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A.I 닥터-259화 (259/1,303)

259화 산모 (5)

“가 볼래?”

신현태가 라면을 아직 다 씹지도 않은 채 입을 열었다.

“에이 드럽게.”

이현종은 그 모습을 보며 오만상을 찌푸렸지만, 수혁은 그러지 않았다.

오늘도 얼마나 바빴던가.

원래 환자에 협진 환자에.

수혁이 도왔음에도 정신이 나갈 거 같았다.

“그럴까요?”

게다가 지금 가 보자는 곳은 수혁도 꼭 한 번 가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곳이었다.

해서 수혁은 신현태와 마찬가지로 라면을 오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도 그래?”

진짜 똑같은 광경이었지만 이현종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그의 눈에는 수혁이 오물거리고 있는 게 마치 이유식이라도 되는 것처럼 귀엽게만 보일 따름이었다.

“어이구, 흘린다.”

심지어 손가락으로 수혁 입가에 흐른 면발을 닦아 내 줄 지경이었다.

신현태로서는 정말이지 어이가 없는 상황이어야 했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았다.

‘내가 닦아 주려고 했는데.’

어째 시간이 가면 갈수록 수혁은 점점 이뻐지기만 하지 않은가.

과 안에서 잘하는 바가지 밖에서도 잘한다라는 말을 만들어야 하나 싶을 지경이었다.

특히 이번 일은 진짜 언제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다들 죽을 거라 생각했던 사람이 살았으니까.

심지어 그 사람이 누군가의 어머니였으니까.

“그럼 후딱 먹고 가자. 아직 모자 동실로 가진 못하는데……. 진태림 과장이 허락해 줘서 한 10분 정도 아기 본다고 하거든? 그거 놓치면 좀 아쉬울 거 같아.”

“아, 정말요? 벌써 그래도 된대요? 수유도 하시나?”

“그게 되겠니. 안 되지. 근데 얼굴은 보게 할 건가 봐. 안아 보는 것도 안 되긴 하는데……. 그래도 지금까지 그 어머니, 자기 아기 한 번도 못 봤어.”

“아……. 이거 정말 의미 있는 순간이네요.”

아기에게 해가 될까 봐 못 보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아기는 건강했다.

산모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낳은 아기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러니 문제는 산모였다.

간 이식을 받으면서 간 기능 부전에서는 벗어났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남의 장기를 받은 몸 아니겠는가.

초반에는 아무래도 면역 억제제를 쓸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면회는 극도로 제한되었다.

그게 본인 아기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김승규 교수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가 봐. 하기야 산모 간 이식이 흔한 건 아니지.”

“아예 없지는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저희 병원이 진짜 많이 하는 편 아닌가요? 간 이식?”

“응? 그렇지.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하나. 본인께서 죽을 거라 생각했던 환자가 산모였는데, 멀쩡히 살아서 아기를 보게 되는 건 처음인가 봐. 엄청 기분 좋아 보이더라. 막 웃어.”

막 웃는데 막 무서웠다는 말까지는 굳이 하지 않았다.

사실 굳이 말로 전할 필요도 없었다.

신현태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에이, 그거 뭐 대단한 일이라고.”

김승규도, 진태림도, 신현태도, 수혁도 모두 행복한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은 이현종이 유일했다.

김승규와 원래 좀 껄끄러운 사이여서는 아니었다.

서로 경원시하고 있을 뿐, 흉부외과처럼 사석에서도 쌍욕이 오갈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다만 수혁과 신현태가 둘만의 추억을 쌓았다는 게 마음에 안 들었다.

‘듣다 보니까 진짜 대단한 일 같은데…….’

이현종이 누구인가.

수혁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수십 년 간 이어져 내려온 태화 최고의 천재라고 불린 사람 아니던가.

그런 사람인지라 딱 얘기만 들어도 환자가 처해 있던 상황이 어땠는지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런 환자를 둘이 보는 일은 평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할 것이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이런 망할. 왜 이놈은 아빠인 나랑 안 가고…….’

이유야 당연히 알고 있었다.

자신은 감염내과가 아니지 않은가.

지금 돌고 있는 과도 아니고.

그러니 간염에 걸린 산모를 노티 할 까닭이 없을 터였다.

