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산모 (2)
신현태는 거의 미식축구 선수가 태클하듯 보호자, 그러니까 남편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남편이 그리 비리비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신현태가 체격이 썩 괜찮은 사람이지 않은가.
“으억!”
반쯤 공중에 뜨고는 뒤로 나뒹굴고야 말았다.
다행이라면 근처에 딱딱한 구조물이 없어 다치지는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 뭐……. 뭐……. 응?”
남편은 웬 미친놈인가 하고 화를 내려다 말고 자신에게 태클을 건 게 신현태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나, 생긴 것으로 보나 점잖은 교수 아니던가.
이런 인간이 대체 왜 태클을 걸었을까?
“아……. 교수님?”
게다가 옆에 따라온 사람은 진태림이었다.
바로 자기 아내의 담당 의사이자 산부인과 과장이다, 이 말이었다.
될 수 있으면 아내 산전 진찰은 다 따라왔기에 진태림 얼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건 진태림도 마찬가지였다.
‘괜찮은 거죠?’
‘건강하죠?’
‘우리 미진이 괜찮죠?’
올 때마다 어찌나 아내 걱정을 하던지.
원래 산부인과가 보호자들이 좀 유별난 곳인데,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유별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혹 당신이 아내의 감염원일 수도 있다고 어떻게 말하지?
아니, 그런 말을 해도 되는 건가?
‘시발, 어떡하지.’
산부인과를 하다 보면 아주 곤란한 상황이 많은 편이었다.
가령 부모 몰래 성관계를 한 아이를 본다든지, 남편 몰래 바람 핀 아내를 보게 된다든지 하는.
그래도 그런 건 좀 익숙해졌다 싶은 마당이었는데, 또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남들 앞만 아니었으면 좀 더 속 시원하게 욕을 할 텐데, 그럴 수도 없으니 가슴이 답답했다.
따닥.
따닥.
그사이 수혁이 천천히 다가왔다.
지팡이를 열심히 짚어 가면서였다.
“아, 교수님. 얘기하셨어요?”
그리곤 내가 내준 숙제 당연히 했지 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신현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고, 진태림은 그냥 외면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싶었지만.
이 똘똘이가 어떻게든 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수혁은 이 사람들이 학생 때 나쁜 소식 전하기 같은 건 안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까마득한 후배이자 심지어 제자이기까지 한 자신에게 이 중대한 일을 미룰 수 있을까.
[남편한테 당신 똥 싸고 손 안 닦아서 아내가 아픈 거 같으니, 검사하자고 하시죠.]
‘미친놈이.’
하지만 바루다 말을 듣고 나니, 이렇게 하느니 그냥 입 다물고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절대, 그야말로 절대로 그런 말은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이미 아내를 잃을 위기에 처한 사람에게 그게 당신 탓이라는 죄책감까지 더해 줄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서 수혁은 잠시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남편분에게 전해 들으셨겠지만, 지금 산모 분 간 기능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검사 결과 A형 간염에 의한 것으로 보이고, 이대로 회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간 이식이 필요할 수 있어요.”
“아…….”
“아니, A형 간염이라는 게 대체 어디서 걸리는 겁니까? 우리 애……. 제가 알기론 직장도 쉬고…… 집 앞에만 다니는데.”
남편은 고개를 떨구었고, 아버지는 화를 냈다.
병 고치는 의사에게 왜 이 병에 걸렸냐고 화를 내다니.
좀 이상하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병원에 있다 보면 종종 겪는 일이었다.
수혁은 이미 태화에 있은 지 만 3년이 넘은 사람인지라 전혀 당황도 하지 않았다.
“네, 아버님. 바이러스라는 게 우리 손이 닦는 물체 어디라도 닿으면 바로 죽지는 않거든요. 뭐……. 그런 것에 의한 감염일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한 얘기였다.
대부분 감염을 일으킬 정도로 충분한 수의 바이러스가 생존해 있으려면, 역시나 싸고 안 닦은 손 정도는 잡아 줘야 확실하겠지만.
