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8화 (258/1,303)

258화 산모 (4)

김승규 교수의 지시는 짧고 명료했다.

누구에게나 인상적일 텐데, 특히 산부인과 레지던트인 정다와 선생에게는 더더욱 그러했다.

‘와……. 마취과한테 마취를 ‘걸어’라는 말로 시킬 수 있다니.’

아무리 산부인과가 응급 제왕 절개 하나만큼은 마취과 허가 없이 먼저 수술실로 밀고 들어가는 걸 원칙으로 두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마취과에게 ‘걸어’라는 말로 명령을 내린 적은 없었다.

아니, 아예 상상조차 못 해 본 일이었다.

“됐어?”

“아……. 아직…….”

“이미 삽관 다 되어 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려?”

“그…… 산모라…….”

“애 낳았잖아?”

“아.”

당연히 그 후로 이어지는 갈굼 또한 상상을 벗어난 일이었다.

제아무리 레지던트라 해도 다른 과라면 약간 군대에서 아저씨 개념으로 다가가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가.

아주 옛날에야 그렇지 않았다고 하지만.

기업 병원인 태화는 애초부터 선후배 같은 것이 약한 편이었다.

실제로 다른 학교 출신인 정다와는 이곳에 와서 그것 때문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빨리 걸어.”

“네!”

하지만 적어도 저 둘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는 듯했다.

“돼, 됐습니다.”

“오케이. 바이털 잘 보고.”

“네.”

김승규 교수는 아주 능숙한 태도로 명령을 내리고는 펠로우를 돌아보았다.

딱히 레지던트 보던 때와 다른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은 직속이니만큼 더 단호해 보이기까지 했다.

저런 얼굴로 나를 본다면 대번에 눈을 깔 거 같은데.

펠로우는 익숙해서 그런가, 아니면 간을 다루는 사람인 만큼 간이 커서 그런가 담담한 눈으로 마주할 따름이었다.

“소독하고 있어. 나 손 닦고 올 테니까.”

“네, 교수님.”

하여간 김승규 교수는 이쪽에도 명을 내린 후 홀연히 밖으로 나갔다.

“휴.”

그제야 그의 지도 학생이었던 진태림은 숨을 몰아쉴 수 있었다.

“넌 지도 학생인데, 아직도 그러냐?”

신현태 또한 비슷한 몰골이 되어 진태림을 바라보았다.

그런 신현태를 보며 진태림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너, 모르냐? 우리 병원 간 이식 펠로우 조건 중의 하나가 저 얼굴 마주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 아무리 손 좋아도 그게 안 되면 안 되는 거야. 난…… 난 그거 때문에라도 이식외과는 못했어.”

“하긴……. 저게 보통 담력으로 되는 건 아니지.”

둘의 대화를 듣던 펠로우가 허허 웃었다.

이쪽도 무섭기로는 만만찮은 얼굴을 하고 있었던지라,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기보다는 조금 공포스러워질 따름이었다.

“자꾸 보다 보면 귀여우신데.”

“아……. 네.”

“그렇군요…….”

이어지는 말은 더 충격적이었기에 둘 다 입을 다물게 되었다.

그 후로는 내내 침묵만이 감돌았다.

어차피 딱히 할 말이 있을 만한 상황도 아니지 않은가.

슥슥.

해서 김승규 교수가 돌아올 때까지는 그저 소독약 문대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따름이었다.

드르륵.

잠시 후, 김승규 교수가 팔뚝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들어왔다.

그리곤 엷은 갈색으로 물든 환자의 배를 들여다보았다.

일회용 종이 수건으로 팔을 닦으면서였다.

“환자 자궁 절제술을 한 건 아니지? 영상 봐서도 그렇긴 하다만.”

아직 환자의 배는 부풀어 있었다.

만삭으로 인해 늘어난 자궁이 아직 제자리로 가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래 봐야 약간 배가 나왔나? 싶은 수준이긴 했지만.

워낙에 어려운 수술을 앞둔 입장에서는 긴장을 풀기 위해서라도 스몰 챗을 하는 게 필요했다.

진태림 또한 수술 전 그런 얘기를 좀 하는 편인지라 서둘러 답했다.

