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7화 (257/1,303)

257화 산모 (3)

“수술 위험성이 너무 높아 보이는데요…….”

“하지만 이제 뇌출혈도 많이 흡수 됐고……. 바이털도 안정적인데요?”

“안정적이라고 해 봐야……. 이게…….”

“수술 안 하면 죽어요. 보호자들과도 다 동의가 된 사안입니다. 이 환자……. 갓난아기가 있어요.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고요.”

“음…….”

수혁은 환자 침대 옆에 가져다 둔 의자에 앉은 채 마취과 레지던트와 산부인과 레지던트의 언쟁을 듣고 있었다.

아니, 그냥 앉아 있었다는 말이 더 옳을 거 같았다.

지난 이틀간 거의 잠을 못 잤기 때문에 머리가 아예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저리 가서 싸우지. 잠 좀 자자, 이놈들아.]

심지어 바루다의 회로마저 그랬다.

돌이켜보면 바루다가 수혁 몸 안에 들어온 이래 이렇게까지 몸을 혹사시킨 적은 없지 않던가.

그 덕에 바루다도 수혁도 아주 소중한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수혁의 몸에 피로가 일정 이상 쌓이면 바루다의 성능 또한 급격히 저하 된다는 것.

‘오늘 들어가는 거 아니었냐? 오늘 들어가야 되는데? 나 더는 못 보겠는데.’

[아마 그럴 겁니다. 마지막 확인 와서 저러고 앉았네.]

‘레지던트지? 쟤 아무것도 모르고 저러는 걸 거야…….’

[무슨……. 아, 과장님들끼리는 얘기가 됐다 이거죠?]

‘그럼, 당연하지. 지금 이 환자에 붙은 과장만 둘에 수술은 센터장님이야……. 이식센터장님 힘이 어떻게 보면 수술장 내에서는 원장님보다도 센데 그걸 어케 틀어.’

[하긴 그렇군요.]

수혁의 심드렁한 반응은 곧 진실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 네. 과장님. 아……. 네, 보고 있습니다. 흉부 엑스레이도 그렇고……. 수술 위험도가 있어 보여서요. 네? 아……. 내과에서는 괜찮다고……. 아, 네네. 알겠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취과 레지던트의 전화기가 사정없이 울리더니, 한참을 쩔쩔매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자기 과 과장이 난리법석을 떨면 저렇게 되긴 할 터였다.

‘그래……. 내과에서 괜찮다고 했는데 왜 지가 난리냐고.’

[하도 산부인과랑 마찰이 많은 과다 보니……. 이번 기회에 갑질 해야지 했던 거 아닐까요?]

‘네가 갑질이라는 단어도 아냐? 제법 적절한 곳에 끼워 넣을 줄도 아네?’

[수혁을 기반으로 배우고 있으니까요. 이런 단어 배우기에는 아주 적절한 숙주라고 생각합니다.]

‘숙주라고 하지 마. 감염시켜?’

[일종의 감염이라고 볼 수 있죠. 기생이라는 말이 더 옳겠군요. 제가 수혁이 섭취하는 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흡수하고 있으니까요.]

‘아…….’

생각해 보니까 방금 바루다의 말마따나 이 자식 이거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머리 한구석에 자리하고는 거의 무한정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지 않은가.

덕분에 먹은 만큼 살이 찌지 않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아무튼, 기생충이라는 자기 인식이 딱히 틀린 거 같지는 않았다.

“그럼 들어가면 되죠?”

“아, 네. 들어가면…… 됩니다.”

“같이 들어가 주실 거죠? 호흡 좀 봐 주셔야 될 거 같은데.”

“내과 선생님이 계시다고 들었는데, 그분은 같이 안 가시나요?”

“아……. 이수혁 선생님이요? 저기 계시는데, 지금은 무리일 거예요.”

“자나? 자는 거예요?”

마취과 레지던트는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수혁을 바라보았다.

수혁을 아주 잘 아는 사람들, 가령 이현종 같은 사람이 이걸 봤다면 당연히 불손하네 어쩌네 하면서 시비를 걸었을 테지만.

사실 이 반응이 아주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누가 중환자실에서 잔단 말인가.

환자 보호자도 못 들어오는 곳인데.

