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소아도 잘해? (1)
“우네.”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신현태였다.
그의 말대로 산모는 울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아이를 직접 안아 들지는 못하고, 유리창 너머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어쩌면 이 아이 때문에 그 모든 고초를, 심지어 간 이식까지 받은 마당이었지만.
그저 아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안도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요.”
“이수혁 선생, 고마워. 정말 잘했어.”
그 장면은 비단 신현태에게만 감동이 된 것은 아니었는지 너도나도 한마디씩 내뱉었다.
심지어 이번 일로 크게 자랑하려다 된통 당한 진태림은 숫제 수혁의 어깨마저 두드려 주고 있었다.
한번 뻘쭘하긴 했지만.
뭐가 되었건 간에 죽을 뻔했던 산모가 살지 않았는가.
원래 산모와 아이가 더 죽는 꼴 보기 싫어 산부인과를 선택한 사람이니만큼 제일 기뻐하고 있었다.
“너도 우는데?”
감동의 도가니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건 오직 하나 이현종뿐이었다.
아니, 도리어 뭐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불퉁한 표정마저 짓고 있었다.
‘와서 보니까 진짜 특별한 경험이잖아?’
수혁이나 자신이 산부인과 의사라면야 평생 한 번쯤 더 경험해 볼 수도 있을 거 같았지만.
둘 다 내과 아닌가.
심지어 수혁의 3년 차는 이제 1년밖에 남지 않은 마당이었다.
시험공부 하는 기간과 원장 직권으로 때려 줄 수술로 인한 휴가를 제외하고 나면 길게 잡아야 8개월이었다.
그사이에 이런 경험을 공유할 수 있을까?
‘이런 시발.’
나도 간염 잘 보는데.
이현종은 그런 생각을 하며 핑핑 콧소리를 냈다.
“왜 그래. 좋은 날 인상 구기고.”
신현태로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상식적으로 다 큰 어른을 넘어 이제 환갑도 넘은 어른이 이런 것에 삐진다고 생각하는 게 어찌 보면 모욕 아니겠는가.
[왜 이럴까요?]
바루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나이에 따른 편견 같은 건 없었지만.
이만한 일에 대한 데이터가 없어서였다.
‘뭐 좀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가?’
그나마 아들 행세를 하고 있는 수혁이 비슷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는데, 그런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졌다……. 신현태한테 내가 지는 날이 오다니.’
그만큼 죽을 뻔했던 산모가 친정아버지에게 생체 간 이식을 받아 살아나 아이를 처음으로 바라보게 된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제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하염없이 중환자실에 둘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간 이식을 맡은 김승규 교수 또한 이 이상 아이를 산모에게 보게 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꼈다.
물론 정서적인 교감이 환자 회복에 긍정적이란 보고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정도껏 할 때 얘기였다.
“자자, 이만하고. 이제 아기 돌려보냅시다. 여기 뭐 좋은 곳이라고 계속 있으라고 해?”
“아, 네. 교수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늘 그러하듯 그의 말은 결정적이었다.
특히 지도 학생인 진태림은 단 한 번도 김승규 교수의 말을 어길 거라고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누구라도 그럴 터였다.
이 얼굴을 보고 나면.
“아, 이수혁 선생. 혹시 신생아실 가 본 적 있어요?”
해서 모두 함께 우르르 중환자실을 빠져나왔는데, 진태림이 입을 열었다.
수혁에게는 꽤 솔깃한 제안을 하면서였다.
사실을 말하자면 수혁보다는 바루다에게였지만.
둘은 같은 몸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어떤 면에서 보면 바루다가 수혁보다 수혁의 행동을 정하는 데 있어 우위에 있기도 했다.
[가 보고 싶군요. 어떤 케이스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쪽으로는 데이터가 전혀 없습니다.]
‘애기들 보러 가자는 거 같은데, 케이스라고 표현을 해?’
[저는 깡통이니까요. 설마 저에게 인류애라도 기대하는 겁니까?]
‘그건 아닌데…….’
[귀찮군요? 지금 가서 한번 경험 쌓는 것이 앞으로 사람 살리는 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모르는데.]