“아, 네. 절제술은 안 했고, 제왕 절개만 했습니다. 수술 자체는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요.”

“음, 그래. 스페이스가 좀 있겠네. 복수가 상당히 있겠는데, 그럼.”

시선은 애매한 곳에 둔 채였는데, 김승규는 딱히 그걸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저 얘도 이러는구나 하는 얼굴일 뿐이었다.

그리곤 잠시 눈을 감은 채 오늘 수술을 어찌 할까 생각에 잠겼다.

드르륵.

그걸 방해한 것은 수혁이었다.

딸각.

단지 문만 열었으면, 이 소리야 외과 의사에게는 안방 문 여는 소리보다 자주 듣는 소리였기에 커다란 방해가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팡이 소리는 아주 낯설었다.

“뭐야?”

해서 눈을 부릅뜨고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는데, 수혁과 하필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어이구, 시벌.]

‘와……. 이게 김승규 교수님이구나.’

무섭게 생겼단 말이야 여기저기서 들었지만.

실제로 보니까 더더욱 그랬다.

그나마 루페도 끼고 있는 데다가, 마스크도 끼고 있어 망정이지.

통 얼굴을 그대로 봤으면 심장이라도 멎을 뻔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그랬다.

[자율신경 조절 들어갑니다.]

다행인 것은 바루다가 있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수혁은 빠르게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무려 김승규 교수와 눈을 마주치고 있음에도 그랬다.

“아, 안녕하십니까. 내과 3년 차 이수혁입니다. 환자 협진으로 보고 있었어서, 바이털 체크 위해 들어왔습니다.”

“아…….”

김승규 교수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눈을 안 까네?’

일단 제일 놀란 것은 이 점이었다.

기껏해야 신임 의사인 주제에 내 얼굴을 버티다니.

실제로 교도소 봉사를 가도 다들 동류인 줄 알고, 심지어 전국구인 줄 알고 눈을 깔던데.

이만하면 담력으로만 치면 전국 1등이라고 해도 좋을 터였다.

‘얘가……. 이 환자 숨 붙여 놓은 애구나.’

다음은 중환자 케어에 대한 놀람이었다.

원래 내과가 마음먹으면 생명 유지하는 것만큼은 모든 과 통틀어 최고라고 하지만.

그게 정말 의미가 있으려면 실력이 뒷받침해 주어야만 했다.

그런데 이 환자는 목숨이 붙어 있는 것뿐 아니라, 심지어 수술도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처음 중환자실에 들어갔을 때를 생각하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우리 환자들……. 수술은 잘됐는데 수술 후 문제 때문에 잘못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래도 간 이식 외과 의사답게 생각은 자연히 이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수술을 아무리 갈고 닦아도, 그 후에 생기는 문제 때문에 합병증 확률이 안 내려간다는 느낌이 있었다.

물론 중환자 의학의 홍창기 교수가 잘해 주고 있다는 건 알지만.

아무래도 집도의 성에는 차지 않았다.

“교수님, 드랩 다 쳤습니다.”

그사이 펠로우는 외과 레지던트 둘과 함께 손도 닦고 들어와서 드랩도 다 쳐 버렸다.

준비가 다 되었다는 뜻인데, 김 교수는 이렇게 해 놓고도 넋을 놓을 만한 위인은 절대 아니었다.

“음. 옆 방은 어떻게 됐어?”

그렇다고 바로 메스를 집어 들진 않았다.

방에 내내 함께 있던 펠로우 말고 방금 합류한 레지던트를 바라보았다.

4년 차였는데, 아마도 옆 방에 있다 왔을 터였다.

본인이 만든 시스템이 그랬으니 틀림없었다.

“한창수 교수님 방 말씀이시죠?”

“내가 그럼 딴 방 물어보겠냐? 뗐어?”

“네,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 지금 마지막 술기 중인데……. 한 10분이면 나올 겁니다.”

“어렵진 않대고?”

한창수 교수라고 하면 단독 간 이식이 가능한, 이른바 김승규 사단의 메인 교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김승규 교수에게는 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기만 한지 페어로 수술에 들어가면 늘 이런 질문을 늘어놓았다.