“아……. 네. 이틀 동안 이 환자 바이털 만진 게 저분이세요. 진짜……. 저분 아니었으면 죽었을 걸요.”

“아……. 지인인가?”

“아뇨, 그건 아닌데. 책임감이 강하신 분 같아요. 워낙 내과에서는 유명한데, 모르세요?”

“네? 아, 뭐 듣기는 했는데…….”

마취과는 병원 전체로 보면 외딴섬 같은 과라고 보면 되었다.

하는 일 자체가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한다기보다는, 그 과정을 돕는 과 아니던가.

게다가 수술실 내에서의 환자 안전에 워낙 신경을 써야 하다 보니 다른 방면으로는 눈이 잘 가지 못했다.

해서 무려 이수혁 정도 되는 슈퍼 루키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아무튼, 갑시다. 이수혁 선생님은 아마……. 이따가 오시긴 할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뭐가 되었건 수술이 결정된 이상 지체할 틈 따위는 없었다.

둘은 곧 환자 몸에 달린 여러 장치들을 분리한 후, 휴대용 모니터를 응시한 채 침대를 밀기 시작했다.

마취과 레지던트는 방금 정다와 레지던트가 부탁한 대로 앰부을 쥐어짰다.

자발 호흡이랄 게 없는 상황이기에 반드시 짜 주어야만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약은 일단 이수혁 선생님이 세팅한 대로 들어가고 있으니까, 혈압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마취 걸 때 좀 떨어지는 건 신경 쓰지 말라고 했어요.”

정다와는 침대를 끌면서 마취과 레지던트에게 수혁이 곯아떨어지기 전에 인계해 주었던 말을 들려주었다.

마취과 입장에서는 좀 어이없는 말이라 할 수 있었다.

마취에 대해서 내과가 알면 뭐 얼마나 안다고 이런 말을 한단 말인가.

다만 그리 고깝게 생각이 되지도 않았다.

‘지인 아니라고는 하는데……. 뭐 어떻게든 아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디 레지던트가 지 수명 깎아 먹는 짓까지 해 가면서 환자에게 매달릴 수 있겠는가.

레지던트라는 건 그냥 원래 해야 할 일만 해도 주 88시간 아래로 내리기 힘들만큼이나 격무에 시달리는 존재인데.

‘아는 사람이면 뭐……. 주제넘은 짓 할 수도 있지.’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니 그런 말을 하는 게 이해는 갔다.

해서 날카롭게 반응하는 대신 그냥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네.”

그러는 사이 침대는 수술실 안으로 들어섰다.

저번과는 달리 약간 안쪽에 위치한, 32번 수술실이었다.

이식 외과 소속인 이 수술실은 애초에 설계할 때부터 김승규 교수가 관여하여 만든 수술실이었다.

처음 들어오는 사람은 우선 방 크기에 압도되기 마련이었다.

“와…….”

“아, 처음이시구나? 원래 이래요, 이식외과 방은.”

“엄청 크네요…….”

“기웃거리지 말고, 빨리 환자 옮깁시다. 김승규 교수님, 진짜 무서워요. 들어오다 그러고 있는 거 보면 그냥 큰소리 나는 걸로 안 끝나.”

“아……. 네.”

김승규 교수 성질이야 익히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오죽하면 외과 레지던트들이 이식 스케줄이 잡히면 기도부터 올린다는 말이 있겠는가.

일이 고되기도 하거니와 워낙 수술실에서 고성이 왔다 갔다 해서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뒤질 듯 힘들다고 보면 되었다.

‘원래 이 방 천장에 누가 뭐 붙여 놨었다고 했지.’

정다와는 입구 천장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

지금도 뭔가가 아주 단단히 붙어 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퇴국 하는 사람이 붙이고 나간 거 같은데, 그 종이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이 문을 지나는 전공의, 희망을 버릴지어다.]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문 앞에 적혀 있는 문구를 오마주했다는 설이 있었다.

레지던트들이 얼마나 이 방을 두려워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웃차.”

정다와는 고민을 해 가면서 동시에 환자를 수술대 위로 옮겼다.

아무래도 저번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그땐 아이를 품고 있었고, 지금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다면 원래 같았으면 배 안에 가득 차 있어야 할 복수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무슨 마법을 부린 걸까?’