‘아니……. 나는 내관데 뭐 하러 애기들을 보냐고.’
소아도 아니고 신생아 아닌가.
내과 의사로는 평생을 헌신과 봉사를 다해 가며 진료를 해도 신생아 볼 일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루다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수혁, 제가 내과 의사인 수혁 몸에 들어왔으니 수혁이 내과 의사가 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
[죄송합니다. 수혁의 지적 능력을 과대평가했습니다.]
‘아오.’
[슬슬 대화 끝내는 게 좋겠습니다. 이제 곧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할 겁니다.]
둘은 하도 대화를 오래 해 온 덕에 잠시 동안은 가속화 기능을 사용한 것처럼 빠르게 대화가 가능했다.
그래 봐야 오래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인 데다가 물리적으로 가는 시간을 아예 붙잡아 둘 수는 없어서 그동안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양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제가 외과 의사에게 들어갔으면 외과용 A.I.가 되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외과 수술에서 A.I.의 개입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을 테니까요.]
‘아직도 뭔 소린지 모르겠는데.’
[외과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 대해서는 이 바루다의 쓰임새가 엄청나다는 겁니다. 소아과에서도 그렇겠죠?]
‘음.’
[설마 딸랑 내과만 할 생각입니까? 수술을 제외한 모든 것에 대해서는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지금 당장 공부까지 하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부디 경험할 기회마저 날리진 마십시오.]
‘허.’
이리 진중한 말투라니.
마치 조선 시대 충신의 간언 같은 느낌이었다.
[듣기 싫죠? 원래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입니다.]
‘요새는 안 그렇게 만들기도 하잖아.’
[말귀를 못 알아먹는군요. 일부러 이러시나.]
물론 그 후로는 당연하다는 듯 갈굼이 이어지긴 했지만.
아무튼 간에 맞는 말 같기는 했다.
바루다를 머릿속에 품게 된 것은 일생일대의 행운 아니겠는가.
어린 시절 누군가 기부했던 무협지에서 본 기연이 바로 이런 거란 생각이 들었다.
“가 봐도 될까요?”
“응, 한번 봐요. 원래 협진 보러 오는 거 아니면 문 안 열어 주는데, 이수혁 선생은 자격이 있지.”
“으음.”
뭔가 꼬시는 듯한 말투 아닌가.
이현종의 심기가 다시금 어지러워졌다.
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지러워졌다는 건 알아챈 신현태가 그의 어깨에 가만히 손을 올렸다.
“왜 그래, 형.”
“설마 진 과장 산부인과로 꼬시는 거 아니겠지? 우리 수혁이.”
“응? 형……. 내과 하다가 무슨 산부인과를 가……. 그냥 참관시켜 주는 거겠지. 그리고 신생아실은 소아과야.”
“그럼 소아과 사주를 받았나?”
“정신 나간 소리 좀 그만해 형…….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닌데…….”
신현태의 손에 점점 힘이 더 들어갔다.
“으어?”
이현종의 입에서 말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나올 때까지 계속 그랬다.
“두 분 참 사이좋아요. 하하.”
둘 사이의 내막을 모르는 진태림은 그저 웃었다.
산부인과에도 이현종 그레이드의 선배가 없는 건 아닌데, 저렇게 스스럼없이 지내진 못하지 않던가.
만약 자신이 저런 짓을 했다간 의국 나가야 할 게 뻔했다.
“아니, 뭐. 근데 신생아실은 갑자기 왜?”
신현태는 이미 신생아실을 눈앞에 둔 채 물었다.
진태림은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고는 수혁을 돌아보았다.
“뭐……. 아직 미혼인 거 아냐? 애 낳기 전에 한 번쯤 봐 보면 좋지.”
“아하.”
사실 신현태도 이제 와서 다른 과에서 꼬실 거 같진 않았지만,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을 거 같긴 했더랬다.
“알고 보니 사윗감이었구만. 다행 아냐, 형?”
당연히 이쪽도 경쟁이 치열하긴 할 터였다.
수혁이 다리가 좀 불편해서 그렇지 다른 건 다 준수하지 않던가.
