것도 신기한 일인데, 처치까지 정해 줄 수 있다니.

이건 노회한 영상의학과 의사도 쉬이 부릴 수 없는 마술이었다.

진태림이 더 놀란 것은 NS와 NR 모두 방금 수혁이 말한 것과 같은 의견을 남겨 주었을 때였다.

“네, 협진으로 보겠다고 합니다. 아직 수술할 수준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행히…… 다행히 환자 아직 살아날 가능성은 있겠습니다.”

물론 어떤 형태로 살아날 수 있을지는 또 다음 문제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음을 생각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

오로지 지금 당장만 생각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아, 랩 결과 더 나왔습니다.”

정다와가 환자를 다시 끌고 중환자실로 돌아올 때쯤, 모니터 앞에 여전히 앉아 있던 수혁이 입을 열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과연 후속으로 나갔던 랩과 처음 나갔던 랩 중 시간이 좀 걸리는 랩 결과들이 주르륵 떠 있었다.

분만을 하고 난 이후에 나간 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지는 온통 빨갛기만 했다.

“AST/ALT가 3122에 782입니다. 오히려 올랐어요. I/O 생각하면 이것보다 더 올라갔다고 봐야 할 거 같습니다.”

“엄청 높네……. 프로트롬빈 시간은 어때?”

“50%입니다.”

“50……. 아까 백혈구 수치 어땠지?”

“3만입니다. 이건 별로 변화 보이지 않습니다.”

“아.”

신현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혁에게서 시선을 떼어 낸 후, 환자 침대 옆에 부착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체온은 38.4.

약과 수액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고열이었다.

“명확한 황달에 높은 간 수치, 프로트롬빈 시간, 체온 등을 고려하면……. 역시 전격성 간염(Fulminant hepatitis)으로 판단됩니다.”

“마커는? 마커는 떴니?”

“음. 잠시만요.”

흔히 급성 간염이라고 하면 감기처럼 앓고 지나가거나, 좀 심하면 얼굴 누래졌다가 낫는 병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전격성으로 오는 경우엔 그 환자의 기저 질환과 관계없이 생명을 위협했다.

물론 기저 질환이 전격성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아무튼 간에 이미 전격성 간염이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안 좋은 예후를 떠올려야만 했다.

“아……. A형 간염입니다. A형 간염 Ig M 양성 소견 보입니다.”

“이런 제기랄. 아니, 산모가 어딜 가서 그걸 걸렸지?”

“알 수 없습니다만……. 감염 경로를 생각해 볼 때, 야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역시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보호자…… 보호자 어딨어? 그 사람도 지금 간염이면, 간 이식 못하는 거 아냐?”

“아.”

아주 건강한 성인에서 A형 간염은 정말 감기처럼 지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짜 감기라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생체 간 이식이라는 큰 수술을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일단 보호자도 문젠데, 환자 부모님하고 형제들하고 접촉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만약 보호자분이 숙주라면…….”

“아이고. 야, 태림아. 들었지? 달려.”

“어? 어어.”

A형 간염의 주된 감염 경로는 ‘Fecal to oral’.

즉 변에서 입이었다.

미친 사람 아니고서야 변에 직접 입을 대진 않으니, 대개는 화장실 갔다가 손을 안 씻은 숙주에게서 전염되기 마련이었다.

요새 누가 화장실 갔다가 손을 안 닦나 싶겠지만, 생각보다 그런 사람 많았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A형 간염이 매해 창궐하는 사태가 없었으리라.

띠딕.

아무튼, 신현태과 진태림은 달렸다.

중환자실 밖에 위치한 보호자 대기실을 향해서.

전격성 간염이라면 아무래도 저 상태에서 저절로 회복되기는 그른 상황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기대를 걸어 봄 직한 곳은 생체 간 이식뿐인데, 이놈의 간염 때문에 기회를 날려 먹을 수는 없었다.

“어어, 보호자분! 아직 악수하지 마! 악수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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