보통 간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간 기능이 망가진 사람이라면 배가 복수 때문에 남산만 하게 부풀어 오르기 마련인데.

드르륵.

궁금했지만 더 고민할 만한 지식도 없거니와 시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영상 띄워 봐.”

김승규 교수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제 예순도 훌쩍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팔뚝이 단단해 보였다.

상당히 인상적인 부분일 수 있는데, 사실 얼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처음 김승규 교수가 외과 레지던트로 들어갔을 때 위 연차가 했다는 말이 있는데, 듣기만 하면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야, 넌 그 얼굴로 왜 의사를 하냐. 깡패 하면 전국구인데. 재능 낭비 아냐?’

정다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힐끔거리다 눈이 마주치는 동시에 고개를 깔았다.

이게 무슨 교수님이라서 까는 게 아니라, 진짜 무서워서 깔았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공포는.

“뭐야, 너는.”

“아……. 산부인과 레지던트인 모양입니다. 환자가 산모라 협진 수술로 진행 예정입니다.”

누구라도 김승규 교수와 눈이 마주치면 눈을 까는 게 일상인지, 펠로우가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정다와 대신 입을 열었다.

겨우 고개를 틀어 얼굴을 보니 펠로우도 만만치 않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진짜 조폭 단체네…….’

지금 공사 중인 이식 센터가 원래는 또 다른 외래동이었던 것을 가로챈 거라 말들이 많았는데.

그 소문 중 하나가 바로 완력으로 뺏었다는 얘기였다.

말이 되나 했는데, 이제 보니 제일 근거 있는 소문 같았다.

“음……. 그래, 도너는 누구라고?”

“아버지입니다. 남편은 A형 간염 IgM 양성 반응 보여서 아웃입니다.”

“이 환자도 A형 간염 아냐?”

“네.”

“거참.”

김승규 교수는 아마도 남편 때문에 일이 이렇게 됐을 테지, 하고는 모니터를 응시했다.

간이식으로 잔뼈가 굵은 이답게 비극에는 충분히 익숙해진 마당 아니겠는가.

어떤 비극은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배운 지 오래였다.

“아무튼, 음……. 야, 근데 산모……. 어떻게 살아 있는 거야? 전격성 간염이 산모한테 왔는데 간 이식까지 오는 케이스 나 거의 못 본 거 같은데?”

“저도 3년 동안 모시면서 처음입니다.”

“아니, 아니. 3년 정도가 아냐. 운이 좋았나? 아닌데, 운이 좋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데. 어떻게 살았지?”

“그러게요. 진짜 어떻게 살았지?”

다른 의사들이 저런 말을 하고 있으면 그냥 대단하다 생각하는구나 싶을 텐데.

얼굴들이 저 모양이다 보니 누구 묻었는데 왜 살아 있냐는 식의 대화로 들렸다.

정다와는 좀 더 고개를 깔았다.

드르륵.

그때 또다시 문이 열리고, 진태림과 신현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왔다.

진태림이야 수술복이 또 다른 피부같이 잘 어울렸지만, 신현태는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과장 짬바가 어디 가는 건 아니었다.

무려 김승규 얼굴을 보면서 또박또박 대꾸할 수 있을 정도의 평정심을 지킬 수 있었다.

“들어오다 들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냐고요?”

“아, 현태. 아니, 신 교수지? 이제?”

“아이고……. 교수님. 저 교수 된 지 20년입니다.”

“어쩌냐, 내 눈에는 학생 같은데. 아무튼, 네가 본 거야? 고생 많이 했겠는데? 바이털 어떻게 잡았어?”

“제가 아니에요, 교수님.”

“응? 네가 아니면 누구야. 태림이?”

김승규 교수의 눈이 진태림을 향했다.

‘하, 아직도 무서워.’

저 눈을 이제 거의 25년간 마주했는데도 무의식적으로 눈이 아래로 향했다.

진태림은 겨우 본능을 억누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그럼 누구야?”

“이수혁이라고, 제 제자 있습니다. 곧 올 거예요. 환자 보느라 이틀 밤을 새웠는지, 잠시 뻗었습니다.”

“얼굴 궁금하네. 덕분에 수술하는 데 크게 문제 없겠어. 마취과!”

“네.”

“걸어.”

“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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