일단 아버지도 괴짜긴 하지만 일단 태화 원장인 이현종이고.
본인 능력이야 출중하다 못해 이현종을 뛰어넘고 있었고.
“얼굴도 뭐……. 저만하면 괜찮지 않아?”
“아니, 그건 아냐. 잘생긴 얼굴은 아니지.”
“형? 수혁이 일이면 만사 제쳐 두고 칭찬하면서?”
“아닌 건 아닌 거지. 그리고…….”
과연 이현종은 아까보다는 확실히 심기가 편해 보였다.
하도 이쪽저쪽에서 수혁을 꼬시다 보니 당연히 다른 과에서 수혁을 부르면 경계하게 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얘긴 하고 있지 않지만, 소화기 장강명도 실제로 포기한 건 아닐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자식이 진짜 포기했으면 이번에 두바이 가는 건……. 자기도 따라간다고 이실직고했겠지.’
근데 아니지 않은가.
결재한 사람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그저 웃으며 어유 저는 수혁이 꼬실 생각 없다는 말만 하고 있었다.
이해는 갔다.
수혁이랑 딱 한 번만 돌고 나면 느낌 오니까.
그런 연고로 소아과나 산부인과에서 얼토당토않는 욕심을 부리고 있지 않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 아들이랑 어떻게 엮어 보시겠다?’
진태림이야 신현태랑 동기 아닌가.
신현태는 삼수했으니 나이가 많아 자식들 나이도 20대 중반이지만, 진태림 애들은 어린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수혁을 점 찍은 걸까?
“아……. 진짜 오셨네. 근데 원장님하고 신 과장님도 오셨어요? 아들이라고 너무 따라다니시는 거 아니에요?”
“이 교수…….”
소아청소년과의 대모 이기자 교수.
이름이 그래서 그런가, 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천하의 이현종마저 이기자 교수에게는 한 수 접어 둘 때가 많았다.
‘이 할망구 딸이……. 딸이 몇 살이더라.’
고민을 하고 있으려니, 이기자 교수의 시선이 휘까닥 돌아서 수혁에게로 향했다.
평범한 눈길이었으나 이미 편견에 사로잡힌 이현종에게는 먹잇감을 노리는 눈으로만 보였다.
“자, 들어와요. 한번 봐요.”
“아……. 네.”
물론 아예 착각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바루다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이상하네요? 뭔가 평가하는 듯한 눈빛이었습니다.]
‘평가? 소아과 선생님이 왜 날 평가해?’
[그것까지는 모르죠. 저는 A.I.이지, 점쟁이가 아닙니다. 게다가 점이라는 것 또한 과학적인 근거가 불충분합니다. 차라리 통계학으로 의미가 있는 관상을 믿는 게 낫겠죠.]
‘관상을 볼 줄 알아?’
[모르죠.]
‘그럼 얘기를 왜 꺼내?’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제 발화 습관은 수혁에게서 유래한 겁니다. 모르시나요? 수혁이 말할 때 이런 식으로 괜히 관계도 없는 아는 얘기 해서 잘난 척하는 편이라는걸?]
본격적인 갈굼이라.
수혁은 더 이상의 대화를 포기하고는 신생아실에 있는 아기들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신생아 중환자실이었다면 마음 아픈 광경만 있었겠지만, 이곳에 있는 아이들은 그저 건강한 아이들뿐이었다.
“애들 귀엽죠?”
이기자 교수는 정말이지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수혁을 돌아보았다.
이번엔 꽤 노골적이어서 바루다의 도움이 없이도 어떤 평가가 진행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뭐야.’
[나도 모릅니다만, 이현종이 이 교수 앞에서 주눅이 들었습니다. 잘 보일 것을 추천합니다.]
‘헐. 엄청 높은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잘 보이라는 얘기 아닌가.
해서 고개를 연신 끄덕이고 있으려니, 이기자 교수의 전화기가 울렸다.
“응, 나 이기자.”
수혁과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말투였다.
“뭐? 자꾸 넘어져? 몇 살인데? 6살? 너 어딘데, 외래? 음. 알았어.”