‘감염내과 할 걸 그랬나? 아니, 아니지. 그래도 이건 좀 너무 나갔지.’

간혹 평생을 애정해 온 순환기내과를 부정하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때마다 미쳤구나 하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그만큼 아쉬웠다.

“대단한 일이죠, 아빠. 산모가 살았다니까요? 제가 그거 때문에 이틀 밤을 샜어요.”

“에이…….”

그 일에 수혁이 의미 부여를 하면 할수록 더했다.

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려니, 신현태가 분연히 몸을 일으켰다.

최선을 다해 면 치기를 하고 나서였다.

“가자. 가서 봐야지.”

“아, 네.”

생각 같아서는 나에게서 수혁과의 추억을 앗아 간, 정말이지 꼴 보기도 싫은 놈 꺼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아니지……. 이놈 또 가서 뭔 환자라도 보면 어째?’

그러다가 혹 또 다른 추억 쌓기에 실패할까 봐 두려웠다.

해서 이현종도 억지로 라면을 밀어 넣었다.

나이 들고 나서는 어지간하면 하나 다 안 먹던 라면이었지만.

어째 수혁이랑 먹다 보니 맛있어서 최근엔 자꾸 먹게 되었다.

“야야, 나도 가.”

“응? 형은 그 환자 모르잖아.”

“모르긴 뭘 몰라! 네가 한 백 번은 얘기했겠다! 이름도 알어! 신유진!”

“아니……. 알면 아는 건지, 왜 이렇게 승질을 내고 그래.”

“아, 아는 걸 모른다고 하니까 그렇지! 너 그게 사람 얼마나 억울하게 만드는 건지 몰라서 그래.”

“알았어요, 알았어. 같이 가, 그럼.”

“그렇게 혹 달고 가는 듯이 얘기하지는 말고!”

“뭐…….”

신현태는 정말이지 뭐 어쩌라는 건가 하는 얼굴을 하고는 앞장서서 걸었다.

방금 진태림에게서 온 톡을 확인하면서였다.

<이제 신생아실에서 출발. 아기는 오늘 퇴원이라 오늘 말고는 볼 일 없음.>

예전에는 진짜 신세대 그 자체인 진태림이었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톡이 좀 간결한 느낌이었다.

이게 혹 유행하는 말투라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냥 눈이 침침하다는, 침울한 답이 돌아온 적이 있었다.

“지금 아기 나왔다니까, 빨리 갑시다.”

“네, 교수님.”

“애가 뛰냐? 뭘 서둘러?”

“아……. 거 참. 안고 가겠지. 그럼 빠르다니까?”

신현태는 사사건건 시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굳이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뭔가 좀 언짢은 일이 있는 거 같은데, 그게 아무래도 수혁과 관련된 일 같아서였다.

늘그막에 얻은 자식 같은 느낌으로 키우고 있으니 엄청 속상하지 않겠는가.

‘그래, 진짜 애 있는 내가 참자. 애를 키워 봤어야 어른이 되지.’

해서 진짜 참 어른인 자신이 참기로 했다.

“음. 여긴 또 오랜만이네.”

이현종은 암센터 외과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오며 중얼거렸다.

주로 응급실과 가까운 본관 중환자실이나 심장내과 중환자실을 들락거리는 그로서는 감염 사태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아, 이 원장.”

그 말은 곧 김승규 교수도 오랜만에 본다는 뜻이었다.

“김 선배님. 안녕하세요.”

천하의 이현종도 김승규 교수의 얼굴을 똑바로 보진 못했다.

학생 때까지 다 치면 이제 40년인데, 그럼에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 무서워져서였다.

“응, 아……. 이수혁 선생? 자네도 왔어?”

“어? 우리 수혁이를 알아요?”

하지만 김 교수 입에서 이수혁 이름 석 자가 나오자마자 40년간 못 했던 일을 해내는 기염을 토했다.

김승규는 처음으로 자기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연 이현종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평범하게 뜨고 봐도 무서운데, 동그랗게 뜨고 보니까 잡아먹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으.’

이현종은 육십 평생 모아 온 기력을 소모하면서까지 버텼다.

심지어 말을 덧붙이기까지 했다.

“알아요? 우리 수혁이?”

“아……. 알지. 이 환자 협진 진료하던 친구잖아.”

“응?”