여러 실험 연구 데이터를 보면, 바이러스나 균주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공기 중에서 바로 사멸하지 않는 놈들은 며칠까지 살아 있는 놈들도 있었다.
“아……. 근데…… 그…… 회복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건 무슨 뜻인지?”
수혁의 명료한 답에 아버지는 맥이 탁 풀리는지 의자에 주저앉으며 물었다.
이미 의자에 앉은 채 울고 있는 어머니의 어깨에 손을 가져다 대면서였다.
이런 걸 볼 때마다 수혁은 자신이 의사인지 아니면 비극 전도사인지 헷갈렸다.
제아무리 바루다의 도움을 받아 태화 최고의 진단율과 치료율을 자랑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 해도 현대 의학 자체의 한계는 어쩔 수 없었다.
남들보다 적지만, 환자를 떠나보내는 일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전격성 간염입니다. 다시 말하면 간 전체에 염증이 생긴 상황이에요.”
“외람된 말씀이지만……. 간은 이렇게 뭐…… 재생이, 재생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이번엔 남편이 입을 열었다.
간 이식이 필요할 수 있으니, 다른 보호자를 모시고 오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그 얘기를 심지어 잘 전달해서 가족들을 모아 오긴 했지만, 여전히 부정하고 싶긴 한 모양이었다.
수혁도 이해는 할 수 있었다.
[시간은 있습니다. 어차피 약 들어가고, 투석하면서 좋아질 가능성도 적지만 있으니까요. 간 이식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서 이식외과에서도 봐야 하고요.]
바루다의 말을 들어 보니 시간도 있는 모양 아닌가.
해서 수혁은 차분한 어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네, 간이 재생을 잘하는 장기인 것은 사실입니다. 실제로 생체 간 이식을 한 경우, 장기 공여자분의 간은 대개 반년이면 완전히 회복합니다. 다만 지금 산모 분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릅니다. 전체가 갑자기 망가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이 경우에는 재생을 기다릴 시간이 없어요. 간이 없으면 우리 몸은 빠르게 죽어 가게 됩니다.”
“그런…….”
“지금도 신장 기능도 같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혁은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투석기기를 힐끔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우선은 급한 대로 투석을 의뢰해서 진행할 예정입니다만……. 이건 임시 방편일 뿐이에요. 빨리 간 이식이 가능한지를 알아보고, 가능하다면 시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어……. 어째야 됩니까? 우리가.”
“우선 혈액형이 맞는지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아까 들으니 남편분은 A형이라고 하셨죠? 산모분과 같으니, 다른 검사들을 추가로 해 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 A형 간염이 산발적으로 유행하고 있어서, 간염에 걸린 분은 불가하다는 점입니다. 즉 모든 가족분들은 가족분들끼리의 악수도 피하시고 손을 열심히 닦으셔야 합니다.”
“아, 아까 그래서……. 악수를 못 하게 한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준비되셨으면, 검사 시작해도 될까요? 생각보다 검사할 것이 아주 많습니다.”
“네? 아, 네. 그렇게 해 주십쇼.”
간 이식이라는 건 이름만 들어도 딱 감이 오겠지만.
엄청나게 어려운 수술 중 하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사후 장기 이식이 아닌 생체 간 이식, 즉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 받는 경우는 더더욱 까다로웠다.
간 전체를 이식하는 건 간에 딸린 동맥 및 간문맥도 딸려 오기에 간단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 간을 떼오면서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공여자가 잘못되면 정말 큰일이었다.
원래 건강했던 사람을 다른 사람 치료한답시고 위험에 빠뜨린다면 이식을 받는 사람 마음도 안 좋겠지만, 그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죽을 맛이었다.
해서 검사가 진짜 많았다.