당연히 레지던트 입에서 뭐 하러 그런 걱정을 하시냐는 말은 나가지 않았다.

그저 극도로 공손한 얼굴로 굽신거릴 따름이었다.

“네, 다행히 케이스가 좋습니다.”

“음, 그래, 뭐. 어려우면 부르겠지. 칼 줘.”

“네.”

김승규 교수의 말에 보조를 맡은 시니어급 간호사가 메스를 건네주었다.

아무래도 이 커다란 병원에 단둘 있는 석좌 교수다 보니 대우가 남달랐는데, 간호사마저 그랬다.

지금 보조를 서고 있는 시니어 간호사는 아예 김승규 교수 수술만 전속으로 보조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김승규의 수술 순서나 사소한 버릇 등을 꿰고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수술은 물 흐르듯 흘러갔다.

“보비.”

“네.”

김승규는 수직으로 절개를 넣고는 보비를 이용해 복막을 갈라 들어갔다.

“석션 들어. 복수 나오면 방해되니까 빨아들이라고.”

“네.”

“긴장해. 산모라 스페이스가 많아. 그러니 복수도 많…… 음.”

잔뜩 긴장을 하고 복막을 갈랐는데, 나오는 것은 거의 없었다.

간 기능 부전이다 보니 복수가 아예 없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뭐 없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놀랐을 겁니다.]

‘야……. 내가 저렇게 만드느라 좀 고생했냐…….’

간 기능이 나빠진다고 해서 복수가 막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삼투압의 차이에 의해서 흘러나오는 것인데, 그걸 수혁은 혼신을 다한 보조 치료로 틀어막은 참이었다.

그만큼 알부민, 프레신 등의 약을 잘 썼다는 뜻인데 거의 신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쟤? 미친놈이잖아. 이제 저런 건 나보다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심지어 이현종조차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그런 것을 잘 알고 있던 신현태인지라 내심 뿌듯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말하자면 또 팔불출 짓을 했다 이 말이었다.

“역시, 수혁이가 환자 관리 최고야. 아.”

수술실이라는 것도 잊고 싸질렀는데, 다행히 김승규는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간을 향해 달려갈 따름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간 전체가 망가져 있으니, 간 전문의로서는 한눈을 팔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이수혁……. 이수혁이라고 했지.’

물론 머릿속에선 수혁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눈을 안 깐 게 마음에 들었고, 또 환자를 잘 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이현종이 아들이라고 하던데…….’

다만 걸리는 것은 이현종이었다.

내과 내에서의 명망과 밖에서의 명망이 극으로 다른 사람 아니던가.

특히 외과 계열에서는 미워하다시피 했는데, 김승규 또한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쪽에서 채 가겠지? 중환자 의학 하라고 하면……. 당연히 싫어하긴 할 거야.’

게다가 중환자 의학은 거의 외과에서 외상 외과와 비교될 정도로 대우가 좋지 못한 과 아니던가.

이게 잘하는 건 눈에 잘 띄지 않는데 한 번 못 하면 확 표시가 나는 과다 보니 평판도 별로였고, 수가는 개판이었다.

그걸 하라고 하면 이현종이 뭐라도 들고 뛰어올 터였다.

설령 그게 총이라도 이길 자신은 있었지만.

“교수님, 간문맥 보입니다.”

“응. 묶지.”

김승규 교수는 잠시 딴생각을 하면서도 물 흐르듯 수술을 진행해 나갔다.

원래 제거하는 게 더 쉬운 수술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쉽게 할 수 있는 건 역시나 환자 상태가 그리 나쁘지 않아서였다.

세상에 간 기능 부전 때문에 제왕 절개한 환자 상태가 이렇다니.

진태림이 하도 부탁하기에 수술은 잡아 놨지만, 내심 그 전에 죽지 않을까 했었더랬다.

실제로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과였으니까.

“좋아. 이제 들어내면 돼. 간은 왔나?”

“네.”

“음, 그럼 빼고 있지.”

“네, 교수님.”

하지만 이 환자는 살 거 같았다.

적어도 자신만 실수 안 하면 그럴 거 같았다.

정말, 정말로 드문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게 기적인가?’

예순이 넘은 지도 오래인 김승규가 기적을 떠올릴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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