보통 교수가 협진 진료하던 레지던트를 알아보던가?

이현종 평생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 있기는 했다.

아주 기억에 남으면.

‘개판을 쳤거나 아주 잘했거나인데……. 수혁이는 아주 잘했지?’

하도 옆에서 신현태가 지랄을 해 대길래 차트를 면밀히 까서 본 적이 있는데, 과연 이수혁이다라는 말이 나왔더랬다.

아마 다른 녀석이 봤으면 산모는 수술받을 기회조차 잃었을 것이 뻔했다.

솔직히 말하면 이현종 본인이 들러붙어서 봤더라도 확률은 반반이었다.

실력이 모자라서는 아니고, 체력이 모자랐을 거 같았다.

이런 환자는 계속 보던 주치의가 몇 시간만 정신을 놓으면 잘못되기 마련 아니던가.

그야말로 젊은 패기와 완숙한 실력 두 개를 모두 지닌 수혁이어야만이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요 노인네가 수혁이를 마음에 둔 모양인데……. 이것 봐라, 이거?’

조만간 원래 외래동 지으려고 했던 자리에 이식 센터 삽 풀 예정 아니던가.

지금도 센터장으로서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김승규 교수는 그게 지어지는 순간 거의 영구 원장 수준으로 격상될 터였다.

이식이라는 게 외과만 잘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마취과나 특히 내과의 도움이 절실할 터였다.

때문에 부센터장 자리는 내과를 주기로 했는데, 지금 그걸 홍창기로 하냐 아니면 다른 내과 선생을 주냐 뭐 이러고 있었다.

‘거기 수혁이 꽂는다고 하면…….’

세상에 30대에 부센터장이라니.

순환기내과로 오지 않은 게 아깝긴 하지만, 애비 된 도리로 마냥 반대하기도 어려웠다.

누가 뭐라 해도 내 자식의 성공을 비는 게 아비일 테니까.

‘아니, 아니지. 아냐! 왜 수혁이가 부센터장을 해! 센터장을 해야지!’

물론 금방 제정신으로 돌아오긴 했다.

금방이라는 게 이현종 기준이었다는 게 좀 문제긴 했다.

“왜 이래? 왜 멍하니 있어?”

다행인 것은 바로 옆에 신현태가 있다는 것이었다.

“아……. 그, 어제 잠을 좀 못 잤나 봐요.”

“아하. 조심하라고 해. 육십 넘었으면 예전처럼 무리하고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다 훅 간다. 알지? 육 교수. 그 정정하던 놈이…….”

“아, 네. 알죠. 주의 시키겠습니다.”

“아무튼, 이수혁 선생? 선생이 반 살린 거야. 우리가 반 했고. 환자분한테도 그렇게 얘기해 놨거든? 나중에 원하면 외래 팔로우업 할 떄 같이 볼 수 있게 예약 잡을게. 괜찮아?”

김승규는 신현태와 잠시 대화를 나누는가 싶더니, 수혁에게 본격적으로 집적대기 시작했다.

나이 지긋한 석좌 교수에게 집적댄다는 말이 온당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수혁이나 바루다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이 양반은 또 왜 이럴까요? 이런 캐릭터 아니라고 들었는데.]

‘뭐 한자리 줄 생각인가?’

[거참……. 다들 난리네?]

‘아. 너 전에 좋은 생각 있다며. 그건 어떻게 됐어.’

[아직 시기상조입니다.]

‘아무 생각 없구나, 너?’

[그건 좀 억울합니다만……. 아무튼, 하고 싶다고 되는 일은 아니죠. 수혁이 더욱 명성이 쌓여야 가능할 겁니다.]

‘그럼 이건 일단 대충 대응해?’

[네.]

바루다의 조언대로 정말 대충 대응하고 있으려니 아기가 나타났다.

2kg 겨우 넘겨서 태어났다고 하더니, 정말 작았다.

진태림 품에 안겨 있었는데 자세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아, 이수혁 선생. 얼굴 좀 봐요. 선생이 살린 거야.”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수술이야 진태림이 했지만.

수혁이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터였다.

“어때? 귀엽지요?”

“아……. 네. 정말 이쁘네요.”

“우리가 볼 때도 이런데, 엄마가 보면 어떻겠어. 빨리 보여 줍시다.”

“아, 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