“우선 혈액 검사를 통해 선별을 할 거고요. 가족분들은 혈액형이 맞으면 확률이 높기 때문에 그다음에는 초음파, CT, MRI 등을 통해 간이 이식에 적합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지 면밀하게 볼 겁니다. 이게 시간이 꽤 소요되는 검사들인데, 다행히 이식외과에서 가지고 있는 캐파를 빌려주었어요. 바로 가시면 됩니다.”
“아이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교수님.”
방금은 수혁 대신 신현태와 진태림이 나서서 설명을 해 준 참이었다.
곤란한 얘기가 다 끝나기도 했거니와, 지금 이 말은 수혁은 모르는 사안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수혁이 어려운 얘기해 주는 동안 가만히 있기는 뭐 해서 이식외과 과장과 얘기한 것이 주효했다.
“휴, 일단 간 이식 워크업은 시작했는데…….”
“환자분은 가능하다고 하나요? 사실 보호자분들이야……. A형 간염에 이환만 안 되었으면 될 텐데……. 환자분은…….”
“응? 아, 응. 이식외과에서 해 보겠다고 하네. 어차피 간 이식이야 계획해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빠져서 잡히는 경우도 많잖아? 워낙 경험이 많은가 봐.”
“아……. 하긴 태화가 간으로 유명하긴 하죠?”
“그럼. 간으로 유명하지. 우리나라에서 거의 최초로 간 이식 한 선생님이 계시잖아. 이현종 원장님하고 쌍벽을 이루는.”
이현종이 심장 내과의 스텐스 시술의 지평을 열었다면, 이식외과의 김승규는 간 이식을 자리 잡게 한 위인이었다.
이현종보다 두 임기 먼저 원장을 했었고, 이현종과 함께 석좌 교수로 임용받은 사람인 동시에 이식센터장을 맡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냥 직함만 화려한 게 아니라 실력도 최고였다.
오죽하면 김승규 교수가 해외 학회 가서 간 이식 발표하면 딴지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이 돌겠는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누가 뭐라고 해 봐야 이쪽은 수천 례의 경험이 쌓인 사람 아닌가.
내과라면 근거니 뭐니 떠들겠지만, 외과는 내가 해 봤다고 하면 꼬리를 마는 수밖에 없었다.
“김 교수님이 하신대요?”
“응? 응. 여기 진 과장이 김승규 교수님 지도 학생이었거든.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원래 받기로 했던 환자분이 어제 익스파이어 하셔 가지고 수술이 하나 비나 봐. 워크업 끝나면 내일이나 모레 정도면 들어갈 수 있다고 하네.”
“아…….”
내일이나 모레라.
원래 없던 수술인 데다가, 워낙에 큰 수술이니 급하게 잡힌 느낌이 들긴 했지만.
환자 상태를 떠올리고 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를 일이죠. 지금 수혈이 들어가고 있다고 해도……. 출혈 경향이라는 게 바로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현재 있는 뇌출혈이야 가만히 두어도 흡수되는 수준이라고 하지만 또 후속으로 생기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제기랄. 그럼 어쩌지?’
[옆에 붙어서 활력징후를 계속 만져 줘야죠. 최대한 터지지 않는 혈압을 내리면서 동시에 신장이나 기타 다른 장기는 망가지지 않을 정도로는 유지해야 합니다.]
‘그게…… 그게 될 거 같냐?’
이게 말하자면 적당한 혈압을 유지하라는 뜻 아닌가.
의사들 중 적당히라는 말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터였다.
그 말처럼 지키기 어려운 말은 없었으니까.
[그래서 안 할 겁니까? 환자 죽을 확률이 올라갈 텐데?]
‘해야지……. 산모잖아. 어떻게 안 하냐. 나처럼 고아 되면 안 돼.’
하지만 수혁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중환자실로 향했다.
고아라니.
자기가 겪어 봐서 잘 알지 않은가.
이미 고아가 됐다면 어쩔 수 없지만.
피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는 게 좋은 상황이었다.
그렇게 하는 데 힘을 조금이라도 더 보탤 수 있다면, 수혁은 얼마든지 잠을 희생할 용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